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59
059화
“괜찮아 보이는구나.”
멈춰버린 전투의 현장에 아렌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게 괜찮아 보이는가 보군.”
누가 봐도 낭패한 모습이었지만 아렌의 태평한 목소리에 도리안은 헛웃음을 지었다.
“끄으으으으.”
고통스런 신음 소리에 밀드레드와 도리안의 시선이 모였다.
아렌의 등장과 함께 날아온 물체에서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제야 그들은 그것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명의 학생이 이리저리 꺾인 관절이 얽혀서 둥글게 말려있는 끔찍한 모습에 도리안과 밀드레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 또 말아버렸군.”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도리안은 시선을 돌려버렸고, 학생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던 밀드레드가 아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가 그런 거냐?”
광기가 줄기줄기 세어 나오는 눈빛은 보는 것 만으로도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렌은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정당방위다.”
“······ 그런 것 치고는 사람을 너무 엉망으로 만들어 놨는데.”
밀드레드가 으르렁거렸지만, 아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위원회에서도 나에 대한 정당방위를 인정했었지. 그러니까 이건 정당방위다.”
확고한 근거가 있는 뻔뻔한 아렌의 대답에 밀드레드가 어이가 없어하는 사이 아렌이 도리안에게 다가섰다.
“슬슬 버티기 힘들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았군.”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도리안에게 아렌이 말했다.
“공물을 바친다고 했지.”
“······ 공물이 아니라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 어찌 되었든 뜻만 맞으면 상관없겠지.”
도리안은 꼼꼼한 성격이다.
실패를 할 수는 있지만, 그 실패를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런 면을 도리안은 소홀이 하지 않았다.
때문에 콜레트와 아렌 사이의 접점에 대해서 심도 깊게 조사했고, 결국 ‘공물’의 존재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다.
밀드레드를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 쫓아오기는 했지만, 도리안은 확실한 보험을 원했고, 덕분에 아렌이 지금 이곳에 서 있었다.
“받아라.”
도리안이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아렌에게 건넸고, 아렌은 망설임 없이 받았다.
영롱한 빛이 아른거리는 그것은 증명의 별.
조각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형태를 가진 별이었다.
밀드레드의 눈가에 탐욕의 빛이 떠올랐다.
별 조각 다섯 개를 모아야 완성이 되는 온전한 별은 밀드레드의 입장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귀물이다.
그런 귀물이 눈앞에서 장난스럽게 건네지고 있으니 허탈하기도 했지만, 손만 뻗으면 자기의 것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탐욕이 끓어오른 것이다.
그리고 밀드레드는 저 별이 자신의 것이 될 거라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나한테 주지 그랬어? 그러면 엘레나에 대해서도 조금은 생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짐짓 아쉬운 말투로 이야기하는 밀드레드였지만, 도리안은 물론이고 아렌 역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 두 명의 반응에 밀드레드의 눈가가 씰룩거렸고, 별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렌이 입을 열었다.
“공물은 잘 받았다. 그럼 대가를 치러야겠군. 원하는 게 있나?”
도리안의 시선이 인형처럼 서있는 엘레나에게로 향했다.
제법 거친 격전이었음에도 옷에 먼지 하나 묻어있지 않는 모습이 비현실적이었지만, 도리안의 아련한 표정에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저 여자를 분쇄하면 되는 거군. 공물의 가치에 비해서는 쉬운 일이다.”
“아니다!”
아렌이 서늘한 눈으로 엘레나를 쳐다보며 손을 들려는 그 때, 도리안이 다급하게 외쳤다.
“저 녀석은 내 여동생이다.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는 거냐!”
혼이 실린 외침에 아렌이 움찔거리더니 시선을 돌렸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밀드레드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너희 뭐하냐?”
한심하다는 듯한 목소리에 도리안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아렌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결심했다.
“원하는 게 뭐지?”
엘레나의 목숨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긴 도리안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보면 알겠지만 저기 저 개자식이 내 여동생을 조종하고 있다.”
“말이 험하군. 도리안. 이건 모욕으로 받아들이겠다.”
개작식이 비난했지만, 도리안은 개의치 않았다.
“내 여동생을 저 개자식으로부터 해방시켜줘.”
엘레나를 바라보던 아련한 눈빛이 불똥을 튕겼다.
“덤으로 저 개자식도 박살내주고.”
무시무시한 눈빛이 밀드레드에게 향했고, 아렌의 시선도 옮겨졌다.
“그렇다는구나.”
당연히 밀드레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 이번 신입생 중에 괴물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게 네 녀석이군. 하지만 그래봤자다.”
밀드레드의 주변으로 인형들이 모여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각기 오러와 마나를 보충한 것인지 방금 전과는 기세가 달랐다.
아렌과 도리안의 대화를 지켜본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잘 됐군.”
혀로 입술을 핥으며 밀드레드가 아렌을 노려보았다.
“너도 꽤나 흥미로운 소재가 될 거 같아.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겠어.”
인형들의 전신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형형색색의 주문이 떠올랐다.
“너희들을 손에 넣으면 내 병단은 더 강해질 거 ······.”
한참 기세를 올리던 밀드레드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어느새 아렌이 그의 앞에 나타나 있었고, 그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헛된 꿈을 꾸는구나.”
쩡!
아렌의 손이 흐릿해진 순간, 굉음 소리와 함께 밀드레드가 뒤로 날아가 버렸고, 인형들이 아렌에게로 달려들었다.
* * *
쾌액!
