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41
041화
주변의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삼키며 성장해 온 제국이었지만, 그런 제국도 차마 삼키지 못한 곳이 있었다.
놀랍게도 제도에서 멀지 않은 제국 한복판에서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거대한 규모의 도시가 존재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정복 군주인 황제도 경의를 표하는 이곳의 이름은 성도 휘페리온.
태양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도시에는 만신전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만신전에는 제국은 물론이고 대륙 모든 신앙의 정점인 교황이 기거하고 있었다.
“황제가 움직였다고?”
“공안 6과가 유피테르로 움직였다고 합니다.
금실로 치장된 화려한 법복을 입은 풍채 좋은 노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사람의 얼굴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서 변한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혹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는가에 따라서 인상이 달라지고, 중년을 넘어서면 그 인상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교황의 삶은 엄격했을 것이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단단해 보이는 표정은 그가 원칙을 중요시하고,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으니까.
“부르바스가 실수했나 보군.”
아카데미의 총장이며 방계 황족인 부르바스의 이름을 아무렇지나 않게 부르는 것은 귀족 모욕죄로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지만, 교황은 시큰둥한 표정이었고, 교황에게 보고하는 사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교황은 신들의 지상대리인.
인간의 육신을 가진 자 중에 그보다 신분이 높은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안 6과라.”
교황이 중얼거리며 휘페리온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황제를 욕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의 업적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선대에 동력이 준비되었다고 하지만, 그 힘을 올바르게 투사해서 거대한 제국을 이룬 것은 분명히 황제의 능력이다.
교황 역시도 황제의 업적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러운 면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이니 황제는 뭇 사람들에게서 경외를 받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교황과 만신전은 황제를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
능력과 업적이 너무 뛰어나 그 위세가 신에게까지 도전할 정도였으니까!
거기에 황제는 겸손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다.
능력만큼이나 탐욕스러운 황제는 이제 신권을 넘보기 시작했고, 세속의 정치와는 거리가 먼 교황과 만신전도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때문에 교황은 제국의 움직임, 특히 황제 직속 기관들의 움직임에 민감했다.
유피테르의 중요성은 교황도 인지하고 있었다.
당장 만신전의 고위 신관들 중에서도 유피테르 출신이 파다했고, 어느덧 만신전 내부에서도 가장 큰 파벌을 이루고 있었으니 어떠한 형식으로든 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교황 그 자신의 자리도 위태로울 수 있었다.
“가만있을 수는 없겠군.”
민초들의 신앙생활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세속의 정치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교황은 이마를 찡그렸다.
* * *
끼이이.
관리를 제대로 안 한 것인지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을 보면서 도리안은 인상을 가볍게 찡그렸다.
“······엉망이군요.”
제법 넓은 방의 내부는 엉망이었다.
원래는 꽤나 정갈했었을 내부의 가구는 여기저리 부서져서 흩어져 있었고, 각종 실험기구로 짐작되는 것들은 부서져서 그 파편을 날카롭게 빛내고 있었으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큰 상처를 입을 수 도 있겠다 싶을 정도다.
커튼을 쳐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내부는 기괴했지만, 아예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고, 그런 방의 구석에 마치 뱀처럼 눈을 번들거리며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비웃으러 온 거냐.”
평소의 교수 타린을 아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고 음울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지만, 도리안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요.”
바닥을 뒹굴고 있던 의자를 바로 세워서 가볍게 털더니 타린을 마주보고 앉았다.
“고생하셨습니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말과 함께 킥킥거리기 시작하던 타린이 이내 웃음을 멈추더니만 도리안을 바라보면 입을 달싹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도리안은 환하게 웃었다.
“선을 넘지 마세요. 그게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조건 아니었습니까?”
어떤 물음이던지 친절하게 대답해 줄 것 같은 미소였지만, 그렇기에 타린은 묻지 못했다.
“······알겠네.”
타린의 답변에 만족한 듯 눈웃음을 짓는 도리안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꽤나 노력을 해 주셨는데 한 가지 답변 정도는 해 드리는 것이 도리겠죠.”
도리안의 말에 잠시 멍하게 생각에 잠겨있던 타린이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나야 그렇다 치지만 네가 그 녀석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서 쫓아내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건가?”
싱긋 웃은 도리안이 타린에게 답했다.
“곤경에 빠트리고 계속 자극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두 가지?”
자세를 바로세운 도리안이 답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녀석을 쫓아내서 가문 망신을 시키는 것이죠. 이 부분은 이해가 일치하지 않았나요?”
“······그랬지.”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타린을 보면서 도리안이 말을 이었다.
“다른 하나는 갈 곳이 없어진 녀석을 거둬 주는 것이죠. 교수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빙글빙글 웃는 도리안의 얼굴을 보면서 타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군.”
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는 흉악할수록 그 가치를 더하죠. 물론 주인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하지만요.”
타린이 표정을 굳혔다.
“그 녀석은 길들일 수 없어.”
평생 얼굴도 들 수 없는 수모를 겪은 타린이 하는 말이기에 무게가 있었지만, 도리안은 그저 웃었다.
“누가 하느냐의 차이겠죠.”
몸을 구부리며 타린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댄 도리안이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그게 저와 교수님의 차이고요.”
까득.
자신을 완전히 내려다보는 태도에 타린의 이가 갈리고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마음을 좀 추스르시길 바랍니다. 연구실 정리도 하시고요.”
