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1
021화
동굴을 가득 채우고 몰려오는 검은 물결처럼 보이는 블랙 코크로치의 무리들 사이로 뛰어든 아렌의 모습은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하지만.
콰지지지지직!
그 작은 아렌의 신형이 블랙 코크로치의 무리들과 조우했을 때 일어난 결과를 본 다면 그 누구도 아렌을 작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키리리리!”
“카리긱!”
아렌의 몸 전체에서 제멋대로 흐르고 있는 힘의 흐름에 접촉하는 순간 블랙 코크로치들은 말 그대로 찢겨져 나갔다.
단단한 외피도, 강철도 씹어 먹는 이빨도 예외가 되지는 않았다.
그저 공평하게 갈가리 찢겨지는 그 모습에 블랙 코크로치의 무리들이 처음으로 진격 방향을 틀었다.
“키리리릭!”
“키리리!”
방금 전과는 다른 기묘한 울림이 번졌고, 그 순간 블랙 코크로치의 무리들은 아렌을 먹이에서 적으로 인정했다.
아렌은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제 아무리 무공을 연마해서 심신을 단련하고 상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지만 결국 무공의 본질은 적에게서 나를 지키고 적을 상하게 하는 것.
세련된 살인기술의 다른 이름이 무공이고, 아렌은 그러한 살인기술의 정점에 올랐던 자다.
하나의 집단이 한 마음으로 내뿜는 밑도 끝도 없는 순수한 살의殺意가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고맙구나.”
이렇게까지 순수한 살의를 보내준다면 최선을 다해 보답해주는 것이 무인의 도리일 터.
아예 자신을 둘러싸서 압사시키겠다는 듯 전신 사방을 점하며 몰려오는 블랙 코크로치들을 향해서 아렌은 자신의 몸을 타고 도는 힘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 * *
블랙 코크로치들이 한 곳으로 뭉쳐서 만들어낸 검은 구체는 계속해서 그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표면이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구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사람의 심신을 자극하고 있었다.
블랙 코크로치들의 끔찍한 기음과 강철이 찢겨지는 것 같은 소음이 동굴 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조금만 정신을 놓았다가는 미쳐버릴 것 만 같았다.
레티시아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실제로 미쳐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일행의 얼굴 표정이 참담하게 변했지만 결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국가 재난을 선포할 정도의 몬스터 무리를 개인이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 개인이 아렌이라면 결과는 알 수 없다는 기대가 모두의 마음속에 어느새 스며들었던 것이다.
“도련님 ······.”
베로아는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다.
개미새끼 한 마리 잡지 못하던 고운 심성을 가진 도련님이 어느 순간 너무도 무섭게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그녀가 등에 업어 키웠던 도련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분명히 눈앞의 적을 처절하게 분쇄하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서 있을 도련님을 상상하며 두 눈을 부릅뜨며 구체를 노려보던 그때.
우지직!
거의 완벽한 원을 이룬 구체의 한 부분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우지직!
연속적으로 구체의 표면이 들썩거리기 시작했고, 그 부풀어 오른 곳으로 블랙 코크로치들이 몰려들면서 내리누르기 시작했지만, 한번 시작한 들썩거림은 이내 점점 심해지더니 결국에는 구체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릴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콰자작!
굉음과 함께 구체의 한 부분이 터져나가며 거대한 무엇인가가 솟구쳐 올랐다.
“허억!”
블랙 코크로치의 잔해와 체액으로 감사여 번들거리는 형태를 지닌 그것의 모습은 거대한 손.
사람 하나쯤은 가볍게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가진 짐승의 앞발 같은 손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블랙 코크로치들을 꿰뚫고는 구체 밖으로 솟아올랐다.
뿌아악!
마치 거대한 공성추가 성벽을 향해 전력으로 돌격하는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이번에는 구체의 한쪽 면이 폭발해 나가며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온통 시커먼 구체 안쪽에서 넘실거리는 아렌의 눈빛이 보였지만, 이내 구멍을 향해 달려드는 블랙 코크로치의 무리들에 의해서 다시금 메워지려는 찰나.
쩌적!
빙하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구멍을 중심으로 일어난 냉기가 순식간에 블랙 코크로치들을 얼려버렸다.
‘······ 얼린 게 아니야.’
뜬금없이 일어난 이적에 모두가 입을 벌렸지만 레티시아는 그 냉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급격한 에너지의 이동에 순식간에 주변의 열을 흡수당한 공간이 그대로 얼어버린 것이다.
