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30
030화
단정하게 내려오는 은발에 당당한 풍채, 선이 굵은 뚜렷한 미남이 환하게 웃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다.
그런 그의 맞은 편에 있는 것은 아렌.
백금발을 가진 절세의 미소년이니 보는 것만으로 여자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두근.
‘······ 그림이 되기는 하네.’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레티시아마저도 이런 생각을 하며 슬며시 얼굴을 붉힐 정도이니 다른 소녀들은 어떤 반응이겠는가.
식당 이곳저곳에 있는 소녀들의 표정이 몽롱해지는 모습에 청년들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이 보였다.
“······ 아름답군요.”
“어머!”
“어쩜 ······.”
그리고 그 모습은 아렌이 느릿하게 얼굴을 들어 도리안과 시선을 맞추는 순간 절정에 달했다.
소녀들의 순정과 망상을 자극하는 그 광경에 위험한 눈빛을 하며 눈을 가늘게 좁히는 모습도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입교생들의 시선이 주목된 그 순간 아렌이 입을 열었다.
“아렌 드 그라인드.”
“그라인드 백작가의 자제였군요. 과연 명문의 후손다운 대단한 능력입니다 ······.”
환하게 웃으며 대꾸하던 도리안의 입가가 조금 꿈틀거리며 난처한 눈빛을 띄웠다.
이름만 말한 아렌이 다시 고개를 돌려 묵묵히 식사에 열중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자리에서도 자기 이름과 존재만으로 항상 주목을 받아왔던 도리안으로서는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버릇이 없군!”
“예의를 배우지 못했는가!”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잠시 당황한 도리안을 대신해서 그의 뒤를 따르던 청년들이 나섰다.
마치 자기 자신이 모욕이라도 당한 듯이 거세게 반응하는 모습에 아렌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일행도 안색을 굳혔다.
트리안과 네이던은 물론 레티시아도 어디 가서 무시당할 실력은 아니고, 실력에 걸맞은 자부심도 가진 사람들인데, 그런 그들이 인정한 아렌을 매도하는 자들에게 좋은 감정이 생길 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고 눈을 번들거리며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그 때, 도리안이 다시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식사를 방해했으니까요. 실례는 제가 한 셈이군요. 그만두세요.”
“음.”
“도리안 공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도리안의 말 한마디에 태세를 변환하는 사내들의 모습을 보면서 레티시아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모두 어디에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는 인재들인데 아카데미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 저렇게까지 장악했다는 거야? 무서운 사람이네.’
꺼림칙한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레티시아는 도리안에 대한 경계심을 높였다.
“앉아도 될까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물었지만 그의 손은 이미 의자를 잡아당기고 있었고, 반응이 없는 아렌을 대신해 레티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이니까요. 어디에 앉든 개인의 자유겠죠.”
“서든 백작가의 레티시아 양이군요. 반갑습니다.”
그제야 알아봤다는 듯 인사를 건네며 트리안과 네이던을 바라보는 도리안의 눈길에 둘도 입을 열었다.
“트리안 드 고른.”
“네이던 드 가룸이오.”
조금은 불편한 대답에 도리안의 눈가가 살짝 꿈틀거렸지만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북부의 촉망받는 기사와 유망한 전투마법사시군요.”
도리안의 대답에 주변이 반응했다.
“흠. 그러고 보니 나도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 거 같군.”
“도리안 공자가 알 정도라는 말이지 ······.”
도리안의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내들의 모습에 레티시아는 경계심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제국의 인재라는 자들이 한 명의 말이나 평가에 따라서 의견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탁.
그 순간 아렌이 포크를 내려놓는 소리가 울렸다.
작지만 묘한 울림이 있는 소리에 도리안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이 일순 아렌에게 몰렸다.
“······ 원래 접시가 비어있었나?”
“다 먹어버렸다!”
“······ 믿을 수가 없군.”
한 순간에 주목을 뺏긴 상황에 도리안의 눈가가 다시 꿈틀거렸지만 그 모습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하. 식사를 끝낸 것 같으니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식당 안에 있는 모두의 귀에 똑똑히 박히는 목소리로 이목을 끌어 모은 도리안에게로 아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감정 없는 얼굴과 무저갱 같은 눈빛이 도리안도 움찔할 정도였지만, 더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피렌사 공작가는 인재에 관심이 많습니다.”
부드러운 어투와 귀족적인 매너에 소녀들의 얼굴이 다시 붉어지기 시작했고, 도리안의 뒤에 시립하고 있던 사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인재에 관심이 많은 나머지 인재를 만들어내는 가문인 피렌사 공작가의 기행은 제국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렌 공자에게 관심이 가는 군요. 앞으로 친교를 늘여갔으면 합니다.”
피렌사 공작가는 인재를 얻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돈, 권력, 미인계, 만만하다 싶으면 납치까지도 자행할 정도로 인재에 미친 가문이 피렌사 공작가이지만 반대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곳이 또 피렌사 공작가.
지금 도리안은 아렌에게 광범위한 투자를 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그 의미를 아는 도리안 주변의 사내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놀람과 질투, 축하와 저주가 섞여있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아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지.”
