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51
051화
성격이 급하고 과격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네이던은 자신이 마법사다운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했다.
“따끔따끔하네.”
“······ 같은 귀족가의 레이디 신분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염치가 없군요.”
트리안의 너스레에 레티시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렌은 아카데미 내부에서 경원의 대상이었다.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무력은 매력적이었지만, 너무나도 과격한 손길과 괴팍하다고 소문이 난 성격 때문에 아렌에게 다가서는 이들은 없었다.
다가선 사람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도리안을 비롯한 적의를 가진 학생들뿐이었고, 그들 대부분은 아카데미 생활보다는 일상생활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망가져버렸으니 더욱 그랬다.
아카데미가 사교의 장이라는 측면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렌의 인간관계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랬던 지금, 아렌과 일행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숲의 깊은 곳에는 일행을 중심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 소문도 빠르고, 행동도 빠르네요. 이런 게 귀족들의 일처리인가요?”
질린 표정의 코린이 중얼거리자, 모두의 얼굴에 고소가 걸렸다.
“······ 코린은 상상도 못 할걸?”
콜레트의 말에 코린의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지만, 일행은 최대한 태연하려고 애썼다.
어느새 은근슬쩍 일행에 끼어든 콜레트와 코린이다.
인연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아렌의 말이 있었지만, 같이 위기를 넘긴 사이 아닌가.
인연은 만들어졌고, 거기에 아렌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와삭.
물론 부지런히 쿠키를 만들어 바치는 콜레트의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거라고 트리안은 생각했다.
질린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레티시아의 시선이 아렌에게로 향했다.
콜레트가 바친 쿠키를 우물거리며 아렌은 반짝거리는 별 하나를 손에서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영롱하네요.”
레티시아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아렌의 손으로 향했다.
증명의 별.
그것도 저번과 같은 반쪽짜리가 아닌 온전한 별 하나가 아렌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렇게 빠르게 판단할 줄은 몰랐는데. 아렌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간 거겠지.”
트리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렌이 별을 받을 만한 일을 하기는 했지만, 거기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은 아카데미다.
원래대로라면 위원회가 열리며 자격에 대한 토론으로도 시간이 꽤 지나야 정상이지만 이례적으로 빠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일행을 향해 자신만만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학생이 하나 보였다.
“오는군.”
네이던의 중얼거림에 일행의 시선이 걸어오는 학생에게로 향했다.
겉에 걸친 서코트의 문양은 2학년임을 나타내고 있었고, 자신감이 가득 찬 표정과 당당한 풍채는 전형적인 귀공자의 모습이었지만, 은근히 풍기는 기세를 보면 가진 실력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아렌을 노리고 기회를 노리던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그런 시선을 즐기는 듯 한 표정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자네가 아렌이군.”
와삭.
외모만큼이나 당당한 목소리였지만, 아렌은 시선도 돌리지 않고 쿠키를 씹었다.
철저한 무시에 표정이 변할 만도 하건만 사내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이거 소문대로 무뚝뚝하군. 하긴 자네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런 것이 흠이 될 수는 없지.”
고개를 끄덕이며 아렌의 태도에 납득하는 모습을 보인 사내가 말을 이었다.
“나는 알랑 드 코사바라고 하네. 2학년이지.”
“아렌 드 그라인드.”
이름을 밝혀오는 상대의 모습에 아렌이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무감정한 표정과 무저갱 같은 눈빛에 알랑이 순간적으로 흠칫했지만, 이내 신색을 바로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비범한 모습이군. 소문이 과장되지 않았음을 알겠어.”
알랑이 감탄하는 표정을 떠올렸지만, 아렌은 이내 시선을 돌려버렸다.
“코사바 자작가면 중앙귀족이시군요.”
“서든 백작 영애께서 영민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미한 가문을 알아봐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말은 겸손하지만 표정은 자부심이 가득했다.
제국의 귀족들은 중앙과 지방으로 나뉜다.
지방 귀족들은 흔히 말하는 전통적인 귀족들이다.
자신의 영지를 기반으로 가문을 지탱하고 한평생 영지와 생과 사를 같이한다.
그에 반해서 중앙 귀족들은 영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신 제국 중앙의 정치에 깊이 관여하며, 관료들을 배출하고 정책에 따른 부수적인 이권을 창출하여 가문을 유지한다.
코사바 자작가는 그런 중앙 귀족 중에서도 꽤나 이름이 있는 명문.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이름이었다.
아렌의 무시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자신의 가문을 알아 봐 준 레티시아 덕에 기분이 좋아진 알랑이 입술을 축였다.
“이렇게 자네를 찾아오게 된 것은 꽤나 파격적인 제안이 있어서라네.”
약장수의 대사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렌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알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비록 이 몸의 능력이 한미하기는 하지만, 선배들이 좋게 봐주어서 하나의 모임에 적을 둘 수 있게 되었지.”
알랑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 찼다.
“엠파이어 가드라는 모임이네. 자네들도 이름은 들어봤을 거라 믿겠어.”
당연히 아렌은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귀족이 아닌 코린은 어리둥절했지만, 트리안, 네이던, 레티시아, 심지어 콜레트까지도 안색이 살짝 변했다.
아카데미에서는 수많은 모임이 탄생하고 사라져간다.
그 중에서는 끈끈한 조직력으로 제국 전역에 영향력을 미치는 모임도 존재했으니, 그중의 하나가 엠파이어 가드다.
