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43
043화
“흠?”
예상치 못한 저항에 가로막힌 공격에 흥미를 느낀 것도 잠시, 아렌의 시선이 날아오는 검은 구체에게로 향했다.
처음 타린의 손을 출발할 때는 아이의 머리만 했던 구체가 점점 크기를 불리면서 아렌에게로 날아오고 있었다.
스스스.
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듯 지워 버리며 날아오는 검은 구체가 어느덧 아렌의 눈앞까지 당도해 있었고, 그 크기는 아렌의 작은 몸을 집어삼키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소멸 주문.”
뒤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렌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마법이던 오러든, 세상 만물은 기로 이루어진 것이고, 기로 이루어진 것이 맞는다면 아렌이 다루지 못할 것은 없었다.
부드럽게 다가간 손이 구체에 닿는가 싶더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뒤집어졌다.
일체의 파탄도 보이지 않는 그 움직임에 거짓말처럼 힘의 방향이 바뀌고, 아렌을 향해 쇄도하던 구체가 하늘로 떠올랐다.
“······뭣!”
실드에 가해진 충격 때문에 비틀거리던 타린의 눈이 커지면서 황급히 수인을 맺으며 구체의 조종권을 가져오려 했지만, 그 순간 아렌의 손이 허공을 때렸다.
쩡!
타린의 얼굴 앞에 무수하게 겹쳐진 육각형의 패널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이내 하나둘씩 부서지면서 그 충격을 전달했다.
“컥!”
집중을 잃은 타린의 수인이 풀려 버렸고, 검은 구체는 하늘을 가로질러 첨탑에 부딪쳤다.
스으.
마치 물을 가르듯 첨탑에 부딪친 구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첨탐을 도려낸 것처럼 지워 버렸고, 이내 하늘 높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소멸해 버렸다.
쿠구궁!
지지대를 잃은 첨탑이 꺾이면서 붕괴가 가속화되었고, 숲의 저편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장내에 있는 인원 모두의 시선은 타린에게 향해 있었다.
“······미쳤군.”
타린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말하는 네이던의 모습은 교수를 대하는 태도가 절대 아니었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미쳤어요. 아카데미 내부에서 광역 주문을 쓰다니······.”
레티시아의 중얼거림에 모두의 시선에 경멸이 스며들었다.
마법은 그 특성상 대량살상에 유리하다.
때문에 광범위한 지역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광역 마법은 도심지역에서 사용이 엄격하게 제한되는데, 그런 광역 마법도 모자라 방어하는 것이 극히 까다로운 소멸주문을 썼으니 타린은 선을 한참 넘은 것이다.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타린 교수.”
입가를 훔친 3학년 마법사가 무서운 눈으로 타린을 노려보았다.
아카데미에서 시간을 보내고 실전 경험까지 마친 3학년의 말에는 그만한 무게가 실려 있었지만, 타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제군들도 알지 않느냐! 저 망종은 위험해! 아카데미에 있을 자격이 없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돼!”
이성을 잃어버린 타린이 울부짖듯이 소리쳤지만, 그에 동조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아렌을 향해 공격을 했지만, 주문이 범위 안에는 이곳에 있는 대부분이 들어가 있었다.
아렌이 아니었으면 죽거나,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모양이 되었을 것이 뻔했으니, 타린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없이 꽂히는 경멸의 눈초리에 타린의 손이 다시금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일단은 그라인드의 핏줄부터 치워버리는 것이 순서겠지. 그 후에 이야기를 나눠 보세나. 제군들도 내 이야기의 동조를 할······컥!”
쩌저저저정!
타린의 몸 위로 수많은 패널들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부서지고, 재 생성되었다.
“이! 이게!”
무수히 많은 화살이 끊임없이 방패를 두들기는 형세에 타린은 주문을 취소하고 방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가문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관심 없다.”
나직한 목소리에 시선이 모였다.
아렌이 느릿한 걸음으로 타린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 이 망종이!”
희미하게 흔들리는 손의 모습에 아렌이 지금 무엇인가를 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 줄 뿐, 장내의 누구도 아렌의 수법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나를 공격한 것과 모욕에 대한 책임은 져야겠지.”
쩌저저저저적!
한 걸음씩 가까이 갈 때마다 압력이 거세지고, 타린의 한쪽 무릎이 꿀렸다.
“커어······.”
무리한 마나의 운용에 타린의 입에서 핏줄기가 세어나왔다.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못 건드려서 안달일까.”
나직한 목소리에 찔리는 것이 있는 롬과 일당들이 움츠러들었다.
“너! 너희 그라인드······! 8대 귀족들! 인정할까 보냐!”
8대 귀족이라는 단어에 어리둥절한 학생도 있었고, 안색이 변하는 학생도 있었다.
“난 평화주의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새 타린의 앞에 도착한 아렌이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맞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아니지.”
슬며시 앞으로 뻗어진 주먹이 타린의 실드에 닿았다.
“카아악!”
공간을 뛰어넘은 일격에 타린의 허리가 접혔고, 새된 비명이 세어 나왔다.
“행동에 책임을 질 시간이다.”
마치 아렌의 앞에 무릎 꿇은 모양세가 된 타린의 머리를 겨누며 아렌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렌 공자!”
“죽이면 안 돼!”
살의를 담은 선공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교수와 학생이라는 입장 차는 분명하다.
정당방위가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이 뻔했으니, 라테시아와 네이던이 다급히 소리친 것이다.