공기를 떨리게 만드는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주먹을 보면서 아렌은 잠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흠.”
쾅!
아렌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힘이 떨어져 내렸고, 그 순간 땅이 운석이 떨어진 것 마냥 폭발해 버렸다.
한 발 옆으로 비켜선 아렌이 손을 엘레나의 팔에 가져다 대었고, 그 순간 엘레나의 몸이 거칠게 회전하더니만 이내 머리부터 떨어져 내렸다.
쿵!
흙바닥에 머리부터 거꾸로 박혀버린 엘레나의 모습에 도리안이 비명을 질렀다.
“살살해라!”
하지만 아렌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엄살 부리지 마라.”
머리가 땅에 박힌 엘레나의 두발이 허공에서 회전하는가 싶더니 아렌의 얼굴과 몸통을 향해 파고들었다.
공기가 떨릴 정도의 강맹한 일격에 다시 한발 물러서니, 회전력으로 몸을 빼낸 엘레나가 다시금 아렌에게 쇄도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둘러싼 인형들의 무기가 공간을 가로막았고, 아렌의 머리위로 각종의 공격마법이 떨어져 내렸다.
쿠쿠쿠쿵!
흙먼지가 일어나는 모습에 도리안이 이를 악 물었다.
방금 전 자신이 당한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보이는 모습에 몸이 움찔거렸지만, 일변하는 장내의 모습에 도리안은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후웅!
거친 소리와 함께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가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거대한 와류가 생성되는 것이 아닌가.
쿵!
동시에 거대한 무엇인가가 와류를 갈라버렸고, 아렌을 포위하고 있던 다섯의 인형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왔다.
“까다롭군.”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아렌이 미세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믿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아렌은 평화주의자다.
적에게는 가차 없지만 본시 평온한 생활을 영유하고 싶어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의 기준에서 밀드레드의 인형들은 적이 아닌 희생자에 가까웠으니, 최대한 온전한 모습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싶었던 것이고, 최우선적으로 밀드레드를 노린 것이다.
“······ 괴물이라고 불릴만하구나.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어느덧 몸을 일으킨 밀드레드가 전신에 육각형의 패널을 두른 채로 외쳤고, 아렌의 시선은 밀드레드의 손으로 향했다.
손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온 실이 인형들의 정수리에 닿아있었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마나의 움직임은 아렌의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저것도 이능인가? 혈계능력이라는 건 연구해 볼만 하겠구나.”
천하의 모든 기공을 섭렵한 아렌의 안목으로서도 이해가 어려운 능력이니만큼, 이 자리에서 바로 파훼할 수는 없었고,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무수히 많은 인형으로 주변을 감싼 밀드레드를 보면서 도리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와는 다른 아렌의 눈빛에 도리안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조금 과격하게 손을 쓰겠다. 미리 사과하지.”
“안 돼!”
아렌이 과격하게 손을 쓰는 것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도리안이 대경실색했지만, 그 외침을 무시한 아렌이 시선을 밀드레드에게로 돌렸다.
“공격해라! 엘레나!”
아렌의 무저갱같은 시선에 흠칫한 밀드레드가 거칠게 손을 흔들었고, 그 순간 엘레나가 포탄처럼 날아들었다.
도리안과의 대화를 유추하면 아렌은 엘레나를 구하기 위해 온 것이니 손발이 어지러워질 것이고, 그 틈을 찌른다면 충분히 제압이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이었지만, 밀드레드는 아렌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콰직!
“엘레나!”
끔찍한 소리와 도리안의 비명소리가 울렸고, 밀드레드의 눈이 커지며 입이 벌어졌다.
쿵.
아렌의 바로 앞 땅바닥에 쓰러진 엘레나가 벌레처럼 온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팔과 두 다리가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꺾인 엘레나가 고통 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아렌을 향해 기어가려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사지는 말을 듣지 않았다.
“······ 어떻게?”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밀드레드가 중얼거렸다.
피렌사 특유의 초인적인 신체와 방어에 중점을 둔 오러 운용, 거기에 각종 강화마법을 떡칠한 엘레나의 몸은 강철 골렘 이상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초인적인 몸을 너무도 간단하게 손상시켜버린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이 정도면 가벼운 상처지.”
“사지 개방골절이 무슨 가벼운 상처냐!”
분통을 터트리는 도리안을 무시한 아렌이 밀드레드에게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공격! 공격!”
밀드레드의 입에서 거친 외침이 터져 나왔고, 인형들이 각자 아렌에게로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방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콰직!
검을 들고 달려들던 인형의 검이 부러짐과 동시에 허벅지가 박살났다.
콰릉!
강력한 대인 마법이 작렬했지만, 아렌을 감싸고 있는 붉은색의 막에 막혀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이런 젠장!”
밀드레드의 욕설과 함께 달려든 인형이 그렇게 하나둘씩 전투불능이 되어갔고, 어느덧 밀드레드의 앞에 다가선 아렌이 손을 휘저으니 주변에 있던 마법사 인형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크흑!”
“알아볼 게 제법 많다.”
두터운 방호 마법으로 온 몸을 감싼 밀드레드를 바라보면서 아렌이 중얼거렸다.
일반적인 괴뢰술과는 그 궤가 다른 마리오네트이다 보니 엘레나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밀드레드를 직접 관찰할 속셈인 것이다.
아렌의 작은 손이 밀드레드를 감싸고 있는 육각형 패널에 닿으려는 그때.
웅.
기묘한 느낌과 함께 밀드레드가 아렌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