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9
029화
모든 전투는 거리를 지배하는 자가 승리한다.
나에게는 멀지만 적에게는 가까운 거리를 지배하는 것이 결국 승리하는 비결인 것이고, 이것은 기사로 대변되는 오러 사용자에게는 특히나 중요한 문제다.
일단 맞춰야 뭐가 되도 될게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오러 사용자라고하면 하체 단련에 힘쓰기 마련이고, 유서 깊은 가문이나 기사단에는 하체 단련과 이동에 관한 비법이 전해져 내려오기 마련이다.
* * *
“크하하하하하!”
굉음과 함께 피어나는 먼지 구름, 그리고 흉악하기 짝이 없는 광소.
하늘로 훌쩍 뛰어올라 저 앞으로 날아가는 야만인부터 시작해서, 마치 뱀 같은 움직임으로 지면을 스치듯 달려 나가는 학생과 돌격하듯 몸을 웅크리고 뛰쳐나가는 녀석까지.
제각기 개성 있는 움직임으로 앞으로 달려 나가는 학생들의 모습에 마일스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 깃발을 가져오라는 이야기를 빼 먹었군.”
연병장 구석 끝에 꽂혀있는 깃발들을 보면서 마일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괜찮겠지.”
수많은 전장을 거친 명 지휘관인 마일스가 보기에 이번 기수의 입교생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원인이야 당연히 던전에서의 사고지만, 지금 마일스의 눈앞에 있는 학생들은 거기에 더해서 방금 전의 일까지 겪지 않았던가.
전쟁터에서도 병사의 멘탈 관리가 중요한 법인데 입교생들은 지금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인 상황일 것이니 이런 식으로라도 풀어주는 것이 좋았다.
연병장이 넓은 편이기는 하지만 초인 예비군이라고 불리는 오러 사용자에게는 그다지 넓지 않다.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목적 없이 달리기 시작한 녀석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일스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빛냈다.
“······ 저 녀석은 기초가 탄탄하군. 저 야만인은 힘이 좋아. 저건 암살자 출인인가?‘
마일스의 수준에서는 대충 훑어보는 것만으로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을 보면서 한참 머릿속으로 리스트를 정리하고 집중하고 있던 와중 들리지 않아야 될 소리가 들렸다.
우물우물.
이곳에서 들리지 않아야 할 무언가를 야무지게 씹고 있는 소리.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마일스의 시선에 고요한 기색으로 입가를 움직이고 있는 아렌의 모습이 보였다.
“······ 허.”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에 충격 받은 것도 잠시, 마일스는 표정을 굳히며 이 문제아에게 입을 열었다.
“왜 뛰지 않지?”
“뛰고 왔다.”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반말로 대꾸하는 아렌의 모습에 이마에 핏줄이 솟아올랐지만, 냉철한 지휘관답게 마일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전투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의 정보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유능한 지휘관인 마일스는 그 사실을 항상 잊지 않았고, 교수들에게 아렌의 이야기를 들은 후 정보 수집에 들어간 것이다.
시간도 촉박하고 정보도 별로 없었지만, 바쁘게 움직인 덕분에 유의미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 참자.’
동화에서나 나오는 말 안 듣는 얄미운 귀족가 도련님이 현실에 나온 것 같은 모습.
원래대로라면 꼬마의 미래를 위해서 과감하게 매를 들어야겠지만, 그 꼬마가 측정불가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다행히 증언을 종합해본 결과 아예 막무가내는 아닌 것 같으니 설득이 어느 정도는 통할 거라는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
“한 번 더 뛰어라.”
여전히 고개도 돌리지 않고 봉지를 뒤적거리는 아렌을 보면서 마일스는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자리는 너희 개개인의 수준을 측정하는 자리지. 네가 뛰었다고는 하는데 정작 나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어. 그래서야 공정한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
차분한 말투에 흥미를 느낀 아렌이 시선을 돌려 마일스를 바라보았다.