“······크크큭! 이것도 나쁘지 않구나 ······. 자! 그라인드의 망종아! 손을 써라!”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는 타린의 모습에 아렌이 서늘한 눈빛으로 주먹을 내뻗으려는 그때.
“거기까지만 하지.”
기묘하게 사람을 자극하는 목소리와 함께 수많은 인영이 숲 사이사이에서 나타났다.
* * *
“저, 저!”
마수단과 특수단의 단원들.
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말을 더듬거나 입을 쩍 벌린 채 고개를 저었다.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군.”
이내 정신을 차린 마수단과 특수단의 단원들이 분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타린과 아렌을 비롯해 주변 인물들을 포위했다.
그 모습에 학생들은 눈치를 보며 저들끼리 모였지만, 아렌의 시선은 오로지 타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크크크.”
입가에 이리저리 흩어진 핏자국과 추레한 몰골이 부랑자를 연상시켰지만, 같은 교수들이라 지원군으로 생각하였는지 타린은 득의만만하게 웃었다.
그런 타린을 일별한 마수단 단원 하나가 아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렌 드 그라인드라고 했지. 우리 마수단과 함께 가 줘야겠어.”
다급한 표정으로 레티시아와 트리안, 네이던이 달려와 아렌을 변호하려고 했지만, 둘러선 이들의 날선 눈빛에 그저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귀찮군.”
그런 군상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렌이 중얼거리며 자신에게 진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런 상황을 감수하면서 아렌 드 그라인드라는 이름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것이 아렌의 본질이다.
지금까지는 이 세계에 속하게 된 자로서 최대한 자제하면서 살아온 것이지만 이제는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 것이다.
아렌의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하고, 조금씩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학생들을 흘겨보던 특수단의 단원이 말했다.
“너희들도 따라와라.”
“이익! 가문에서 가만있을 줄 압니까! 부당합니다!”
강압적인 태도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반발하며 주위가 소란스러웠지만, 아렌의 주변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투둑. 툭.
부룡기공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아렌 내부의 변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했고, 정갈하게 다듬어진 손톱에 기이한 광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조용.”
흉포한 용이 눈을 뜨려는 그 순간, 심령을 자극하는 목소리가 아렌의 귀에 박혔고, 그 순간 포효하려던 용이 무의식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았다.
거짓말처럼 소란이 멈추고 모든 시선이 공안 6과의 책임자인 루드비히에게로 향했다.
루드비히의 서늘한 눈동자가 잠시 아렌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 타린에게로 향했다.
“교수 타린 맞나?”
지극히 평범하게 생겼지만, 심령을 건드리는 목소리에 타린이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맞소.”
“체포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검은 옷을 입은 요원들이 타린에게 다가가서 마나 억제 장치를 채우고 거칠게 무릎 꿇렸다.
“뭣!”
“이게 무슨 짓이요!”
한순간에 일어난 일에 마수단과 특수단의 단원들이 반발했지만, 루드비히는 태연히 입을 열었다.
“조용.”
기묘한 박력에 일순간 모두의 입이 다물어지고 루드비히의 눈은 아렌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렌도 무저갱 같은 눈빛으로 루드비히를 바라보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사이에 기묘한 공기가 흐르려는 찰나, 검은 옷의 요원이 다가서더니 루드비히를 향해 속삭였다.
고개를 끄덕인 루드비히가 아렌을 향해 물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자네가 아렌 드 그라인드가 맞나?”
“그래.”
상대를 가리지 않는 반말에 주변에서 헛숨을 들이마셨지만, 루드비히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가도 좋다.”
“무슨 짓이요!”
“아무리 공안이라지만 이런 폭거가 용납될 거 같은가!”
“여기는 아카데미야! 아카데미만의 법이 있다고!”
마수단과 특수단, 타린과 학생들이 격하게 반발했지만, 루드비히의 대답은 단호했다.
“공안 6과는 황제폐하의 권위를 대신한다.”
묵직한 한 마디에 모두의 입이 닫혔고, 루드비히를 바라보는 아렌의 눈에 의문의 빛이 떠올랐다.
* * *
아카데미 전체가 수근거렸다.
함구령이 떨어진 덕분에 그날 있었던 일은 외부로 발설되지 않았지만, 무려 탑 하나가 무너져버린 사건이 아닌가.
누구 짓이라고 확정짓는 이는 없었지만, 학생들의 시선은 은연 중 아렌에게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렌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일찍 자고, 많이 먹고, 신청한 강의를 수강하는 규칙적인 모습에 질린 표정을 짓는 학생이 생길 정도였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어느 날, 트리안과 네이던이 굳은 표정으로 아렌에게 다가섰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나?”
묵직한 트리안의 물음에 아렌이 찻잔을 내려놓고 트리안을 바라보았다.
아예 상대도 해 주지 않았던 처음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면서 트리안이 말을 이었다.
“대련을 부탁한다.”
아렌이 네이던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네이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다.”
굳은 결의가 서려 있는 둘의 모습을 보면서 아렌이 자세를 바로 했다.
둘의 결의에 진심으로 대해 줄 가치가 있다 여긴 것이다.
“괜찮겠나?”
평소처럼 감정 없는 표정과 눈빛이었지만, 왠진 엄격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트리안은 크게 대답했다.
“물론이다!”
아렌의 눈빛이 강해졌다.
“죽을 수도 있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트리안과 네이던이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대련에?”
자신들과 다른 사고관을 가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격차가 상상이상이라는 것을 느끼며 트리안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실전을 상정하지 않은 대련 따위 아무런 쓸모도 없지.”
그 어느 때보다 진심처럼 보이는 아렌의 모습에 둘은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