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부르바스였지만 표정은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다.
“…… 괜찮으세요?”
“괜찮다. 조금 피곤하기는 하다만 이 정도야 늘 있는 일이지. 마법사잖느냐.”
푸근한 웃음을 짓는 부르바스를 보며 레티시아는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한번 연구에 들어가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몰두하는 마법사들의 행태는 유명한 것이었고, 레티시아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부르바스의 모습은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상황 아닌가.
같은 혈족인 황제에게 적대하는 것은 물론, 아군에게도 그 사실을 알릴 수 없어서 이렇게 숨어 지내야 하는 처지가 안쓰러운 것이다.
사실상 살아있는 황실의 혈족 중 황제를 제외하면 가장 큰 어른인 부르바스가 가지는 상징성은 절대 적지 않았다.
거기에 본인도 존경받는 대마법사이다보니 부르바스가 몸을 보이는 순간 그의 위상을 이용하기 위해서 온갖 귀계와 음모가 난무하고 황제는 암살자를 보내올 것이 뻔했다.
이러나저러나 부르바스는 당분간 세상의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내 처지를 조금 이해하겠나?”
“…… 짓궂군.”
미소를 지으며 빈정거리는 마크를 가는 눈으로 쳐다본 레티시아의 모습에 부르바스가 피식 웃었다.
어찌되었든 부르바스와 마크가 귀족연합군 내부에 숨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비록 아렌의 암묵적인 허락이 있었지만,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들이 제법 모여 있는 귀족연합군 내부에 숨어있는데도 전혀 위화감 없이 들키지 않고 있는 것은 거꾸로 두 사람의 대단함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공간과 결계에 대해서는 손에 꼽는 마크와 전반적인 마법 전체에 능통한 부르바스의 합작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었고, 두 마법사의 결과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받거라. 해석이 되었으니 이 수식을 바탕으로 공격하면 될 거다.”
부르바스가 내민 수정구를 레티시아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받았다.
수정은 마법적인 정보를 저장하기 쉬워서 널리 쓰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그녀의 손안에 있는 수정에 담긴 정보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조금 오차가 있겠지만, 익숙해지면 금방이겠지.”
킬킬거리는 마크의 모습이 얄미워보였지만, 그러기는커녕 레티시아의 마음속엔 존경심이 차올랐다.
두 마법사가 분석한 것은 제도의 성벽을 감싸고 있는 마법방어주문.
대륙 전체에서도 손에 꼽는 막강한 주문체계인데, 그 취약점을 밝혀내고 적은 힘으로 분쇄가 가능하게 만드는 수식을 구성해낸 것이다.
다른 두 곳의 군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큰 성과가 없던 귀족연합군의 전세를 한 방에 역전할 수 있는 무기였으니 두 마법사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업적을 세운 것이다.
다만 둘의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세상에 공표할 수 없었고, 공정한 성격의 레티시아는 그 점이 아쉬웠다.
“나한테서 빼간 수식을 더해놨더군. 뭐 마법사의 지식을 탐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싸늘하게 웃는 마크의 모습에 부르바스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수십 년 동안 고문 받으며 인체실험을 당하고 지식을 강탈당한 마크의 처지에는 분명히 부르바스 자신의 몫도 있었기 때문이다.
“뭐.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지. 시간을 건드리는 마법은 손도 못 대고 있으니까. 그것보다는 황제에게 엿을 먹일 수 있다는 상황에 집중하자고.”
그런 부르바스의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는 마크의 모습에 레티시아도 미소를 지었다.
“서두르거라. 다른 마법사들과 손을 맞추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거다.”
“예. 스승님.”
부르바스의 재촉에 몸을 돌리려던 레티시아의 눈에 밀드레드의 모습이 들어왔다.
여전히 인형 같은 표정으로 마나의 실을 뽑아내 이리저리 조율하고 있는 모습에 레티시아의 한쪽 눈가가 꿈틀거렸다.
“스승님. 저건 …….”
“알아차렸군. 그래. 우리 불쌍한 베럭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모습이지.”
쾌할한 어조로 말하는 마크의 말에 레티시아가 다시 시선을 모았다.
거대한 살덩어리였던 베럭이였지만, 밀드레드의 조율에 따라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모습을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보기만 해도 경멸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여전했지만, 꽤나 많이 다듬어진 모습은 하나의 기둥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으니, 두 마법사가 베럭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네가 신경쓸만한 건 아니다. 그것보다 서둘러라.”
“…… 네.”
마법사의 호기심이 강렬하게 레티시아를 자극했지만, 애써 감정을 누른 레티시아가 막사를 나섰다.
아마도 베럭의 저 모습은 황제를 향한 비수가 될 것이 분명했고, 두 마법사의 비틀린 운명을 생각하니 레티시아는 가슴이 묵직해져 오는 것은 느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막사를 벗어난 레티시아가 다시금 진중을 가로질렀고, 어느덧 여타의 막사보다 화려하고 거대한 막사의 앞에 도착했다.
각종 마법의 빛이 번쩍거리고 있는 막사의 주변에는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었고,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기사들이 목례를 하며 길을 열었다.
귀족연합군의 마법사들이 모인 막사이니 보안과 경비가 철저함은 당연한 것이고, 마법사들 역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왔나.”
“그래요. 네이던.”
여전히 싸늘한 표정에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고 있었지만, 차분한 눈빛의 네이던이 그녀를 반겼다.
네이던의 가문 역시 귀족연합군에 참전했고, 네이던 역시 기꺼운 마음으로 종군한 것이다.
“그거군.”
“서둘러야 해요. 전쟁을 오래 끌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그렇지.”
