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54
054화
부르바스의 모습이 강당 안에 나타나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방계 황족이자 대마법사로 공인된 부르바스 드 칼리넘의 위명을 모르는 자는 적어도 이 자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바탕 강당 안의 학생을 훑어본 부르바스가 입을 열려는 그때였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카데미 경비 복장의 사내가 다급한 기색으로 부르바스를 불렀다.
경비와 같이 있는 베네프트의 손에 들린 서류를 본 부르바스의 눈매가 잠시 꿈틀거리더니 이내 인자한 미소를 짓고는 강당 안의 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안하군. 제군들. 급한 서류가 온 모양이야. 잠시 실례하는 이 늙은이를 용서해 주게나.”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학생들이 웃으며 호응했다.
“편하게 보십시오. 총장님.”
“괜찮습니다!”
학생들의 호응에 미소로 답한 부르바스였지만, 몸을 돌린 순간, 인자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물러가 보게.”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굳어진 표정에 경비가 물러나고, 베네프트가 생성한 결계가 두 사람을 감쌌다.
“꼬리를 잡았나?”
“일단 보시죠.”
베네프트가 내미는 서류를 받아서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한 부르바스의 눈가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공안도 순수하게 아카데미에 온 건 아니군.”
“······아카데미 내부의 결사 중 하나와 손을 잡은 모양입니다.”
부르바스가 눈을 감았다.
“폐하. 왜 이리 집요하시오······.”
나지막한 한탄 소리에 베네프트는 고개를 돌렸다.
제국에서 황제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그에게는 부르바스의 중얼거림이 들리지 않았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짧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긴 시간이 지나고 부르바스가 눈을 떴다.
무엇인가를 단단히 결심한 부르바스의 눈빛에 베네프트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자네는 계속 조사를 해 주게. 전에 했던 말을 잊지 말고.”
“······총장님께서는 어떻게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단단한 목소리에 베네프트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판을 흔들어야겠지.”
말과 함께 몸을 돌린 부르바스의 얼굴에 다시금 인자한 미소가 떠올랐고, 그런 그의 등을 베네프트가 무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 *
“인사가 늦어 미안하군. 대부분 나를 알거라고 생각하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 내 소개를 하지.”
인자한 얼굴로 말하는 부르바스의 모습에 학생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총장인 부르바스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강당 전체에 묵직하게 깔리는 마나가 학생들의 표정에서 웃음을 앗아가 버렸다.
한순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킨 부르바스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 발린 이야기도 조금 하고 싶기는 하지만, 영민한 제군들이니 그런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지.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부르바스의 손이 증명의 천칭을 가리켰고, 그의 손을 따라 학생들의 시선이 몰렸다.
“신입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증명의 천칭이라네. 아카데미에 퍼진 증명의 별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대략적이나마 알려 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네.”
직접적으로 언급된 증명의 별에 강당 안의 공기가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아카데미의 상층부에 진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로의 출세를 보장하는 징표이니 모두들 눈빛이 달라졌다.
그런 학생들의 기세를 느낀 베네프트가 쓰게 웃었다.
“그래. 아카데미는 교육기관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 증명의 별을 모아서 자신을 증명하는 작은 투기장이라고 할 수 있지.”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베네프트가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에는 별을 얻기 위한 행사가 제법 많이 있지. 투기 대회가 그 예라고 할 수 있겠군.”
아카데미에서 매년 열리는 투기 대회는 외부의 귀족들도 참관을 하러 올 정도로 권위 있는 축제다.
당연히 그 소문은 제국 전체에 자자했고, 투기 대회의 우승자는 귀족들 사이에서도 섭외 일 순위로 여겨질 정도.
강당 이곳저곳에서 투기가 솟아올랐지만, 부르바스의 다음 말에 거짓말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올해는 대회를 열지 않겠다.”
너무도 담담해서 단호함마저 느껴지는 한 마디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야기 들었소?”
“······처음 듣는 이야기요. 총장님께서 즉흥적으로 결정하신 거 같은데?”
“아무리 총장님이라도 이런 월권이 가능하신가?”
교수들마저 놀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베네프트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부르바스를 응시했다.
“조용.”
그 순간 묵직한 것을 넘어서 실제적인 물리력에 이른 마나가 강당 전체를 짓눌렀다.
“음!”
“······과연 대마법사.”
거대한 강당 안에 모인 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한 순간이나마 제압한 부르바스의 실력에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시선을 모았다.
“모두들 알다시피 올해는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생겼지.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네.”
침중한 목소리에 강당의 소란스러움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무엇보다 문제는 아직 명확하게 해결이 되지 않은 사건이 있다는 점이야. 이 부분은 내 무능에서 비롯된 일이니까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지만 불안 요소를 가지고 갈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네.”
인자한 미소가 걷힌 부르바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기에 대륙의 동태도 심상치 않아. 예년보다 몬스터의 출현 비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고 하고, 소규모 영지는 아예 몬스터의 습격에 초토화된 곳도 있다고 보고를 들었다네.”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몬스터의 준동이야 매년 있어 왔던 이야기이지만, 부르바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만큼 그 무게감이 달랐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는 투기 대회를 몬스터 토벌로 대신하겠다. 학생이라는 자네들의 입장을 조금만 뒤집어 보면, 제국 전체에서도 상위권에 들어가는 병력이라고 할 수 있지. 이런 병력을 놀리는 것도 제국에 대한 불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부르바스의 목소리에 기이한 힘이 실렸다.
