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57
057화
피렌사는 엘레나를 재능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렌사의 입장이었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엘레나는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다.
인간의 규격을 벗어난 신체능력과 마법적인 소양도 갖추고 있는 엘레나는 도리안의 하위호환격인 존재였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발전 가능성이 있었다.
다만 가문으로부터 무시를 당한 세월 때문인지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고, 타고난 여리여리한 성격은 전투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도리안도 가문의 결정을 어느 정도는 납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모든 족쇄를 강제로 열어버린 엘레나가 도리안에게로 쇄도해 들었다.
* * *
우웅!
단순히 주먹을 내지르는 것뿐인데 주변의 공간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
“엘레나.”
그런 그녀의 모습에 도리안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한 감상과는 별개로 도리안의 몸은 착실히 제 할 일을 다 했다.
검이 부드럽게 움직여 엘레나의 주먹으로 향했고, 한 발 옆으로 물러났다.
검면이 엘레나의 주먹에 닿는가 싶더니 방향을 살짝 바꿨고, 그 힘은 그대로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쾅!
굉음과 함께 땅이 움푹 패였다.
가공할 위력에 입술을 깨문 도리안이 손날을 세우더니 엘레나의 뒷목을 내리쳤다.
밀드레드가 엘레나의 어는 부분까지 제어가 가능하지 모르니 일단 기절시키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텅!
“뭣!”
마리오네트로 강화된 엘레나의 육신을 믿고 과하게 힘을 넣은 도리안의 수도가 그대로 튕겨나갔다.
상대적으로 연약한 뒷목을 내리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현상에 도리안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고, 그 순간 엘레나의 주먹이 쇄도해 들었다.
쾅!
“큭!”
포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검면으로 정면을 막은 도리안의 몸이 뒤로 날려졌다.
“쏴라!”
밀드레드의 흥에 겨운 목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수많은 마법이 도리안이 날아간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콰과과광!
불과 얼음, 바람과 번개가 휘몰아치고, 대지가 솟아올랐다.
어지간한 상급 기사라도 견디어 낼 수 없을 정도의 공격이었지만, 밀드레드의 싱글거리는 미소는 가시지 않았다.
외려 이 정도로도 모자란다는 듯이 현란하게 양 손을 놀렸고, 그에 따라서 무수히 많은 마법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만!”
숲의 한쪽을 완전히 뒤집어엎어 버린 공격이 멈췄고, 흙먼지가 가득한 파괴의 현장이 드러났다.
밀드레드가 가볍게 손을 흔드니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 먼지를 날려 버렸다.
“대단하네! 도리안! 내 기대를 저 버리지 않는군!”
“······네놈!”
폐허가 되어 버린 숲의 한가운데 도리안이 한쪽 무릎을 꿇고 형형한 눈빛으로 밀드레드를 쏘아보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육각형의 패널이 도리안의 온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낭패한 행색이기는 하지만 기세가 전혀 죽지 않은 것이,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것 같은 모습에 밀드레드는 휘파람을 불었다.
“엘레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다시금 온몸에 빛을 번쩍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도리안이 무시무시한 눈빛을 보냈다.
“어이쿠. 무서워라.”
그런 도리안의 모습에 무섭다는 듯 어깨를 움츠린 밀드레드였지만, 누구도 그가 겁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별건 아니지. 그저 엘레나의 가능성을 개화시킨 것뿐이야.”
혀로 입술을 축인 밀드레드가 이야기를 이었다.
“인간을 아득히 벗어난 육체가 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아이에게 가르쳐 주는 것 같은 태도에 소름이 돋았다.
“정답은 더 강인한 육체!”
양팔을 활짝 벌린 밀드레드가 광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방어에 특화된 오러 연공법을 구해서 엘레나에게 익히게 했지. 사카디아 권투술을 주입했고, 마법은 강화마법으로 한정했다!”
공격력은 떨어지지만 전신을 금성철벽처럼 만들어주는 종류의 오러 연공법은 주로 근위기사대나 누군가를 호위하는 자들이 익히는 연공법이다.
사카디아 권투술은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그 단순함 때문에 파괴력과 속도만 따진다면 제국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체술.
거기에 강화마법으로 전신을 감쌌다면 엘레나의 전투 스타일을 유추할 수 있다.
“언제나 꿈꿔 왔었지 ······.”
몽롱한 표정으로 밀드레드가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귀족 영애가 맨손으로 적진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 그 맨손으로 적을 분쇄하는 모습 말이다!”
도리안의 표정이 침중해졌다.
“지금의 엘레나는 어지간한 검기에는 끄떡도 안 해! 그 주먹은 성벽을 분쇄하고, 절대 멈추지도 않지! 어떠냐. 도리안!”
엘레나의 호리호리한 육신이 철탑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힘을 손에 넣었는데 행복하지 않을까?”
철벽같은 육체로 자잘한 공격은 무시하고 단순해서 극대화된 공격력은 한방 한방이 어지간한 대포를 능가한다.
초근접전으로 들어간다면 세상 누구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존재가 지금의 엘레나다.
차차창!
엘레나의 주위로 갑옷을 입은 학생들이 도열하더니 검을 빼들었다.
이윽고 밀드레드를 둘러싼 학생들이 마나를 일으켜 주문을 완성시킨다.
엘레나를 중심으로 한 진형이 완성되었다.
“여기에 도리안 네가 들어온다면 어떨까?”
뱀 같은 눈초리로 도리안을 훑은 밀드레드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짜릿하단 말이지!”
밀드레드의 사타구니가 부풀어 오르는 모습에 도리안은 눈을 찌푸렸지만, 이내 그의 시선이 엘레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도리안은 표정을 풀 수밖에 없었다.
“······엘레나.”
