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어쩌면 대륙 전체의 위기가 됐었을지도 모르는 쿨리크를 단신으로 막아낸 아렌의 업적은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었지만, 세상은 이를 알지 못했다.
직접 그 장면을 목격한 것은 부르바스와 마크뿐이었고, 레티시아를 비롯한 백작가의 사람들은 뭔가 큰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함부로 묻지 못했던 것이다.
이 놀라운 업적을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싶어서 몸을 움찔거리는 부르바스의 입단속을 시킨 아렌은 두 마법사와 짧은 문답을 이어갔고,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세상이 놀라 자빠질 싸움으로 대륙을 위기에서 구해내었으니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아렌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한 번의 싸움이었고 그 싸움을 발판으로 또다시 전진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 대마법사도 따로 준비하는 것이 있는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렌은 그대로 길을 나섰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르고, 아렌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세상 역시 쉬지 않았다.
메카니와 그라인드, 속속들이 합류한 귀족 연합군의 군단이 어느덧 제도의 근처까지 도달했고, 아렌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만만치 않군.”
원견의 마법으로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도시를 관측하던 리헐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제가 허허벌판에 꽂은 깃발을 중심으로 황궁이 지어지고, 제도가 건설되었다.
그 제도를 중심으로 다시금 위성도시가 생겨났으니 대륙 전체를 뒤져도 이렇게 철저히 계획한 도시는 없었다.
대륙 정복을 위한 황제의 야망이 가득 찬 도시.
당연히 그저 화려하기만 한 도시는 아니었고, 유사시에는 제국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했으니 제도와 그 영역은 철저하게 전쟁을 위한 도시로 건설된 것이다.
각 도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서로의 방어에 도움이 되는 구조였고, 각 도시를 감싼 방벽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으니 대륙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마법방어력을 자랑한다.
도시마다 각각의 역할이 있어서 식량 생산은 물론이고 광산까지 있어서 완전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제도를 관통하는 거대한 강이 있기는 하지만, 방비가 튼튼한 것은 마찬가지고 여차하다가는 관문 사이에 끼어서 협차공격으로 몰살당하기 십상이니 강을 통해 공격한다는 안건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인구.
황제에게 신앙에 가까운 충성심을 바치는 천만의 시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 여차하면 그 전부를 상대할 각오도 해야 하는 것이다.
“…… 이렇게 보니 끔찍하군. 만만치 않다는 표현은 너무 가벼워.”
잠시 머리를 굴린 리헐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귀족 연합군 전체를 조율하는 입장이니만큼 커다란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큰 벽에 부딪힌 것이다.
“선대가 너무 잘 만들었어.”
저런 난공불락의 도시를 건설하는데 크게 관여한 것이 바로 와이즈너 후작가의 사람들이었으니 그 업보가 돌아온 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리헐트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방법을 찾아봐야지. 아군이 유리한 측면도 분명히 있으니까.”
제국 각지에서 소환된 악마들도 거의 진압해 나가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황제에게 붙은 귀족들의 영지도 압박을 가해 견제 중이다.
영지의 문제를 해결한 귀족들이 이를 갈면서 군대를 이끌고 연합군에 합류하기 위해 모이고 있으니, 귀족파의 군대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불어날 것이다.
거기에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 가문이 메카니와 그라인드 아닌가.
용맹하기 짝이 없고 항상 전장의 선두에 서는 메카니의 혈족과 병력들은 전쟁의 달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만하기 그지없어서 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려고 하는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이번 전장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 무서운 존재가 있으니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았다.
거기에 그 황금의 끝을 모른다는 그라인드가 이를 갈며 돈을 풀고 있으니, 리헐트가 아는 모든 군대를 통틀어서 이렇게 풍족한 보급이 이뤄지고 있는 군대는 없었다.
오만하지만 뻣뻣한 메카니의 혈족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군수품이 중간에 사라지는 일도 없었고, 제국 상계에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그라인드가 보급을 총괄하고 있으니 군납으로 장난치는 상인들도 없었다.
물론 몇몇 상인들이 진군 초기에 목이 베여버리고 가문이 풍비박산 나는 소소한 일이 있었기는 하지만.
황제에게 붙을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는 팔대귀족의 두 가문도 지금은 잠잠하다.
들불처럼 일어난 연합군의 기세도 예상 밖이었고, 항상 조용히 지내던 그라인드가 미쳐 날뛰니 몸을 사리는 것이리라.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박살나지.”
무엇보다 아렌의 존재.
수틀리면 가문 하나 지워버리는 것쯤은 우습게 해치워 버리는 괴물의 존재가 억제력이 되어서 여타의 귀족들과 두 가문을 단단히 옥죄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리헐트의 요청을 받은 아렌이 시간을 내서 두 가문의 영지 근처에 방문한 적이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두 가문은 움직임을 멈췄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두려운 존재지만 아군이면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아렌을 생각하며 리헐트가 비릿하게 웃었다.
속세로 나와 세상사에 간섭하는 초인은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움직이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이니 어떻게 대처 방법이 없고, 유일한 방법이라면 동등한 초인을 움직이는 것뿐인데, 대부분의 초인들이 속세에 관심이 없으니 대안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황제가 승승장구하면서 지금의 제국을 일구어낸 것이고.
리헐트의 눈가에 위험한 빛이 떠올랐다.
황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살의가 가득 차고, 혈압이 오를 정도였으니, 제아무리 냉정하기 짝이 없는 리헐트라고 할지라도 감정을 주체하기가 쉽지 않았다.
“…… 후우.”
“조금 진정하는 게 좋겠구나.”
겨우겨우 감정을 가라앉히며 한숨을 내쉬는 리헐트의 귓가에 나른한 목소리가 박혀 들었다.
