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53
053화
소집령이 내려졌다.
기본적으로 방임주의 교육을 하는 아카데미이지만, 급한 사안이 있거나 필수적인 전달 사항이 있으면 발휘되는 소집령은 아카데미 학생 전체가 모이는 시간이다.
중앙 건물 옆에 위치한 강당에 아침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아카데미 학생들의 숫자는 거의 천여 명에 달했다.
“넓군.”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트리안의 감탄과 네이던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당은 커도 너무도 컸다.
천여 명의 인원과 아카데미의 요소요소를 관리하는 경비대의 인원들을 수용하고도 공간이 남는 거대한 건축물은 제국의 힘을 보여 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할 만 했다.
“귀족 의사당을 본떠서 만든 건물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상상이상이네요.”
레티시아의 말과 함께 일행은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대한 콜로세움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여진 강당을 중심으로 자리한 좌석에 학생들이 앉기 시작했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아렌의 주위로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아렌뿐만 아니라 아렌의 일행들도 견제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기인이 된 기분이군.”
“자만하지 마라.”
네이던이 핀잔을 주었지만, 트리안에 입에 걸린 흉악한 미소는 가시지 않았다.
도리안과 숲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이 벌써 한 달 전이다.
도리안의 예측대로 아렌에게 무수한 도전이 이어졌다.
워낙에 소문이 흉흉한 아렌이었지만 입학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신입생이다.
상급생은 신입생을 깔보기 마련이고, 실력에 자신이 있는 상급생이 아렌의 별을 뺏기 위해 대거 몰려들었다.
당연히 그중에서 몸 성히 돌아간 자들은 없었고, 늘어난 휴학계에 아카데미 사무처가 바쁘게 돌아갔으며 신관들과 경비들은 아예 아렌의 근처에서 상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의 일부를 상대한 것이 트리안과 네이던을 비롯한 아렌의 일행이었다.
처음에는 상대의 실력이 너무도 한심함을 알아 본 아렌이 돌아선 것이었고, 그럼에도 달려드는 상대를 일행이 상대한 것이었지만, 이게 의외로 효과가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고로 실전만 한 수련은 없는 법이다.
아렌의 입장에서 한심한 실력인 것이지, 아카데미 상급생이라면 어디 가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자들.
그런 실력자들과의 전투는 얻는 것이 꽤나 많았다.
이를 깨달은 일행은 본격적으로 파티를 짜고 아렌에게 달려드는 사냥꾼들의 일부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연계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일행의 움직임에서 군더더기가 사라졌다.
코린의 은신술은 더욱 은밀해졌고, 콜레트가 어느 순간부터 들고 다니는 방패와 흉악하기 짝이 없는 메이스에는 핏자국이 가시지 않았다.
귀엽고 천진하게 웃으며 메이스로 대가리를 깨버리는 콜레트의 모습은 다른 의미의 공포로 아카데미에 악명을 떨치게 되었고, 다른 일행들의 명성도 점점 올라갔다.
위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때도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일행은 각자 별 조각 하나이상은 소유하게 되었다.
단기간에 집중 된 실전은 이들을 단순한 입학생 이상의 실력으로 올려 놓았고, 이제 아카데미에서 ‘아렌의 일행’들을 무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물론 유명해진 것은 아렌의 일행들뿐만이 아니었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실력자들이 이곳저곳에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숨어있는 자들까지 생각하면 과연 아카데미는 용담호혈이라고 불릴 만했다.
서로를 견제하는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마나의 유동이 느껴졌다.
위윙.
나지막한 기관 음과 함께 강당의 천장에서 무엇인가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고,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부유 마법이 걸려있는지 강당의 중앙에 둥둥 떠 있는 구조물은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커다란 기둥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천칭이 달려있는 것도 일반적인 형상은 아닌데, 그 다섯 개의 천칭 주변으로 다시 네 개의 천칭이 달려있는 괴상한 모양이다.
거기에 각 천칭마다 기울기가 각기 다르니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의문 섞인 표정의 입학생과는 다르게 상급생들의 얼굴에 각기 다른 표정이 떠올랐다.
환희, 분노, 좌절, 투지 등등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모습에 아렌의 입이 열렸다.
“괴상하군. 저건 뭐지?”
“증명의 천칭이군요. 이게 벌써 나올 줄은 몰랐는데······.”
레티시아의 말에 일행의 시선이 모였다.
“저도 듣기만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저 천칭은 별의 분포도를 보여 준다고 해요.”
“분포도?”
트리안의 물음에 레티시아가 손가락으로 천칭을 가리켰다.
“위쪽 다섯 개의 천칭은 각 기숙사를 나타내죠. 그리고 그 밑에 달린 천칭은 각 학년을 나타내요.”
아카데미 기숙사는 다섯 개의 동이고, 학년은 4학년까지이니 이치에 맞았다.
“곳곳에 분포된 별의 숫자에 따라서 기울기가 달라진다고 들었어요. 별이 많이 있는 곳은 내려가고, 별이 적은 곳은 올라가죠.”
각각의 천칭이 기울기가 다른 이유가 설명되었다.
네이던의 시선이 노란색의 천칭으로 향했다.
“적군.”
그의 말대로 노란색의 천칭이 다른 천칭들에 비해서 위로 들려 있었는데, 그 하부의 천칭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우리 기숙사는 신입생들이 가진 별이 더 많지? 뭐 아렌 덕분이기는 하지만.”
트리안의 말대로 각 학년을 나타내는 하부의 천칭들이 다 위로 들려 있었지만, 그나마 내려앉은 천칭이 1학년을 표시하는 천칭이었다.
“역시 붉은 천칭이 묵직하군요.”