부글부글!
그리고 그 에너지가 이동한 공간이 화산 같은 열기를 내뿜기 시작하더니 블랙 코크로치들을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화염 마법을 몸으로 때워버리는 외피를 크림처럼 녹여버리는 화력에 동굴안의 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콰지지직!
거대하게 치솟은 괴물의 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지나간 자리에 무사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열기와 냉기, 공간을 찢는 것 같은 괴물의 손까지.
던전치고는 넓은 편이지만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재앙의 모습에 세상의 종말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말 그대로 재난.
뻥!
그리고 거대한 굉음과 함께 블랙 코크로치들로 이루어진 구체가 박살이 났고, 조각조각 박살난 잔해들이 떨어지는 가운데로 아렌이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시뻘겋게 달아올라 불통을 튀기는 왼손과 끔찍하기 짝이 없는 형태를 이루고 있는 괴물의 손과 이어진 오른팔.
기괴하게 빛나는 눈빛과 온 몸에서 일렁거리는 묘한 붉은 빛은 체액 한 방울도 접근시키지 않았다.
“······ 키리리리리.”
레티시아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국가 재난이라고까지 불리는 블랙 코크로치들이 잠깐이지만 멈칫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키리릭!”
그리고 잠깐이나마 멈칫한 것이 수치라도 되는 듯 맹렬하게 아렌을 향해 다시금 쇄도해 들었지만.
콰지직!
아렌은 그저 오른손을 뻗었고 거대한 짐승의 손이 초월적인 폭력으로 달려드는 모든 것을 으깨어 버리는 모습에 다시금 블랙 코크로치들이 주춤거렸다.
“쯧.”
아렌이 가볍게 혀를 찼다.
마물답게 끝까지 투지를 불태우며 자신을 즐겁게 해줄 거라 믿었건만 조금이나마 전의를 상실하는 모습에 실망한 것이다.
조금은 달아오른 표정도 빠르게 식었고, 기괴하게 빛나던 눈빛도 꺼져버렸다.
눈앞에 있는 것들은 더 이상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치워야 할 존재로 전락해버렸으니까.
“빨리 끝내자꾸나.”
조금은 실망한 어투와 함께 아렌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 * *
베네프트와 리암, 교수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정해진 장소에서만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아카데미의 규칙을 무시하면서까지 가능한 빠른 속도로 이동한 그들은 곧바로 4번 마법진이 구성되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이미 리암의 연락을 받고 마법진을 확인하러 온 마법사들이 그들을 반겼지만 그들의 인사에 답할 겨를도 없이 각자 매서운 눈으로 마법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정신 마법에 당했군.”
원래 마법진을 관할하던 마법사를 살펴보던 교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항상 재기 발랄하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던 마법사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고 있었고, 벌려진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은 물론, 하체로 줄줄 흘리고 있는 오물의 모습은 자율신경과 불수의근까지 당한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냥 정신 마법도 아닙니다. 이정도면 금기에요.”
상대의 정신에 영향을 주어서 감정을 조정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신 그 자체를 파괴당한 것으로 보이는 마법사의 모습은 교수진들의 분노를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베네프트. 확인 가능한가?”
겉보기에는 전혀 이상이 없어 보이는 마법진을 시뻘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이리저리 확인하는 베네프트의 곁으로 교수 한명이 다가섰다.
다른 이들과는 다른 음침한 느낌의 검은 색 로브를 걸친 교수는 흑마법과 저주를 깊이 다루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조언을 얻기에는 최고의 상대다.
“타린 교수님. 정령의 흔적이 느껴지는데 제가 맞게 본 것일까요?”
정령이라기에는 마이너스적인 기운이 너무 강했지만 베네프트의 상식선에서는 정령으로 밖에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암정령暗精靈 같군.”
“암정령이라 하시면?”
타린이 굳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단순한 어둠속성 정령을 말하기도 하지만 흑마법에서 말하는 암정령은 마이너스적인 감정이 뭉쳐져 탄생한 것들을 말하네. 그 종류가 꽤나 많아서 여기서 특정할 수는 없지만 ······.”
잠시 골똘히 생각을 하던 타린이 말을 이었다.
“······ 아마도 살육의 정령인거 같아.”
“살육?”
