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56
056화
대륙에서 인간의 가치를 나누는 기준은 힘이다.
수도 없이 출몰하는 몬스터들에게서 가족을, 사회를,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먼 옛날 재능 있는 자들은 본능적으로 몸에 마나를 받아들여서 초인이 되었으며, 그러한 혈통이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의 귀족이 되었다.
본격적인 오러 연공법이 개발되고, 마법에 눈을 뜬 인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을 거듭, 결국 몬스터와의 사투에서 승리하고 대륙의 주인이 되었지만, 그 뿌리에는 먼 옛날 조상들의 특별한 힘이 있었고, 그 중의 일부는 핏줄을 타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마나에서 발현된 힘이지만, 오러와 마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초상능력.
몬스터가 쓰는 주술과도 닮은 이 힘을 사람들은 혈계능력이라고 불렀고, 비전이 되었으며, 뿌리 깊은 가문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 * *
콩쿠르 후작가에 전해 내려오는 혈계능력 마리오네트는 원래 휘하의 병력을 강화하기 위한 능력이다.
마나의 실이 병사의 정수리에 이어지면, 병사는 술자의 보조를 받아 더욱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방식이다.
병사의 전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통각제어와 신체의 리미터가 풀리는데, 이 부분을 보조하고, 자잘한 상처를 치유하며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망설임이나 공포를 제어하여 전투에 전념하게 해 주는 것이 마리오네트의 원래 사용방식이다.
콩쿠르 후작가는 이 마리오네트를 적극 이용하여 외적과 싸우고 영지를 수호해 나갔다.
즉 원래대로라면 마리오네트에 인간을 제어하는 기능 따위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어디서나 돌연변이는 생기는 법.
밀드레드는 콩쿠르 후작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리오네트의 적성이 뛰어난 후손이었고, 연구와 수련 끝에 피시술자의 전신을 제어해 버린다는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끌어낸 것이다.
* * *
도리안은 그날을 회상했다.
“오빠! 왜 그러는 거야?”
“비켜라. 엘레나.”
잔뜩 굳은 표정의 도리안이 앞으로 나섰고, 엘레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밀드레드는 빙글빙글 웃었다.
“이런. 도리안 공자는 내가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
“그래. 오빠.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밀드레드 님은 좋은 분이야. 일단 진정해.”
필사적으로 자신을 말리는 여동생의 모습과 재미있다는 듯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밀드레드의 모습에 도리안의 결심은 더욱 굳건해졌다.
“콩쿠르 공자.”
“말하시죠. 도리안 공자.”
도리안의 굳은 얼굴과 밀드레드의 환한 미소가 마주쳤다.
“제 여동생이 신세를 진 것에 대한 감사를 먼저 드립니다.”
도리안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밀드레드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이상은 괜찮을 것 같군요. 엘레나도 언제 어디서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몸이니 더 이상의 접근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단호하게 이어지는 도리안의 말에 밀드레드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흠잡을 데 없는 명분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이다.
“가자.”
얼레나의 손을 잡고 돌아서는 도리안이 이대로 사라졌다면 일은 여기서 마무리 되었을 것이다.
“놔. 오빠.”
“엘레나!”
하지만 일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나도 의지가 있고, 생각이 있어. 더 이상은 가문의 뜻에 따라 휘둘리지 않을 거야.”
사춘기 소녀의 감성은 이성을 무시한다.
실질적으로 피렌사 공작가가 엘레나에게 강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아카데미에 보내진 것도 도리안과 공작과의 거래에 따른 것일 뿐, 실상 엘레나는 귀족가 전체를 통틀어도 보기 드문 자유로운 영애에 속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엘레나의 감성은 가문의 뜻에 반박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빙의되어 있었고, 밀드레드는 동화 속 왕자님으로 변해 버렸으니, 도리안은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는군요.”
그리고 그 순간 밀드레드가 눈빛을 번뜩이며 도리안의 앞을 막아섰다.
