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58
058화
3학년을 상징하는 로브를 걸친 두 학생은 각기 개성이 강했다.
음침한 표정으로 실실 웃는 왜소한 학생과, 키가 크지만 무척이나 말라서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학생이다.
“멈춰라.”
키가 큰 학생의 입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일행은 주춤거렸지만 아렌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타박타박.
숲을 지나는 아렌의 느릿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고, 키 큰 학생의 인상이 찡그려졌으며, 음침한 학생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말을 안 듣네?”
작게 중얼거린 학생이 품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컥.
“아렌!”
“······ 놀랍네요.”
갑자기 걸음을 멈춘 아렌의 모습에 일행의 놀란 비명이 터져 나왔고, 당연한 결과라는 듯 웃고 있는 학생의 손에는 사람 팔뚝만한 길이의 목각인형이 들려있었다.
“말을 안 듣는 아이는 혼나야지?”
음침하게 웃으며 인형의 팔을 들어 올리자 놀랍게도 아렌의 팔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 저주인가.”
“그래 보이네요. 일반적인 마법은 아니에요. 혈계능력 같아 보여요.”
심각한 표정을 짓는 네이던과 레티시아의 모습에 일행의 모습도 침중해졌다.
제 아무리 괴물같이 강한 아렌이라고는 하지만, 혈계능력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제단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마법과 오러가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이 가능한 범용적인 능력이라면, 범용성은 약하지만 특정 상황에서 절대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혈계능력이다.
제 아무리 경지가 낮고 약하더라도 혈계능력을 쉽게 보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인형술에 저주, 어딘가에서 들어본 거 같은데.”
코린의 중얼거림에 인형을 손에 든 학생이 답했다.
“히히히. 굳이 알 필요는 없어. 조금 혼나고 뒤돌아서 숲을 나가면 되거든.”
끼릭.
인형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돌리자 아렌의 손목도 부자연스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몸 성히 보내겠다는 말은 아니야.”
“아렌 공자님!”
대경실색한 콜레트가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라면 아렌의 손목이 돌아가 부러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문보다는 덜하군.”
마른 사내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 아렌의 움직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하긴 일단 주앙의 능력에 노출된 순간부터 일은 끝난 거니까.”
혈계능력 퍼펫.
얼핏 보면 밀드레드의 마리오네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능력이다.
마리오네트가 상대방을 강화시킨다면 퍼펫은 철저하게 약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수하게 제작된 인형을 매개체로 신체의 자유를 빼앗고, 온갖 저주를 때려 박는다.
일반적인 방호마법으로는 방어가 불가능한 저주는 야금야금 상대를 갉아먹게 되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익!”
그런 아렌의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 트리안이 검을 빼들고 앞으로 달려 나가려 발을 내딛었다.
“안 되지.”
쿵!
“크헉!”
날카로운 인상의 학생이 손을 뻗는가 싶더니 갑자기 트리안의 몸이 땅으로 박혀버렸다.
“트리안!”
마치 거인이 손으로 누르는 것 같은 모양으로 바닥에 엎드린 트리안이 몸을 덜덜 떨며 일어나려 애썼다.
“으아아!”
관자놀이에 핏줄이 솟구치고 오러가 일어나며 트리안의 신체능력을 보조했지만.
“소용없다.”
건조한 목소리와 함께 트리안의 몸이 더 깊이 눌려졌다.
끼기긱.
트리안의 갑옷이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고, 코린과 콜레트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그 때.
“프로텍트.”
레티시아의 영창과 함께 트리안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으라압!”
한 소리 외침과 함께 트리안이 퉁기듯 몸을 일으켰고, 무시무시한 눈으로 날카로운 인상의 학생을 노려보았다.
“제법이군. 방호 마법으로 내 힘을 차단한 건가? 신입생치고는 괜찮은 실력이야.”
냉정한 눈빛으로 레티시아를 바라본 학생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저는 유지하는 게 다에요.”
“걱정마라.”
이마에 송글송들 땀이 맺히기 시작한 레티시아의 말에 네이던이 냉엄한 목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섰다.
콜레트가 메이스를 야무지게 말아쥐며 성광을 뿌리기 시작했고, 코린이 숲의 그림자에 스며들며 전투에 돌입하려는 순간,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소용없다.”
쿵!
“헉!”
“큭!”