불길하기 짝이 없는 이름에 베네프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주로 전쟁터나 대량 학살이 일어난 장소에서 극히 드물게 나타나네. 정령으로 분류하기는 하지만 악마에 가깝다고 봐야겠지.”
짧은 한숨과 함께 타린이 말했다.
“일반적으로 그림리퍼GRIM REAPER라고 불리는 존재지.”
“······ 서둘러야겠군요.”
현실에서 정신체를 상대하는 것도 까다롭기 그지없는데 하필이면 장소가 이면 세계.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 모르니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긴급정지를 시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리암!”
“······ 교수님. 긴급정지가 먹히지 않습니다.”
“뭐?”
침통한 리암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암정령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마나가 마법진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 자체가 암정령의 손아귀에 들어갈 겁니다.”
경악할 만한 결론에 모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 안쪽에 있는 입교생들을 모두 먹어치운다면 상상도 못해 본 괴물이 탄생하겠군.”
타린의 중얼거림에 사태가 더욱 심각해졌음을 교수들은 인지했다.
이제는 입교생들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유피테르라는 도시 자체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암정령의 탄생을 저지해야 하는 것이다.
“연락할 수 있는 곳에 모두 연락하세요! 인원을 모으겠습니다.”
“어쩔 셈인가?”
타린의 물음에 베네프트가 광기어린 눈동자로 답했다.
“멈추지 못한다면 들어가서 원흉을 제거하면 됩니다. 직접 나서서 엘레강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 * *
“키리릭!”
기음과 함께 한 껏 벌려진 주둥이가 칼날 같은 이빨을 살결에 박아 넣었지만, 상대의 살을 찢어발기겠다는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끼기긱.
아렌의 몸 표면을 감싸고 있는 흐릿한 육각형의 비늘 같은 것들이 블랙 코크로치의 이빨을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린龍鱗.
부룡기공이 경지에 들어서면서 발현된 호신강기의 일종인 용린은 그 이름답게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강한 경도를 자랑하고 있었으니, 강철을 씹어 먹는 정도로는 흠집하나 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턱.
그런 블랙 코크로치의 머리에 아렌의 손바닥이 가볍게 닿았고.
쾅!
공간을 뛰어넘은 힘이 블랙 코크로치의 내부를 엉망으로 만듦과 동시에 그 파괴력을 밖으로 뿜어내었으니 등껍질 전체가 터져나갔다.
쿵.
그렇게 마지막 한 마리가 생명을 다했고, 동굴 안에는 죽음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어멋!”
베로아의 당혹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미끈거리던 체액에 발을 헛디딘 것.
“조심하세요. 시녀장님.”
넘어지려던 베로아를 벡스터가 잡아주어서 낭패를 면했고, 그 모습을 바라 본 아렌이 입을 열었다.
“조금 지저분하구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살육의 현장을 바라 본 아렌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
화르륵!
아렌의 손끝에서 일어난 작은 불꽃이 잔해들에 닿는가 싶더니 이내 그 덩치를 불리며 게걸스럽게 잔해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오직 잔해들만을 먹어치우는 불꽃의 모습도 경이롭지만 열기마저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에 레티시아의 눈동자가 몽롱해졌다.
영창도 없이 이렇게 강력한 화염 마법을 일으킨 것도 놀라운 일인데, 열기마저 제어하는 마나컨트롤에 이제는 경외감마저 느낀 것이다.
질시나 짜증도 자신과 비슷한 레벨의 상대에게나 할 수 있는 것이지 아득히 먼 거리에 있는 상대에게는 그런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그 순간.
사사사사.
기묘한 소리와 함께 블랙 코크로치의 잔해들이 서서히 스러지기 시작하더니 빛의 입자로 변해서 사라져 버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현상에 아렌의 눈빛이 깊어지는가 싶더니 일행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기세가 변했다.
용안이 운용되면서 기묘한 광채를 내뿜기 시작하는 아렌의 시선이 닿은 곳.
사라져 버렸나 싶은 빛의 입자들이 한 곳에 머물며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렸다.
빛무리가 움직이는 것 같은 움직임은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할 것 같은 환상적인 모습이었지만, 정작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써늘한 무엇인가가 차올랐다.
그 순간 동굴의 벽면을 타고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허름한 로브를 걸치고 한 손에 거대한 낫을 든 흐릿한 그림자의 모습.
한 없이 불길한 기운을 풍기며 쉴 새 없이 일렁거리는 모습에 레티시아의 동공이 커졌다.
“······ 그림 리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