“공자님······.”
밀드레드의 비장한 표정을 본 엘레나의 눈빛이 몽롱해졌지만, 도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눈빛.
재미있다는 감정을 여지없이 쏘아 보내는 눈빛이 밀드레드에 관한 소문이 여지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리안 공자.”
이제는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는 밀드레드의 모습에 도리안은 검을 뽑았다.
“오빠!”
“워. 워. 이거 왜 이러십니까?”
상단에 검을 세운 도리안의 몸에서 구름 같은 기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공간을 장악해 나가는 기세에 밀드레드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엘레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제야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엘레나를 데려가겠다.”
도리안의 냉엄한 기세와 눈빛에 엘레나가 슬금슬금 도리안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덥석!
“꺄악!?”
밀드레드가 거칠게 엘레나의 손을 잡더니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안 돼지. 안 돼.”
“힉!”
“네놈!”
광기에 가까운 미소를 얼굴에 띤 밀드레드가 말했다.
“피렌사의 혈족을 쉽게 내줄 수는 없지. 공을 얼마나 들였는데 말이야.”
동시에 밀드레드의 손에서 마나의 실이 피어오르는 것을 본 도리안이 눈을 부릅떴다.
음험한 기세를 풍기는 실이 엘레나의 정수리로 향하는 것을 본 도리안은 망설이지 않았다.
캉!
물리력이라도 가진 것인지 검으로도 단박에 잘라내지는 못했지만, 엘레나가 몸을 뺄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 사색이 된 엘레나가 도리안의 곁에 섰다.
“오. 오빠.”
“단단히 마음먹어라. 엘레나.”
그들이 있는 곳은 유피테르에 산적한 숲 내부의 공터.
인적이 드문데다가 도리안은 시종도 달고 오지 않은 상태였으니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런.”
재빠르게 엘레나를 데리고 물러나려는 도리안의 감각에 수많은 인영들이 포착되었다.
끼기긱.
들릴리 없는 소리와 함께 무표정한 사내들이 숲의 여기저기서 나타났고, 도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도리안의 신체는 인간의 규격을 아득히 벗어나있다.
그런 도리안의 눈에는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였고, 인영들이 가까워질수록 드러나는 실의 모습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미쳤군.”
콩쿠르 후작가의 마리오네트에 대해서는 도리안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상리를 벗어난 형태가 아닌가.
자연히 도리안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짓이 용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밀드레드!”
빼어난 두뇌와 안목은 ‘인형’들이 어떤 상태인지 빠르게 판단하게 해주었고, 분노서린 외침을 쏟았지만 밀드레드는 킥킥거릴 뿐이었다.
“왜 용서 받아야 하는 거지? 내 덕분에 더욱 강한 힘을 손에 넣었는데? 거꾸로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밀드레드의 말에 도리안은 이를 악물었다.
궤변이지만 힘에 집착하는 귀족가의 생리를 생각하면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님을 직감한 것이다.
힘에 대한 자료나 뒷거래가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자. 자. 오늘은 좋은 날이 되겠어. 피렌사라니! 저 우월한 혈족들이 내 보조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는 날이 아닌가!”
“헛소리 마라!”
수십의 인형들이 도리안에게 달려들었고, 격전이 시작되었다.
* * *
제 아무리 도리안이라도 수십 명의 아카데미 학생들의 합공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숲의 한쪽이 날아가는 격전이 이어졌고, 그 격전 끝에 도리안이 제압당하기 직전 엘레나가 몸을 날렸다.
정수리에 실이 꽂혀 버린 엘레나가 필사적인 얼굴로 도리안에게 도망치라고 외쳤고, 도리안은 결국 몸을 뺄 수밖에 없었다.