“3학년부터 시작되는 외부 수업을 전 학년으로 확대할 것을 선언한다. 마탑, 신전, 용병 길드와 연계해서 각 학년의 수준에 맞는 몬스터를 토벌할 수 있게 계획을 짜겠네. 지정된 지역의 몬스터를 토벌하고 증거로 마석을 제출하는 것으로 점수를 매기겠다.”
투기 대회에 걸려 있는 별들을 생각하며 아쉬워하던 학생들의 눈에 투지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자네들이 아카데미에서 수학할 수 있을 정도의 인재라는 것을 제국 만방에 증명하는 동안 아카데미는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겠네.”
쿵! 쿵! 쿵!
확신에 찬 부르바스의 말에 학생들이 발을 굴렀다.
뜨겁게 달아오른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부르바스가 몸을 돌렸고, 흥분한 학생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에서 아렌은 우묵한 눈으로 부르바스의 등을 바라보았다.
“황제. 공안. 비밀결사라 ······.”
너무나 나직해서 아무도 듣지 못한 중얼거림과 함께 아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재미있는 곳이야.”
평소와는 다르게 흥분한 일행들을 슬쩍 본 아렌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 * *
소집은 짧았지만, 워낙에 많은 인원들이 모이고 이동한터라 강당에서 나오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정말 올해 아카데미는 여러모로 이상하네요.”
레티시아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확실히 이상한 점이 한둘은 아니지. 그나저나 총장님이 말년에 무슨 고생이신지 모르겠군.”
걱정이 스며있는 네이던의 말에 트리안이 고개를 돌렸다.
“대마법사시라는 건 알겠는데, 존경하는 분이었나?”
“존경스런 분이다. 방계 황족의 신분으로 전쟁터에 종군하셨고, 전투마법사라는 개념을 확립하신 분이시지.”
네이던의 말에 레티시아도 말을 덧붙였다.
“부르바스 총장님은 존경하실만한 분이 맞아요. 조용히 은거하셔도 충분하실 텐데, 후학을 위해 아카데미에 취임하신분이니까요.”
마법사들만이 공유하는 감정에 일행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보는 총장님은 어떻지?”
그 순간 슬며시 다가온 도리안이 아렌에게 물었다.
“도리안 공자!”
“무례하군.”
레티시아와 네이던이 질색하는 얼굴로 도리안을 쳐다보았지만, 환하게 웃는 도리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렌을 바라보았다.
“강하더군.”
아렌의 나직한 목소리에 도리안이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려는 찰나.
“하지만 약해.”
이어진 목소리에 일행의 표정이 변했고, 네이던의 얼굴에 심각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게 무슨 뜻이지. 아렌?”
네이던의 굳은 목소리에 아렌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묘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도리안은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그런 거였군.”
“······너는 알아들은 거냐?”
평소처럼 환하게 웃는 도리안을 보며 네이던이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거다. 그럼 나는 이만 실례하도록 하지.”
“······이 자식!”
빙글빙글 웃으며 몸을 돌리는 도리안을 보면서 네이던이 이를 갈았지만, 도리안은 어느새 일행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은발을 휘날리며 멀어지는 도리안의 모습을 노려보던 네이던이 혀를 차며 발길을 돌렸고, 아렌도 잠시 도리안 쪽을 보더니만 이내 시선을 돌렸다.
밀드레드가 향한 곳으로 도리안이 걸음을 옮긴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 * *
밀드레드 드 콩쿠르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 어떠한 일이든 긍정적으로 대하며 헤쳐 나가니 밀드레드에게 위기라는 것은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한 일에 불과했다.
때문에 밀드레드는 눈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버러지들을 보면서도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기회를 주십시오.”
초췌한 표정과 몸 이곳저곳에 생긴 상처를 보면 사내가 얼마나 험악한 전투를 했는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적과 싸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부상이 심해 보이는데도 투지를 불태우는 모습은 기사의 귀감이라고 할 만했지만, 밀드레드에게 그런 것은 고려할 만한 게 아니었다.
“상완 골절, 허벅지 자상, 갈비뼈 골절, 복부의 자상은 응급처치가 훌륭했군, 까딱했으면 죽었겠어.”
심드렁한 목소리에 사내의 몸이 움찔거렸다.
한번 쓱 본 것만으로 밀드레드는 사내의 몸에 난 상처를 정확히 알아낸 것이니, 그 눈썰미가 놀라운 것이다.
“내가 별을 주면서 뭐라고 했었지?”
목소리에 깔린 냉소에 사내의 몸이 떨었다.
“······목숨같이 여기라고 했습니다.”
밀드레드가 가볍게 탄식하며 머리를 위로 들었다.
“그래. 목숨이라고 했지. 솔직히 별 조각 정도야 그렇게 큰 손해는 아니야. 암. 그렇지.”
모두가 갈망하는 별을 하찮게 취급하는 태도에 건물 사이 으슥한 곳에 모인 일행들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그런데 내가 그 별 조각을 네 목숨이라고 했으면 그건 네 목숨인거지. 그렇지?”
눈에 띄게 떨기 시작한 사내가 쥐어짜듯 입을 열었다.
“그. 그렇습니다.”
밀드레드가 기이한 광기가 어른거리는 눈으로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넌 죽은 거잖아.”
밀드레드의 두 손이 사내의 얼굴을 들어 올려 눈을 맞췄다.
“죽은 사람한테 어떻게 기회를 주지?”
밀드레드의 양손에서 뽑아진 실이 사내의 정수리로 파고들었고.
“컥!”
한 소리 비명과 함께 사내의 눈에서 빛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