짧은 단답에 도리안을 추종하는 사내들의 표정이 가라앉았지만 정작 도리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하지만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아렌은 이미 등을 돌리고 있었고, 도리안의 손은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 * *
유피테르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은 강압적이지 않다.
교수진들은 그저 방향을 제시하고 거기에 대한 교육을 할 뿐, 자신을 갈고닦는 것은 오롯이 학생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의외로 자유 시간이 많았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고, 서로 무리를 이루어 공통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동 식당의 밖에 있는 카페테라스.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도리안의 무리가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각기 비범한 신태를 빛내고 있는 이들이 모여 있으니 당연히 눈에 띄었고, 그 중심에 있는 도리안은 더더욱 그랬다.
“건방지군요.”
철탑을 연상시키는 덩치를 가진 사내의 말에 도리안은 그저 웃었다.
“건방질 만한 자격이 있지.”
도리안은 아렌의 모습을 떠올리며 답했다.
아렌의 능력.
인간의 기본 스펙을 아득히 넘어섰다고 판단되는 피렌사 공작가의 눈으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오늘 보게 되었다.
하물며 아직 어린 나이에 저런 모습인데 육체가 전성기에 들어서면 그 능력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전율이 흐를 정도.
인간이라는 종은 분명 대륙을 지배하고 있지만, 객체의 능력으로만 본다면 분명히 약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연의 섭리에 반기를 든 것이 피렌사 공작가다.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를 초월하기를 원하지만 인간이라는 태態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모순적인 목표를 가진 가문.
그런 목표를 생각한다면 아렌의 신체 능력은 가문이 추구하는 이상향의 하나라고 말 할 수 있었다.
‘이 머저리들은 그냥 놀라고 만 모양이지만 ······.’
생각과는 다르게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차를 마시는 도리안의 모습을 보며 철탑 같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버릇을 들일까요?”
진지한 물음에 주변의 사내들의 표정 역시 진지하게 변했다.
건방진 것은 건방진 것이지만 그 힘을 길들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글쎄?”
그 까칠해 보이는 괴물을 길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도리안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지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길들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겠지.”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비열한 웃음을 띄우며 말을 받았다.
귀족들 간의 암투는 음험하기 짝이 없다.
물리적인 방법이 가장 잘 먹힌다고는 하지만 정신적인 괴롭힘으로 상대방을 함락시킬 수 도 있었고, 그 주변을 공략하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재미있겠는데.”
모여 있는 사내들의 표정에 비슷한 미소가 떠올랐고, 위험한 장난을 공모하는 듯 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일어나는 도리안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말했다.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무릇 주인을 정한 자라면 더러운 일도 처리해야 하는 법이고, 그걸 굳이 주인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자리를 벗어나는 도리안에게서 대답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 * *
툭.
“아. 미안.”
어딜 급히 가는 것인지 네이던의 몸에 부딪친 학생이 짧은 말과 함께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기사 가문이라고 하던데 그 정도도 못 피하나?”
“······ 시간도 남는데 밖으로 나갈까?”
트리안의 이죽거림에 네이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렌이라는 강적 때문에 잠시 휴전중이지만 이 둘은 대결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
사소한 계기만 있으면 언제라도 생사결에 들어갈 수 있었고, 트리안과 네이던은 지금이 바로 그때인가 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마나를 끌어올렸다.
이번에야말로 기숙사가 초토화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헛!”
“음!”
하지만 둘이 결판을 내는 날은 오늘이 아니었다.
온 몸을 찌르는 기세에 놀란 트리안과 네이던이 시선을 돌리니 방문 앞에서 음습한 기세를 풍기는 아렌의 뒷모습이 있었다.
“이런!”
“어떤 놈이야!”
슬그머니 다가선 두 사람의 눈에 그들이 사용하는 방의 모습이 들어섰고, 두 사람 역시 불 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가구란 가구는 자기 자리를 벗어나있고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려서 내용물이 밖에 쏟아져 나와 있었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옷들에는 발자국들이 가득했으니까.
“그 자식!”
순간 트리안이 몸을 돌리며 복도 저편으로 달려 나갔다.
방금 전 네이던과 몸을 부딪친 학생을 용의자로 특정한 것이다.
그렇게 트리안이 사라진 사이 네이던이 눈을 빛내며 방으로 들어서 사방을 살피기 시작하더니만 이내 수인을 맺어 주문을 외웠다.
“서치.”
마나의 잔재를 확인하기 위한 마법이 펼쳐졌고, 방에 남아있던 마나의 흔적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인간의 마나는 같아 보이지만 개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그것을 기록해놓았다가 후일 범인을 잡기위한 네이던의 집념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음습한 기세를 풍기던 것도 잠시, 아렌이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방으로 들어섰다.
느릿한 걸음으로 자신의 자리로 다가가 엉망이 된 침대보를 살피고는 이어서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와 물건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런 건 하인들을 시키 ······, 그렇군. 여기는 아카데미지.”
아렌의 모습을 본 네이던이 뭐라고 말 하다가 입을 닫았다.
우습다면 우습지만 이러한 사건을 겪고 나서야 아카데미에 본격적으로 입학했다는 실감이 난 것이다.
“하아.”
한숨을 쉬며 네이던도 묵묵히 자신의 물건을 집어 들었고, 그 때 씩씩거리며 트리안이 방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