격정적인 성향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기숙사를 상징하는 붉은 색의 천칭이 가장 무겁게 내려 앉아있는 모습에 모두들 눈을 빛냈다.
“저 치들만 찾아다니면 된다는 말이지?”
트리안의 호기로운 모습에 네이던이 냉소를 지었다.
“그만둬라. 가지고 있는 별도 다 털릴 거다.”
“틀린 말은 아니지. 실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카데미에는 괴물이 많아.”
네이던의 말에 발끈하려던 트리안이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얼굴을 굳혔다.
“도리안.”
환한 미소와 함께 도리안이 양손을 들어올렸다.
“반갑네. 친구들. 짧은 시간이지만 자네들의 명성이 아카데미에 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를 거야.”
마치 연극배우 같은 과장된 몸짓이었지만,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은 도리안의 모습에 트리안과 네이던의 인상이 구겨졌다.
“항상 뜬금없이 나타나시는군요.”
“과찬이십니다. 서든 영애.”
우아하기까지 한 도리안의 모습에 레티시아도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분이 아니셨던 거 같은데.”
코린의 중얼거림에 도리안이 더욱 환하게 웃었다.
“하핫. 나도 내가 이런 성향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코린. 패배에서도 배울 게 있다는 말이 이렇게 와닿을 줄은 몰랐지.”
옆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도리안의 모습을 잠시 본 아렌이 입을 열었다.
“재미 좀 본 모양이야.”
“이런. 역시 속일 수 없군.”
아렌의 시선이 가슴 깨에 잠시 머물렀던 것을 알아 챈 도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 주위를 주목하다 보니 나도 별을 꽤 모을 수 있었지.”
아렌을 노리고 수많은 상급생들이 몰려들었지만, 모두가 아렌과 싸운 것은 아니었다.
실력 차를 실감하고 물러난 자들도 있었고, 단순하게 정찰을 위해서 접근했다가 발길을 돌린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중의 일부를 도리안이 잡아먹은 것이다.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보다 효율이 좋았지. 덕분에 우리 기숙사가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고 있는 거 아닐까?”
도리안의 말에 트리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 우리 기숙사였냐?”
“음? 몰랐나? 섭섭하군.”
진짜로 섭섭한 표정을 짓는 도리안의 모습에 네이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렌이 아무리 많이 모았어도 1학년이 다른 학년을 압도한 다는 게 조금 말이 안 되긴 했지.”
현재 아렌이 소유한 별의 개수는 네 개를 넘어간다.
다른 이들이 알면 경악해 마지않을 숫자지만, 기숙사와 학년 단위로 본다면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만만치 않을 숫자를 모았을 거라고 예상되는 도리안의 별이 합세한다면 다른 학년을 능가하는 별의 개수가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던 그때, 강당의 한쪽이 시끄러워지며 일단의 학생들이 들어섰다.
3학년을 상징하는 서코트와 로브, 각자의 어깨위에 검은색의 견장을 달고 있는 무리였다.
그 선두에 선 자줏빛 머리칼의 학생이 강당을 돌아보니, 시선이 닿는 곳마다 격렬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밀드레드!”
“돌아왔나!”
“······회장에게 알려 밀드레드가 돌아왔다.”
“······이번 사냥은 고약해지겠군. 1학년의 괴물도 괴물인데, 밀드레드까지 돌아왔으니. 피바람이 불 수도 있겠어.”
마른 덩치에 적당한 키이지만, 음침한 기운을 풍기는 밀드레드가 그런 반응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이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쪽 구석으로 이동하는 모습에 도리안이 주먹을 꾹 쥐고, 얼굴을 굳혔다.
“아는 사람인 모양이군.”
나직한 아렌의 말에 흠칫한 도리안이 힘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아. 예전에 잠깐 봤었지.”
“그래?”
밀드레드를 가만히 본 아렌이 말을 이었다.
“재미있는 놈을 아는군.”
“······뭔가를 본 건가?”
낮아진 도리안의 말에 아렌이 턱짓으로 밀드레드의 뒤를 따라가는 학생들을 가리켰다.
멀끔한 밀드레드와는 달리 부상이 치유되지 않은 것인지 피폐한 모습의 몇몇을 보며 트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치들······. 저번에 우리하고 싸운 상급생들 아닌가?”
“밀드레드라는 선배의 수하인 모양이군. 그런데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닐 텐데?”
트리안의 말과 네이던의 의문에 아렌이 나직하게 답했다.
“인형을 끌고 다니는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지.”
“인형?”
“······아렌 공자. 무슨 말을 하는 거죠?”
도리안이 놀란 표정으로 아렌을 바라보았고, 레티시아가 의문을 던졌지만 아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용안에는 밀드레드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실이 초췌한 학생들의 정수리와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분명하게 보였지만, 아렌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 * *
외부로 원정 수업을 나가 있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전부 모인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보면서 부르바스는 뿌듯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저 하나하나가 제국을 지탱하게 될 인재들인데······.’
서로가 화합하며 발전을 도모해도 모자랄 판에 피를 부르는 분쟁거리를 던져야 하는 자신의 입장을 비관하며 부르바스는 애써 평온을 가장했다.
“다 모인 것 같습니다.”
“알겠네.”
인자한 표정으로 자신을 감춘 부르바스가 문을 열고 강당으로 나섰다.
자연스럽게 번져나가는 마력에 강당 안의 시선이 모여들었고, 부르바스는 인자하게 웃으며 학생들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주목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빠르게 찾던 부르바스의 시선에 아렌이 잡혔다.
감정 없는 얼굴과 무저갱 같은 시선이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파헤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부르바스는 강당의 중앙, 증명의 천칭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