광기에 찬 밀드레드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상처 입은 몸으로 공작가에 엘레나의 처지에 대해 통신을 날렸지만, 공작가는 따로 손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엘레나는 공작가의 관심 밖에 있었고, 밀드레드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엘레나는 그대로 두라는 통보까지 받은 도리안은 분노와 절망에 쌓였다.
세력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된 것이 그때였고, 본격적으로 별을 노리기 위한 결심을 한 것도 그때였다.
모아진 별에서 나오는 힘과 권력이라면 밀드레드를 누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간에 아렌이라는 변수를 만나서 세력의 절반이 날아갔고, 참담한 패배까지 겪었지만 도리안의 결심을 흔들리지 않았다.
거꾸로 아렌의 곁에서 별을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고, 성과도 제법 보았으니 도리안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 수업으로 아카데미를 비웠던 밀드레드가 오늘 모습을 드러냈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도리안의 눈은 돌아가 버린 것이다.
* * *
“엘레나는 살아 있는 거냐.”
회상을 마치고 이를 악문 도리안이 말했고, 밀드레드는 소중한 것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엘레나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도리안 너는 나를 뭐로 보는 거냐?”
밀드레드가 미소를 지우고 정색하며 말했다.
“죽은 시체 따위를 조종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잠재력을 개화하고, 두려움을 없애 주는 것이 내 능력이다. 당연히 살아 있어야지! 내가 엘레나에게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알면 놀랄걸?”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엘레나를 바라 본 밀드레드가 말을 이었다.
“엘레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나? 피렌사의 육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을 품고 있더란 말이야. 지금의 엘레나가 얼마나 강한지 상상도 못할 거다.”
어느새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한 인형들을 바라보며 밀드레드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자! 봐라!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 모습들을! 그토록 갈망하던 힘을 가지고 행복에 겨워 있는 모습들을 말이야!”
끼기긱.
밀드레드의 실이 출렁거리고 인형들의 입가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미친놈.”
일체의 변화도 없이 오직 입가만 위로 올라간 괴기스러운 모습에 도리안은 말없이 검을 빼들었다.
“너희들은 주변을 살펴라.”
그런 도리안의 모습을 본 밀드레드가 인형이 아닌 자들에게 말했고, 굳은 얼굴을 한 학생들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이제 이 주변은 철저하게 통제가 될 것이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욕심이 생겼단 말이지.”
밀드레드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엘레나가 이 정도인데, 피렌사의 역작이라는 도리안 너라면 어떨까?”
광기와 탐욕이 어우러진 눈빛이 도리안의 전신을 훑었지만 도리안은 말없이 검을 치켜들었다.
웅!
장엄한 기세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도리안의 온몸에서 무수한 빛이 반짝이더니 각종 강화 마법이 내려앉았다.
“실력이 더 늘었군!”
밀드레드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동시에 엘레나를 전면에 세운 인형들이 앞으로 나섰다.
무감정한 엘레나의 모습을 본 도리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할 수 있겠어?”
약 올리는 것 같은 밀드레드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할 수 있지!”
광기에 찬 밀드레드의 외침과 함께 인형들이 달려들기 시작했고, 도리안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수인을 맺었다.
* * *
“흠?”
“······무슨 일 있으신가요? 공자님?”
콜레트가 바친 쿠키를 오물거리던 아렌이 고개를 돌리자 화들짝 놀란 콜레트가 조마조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나 열과 성을 다해서 쿠키를 만드는 콜레트였지만, 사람은 실수를 하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가.
행여나 맛이 없는 건가 하는 불안감에 콜레트가 불안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아렌이 고개를 저었다.
“쿠키는 괜찮다.”
“다행이네요오 ······.”
가슴을 쓸어내리는 콜레트의 모습을 슬쩍 본 아렌이 저 멀리로 시선을 돌렸다.
“재미있는 일이 생겼구나.”
“네?”
어리둥절히는 콜레트의 모습에 아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미있겠어.”
방금 전 당도한 전성마법의 내용을 떠올린 아렌이 느릿하게 걸음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