여전히 인형같이 표정 없는 얼굴이었지만, 한쪽 눈에 습기가 차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방울이 되어서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괴기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도리안의 투지를 불태우기에는 충분했다.
“좋다.”
도리안은 각오를 다졌다.
“음? 뭐가 말이지?”
한참을 웃던 밀드레드가 한 순간에 바뀐 도리안의 기세를 보고서는 의문어린 표정을 지었다.
“엘레나도 피렌사의 핏줄이니 조금은 과격하게 대해도 괜찮겠지. 나머지야 내 알바 아니고.”
날카로운 예기가 솟아오르며 도리안의 주위로 빛이 명멸하더니 주문이 짜이기 시작했다.
“흥!”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밀드레드가 손을 까딱거리자 아무런 전조도 없이 엘레나가 쏘아져 나갔고, 도리안의 전면에 나타난 엘레나의 주먹이 도리안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미 말라버린 눈물에 도리안의 눈빛이 깊어졌고, 그 순간 엘레나의 몸이 크게 회전하더니 튕겨져 나갔다.
쾅!
“······어라?”
커다란 폭음과 함께 밀드레드의 머리가 돌려졌다.
끼기긱.
나무에 들이박힌 엘레나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일어나 앞으로 나오고 있었지만, 밀드레드는 그런 것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뭘 한 거지?”
“별건 아니다.”
이리저리 손목을 돌려보던 도리안이 밀드레드를 쏘아보며 말했다.
“주변에 무시무시한 지인이 있어서 말이야. 조금 흉내를 냈을 뿐이야.”
도리안의 육체는 인간의 규격을 한참이나 초월해 있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지와 지능, 감각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리안은 어지간한 것은 한 번 보면 그 원리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곧바로 자신의 몸으로 펼쳐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그가 최근에 주의 깊게 살펴본 것이 아렌.
간단해 보이지만 무수히 많은 이치가 포함된 아렌의 움직임을 단번에 파악하는 것은 도리안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비슷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했고, 그 결실이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푸학!
도리안을 중심으로 녹색의 연기가 퍼져나갔다.
보기만 해도 심신에 상당히 안 좋을 것 같은 연기가 스멀스멀 기세를 넓혀 가는 모습에 대범한 밀드레드도 얼굴을 굳혔다.
“이런 미친!”
동시에 밀드레드의 주변에 포진해 있던 마법사들의 손이 빛나면서 녹색의 연기를 밀어냈지만, 도리안의 몸을 중심으로 번지는 연기는 그 기세를 잃지 않았다.
“대량 살상 마법이라니! 미친 거냐! 도리안!”
“누가 누구 보고 미쳤다고 하는 거냐.”
흥분한 밀드레드에 비해 차분하게 대꾸하는 도리안의 모습이 조금 전과는 주객이 바뀐 모양이다.
“당연히 네가 미친 거지! 포이즌 클라우드라니!”
독은 공평하다.
일반 시민도, 경지에 이른 초인도 공평하게 피해를 주는 것이 독이라는 존재고, 그런 독을 광범위한 지역에 살포하는 포이즌 클라우드는 대량 살상 마법으로 지정되어서 도시에서는 사용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다.
“흥! 여동생을 인질로 잡힌 상태에서 다수의 적에게 포위되었는데 이 정도도 못한단 말인가! 위원회도 정상참작을 할 거다.”
“······너 이 자식!”
작정하고 뻔뻔하게 나가는 모습에 밀드레드가 입을 벌렸고, 도리안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도리안 드 피렌사다.”
도리안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라. 하지만.”
힘이 실린 선언이 숲을 울렸다.
“절대로 쉽지는 않을 거다.”
“이익! 공격해!”
밀드레드의 외침과 함께 인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이건 이상하네요.”
걸음을 옮기는 아렌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던 레티시아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렇군.”
“뭐가 말이죠?”
네이던의 말에 코린이 의문을 표했다.
“결계를 말하는 거다.”
“······결계 말입니까?”
묘한 눈초리로 주변을 살피는 코린에게 레티시아가 답했다.
“숲에 들어온 순간부터 외부와의 기척이 차단되었어요. 이 정도면 이 숲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관측이 되지 않을 거예요.”
“괜찮은 솜씨다. 물리적인 방어력은 없는 거나 다름없지만 마나와 기척 차단에는 더없이 충실해.”
두 마법사의 문답에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코린이 주변을 살피며 오러를 끌어올렸다.
“······그러네요.”
관측과 은신에 특화된 코린의 오러가 숲 밖으로 향했고, 코린은 네이던과 레티시아의 말이 맞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의 솜씨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레티시아의 말에 네이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은 절대 아니지. 상급생들이 뭘 배우는지는 몰라도 이 정도 광범위 결계를 구성하는 건 절대 불가능해. 이 정도면 ······.”
“외부 조력자가 있어요. 그것도 꽤나 고위 마법사가.”
아렌을 제외한 모두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이놈의 아카데미는 까도 까도 뭐가 계속 나오는군.”
트리안의 탄식이 그들의 감정을 대변해 주었다.
“괜찮을까요오···?”
방패와 메이스를 야무지게 쥔 콜레트가 말꼬리를 늘이며 불안감을 표시했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괜찮다.”
그때 아렌이 무심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네?”
콜레트가 화들짝 놀라며 아렌을 쳐다보았고,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술자는 자리에 없어. 마법진으로 유지되는 결계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지 두 마법사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지만, 다른 일행들은 표정을 풀었다.
아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이미 일행의 머릿속에는 굳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을 숲을 관통하던 그때였다.
“손님이군요.”
척후를 맞고 있던 코린의 한 마디에 일행의 발걸음이 멈췄고, 숲의 저편에서 두 명의 학생이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