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42
042화
“고. 공자님!”
콜레트의 다급한 목소리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급한 발걸음으로 넘어지다시피 뛰어간 콜레트의 모습을 따라서 시선을 옮긴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괴물이잖아.”
“저 자식······!”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고, 철탑 같은 사내, 롬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이 정도면 악연이군.’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렌이 그들에게 먼저 시비를 건 적은 없다.
단지 아렌이 너무 튀었다는 것이 문제일까.
장차 아카데미의 중추로 다가서기 위해 준비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인재를 포섭하기 위한 일환으로 가볍게 찔러본 것뿐인데, 결과가 재앙으로 돌아왔을 뿐이고 아렌과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롬의 시선이 슬쩍 뒤로 향했다.
코린을 폭행하는 와중에도 손을 쓰지 않고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던 학생들이 희미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롬은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 아렌 공자님!”
롬이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 아렌의 일행에게 다가간 콜레트가 헐떡이며 아렌을 불렀다.
“뭐지?”
원래라면 상대도 안 했겠지만, 상대는 공물을 바침으로서 한차례 인연을 맺은 상대, 아렌은 걸음을 멈추고 콜레트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아. 저기. 저··· 그러니까.”
다급한 마음에 달려온 콜레트지만 막상 아렌을 앞에 두니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가문에서 귀족가의 영애답게 좋은 것만 보고 살아왔던 콜레트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잔혹한 장면을 보여 주었던 것이 아렌이었고, 그런 그의 앞에 서니 공포가 올라온 것이다.
말을 잊지 못하는 콜레트를 바라보던 아렌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 콜레트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도. 도와주세요!”
주체가 없었지만 콜레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뻔한 것인지라 아렌의 시선이 모여 있는 일당에게로 향했다.
서늘한 시선에 일당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이내 얼굴을 붉히고 투지를 일으키는 모습에 아렌은 적아를 떠나서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렌의 무저갱 같은 눈동자가 콜레트를 바라보았고, 침을 꼴딱 삼키며 떨고 있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왜?”
“······예?”
낮은 목소리지만 그 어떤 소리보다도 커다란 소리가 콜레트를 때렸고,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은 그녀가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그게··· 아렌 님하고는 치. 친분이······.”
절망이 피어오르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아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도와준 것은 거래였다. 공물을 받았고 그 대가를 치룬 것이지. 한데 지금은 아니군.”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은 콜레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롬의 일당의 얼굴에 이채가 떠올랐다.
“말이 안 통하는 친구는 아닌 모양이야.”
“······어쩌면 우리가 접근 방법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당의 물음에 롬이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공물이 뭔지 궁금했지만, 대가를 받고 그에 대한 셈을 치렀다는 이야기니 전형적인 고위 귀족의 행태다.
콜레트가 쿠키 봉지로 아렌을 움직인 것을 알았다면 허탈함에 맥이 빠졌겠지만, 롬은 아렌을 포섭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아렌 드 그라인드라고 했지? 결투는 잘 봤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롬만이 아닌 듯, 서로 눈짓을 하던 학생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친근하게 웃었다.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상 동기이고,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텐데 어때? 우리 쪽 사람들하고 타린 교수 하고 조금 불편한 상황이지? 자리를 마련할 테니 한번 보자.”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것이 살벌한 귀족들의 세계다.
어느덧 화제의 중심에서 밀려나 멍하니 앉아있는 콜레트에게 레티시아가 다가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닦아요.”
“······고. 고마워요.”
멍하니 앉아 있던 콜레트가 손수건을 받아들자 트리안이 그녀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레이디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되지.”
투박한 손길로 치맛단을 툭툭 턴 트리안이 무심하게 이야기했지만, 콜레트의 눈가를 타고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언제나 배려 받던 가문에서 나와 아카데미에서 홀대를 당하다보니 트리안의 사소한 배려가 크게 와 닿은 것이다.
“아렌의 말을 잘 생각해 봐라.”
그런 그녀를 무심하게 바라보던 네이던이 말했다.
“······예?”
엉망이 된 얼굴로 대답하는 그녀를 외면하며 네이던이 중얼거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는 아렌을 겪었지. 네가 아는 아렌이 저렇게 남의 말을 들어주던 사람이었나?”
콜레트의 멍한 시선이 롬의 일행에게 둘러싸여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렌에게로 향했다.
“아?”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감탄사에 레티시아가 조용히 설명했다.
“명분을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럼 그 명분은 뭘까요?”
이렇게까지 떠먹여 줘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레티시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렌은 자신의 주변에서 재미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때문에 일부러 과격한 손속을 씀으로서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 실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그 실체로 보이는 일당을 만났으니 손을 쓰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사고를 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것 따위는 상관하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미끼를 던졌으니 상황 자체를 망치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레티시아의 생각이었다.
콜레트는 이런 저간의 사정을 알지도 못했다.
다만 레티시아의 말에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고 그것을 주저 없이 외쳤다.
“고. 공물을 바치겠어요!”
갑작스런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콜레트에게 모여들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렌을 바라보았다.
“공물이라.”
지금까지 롬의 일행이 하는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던 아렌의 입가가 조금 꿈틀거렸고, 그 순간 롬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아쉽게도 내가 가진 재물이 없구나.”
“물러서!”
아렌의 나직한 목소리에 롬은 자신의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대신 부탁을 하나 들어주는 것으로 대가를 치르겠다.”
싸늘한 긴장감이 내려앉았고, 뒤에서 지켜보던 학생들이 굳은 얼굴을 하고 앞으로 나섰다.
“부탁이 무엇이지?”
스르릉.
검을 뽑는 소리가 숲을 울렸지만, 아렌의 시선을 콜레트를 직시하고 있었다.