레티시아가 꺼내 든 수정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던 네이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전쟁을 오래 끈 다는 것은 막대한 피해를 야기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왕 전쟁을 시작했으면 당연히 이겨야 할 것이 아닌가.
둘의 모습이 목소리를 높이는 마법사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 * *
“우웅.”
눈을 뜬 엘렌의 입에서 불퉁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밝게 웃으며 침대 밑으로 뛰어내렸겠지만, 잠시 몸을 뒤척거린 엘렌이 구더기처럼 몸을 말더니 침대위에서 떼구루루 구르는 것이 아닌가.
폭.
그렇게 몸을 굴린 엘렌이 침대 밑에 가득한 쿠션위로 떨어져 내렸고, 유나는 쓰게 웃으며 그런 엘렌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유나아.”
“잘 주무셨어요. 아가씨?”
“…… 몰라아.”
입술을 댓발 내밀고 삐죽대는 엘렌의 모습이 귀여워서 유나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영지의 전 병력이 동원된 것도 모자라 끊임없이 용병을 고용해서 전쟁터로 보내는 그라인드 백작령이었지만, 의외로 영지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평민은 한 평생 자기가 사는 곳을 거의 떠나지 않는다.
황제의 정복전쟁 이후 평민에 대한 처우가 꽤나 좋아져서 거주이전의 자유가 주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평민은 자신이 나고 자란 영지에서 일생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애향심이 높고, 영주 가문이 그럭저럭 선정을 펼친다면 자부심마저 가지기 마련.
그런 자부심이 대를 이어서 내려온 영지의 영지민들은 영주가 칼을 거꾸로 들고 일어나도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이곳은 그라인드 백작가.
대륙 전체를 뒤져도 이 보다 풍요로운 영지는 손에 꼽을 정도이니, 백작가의 큰 어른이 암살당했다는 명분으로 황제를 향해 일어선 그라인드 백작가에 영지민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거기에 아렌의 존재까지 더해지니 백작가의 백성들은 사기가 하늘 끝까지 솟아있는 상태였고, 영지는 평상시보다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활발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전쟁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으니, 둘째 부인과 엘렌이었다.
둘째 부인이야 일평생 기분이 좋아질 일이 없을 것이니 당연한 것이고, 항상 방긋거리던 엘렌이 불퉁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다만 엘렌이 그러는 이유를 아는 몇몇은 속으로 미소 지으며 평상시와 다름없이 엘렌을 대하려고 노력했지만 엘렌의 표정은 풀릴 줄 몰랐다.
“…… 아렌 오빠 언제와아?”
세안을 시키고 조심스레 옷을 입히는 유나에게 엘렌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고, 유나는 가늘게 웃었다.
“글쎄요. 아직은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할 거 같아요.”
“우으응.”
전쟁 때문에 아렌이 자리를 비우자 유독 아렌을 따르던 엘렌의 표정이 구겨져버린 것이다.
거기에 언제 올지 기약도 없으니 엘렌의 기분은 갈수록 나빠졌고, 사실상 그라인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일지도 모르는 엘렌의 기분을 풀기 위해서 백작가의 사용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식사하셔야죠?”
“안 머거어!”
고개를 팩 돌리고 앞으로 걸어가는 엘렌의 모습에 유나가 조용히 뒤를 따랐다.
* * *
“목표물에 대한 정보는?”
“…… 해볼 만합니다. 평상시의 호위 상태에 비하면 꽤나 많은 숫자의 기사들이 자리를 비웠더군요. 현 백작가의 경비 상태를 보면 저희의 전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입니다.”
작디작은 호롱불에 의지해 둘러앉은 사내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진한 살의를 품고 있었다.
“…… 탈출은 힘들겠지?”
“…… 장담할 수 없습니다. 목표물을 확보하고 지정된 장소까지 이동하는 것까지는 어떻게 될 거 같지만 대부분의 요원들이 목숨으로 시간을 벌어야 할 겁니다.”
무거운 이야기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원 요청에 대한 답은 없나?”
“…… 제도 전체를 틀어막았다는 소식입니다. 마법 전문도 간신히 전달되었더군요. 공간이동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귀족군이 제도를 향해 진격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제도의 완전한 고립이었고, 리헐트는 꽤나 많은 자원을 투자해서 그 일을 성사시켰다.
마법전력의 절반 정도를 제도 봉쇄에 할애해서 외부의 소식을 차단했고, 제국 각지에 퍼져있는 공안 요원들은 한순간에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
음지의 공작이라는 것은 요원 개개인의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적절한 지원이다.
그동안 공안은 황제의 절대적인 비호아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공작을 성공시켰지만, 지금 그 지원 자체가 끊어져버렸으니 각자 안가에 숨어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
그런 와중에서도 바인드의 정보길드를 주축으로 각 영지에 숨어든 공안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사방에서 조여오고 있었으니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도 머지않아 발각될 운명에 처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 와중에서도 남동부와 남부에 퍼져있는 요원들이 어떻게든 한 자리에 모여들었으니 이들의 탁월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 모두 알다시피 시간이 없다. 정보길드의 빌어먹을 녀석들이 조여들어오고 있지. 이곳도 언제 발각될지 몰라.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맥없이 당하는 것도 우습지 않나.”
“그렇죠.”
“가만히 숨어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요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단단한 눈빛과 표정으로 결의를 표하는 모두의 모습에 선임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마지막 작전이라고 생각해라. 목표물은 로렌, 다렌, 엘렌 드 그라인드. 이 셋이다. 될 수 있으면 생포를 목표로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살상도 허가한다.”
담담하지만 살기 가득한 목소리가 방안을 채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