“…… 기척 좀 내고 다니지.”
“냈다. 네가 못 알아차린 것뿐이야. 아무리 재능이 없다고는 하지만 조금은 신경 쓰는 게 좋겠군.”
언제 다가왔는지 그림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아렌을 보면서 리헐트가 투덜거렸다.
리헐트를 호위하던 기사들도 갑자기 솟아난 듯이 나타난 아렌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검에 손을 가져다 대었지만, 이내 아렌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부동자세를 취하며 경건한 표정을 지었다.
초인.
소드마스터만 해도 뭇 기사들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한데, 그 위계를 넘어선 초인을 직접 본다는 것은 일생을 통틀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다.
거기에 알려지기로 아렌은 오러를 사용하는 무투파 초인이니 기사들은 존경을 넘어 신앙에 가까울 정도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그들의 감정이 그대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지만, 아렌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리헐트에게 물었다.
“어떻지?”
“…… 어려워. 기책이 통할 대상이 아니다.”
주어도 없는 물음이었지만 찰떡같이 알아들은 리헐트의 대답에 아렌은 저 멀리 도시로 시선을 돌렸다.
붉은 기운이 살짝 떠오르며 확대된 시야에 도시의 외벽이 들어섰다.
외벽을 따라 흐르는 마법의 흐름이 보였고, 도시를 가득 채운 시민들의 감정이 중구난방으로 흔들리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흠.”
아렌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하늘로 솟아오르던 감정들이 일정 지점에서 방향을 잡더니 한곳으로 몰려가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시야가 더욱 깊어지고 그 흐름을 따라가니 저 멀리 화려한 궁전이 보였다.
황궁.
제도뿐 아니라, 대륙 전체에서도 가장 높다는 건물의 가장 높은 곳으로 감정들이 흘러가고 있었고, 일부는 다시 하늘로 올라갔지만, 반 정도의 감정들이 황궁의 첨탑을 통해서 그 내부로 스며들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황궁은 신전 그 자체처럼 보였다.
한없이 신성력과 비슷한 기운이 황궁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아렌의 눈으로도 그 너머를 꿰뚫을 수 없었으니, 이것은 권능이 작용한 결과이리라.
무리한다면 그 내부를 볼 수도 있겠지만 아렌은 눈을 감았다.
아렌이 힘을 투사하는 순간 황제도 알아챌 것이 분명했고, 아직 아렌은 황제와 충돌하고 싶지 않았다.
이 전쟁은 결국 아렌과 황제의 결투로 마무리되겠지만, 그 과정이 중요하다.
수십 년간 쌓인 귀족들의 분노와 이번의 악마 소환으로 인해서 일어난 희생의 대가를 귀족들이 먼저 챙기는 것이 순서다.
아렌과 황제의 대결만으로 결판이 난다면 누가 이기던 변화가 없을 것이고,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은 귀족들이 가슴에 새기고 있는 진리다.
다시 눈을 뜬 아렌의 시선에 리헐트의 모습이 잡혔다.
뭔가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서 자신을 바라보는 리헐트의 모습에 아렌이 입을 열었다.
“단단하군.”
“…… 그렇지? 일단 저 방벽만 어떻게 해도 꽤나 쉬워질 텐데 말이야.”
“나는 움직이지 않을 거다. 이 전쟁의 의미를 잊지는 않았을 텐데?”
“…… 그래. 피를 흘려야 할 때는 흘려야지.”
은근한 기대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렌의 말에 리헐트는 생각을 접었다.
군사라는 존재들은 어떻게든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쟁을 이기는 것이 미덕이니 리헐트의 태도는 당연한 것이었고, 아렌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정면으로 들이박아야겠군. 길어지겠어.”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겠지.”
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둘의 말에 주변에 서 있던 기사들이 몸을 떨었다.
호위 기사를 할 정도면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는데 익숙한 자들이 분명하겠지만, 치밀어 오르는 환희와 기대를 어찌하지 못한 것이다.
기사라는 것은 결국 전쟁을 위해 단련하는 자들이다.
귀족가에 소속된 기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흔한 영지전마저 찾기 힘들고 지속적인 토벌로 몬스터마저 찾기 힘든 제국에서 기사들이 무명을 날릴 기회는 드물었으니 대부분의 기사들은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일생에 한 번 겪어보기도 힘든 거대한 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자연히 피가 끓어오르는 것이다.
“기개가 좋구나. 무인이라면 그래야지.”
그러한 기사들의 감정을 느낀 아렌이 드물게 칭찬의 말을 뱉었고, 기사들은 힘차게 가슴의 갑옷을 때리며 고개를 숙였다.
“과찬이십니다!”
기사들은 명예를 먹고 사는 자들이나 마찬가지.
그런 기사들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아렌의 한 마디는 그들의 전의를 단숨에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결국 제국에서 가장 최고의 가치는 힘이다.
앞으로 무수한 피가 새겨질 것이 분명한 대지와 방벽을 슬쩍 바라본 아렌이 몸을 돌렸고, 단단한 눈빛을 한 리헐트와 호위 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 그들의 시야에 수천, 수만 개가 넘는 천막들과 수십만의 병사들, 각종 병장기들과 첨예하기 이를 데 없는 군기가 넘실거리는 거대한 군대의 모습이 들어섰다.
지평선 너머까지 보이는 군대의 물결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그것은 어지간한 아렌도 다르지 않았다.
흔치 않게 웅심이 피어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렌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쿵!
현세에 나타난 위대한 초인의 모습을 본 기사들과 병사들이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발을 굴렸고, 인의 장벽이 열리며 길이 생겼다.
비릿한 철 내음을 맡으며 아렌은 묵묵히 발을 옮겨 인의 장막으로 파고들었고, 이윽고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