어느새 양 손을 내민 학생의 두 손에서 발휘된 힘이 일행 전체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무거워진 신체와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에 레티시아와 네이던의 주문이 발현되었고, 오러와 성력을 이끌어내서 저항하는 일행이었지만, 그저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 전부인 상황.
상리를 무시한 오러 운용능력에 아렌을 포함한 일행 전부가 발이 묶여버렸다.
“빨리 끝내자 주앙. 이 녀석들 저항이 제법 있군. 오래는 못 버틴다.”
“히히히.”
날카로운 인상의 학생, 랜디의 말에 주앙이 음침하게 웃으며 인형의 팔을 힘주어 잡았다.
광역 범위를 제압하고 방어에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부족한 랜디와 한 명의 적을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지만, 다수의 공격에 취약한 주앙의 조합은 더할 나위없는 시너지를 불러일으킨다.
제 아무리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는 신입생들이라지만 이 둘에게는 눈에 차지 않았다.
이대로 제압해서 잠시 가둬놓으면 된다고 생각한 랜디가 주앙을 다시 독촉하려 시선을 돌리던 그때 그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히. 히?”
“······ 주앙?”
마법사이기에 근력이 딸리기는 하지만, 인형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닌 주앙이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제는 얼굴에 미소까지 사라지면서 인형의 손목을 비틀려고 하고 있지만, 인형은 움직이지 않았다.
랜디의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오르면서 시선을 급히 돌렸고, 무저갱 같은 눈으로 둘을 바라보는 아렌의 모습이 잡혔다.
오른쪽 팔이 돌아가 있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전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는 아렌의 모습에 랜디의 표정이 굳어졌다.
“흠.”
그리고 그 순간, 아렌의 팔이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히익!”
주앙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고, 인형이 주앙의 손에서 벗어나서 안면으로 날아올랐다.
* * *
‘이거 참.’
아렌은 자신이 당황했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전, 현생을 통틀어 당황이라는 감정을 느낀 게 얼마만인지 감도 안 잡힐 만큼의 시간이 지났기에 더욱 각별함을 느끼며 아렌은 인형과 자신 사이의 공간을 관조했다.
용의 눈이 떠지고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그제야 안개 같은 기운이 인형에서 뻗어 나와 아렌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술인가? 마법? 그것도 아닌 거 같고 ······, 상단전의 이능에 가깝군.’
꾸준한 수련에 의해서 상단전이 개방되면 신선에 반쯤 발을 걸치게 되고, 신통력을 쓸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육신통.
하지만 극히 드물게 태어날 때부터 상단전이 개방되어 있는 자들이 있었고, 그런 자들은 각기 개성적인 이능을 발휘하고는 한다.
‘꽤나 체계적인 기술이야.’
하지만 상대의 기술은 꽤나 오랜 시간동안 가다듬어진 느낌이 들었으니, 필히 이러한 힘을 대대로 물려오는 혈족이 있을 거라고 아렌은 생각했다.
‘재미있구나.’
무림에서는 전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아렌에게 신선한 영감을 준다.
상단전과 관련된 이능은 그 원리를 규명하기가 요원하지만, 어쨌든 정체를 알았으니 그에 맞게 대항하면 그 뿐이고 차후에 이 영감을 수습하면 될 일이다.
아렌의 전신에 거대한 힘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 *
“뭣!”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랜디의 정신이 순간적으로 아늑해지면서 일행을 제압하고 있는 힘이 풀릴 뻔 했다.
그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주앙의 손에서 벗어난 목각 인형이 그 조그마한 몸을 허공에 띄우더니 안면으로 날아올라 뒤돌려 차기를 날리는 게 아닌가.
콰직!
“카악!”
묵직한 일격이 주앙의 콧대를 정확히 가격했고, 생각지도 못한 통증에 주앙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인형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파바바바박!
살벌하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인형의 손발이 어지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주앙의 얼굴 곳곳을 살벌하게 가격했다.
관자놀이, 인중, 정수리를 포함한 안면의 급소란 급소를 모조리 가격당하자 주앙의 얼굴이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고, 부러진 이빨이 튀어나왔다.
얼굴에서 미끄러진 인형이 뱀처럼 주앙의 턱을 타고 내려와 경동맥에 양 손을 뻗었다.
“커 ······ 어.”