“구해 주세요!”
콜레트는 망설이지 않았다.
* * *
“결투는 잘 봤다. 괜찮은 솜씨더군.”
코린을 폭행하는 데 참여하지 않았던 학생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3학년.”
네이던의 중얼거림에 트리안과 레티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1학년과 2학년이 면학에 집중한다면 3학년부터는 실전을 경험한다.
이론만 익힌 죽은 인재를 원하지 않는 아카데미는 외부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일정 기간 동안 아카데미 밖으로 돌리는데,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가혹할 만큼의 실전을 경험한다.
전쟁터가 될 수도 있고, 던전이 될 수도 있다.
부상은 기본이고 죽는 사람도 나오지만, 아카데미는 이러한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정련된 인재들은 4학년에 올라가 마지막 담금질과 함께 제국의 미래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잔인한 솜씨였어. 뭐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 솜씨가 필요하지. 난 박수까지 칠 뻔했다니까?”
빙글빙글 웃는 학생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고, 아렌의 몸 곳곳을 훔쳐보며 허실을 탐색하려 하고 있었다.
“전력은 객관적으로 봐야지. 솔직히 일대일로는 너를 이길 자신이 없어서 말이야.”
마법사로 보이는 학생이 한 발자국 뒤에 서서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두 명의 기사가 엄중한 기세로 앞에 서고 마법사가 주문을 준비했다.
순식간에 살벌한 기세를 발하는 세 명의 3학년을 보고서 롬의 일행들이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 간다. 솜씨를 보여 봐라!”
육중한 기세로 돌격해 들어오는 기사와 표홀한 움직임으로 빈틈을 노리는 기사, 각종 버프를 쏟아내는 마법사의 움직임은 도저히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것이었지만, 아렌은 슬쩍 손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콰쾅!
굉음과 함께 돌진해 들어오던 기사 둘이 뒤로 튕겨나갔고, 동시에 마법사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우웨엑!”
나무에 부딪친 기사들은 의식을 잃어버렸고, 입에서 토사물을 쏟아내던 마법사도 이내 고개를 숙였다.
“······무슨!”
눈 깜빡할 사이에 정리되어 버린 세 사람의 모습에 롬의 일당이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아렌의 시선이 나머지 일당과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코린에게로 향한 그 순간.
“아렌!”
네이던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무릎 꿇은 마법사의 몸에서 강력한 마나의 유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구구웅!
“어어억!”
토사물을 흘리던 마법사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앞으로 모아진 양손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마나가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주문 제어를 놓쳤어요!”
레티시아가 다급히 콜레트와 트리안의 앞을 가로막고 지팡이를 바닥에 꽂았다.
“돕겠다.”
레티시아와 네이던을 중심으로 콜레트와 트리안을 감싸는 실드가 완성되었다.
“이런 젠장!”
롬의 일당들도 제각각 방호 마법을 전개하며 충격에 대비하는 그때, 아렌이 앞으로 나서며 손을 뻗었다.
“피. 피해라.”
필사적으로 마법을 제어하려던 3학년이 아렌에게 말했지만, 아렌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렌의 손에 붉은 기운이 서리는가 싶더니, 제멋대로 유동하고 있는 마법의 구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뭐?”
“······저게 가능한 건가요?”
마법사 본인의 마나는 물론이고 주위의 마나까지 끌어들이며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는 마법을 손으로 붙잡은 것이다.
“오러로 마법을 쳐내거나 잡을 수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
트리안의 멍한 목소리가 들렸고, 붉은색 장갑을 낀 것 같은 아렌의 손이 슬며시 들리더니 폭주한 마법이 하늘로 솟았다.
쿠쿠쿵!
하늘로 치솟은 마법이 공중에서 폭발했고,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일행의 눈이 커졌다.
“이런!”
“······큰일 났군.”
숲의 근처에 솟아 있던 첨탑.
그 일부가 폭발에 휘말리면서 무너져 내려 버렸다.
정말 큰 사고를 친 것을 직감하며 가슴이 써늘하게 식어 가던 그때였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망종이로구나!”
음습한 마나가 장내를 휘감는가 싶더니 숲 저편에서 타린이 굳은 얼굴로 걸어 나왔다.
* * *
칠흑 같은 검은 로브와 인자한 미소, 지적인 눈빛의 흑마법사 타린은 그 자리에 없었다.
초췌한 안색과 충혈된 두 눈, 음습한 마나를 풀풀 풍기며 얼굴을 일그러트린 타린의 모습은 동화 속에 나오는 흑마법사를 연상시켰다.
“······햇볕을 쪼이고 싶어서 나왔더니 보게 되는 것이 그라인드라니! 업이 깊구나!”
일그러진 얼굴에 떠오른 기괴한 미소가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사람의 심금을 조였다.
“제 아무리 그라인드의 위세라고 해도 이 정도 사건을 묻지는 못한다! 아카데미 교수 자격으로 너를 이 자리에서 계도하겠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 전후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말만을 내뱉은 타린이 양 손을 복잡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짜여 가는 마법의 모습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지만, 레티시아와 네이던, 겨우 정신을 수습한 3학년 마법사는 감탄 대신 비명을 질렀다.
“교수님!”
“미쳤습니까!”
“······환장하겠군.”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검은 구체가 생성되었고, 타린은 틈 따위는 안 주겠다는 듯이 아렌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받아라!”
우우웅!
불길한 소리와 함께 회전을 시작한 검은 구체가 아렌을 향해 쏘아져 나갔고, 동시에 아렌의 손이 움직였다.
쩌정!
“큭!”
타린의 얼굴 앞 공간이 갑작스레 출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