표정 없는 얼굴과 서늘하기 짝이 없는 눈빛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지만 마일스는 전쟁에 임하는 마음가짐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에 있는 깃발이 보이지?”
깃발로 시선을 옮긴 아렌에게 마일스가 말을 이었다.
“저 깃발을 가져와라. 그것으로 너에 대한 평가를 하겠다.”
단호한 얼굴로 말하는 마일스의 모습에 아렌의 눈빛이 슬쩍 변하더니 이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책임감이 있는 자로구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대견한 것을 바라보는 것 같은 눈빛에 마일스의 이마에 핏줄이 다시 솟았다.
“그럼 잘 봐라.”
제 의무를 다하려는 모습에 조금 기분이 좋아진 아렌은 이 책임감 있는 자에게 관용을 베풀기로 마음을 먹었다.
“······ 그러도록 하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을 열 받게 만드는 꼬마라고 생각하면서 마일스는 눈을 부릅떴다.
오러가 집중되고 마일스의 눈이 기묘한 광채를 띄기 시작했다.
마일스가 익힌 특수한 오러 컨트롤은 그의 눈에 광범위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한다.
아렌의 모습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 때, 아렌의 신형이 슬쩍 흔들렸다.
퍽.
가벼운 소리와 함께 사라진 아렌의 모습이 연병장의 끝에 나타나는가 싶더니, 어느덧 다시 원래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 으음.”
자신의 눈으로도 그 잔상만을 희미하게 쫓을 수 있었던 마일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 나왔다.
“······ 그래. 잘 ······ 봤다.”
순간이동 같은 마법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고속이동이지만 마일스의 눈에 보인 것은 분명히 아렌이 ‘뛴’ 모습이었다.
아렌의 손에서 팔랑거리는 깃발이 그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관대함을 칭찬한 아렌이 다시 봉지를 꺼내들었고, 마일스는 복잡한 눈빛으로 아렌을 바라보다가 연병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뛰어다니고 있는 입교생들이었지만 그중에 몇몇이 이쪽을 보고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니만 이내 몇몇이 마일스에게 다가섰다.
“······ 마법 아닙니까?”
“아니다.”
아렌을 흘깃거리던 학생이 마일스에게 조용히 물었지만 마일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고, 잠시 후 입교생들을 불러 모았다.
“다음으로 이동한다.”
한참 뛰어다녀서 기분이 풀린 것인지 미소 짓는 입교생들을 인솔하며 마일스는 걸음을 옮겼다.
* * *
거대한 강당으로 자리를 옮긴 입교생들을 반겨준 것은 커다란 쇳덩어리들이었다.
제각각 모양과 크기가 다른 쇳덩어리들을 보면서 학생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자. 다들 뭔지는 알겠지? 이번에는 근력 측정이다.”
웃으면서 말하는 마일스의 모습에 학생들이 비난 섞인 야유를 날렸지만, 마일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유서 깊은 가문이나 기사단이라면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는 근력 단련 기구들이다.
가벼운 것부터 점차 무거운 것으로 하중을 늘려가며 몸에 부하를 주는 방식은 유서 깊은 수련법이고, 제 아무리 세상이 바뀐다지만 저 저주받은 쇳덩이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오러 사용자들을 괴롭히고 있었으니, 학생들이 야유를 던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한명씩 나와서 들어라.”
투덜거리던 것도 잠시, 이내 학생들이 하나씩 나와서 자신이 들 수 있을 만큼의 하중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흐흐흐흐.”
그 중의 압권은 단연 대수림의 전사.
1톤이 넘어가는 쇳덩이를 가볍게 들어 올리는 모습에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아닌 경악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아렌의 차례가 되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서는 아렌의 모습에 모두가 눈을 빛냈다.
