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55
055화
그것은 눈으로 봐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밀드레드의 양손에서 뽑아진 실이 학생의 정수리를 파고들더니, 학생의 눈에서 빛을 뺏어가 버렸고, 학생의 모든 생체활동이 멈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이내 학생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면서 몸이 덜컥거리기 시작했다.
끼기긱.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이곳에 모인 학생들의 귀에는 기괴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관절에 있는 살들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기괴한 문양을 새겼고, 마치 인형의 관절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움직임도 인형과 다르지 않았다.
덜컥거리던 학생의 몸이 뻣뻣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내 천천히 움직여 밀드레드의 뒤에 시립했다.
경직된 얼굴과 몸짓은 그야말로 인형으로 보였으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 이제 너희들 차례다.”
그 모습에 만족한 듯 환하게 웃는 밀드레드가 무릎을 꿇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말했고, 그들의 표정에 절망이 서렸다.
“시. 싫어!”
“······ 젠장.”
체념하는 학생도 있었고, 공포에 질린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는 학생도 있었지만, 밀드레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을 활짝 펼쳤다.
끼기긱.
또 다시 귀에 들릴 리가 없는 소리가 들리는 환청과 함께 밀드레드의 뒤로 다섯 명의 학생이 서게 되었다.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학생들 중의 하나가 밀드레드의 뒤에 서 있는 인형들을 향해 말했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밀드레드의 능력 마리오네트는 피시술자의 자유를 구속한다.
말 그대로 밀드레드의 손끝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이다.
생사를 제어하는 것만 아니라면 밀드레드의 명을 거역할 수 없게 만드는 마리오네트는 피시술자의 능력을 대폭 강화한다.
자유를 뺏는 대신에 강함을 주는 것이 마리오네트의 본질이고 원래는 강력한 부대단위 강화 능력이다.
“열심히 하자고. 나도 너희들까지 인형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밀드레드가 유쾌하게 웃으며 학생들을 돌아보았지만, 따라서 웃는 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제 아무리 강함을 준다고는 하지만 전신의 자유를 뺏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지금까지 밀드레드가 만든 인형들을 보면서 절절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유쾌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는 밀드레드의 모습에 다들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시작했고, 이내 긍정적인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어쨌든 간에 밀드레드는 아카데미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인데다가, 그의 마리오네트들과 함께라면 그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힘.
밀드레드라는 강력한 빛을 향해 자발적으로 몰려든 이들은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성격이 조금 괴팍할 뿐이지 밀드레드는 꽤나 괜찮은 리더라는 것도 한 몫을 했다.
그렇게 변한 분위기에 밀드레드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좋아. 사람은 긍정적이어야지.”
밀드레드의 손이 인형으로 변한 학생들의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갔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신경반사까지 제어당하고 있는 것이다.
“잘나가고 싶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우리가 모인 거고. 거기다 실패해도 이렇게 힘까지 쥐어주는데 나 같은 사람 만나기 힘들다?”
“그래.”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밀드레드.”
박수까지 치며 만족한 모습을 보인 밀드레드가 시선을 돌렸다.
“자. 그럼.”
끼기긱.
밀드레드의 말과 함께 인형으로 변한 학생들의 목이 돌았다.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고개만 돌아가는 모습도 소름이 돋을 광경이었지만, 관절 한계를 넘어서 180도에 가깝게 돌아가는 목을 보면 혐오감마저 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그 광경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인형의 시선을 따라서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구경은 잘 했나?”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는 밀드레드의 시선 끝에서 도리안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게 누구야!”
밀드레드의 양 손이 활짝 펼쳐지며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 반가운 사람을 맞이하는 것 같은 태도에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지만, 도리안은 웃지 않았다.
“도리안 드 피렌사! 입학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제야 보는군. 정말 오랜만이지?”
“······밀드레드.”
나직한 목소리에 도리안에게 걸음을 옮기던 밀드레드가 발을 멈췄다.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짓고 있던 도리안의 표정이 무섭게 경직되어 있었고, 스멀스멀 세어 나오는 기세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아직도 꽁해 있는 거야? 귀족이 속 좁게 그러면 안 되지. 당당한 귀족 남아라면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한다고.”
토라진 동생을 달래는 형 같은 모습에 미소가 새어나올 것 같은 광경이었지만, 도리안의 기세는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었다.
“엘레나는 어디 있지?”
“아! 엘레나!”
밀드레드과 환하게 웃으며 과장스럽게 양 팔을 벌렸다.
“역시 남매간의 우의가 좋단 말이야. 당연히 엘레나는 잘 있지.”
밀드레드의 손이 까딱이는가 싶더니, 일행의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도리안과 같은 은발에 뚜렷한 이목구비, 훤칠한 자태는 누구나 미인이라고 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했지만.
끼기긱.
움직임이 아예 없는 이목구비와 뻣뻣한 움직임, 관절에 새겨진 기이한 문양은 그녀가 밀드레드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때. 아름답지? 꽤나 신경 써서 대해주고 있다고.”
밀드레드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도리안은 이를 악 물었다.