그림 같은 솜씨로 경동맥을 제압하기가 무섭게 주앙의 두 눈이 뒤집어지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 뭐냐. 이건.”
“아렌!”
“공자님!”
넋이 나간 건 같은 랜디의 목소리를 비웃는 것 같이 일행이 환희에 찬 소리를 질렀지만, 아렌은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손을 뻗었다.
방금 전까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던 인형이 아렌의 손으로 날아왔고, 가만히 인형을 살피던 아렌이 이내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큽!”
랜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완전히 몸의 자유를 찾은 아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시선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먼저 가라.”
서늘한 시선으로 랜디를 바라보던 아렌이 손을 움찔거리려는데, 네이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선배 하나면 해볼 만해. 아까는 몰라서 당했지만, 지금은 어림없다.”
으르렁거리는 트리안의 목소리에 아렌이 가만히 일행과 랜디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 젠장.”
아렌이 숲의 안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본 랜디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반대로 일행의 얼굴에는 투지가 차올랐다.
“자. 누가 먼저 나가떨어지는지 해 보죠.”
레티시아의 입에서 거친 말이 흘러나왔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고, 거칠게 일어나기 시작한 기세가 숲을 물들여 갔다.
* * *
콰콰콰쾅!
폭음과 먼지가 장내를 감쌌지만, 숲 밖으로 빠져나가지는 않았다.
어느덧 숲의 일부분을 전소시켜버린 격전의 현장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한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검을 가슴에 세우고, 온 몸에서 주문을 쥐어짜내며 수많은 파상공세를 홀로 버티고 있는 도리안의 모습은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뭐냐! 뭐냐!”
하지만 밀드레드는 그 모습에 만족하기는커녕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버티지?”
그도 그럴 것이 진작 쓰러져서 그의 것이 되어야 했을 도리안이 끝까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격을 진행하고 있는 인형들의 소모를 걱정해야할 지경.
제 아무리 마리오네트로 강화된 인형이라고는 하지만 무한히 움직인다는 뜻은 아니다.
거꾸로 능력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해주니 장기전에는 적합하지 않은 능력이 바로 마리오네트다.
마리오네트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사람이니 소모를 충족시켜줘야 할 필요가 있었고, 너무 과도하게 굴리게 되면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인형이 제어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었다.
마리오네트는 그 강력한 위력만큼이나 섬세한 기술인 것이다.
“말했지 않나. 주변에 무시무시한 지인이 있다고.”
몸에는 이런저런 상처가 가득하고, 낭패한 신색은 패잔병처럼 보였지만, 도리안의 눈빛은 전혀 죽지 않았다.
“덕분에 장기전은 자신이 있어졌지.”
인간을 벗어난 체력을 가지고 있는 도리안이 아렌의 움직임에 힌트를 얻어 나름대로의 방어술을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그것이 도리안의 자신감이 되었다.
“흥!”
그런 도리안의 모습을 노려보던 밀드레드가 인형들을 물렸다.
뒤로 물러난 인형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쓰러지고, 숲의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인형들이 걸어와 그 자리를 메꿨다.
“병력은 얼마든지 있어! 결국 넌 말라죽게 될 거다.”
비열한 웃음을 지은 밀드레드가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 엘레나.”
교체되는 인형들 사이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엘레나를 보면서 밀드레드가 입맛을 다셨고, 도리안의 안색이 굳어졌다.
“장기전으로 가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어림없다고 도리안. 이 숲은 이미 모임이 장악하고 있다. 네가 빠져나갈 길은 없어!”
도리안의 정신을 흔들려는 수작이었고, 실제로 그러기도 했으니 밀드레드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자신의 말에 절망하는 표정을 지을 것이 분명할 도리안을 비웃으려 시선을 맞추려는 그 순간.
“······ 뭐야? 왜 웃지?”
도리안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밀드레드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야 당연히 웃을 수밖에 없지.”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꽂아버린 도리안이 굳은 몸을 피려는 듯 이리저리 돌렸다.
지금이 전투 상황이라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은 행동에 밀드레드가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쾅!
숲의 한쪽 면을 뚫고 뭔가가 그들이 있는 공터로 떨어져 내렸다.
예상도 못한 상황에 밀드레드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도리안의 웃음이 더 환해졌다.
“여기 있었구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아렌이 숲을 헤치고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