무려 40년 전에 처음 조직되었다는 엠파이어 가드는 다수의 중앙 귀족들이 소속되어 있어 제국 정계와 관료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일단 가입이 된다면 제국이라는 정계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모임이니 알랑의 얼굴에 서린 자부심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꽤나 대단한 곳에서 나오셨군. 아렌. 네 가치가 크기는 큰 모양이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빈정거림이 담긴 네이던의 목소리에 알랑의 표정이 굳었다.
“엠파이어 가드라면 확실히 명문이지요. 하지만 아렌 공자의 입장에서라면 그렇게 좋은 선택은 아니네요.”
이어진 레티시아의 말에 트리안과 콜레트는 의문어린 표정을 지었고, 네이던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 귀족이 중심이 된 모임에 아렌 같은 지방 귀족의 후계자가 들어가서 무슨 이익을 받을 수 있을까. 그냥 얼굴 마담이 필요한 거야. 그것도 아니라면.”
네이던의 시선이 아렌의 손으로 향했다.
“별이 필요한 것이겠지.”
“거기다가 건방져요.”
레티시아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아렌 공자의 가치라면 말단인 2학년이 아니라 당대 모임의 회장이 나서도 모자랄 판이죠. 엠파이어 가드가 굉장히 권위적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소문만은 아닌 모양이네요.”
소문이 반만 맞더라도 아렌의 무위는 최소 마스터에 버금가는 것이니, 레티시아의 말은 확실한 근거를 품고 있었다.
신랄한 레티시아의 말에 알랑의 표정이 구겨졌고, 그제야 아렌의 시선이 알랑에게로 향했다.
“그렇다는 구나.”
작지만 분명하게 귀에 박히는 목소리에 알랑이 표정을 정비하고 입을 열었다.
“잘나가는 모임을 시샘하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 그런 소문에 휘둘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군. 자네의 가치를 낮게 본 것은 절대 아니야. 당연히 회장님께서는 자네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계시네. 거기다가 ······.”
가늘게 눈을 좁힌 알랑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자네의 일행들도 우리 모임이 편의를 봐줄 수도 있지.”
일행의 표정이 굳었다.
편의를 봐줄 수 있다는 말은 불편을 끼칠 수도 있다는 말이니, 정중한 태도와는 다르게 알랑은 지금 아렌에게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굳어진 일행의 표정을 본 알랑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귀족이라면 더욱 그렇지. 자. 이제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 ······.”
쩡!
굉음과 함께 알랑의 몸이 누군가 뒤로 당긴 것처럼 날아가 버렸다.
콰직!
수령이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나무가 알랑의 몸을 받아주었지만, 그 충격으로 나무의 몸통이 움푹 들어가 버렸다.
“히익!”
“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세어 나왔지만, 의외로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렌에 대해서 알만큼은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모인 만큼, 그가 있는 곳에는 항상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것을 숙지하고 있는 것이다.
“끄으으으.”
알랑의 신음소리에 시선이 모여들었고, 끔찍한 모습에 다들 고개를 돌리거나 눈가를 찌푸렸다.
움푹 들어간 가슴팍은 늑골이 전부 부러졌음을 알려주고 있었고, 이리 저리 꺾인 팔다리는 부분 골절이 일어났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눈이 돌아가고 입에서 거품을 일으키는 알랑의 모습을 보면서 콜레트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도 죽이시지는 않았네요.”
순진한 귀족 영애였지만, 아렌의 곁에서 나름 단련이 된 콜레트였다.
“가치가 없다.”
나직하게 대답하는 아렌의 모습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심해. 잘못하다가는 골절된 뼈가 피부 밖으로 나온다.”
어느새 나타난 것인지 아카데미 경비들이 알랑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며 숲에 모인 학생들의 얼굴에 긴장이 감돌았다.
너무나 매력적이고 가지고 싶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괴물.
그런 괴물을 상대하려는 자신들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은은한 향기와 함께 숲 저편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 * *
흩날리는 머리칼과 훤칠한 키, 하얀 피부와 요염하기 짝이 없는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집중시키게 하는 힘이 있었다.
“흡!”
“허어.”
눈물 점이 찍힌 나른한 눈매가 아치를 그릴 때면 여지없이 얼굴을 붉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인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허!”
“저런 영애가 있었나.”
훤칠한 키만큼 커다란 보폭은 귀족가의 영애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육감적으로 흔들리는 흉부는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어느덧 일행의 앞에 선 여학생에게 트리안과 네이던, 코린은 눈을 떼지 못했고, 레티시아와 콜레트도 얼굴을 붉힐 정도의 강렬한 매력.
베어 물고 싶어지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도톰한 입술이 벌어지며 꿀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쪽이 아렌 공자님이군요.”
어지간한 사람은 다 무시하는 아렌의 시선이 여인에게로 향했다.
우묵한 시선에 여학생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고, 모두의 표정이 몽롱해졌다.
“반가워요. 저는 ······.”
달콤하면서도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는, 언제까지고 듣고 싶어지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경고한다.”
냉랭한 기운이 가득한 아렌의 목소리가 모두의 정신에 찬물을 끼얹었다.
“······ 네?”
뜻밖의 반응에 놀란 표정을 짓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게 만들었지만 아렌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계속 수작을 부린다면 선제공격으로 판단하겠다.”
꿈같은 미인을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었기에 모두의 얼굴에 경악의 떠올랐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아렌에게 시선이 모여들었다.
당황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이내 환하게 웃는 여학생의 모습에 모두의 얼굴이 다시금 몽롱하게 변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저는 단지 ······.”
우지직!
살벌한 소리와 함께 여학생의 머리가 뒤로 부러질 듯 꺾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