* * *
피렌사 공작가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가문이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
후손의 개량을 통한 절대적인 초인의 완성이라는 그 목적을 향해서 피렌사 공작가는 우직하게 전진했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후손을 보게 되었다.
도리안의 어머니도 그런 피렌사의 목적을 위해서 간택된 사람이었다.
비록 평민이었지만 피렌사의 눈에 들만큼의 자질이 있었던 그녀는 피렌사 공작과 결합하게 되었고 도리안을 낳았다.
“굉장한 재능입니다. 이런 재능은 처음 보는군요.”
“그런가?”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의 극찬에도 공작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가 인정한 마검사의 재능을 타고난 도리안은 피렌사 특유의 강인한 신체가 극대화된 작품이었지만, 아쉽게도 피렌사가 바라는 완성품은 아니었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바라는 완성품은 아니게 된 계륵, 그것이 도리안을 바라보는 피렌사의 시선이었다.
당대 공작의 핏줄이기는 하지만, 피렌사에 있는 공작의 핏줄만 해도 수십 명이니 도리안에 대한 관심은 금세 시들어 버렸다.
하지만 마검사의 재능이라는 것은 피렌사의 대외적인 위명을 보여 주는 데는 충분했고, 진정한 완성품을 가리기 위한 연막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으니, 그렇게 도리안은 피렌사의 얼굴 마담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대단한 재능을 지닌 공작의 아들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없는 사람처럼 대하는 가문의 태도에 도리안은 분노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거꾸로 자신의 능력을 계속해서 어필하지 않으면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한 가문의 지원이 끊길 터이니 자신을 계속 갈고 닦았다.
다행히 피렌사는 교육에 인색하지는 않았다.
어찌되었든 도리안은 계속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고, 그 부분에 대한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문제가 된 것은 여동생인 엘레나였다.
일반적인 귀족가의 시선으로 보자면 대단히 뛰어난 인재이기는 하지만, 피렌사의 시선에는 미달인 그녀의 재능에 크게 실망한 공작은 모녀에 대한 지원을 줄여 버렸다.
지원을 줄였다고는 하지만, 평생을 챙겨주는 배려를 보여 주었으니, 도리안과 엘레나는 그럭저럭 만족했다.
하지만 남매의 모친은 그러지 못했다.
평민에서 귀족의 화려한 생활을 거치고 다시 평민의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 환경을 그녀는 참지 못했고, 거기에 따른 히스테리와 우울증을 남매에게 풀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도리안은 이를 악 물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도리안의 위명은 점점 커졌고, 조금이지만 가문 내에서의 입지도 다져갈 무렵 도리안은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의 여동생인 엘레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고민하던 도리안은 결국 공작과 거래를 하나 성사시켰다.
“무슨 일이지?”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 무생물을 대하는 것 같은 공작의 태도에 도리안은 이를 악물고 최대한 환하게 웃었다.
“이번 대의 종군은 제가 가겠습니다.”
도리안의 말에 바위같던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명예로운 귀족이라면 종군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피렌사도 마찬가지였고, 도리안의 대에서 누구 하나는 반드시 전장으로 향해야 했는데, 도리안은 그 역할을 자신이 맡겠다고 공작에게 제의한 것이다.
“조건을 이야기해라.”
무미건조한 공작의 태도에 도리안은 더욱 더 웃으려 노력했다.
“엘레나를 아카데미에 보내고 싶습니다.”
“······허락한다.”
피렌사가 가다듬고 있는 피들을 외부로 돌리고 싶어 하지 않았던 공작은 그 제안에 선선히 응했다.
그렇게 엘레나 드 피렌사는 한발 먼저 아카데미에 입할 할 수 있었으니, 가슴 한 구석이 가벼워진 도리안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얼굴마담의 역할에 충실하며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자신의 입지를 넓히며 외부의 인사들과 친목을 다지니 이제 피렌사라고 하면 도리안의 이름이 나오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힘들지만 충실한 나날을 보낸 도리안은 당당한 걸음으로 아카데미로 향했고, 먼저 입학한 엘레나와 환하게 웃으며 재회할 수 있었다.
“아름다워졌구나. 엘레나”
“오랜만이야, 오빠.”
엘레나는 화려하게 개화해 있었다.
피렌사 내부에서나 열등인자인 것이지, 그녀의 미모와 재능은 보기 힘든 것이었고,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그때, 도리안은 밀드레드를 처음 만났다.
“참. 여기 소개할게. 밀드레드 드 콩구르 님이셔.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이야.”
“이름 높은 도리안 공자를 보게 되는군요. 밀드레드라고 합니다.”
행복하게 웃으며 밀드레드를 소개하는 엘레나의 모습에 도리안은 뒷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입학 전에 타린을 비롯한 몇몇의 아카데미 교수들을 포섭해 놓았던 도리안이다.
밀드레드의 악명에 관해서는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온 도리안은 밀드레드가 결코 엘레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보는 순간 확신한 것이다.
도리안은 엘레나를 설득했지만,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알지 못했다.
이미 밀드레드에게 단단히 빠져 버린 엘레나는 도리안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고, 결국 도리안은 검을 뽑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도리안은 처참한 패배를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