상큼하게 웃으며 돌아서는 도리안을 노려보던 타린의 눈가가 밑으로 향하면서 주먹에 힘이 풀렸다.
* * *
어수선한 일주일이 지나고 아카데미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강의가 열렸고, 학생들은 자신이 신청한 강의를 따라서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기 시작했으니, 이제야 아카데미에 들어온 것 같다고 생각하며 신입생들은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좋은 강의였다.”
“······나한테는 조금 어렵더군. 마법사들은 왜 그렇게들 말을 꼬아서 하는지 모르겠다.”
“트리안 공자는 공부를 더 해야겠군요.”
아카데미 신입생들에게는 필수라고 불리는 마나의 이해 강의를 마치고 나선 아렌의 일행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건장한 기사와 냉철하게 생긴 마법사, 지적인 미녀와 그림 같은 미소년의 조합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곳에 모을 정도였지만, 이내 기겁하며 시선을 돌리거나 벽에 몸을 붙이는 등, 학생들은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맨 앞에서 느릿하게 걷고 있는 소년, 아카데미의 전 학생이 인정한 괴물인 아렌 때문이다.
강의가 끝난 복도는 밖으로 나온 학생들로 인해 북적이기 마련이었지만, 일행이 걸어가니 마치 바다가 갈라지는 양 뻥 뚫려 버릴 정도.
“······편하긴 한데 기분이 묘하군.”
잡담을 나누던 네이던이 어이없는 눈으로 복도와 아렌을 바라보았지만, 아렌은 여전한 표정으로 느릿하게 걸어갈 뿐이다.
그렇게 쾌적한 이동을 한 일행이 건물을 빠져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아카데미는 규모가 크다.
각종 목적을 가진 건물들이 수도 없이 세워져있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도 상당하고 곳곳에 조성되어 있는 숲은 면학에 지친 학생들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숲의 가장자리로 난 오솔길로 걸어가는 일행도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부분은 정말 마음에 들어.”
특히 척박한 북부 출신인 트리안으로서는 이런 싱그러운 자연을 대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는 듯, 흉악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를 정도였다.
“······이건 뭐야?”
그런 트리안의 표정이 다시 흉악하게 변했다.
“인기척이 많군.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저런 짓거리를 하다니 때와 장소를 안 가리는군.”
네이던이 얼굴일 찡그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일행이 걸어가던 오솔길 한 쪽에 여럿이 모여서 누군가를 구타하는 장면이 보인 것이다.
“굳이 말썽을 자초할 필요는 없겠죠.”
레티시아도 인상을 찡그렸지만, 무시하기로 결정을 내렸는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모처럼 좋은 기분이 날아가 버렸지만, 어디까지나 저것은 남의 일이다.
저간의 내용도 모르는데 함부로 끼어드는 오지랖을 부렸다가는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아렌 공자가 단명할 거 같지는 않지만 트러블은 피하는 게 좋아.’
아렌의 태도도 변화가 없는 것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기로 결정한 그때, 레티시아의 눈에 저 멀리서 뛰어오는 사람 하나가 들어왔다.
“멈춰요!”
작은 체구에 순한 눈망울이 그렁그렁한 소녀.
“······콜레트 양?”
안면이 있는 사람의 등장에 아렌을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 * *
“비켜요!”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매달고 달려든 콜레트의 모습에 학생들이 혀를 차며 한 걸음씩 물러섰다.
제 아무리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다고는 하지만 귀족가의 레이디를 존중받아야 한다고 교육받은 반사적인 행동이다.
그렇게 인의 장막을 뚫고 들어간 콜레트의 눈에 비친 것은 멍투성이가 되어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코린의 모습이다.
“코린!”
울먹이며 코린에게 다가가는 그녀의 앞에 철탑 같은 사내가 막아섰다.
“너는 빠져라.”
낮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에 콜레트의 작은 몸이 움찔거렸지만, 그녀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비켜요!”
건장한 체구의 사내에게 대항하는 그녀의 모습은 찬탄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지만, 아쉽게도 이곳에 모인 이들 중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빠져. 동생의 실패를 만회하겠다더니 결국 그걸 구실삼아서 괴물한테 붙어 버렸잖아. 퉤!”
학생 하나가 빈정거리며 바닥에 침을 뱉었고, 다른 이들의 얼굴에 긍정의 빛이 떠올랐다.
“난 그런 적 없어!”
콜레트가 고개를 흔들며 격하게 부정했지만, 그녀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뭐 본인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아니야! 어쨌거나 꺼져! 네 년에게 볼일 없으니까.”
귀족가의 레이디에게 하기에는 지나치게 거친 언행이었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학생은 없었고, 이내 콜레트를 무시한 채 코린을 둘러쌌다.
“코린을 놔 줘!”
처절하게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정작 그녀가 원했던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그만해!”
웅크리고 있던 코린이 얼굴을 들며 콜레트를 향해 외쳤다.
“······코린?”
그녀가 동생으로 삼은 이후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눈빛에 콜레트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날 그만 비참하게 만들라고! 여자에게 감싸지는 못난 남자로 만들지 마! 내 일은 내가 해결한다고! 그러니 너는 괴물에게 가란 말이야!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멍한 얼굴로 뒤로 물러나는 콜레트의 모습에 학생들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아. 아니야. 코린 ······.”
비틀거리며 중얼거리는 그녀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고, 그 순간 멍한 그녀의 눈에 아렌의 모습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