아침만 해도 단순히 잘 먹는 귀여운 꼬마였지만, 사람 하나를 한 순간에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린 괴물 같은 꼬마의 등장이다.
이제 이곳에 모인 이들 중에 아렌이 평범한 꼬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 것이다.
입교생들의 손 떼가 탄 쇳덩이들을 가만히 보던 아렌이 걸음을 옮겼다.
“허어.”
“가능할까?”
“······ 꼬마가 객기를 부리는군.”
아렌의 앞에 있는 것은 가장 중량이 나가는 쇳덩이.
지금까지 대수림 출신의 학생만이 들어 올린 무게의 쇳덩이 앞에 아렌이 섰다.
무게도 무게지만, 그 크기와 둥그런 외형 때문에 제 아무리 아렌이 양팔을 벌린다고 해도 닿지 않는 쇳덩이를 보면서 학생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아렌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콰직!
“헛!”
“무슨!”
가만히 내민 오른손이 철구의 표면에 닿는가 싶더니 이내 너무나도 쉽게 파고들어 버렸다.
거짓말처럼 팔뚝까지 파고들어간 오른손이 슬며시 들려 올려졌다.
그와 함께 1톤이 넘는 쇳덩이가 농담처럼 바닥에서 떠올랐다.
“······ 오우거냐.”
“······ 오우거도 저렇게는 못 할걸?”
그렇게 잠시간 허공에 철구를 띄운 아렌이 팔을 내렸다.
쿵!
강당이 울렸고, 입교생들의 마음속에도 그에 못지않은 울림이 스며들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연출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서는 아렌의 모습을 모두가 홀린 듯이 바라보았고, 마일스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직 한 사람.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대수림의 학생만이 크게 웃으며 아렌에게 커다란 봉지를 내밀며 재촉했다.
그 이후의 측정 역시 비슷하게 흘러갔다.
높이뛰기에서는 강당의 천장을 치고 내려왔고, 반사 신경을 측정하는 화살 세례는 아예 아렌의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수영을 하라고 했더니 물 위를 걸으려는 시도를 해서 마일스가 급히 말렸고, 결국 측정이 끝날 때쯤에는 모두가 질린 표정으로 아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었고, 몇몇은 써늘한 눈빛으로 아렌을 주시했다.
* * *
우물.
조그만 볼을 귀엽게 움직이며 음식을 씹던 아렌이 이윽고 본격적으로 손을 놀렸다.
“시작했다!”
“저게 또 들어간다고?”
“먹어라! 전사는 먹어야 한다! 강해진다!”
산처럼 쌓인 음식이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에 구경하던 모두가 감탄사를 보냈지만, 아렌은 음식에 집중할 뿐이다.
“측정은 잘 되었나요?”
그때 네이던과 레티시아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트리안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지만, 레티시아가 궁금해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무던한 트리안이라도 눈치챌 수 있었다.
잠시 아렌을 바라보며 침묵하던 트리안이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믿기 힘들 테니 나중에 이야기하지.”
어쩐지 의기소침해진 트리안의 모습에 더 이상 물어보기 힘든 레티시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려는 그 때,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정말 잘 먹는군요. 그 신체 능력이 납득이 갑니다.”
사람의 귓가를 청량하게 씻어주는 것 같은 목소리와 함께 화사한 은발의 사내가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섰다.
눈도 돌리지 않고 식사에 집중하는 아렌의 모습에 사내의 뒤를 따르던 학생들의 표정이 변하는가 싶었지만, 은발의 사내는 웃음을 잃지 않고 아렌을 보며 말했다.
“피렌사 공작가의 도리안이라고 합니다.”
사내의 범상치 않은 신태에 주목하고 있던 주변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도리안 드 피렌사.
명문의 후손에 공명정대한 성격, 잘생긴 외모는 물론이고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가 공인한 마검사의 재능을 가진 제국 최고의 인재라는 남자.
이번 기수 최고의 기대주라는 남자가 아렌의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