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60
060화
한순간 세상의 법칙이 일그러지는 것 같은 느낌에 아렌의 표정이 변했다.
제 아무리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도 세상의 법칙에 손을 대지는 못한다.
그나마 그것이 가능하리라 예상되는 것은 신선의 반열에 오른 자들뿐인데, 지금 이곳에 그러한 힘을 사역하는 자가 나타난 것이다.
충격에 빠진 것도 잠시, 공터의 한쪽에서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너는 네 힘을 너무 믿고 다닌다니까. 내가 없었으면 어떻게 될 뻔 했니?”
“······ 쓸데없는 참견이다. 셀리.”
짧은 단발에 가는 눈이 인상적인 여학생이 밀드레드의 손목을 잡고 서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렌의 고개가 갸우뚱 거렸다.
“이상하구나.”
한참 투덕대고 있던 둘이 아렌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응? 뭐가 말이야?”
친근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셀리의 모습에 아렌이 반문했다.
“그런 대단한 힘을 사역한다고는 믿기지 않아서 그런다.”
뜬금없는 말에 눈가를 좁히던 셀리가 돌연 웃었다.
“아하하. 내 힘을 말하는 거구나. 너 마법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 모양이네?”
“마법이군.”
아렌의 눈빛이 깊어졌다.
“뭐 이와 이렇게 된 거. 후배님한테 교육한다고 치지”
어깨를 으쓱거리던 셀리가 말을 이었다.
“시공에 관련된 마법은 어려워. 발현하기도 어렵고 멋모르고 건드렸다가는 반드시 사고가 나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려운 것일수록 해보고 싶어지는 게 사람 아니겠어?”
반골의 발상이지만 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모두 같지 않고, 각기 다른 생각들이 어우러질 때 발전이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우리 학파는 다른 마법은 대충 넘어가고 시공간에 대한 주문만 파고들었지. 뭐 지지부진해. 이름만 들어도 어려워 보이는 시공간인데 그 비밀을 밝혀내는 게 쉽겠어?”
눈을 반달로 만들며 웃은 그녀의 몸에서 마나가 일렁거렸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지.”
상황을 주시하던 아렌의 눈에 마나의 움직임이 들어섰다.
순간적으로 빨라지는 그녀의 몸과 아렌의 주변을 감싼 기묘한 문양들이 영향력을 발휘했고, 그제야 아렌은 이 마법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헤이스트와 슬로우가 이런 고차원적인 주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군.”
“어라? 바로 알아챘어? 마법은 문외한인 줄 알았는데 제법이네?”
아렌의 시선이 돌아갔고, 그곳에 서있는 셀리와 밀드레드를 정확히 직시하고 있었다.
눈 하나 깜빡할 만한 시간이었지만 둘의 모습이 공터의 한쪽으로 이동해 있었던 것이다.
정작 여학생은 자신들을 직시하고 있는 아렌의 모습에 흥미로운 눈빛을 띠었다.
“보조주문을 생각하지 마. 신체능력 강화와 마비 주문 정도가 아니니까.”
그녀의 말에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헤이스트와 슬로우는 강화주문과 마비주문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헌데 여학생의 주문은 부분적이지만 확실하게 시간을 건드린 것으로 보였으니, 어지간한 마법사도 파악하기 힘든 고차원의 주문인 것이다.
아렌의 기감을 속이고 밀드레드를 빼낸 것도 이해가 되었다.
부분적이나마 시간을 건드렸고, 아렌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숲 전체를 감지 범위에 두고 있는 아렌도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체셔학파로군.”
도리안의 목소리에 셀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우리 학파를 알아? 과연 피렌사네!”
흙더미에 파묻혀 버둥거리는 엘레나를 깔고 앉은 도리안을 본 아렌이 말했다.
“살살대하라고 하지 않았나?”
“별 수 있나. 일단 제압을 해야지.”
쓴 웃음을 지으며 대꾸한 도리안이 말을 이었다.
“꽤나 괴짜들의 모임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워낙에 마이너한 학파라서 이름도 잘 알려져 있지 않지. 하지만 학파의 주제가 주제인지라 높으신 분들이 관심이 많아.”
시공간은 활용하기에 따라서 써먹을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그런 것을 연구하는 학파이니 생각이 있는 자들의 눈이 닿아 있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일이다.
짝!
손뼉을 치며 주변을 환기한 여학생이 빙글거렸다.
“자. 그럼 너희들로는 나를 상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겠지? 뭐 나도 너희들하고 싸워 이기기는 힘들기는 하지만.”
이윽고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키자 숲을 헤치고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키가 크고 마른 학생인 랜디와 음침한 웃음을 흘리는 주앙이었다.
랜디가 가볍게 손을 흔드니 다섯 개의 인영이 날아오더니만 이내 밀드레드의 앞에 눕혀졌다.
셀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며 밀드레드를 향해 말했다.
“선물이야. 밀드레드.”
“······ 고맙군 그래.”
아렌의 눈이 좁혀졌다.
레티시아를 비롯한 일행이 정신을 잃은 채로 바닥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밀드레드의 손에서 실이 뻗어나갔고, 일행의 정수리로 향하더니만 이내 각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밀드레드가 중얼거렸다.
“급조하기는 하지만 쓸 만하겠어.”
뻣뻣한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서는 일행과 밀드레드, 주앙과 랜디, 거기에 시공간을 다루는 셀리까지.
순식간에 반전된 전력에 밀드레드가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자. 이제 어쩔 거냐. 순순히 항복하면 거칠게는 안 다루겠다고 약속하지.”
“잘난 체하기는.”
전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밀드레드를 보면서 여학생이 핀잔을 주었고, 그 순간 랜디가 입을 열었다.
“너희는 우수하다.”
“응? 그거야 당연한 이야기고.”
도리안의 뻔뻔한 대답에 잠시 얼굴을 굳힌 랜디가 말을 이었다.
“······ 기회를 주지. 모임에 들어와라.”
“랜디!”
밀드레드가 눈을 부릅뜨며 랜디를 노려보았지만 랜디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우리 모임은 아카데미의 중추로 다가설 거다. 이미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고 있지. 거기에 너희 같은 우수한 인재들이 들어온다면 그 시간은 더욱 빨라질 거고. 흔치 않은 기회이니 잘 생각해라.”
말의 내용만큼이나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았고, 아렌을 무섭게 노려보는 주앙과 앞으로 나서서 전위에 선 아렌의 일행들의 모습은 단순한 권유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렌과 도리안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어딜 가나 머저리들은 있는 모양이다.”
짧은 침묵 끝에 나온 아렌의 한마디에 학생들의 표정이 변했다.
“하하하하. 머저리라. 그래 듣고 보니 그렇군.”
아렌의 말에 도리안이 크게 웃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런 자신을 패배시킨 아렌의 힘의 편린을 조금이라도 엿본 도리안은 이들이 머저리라는 것에 적극 동의했다.
밀드레드의 입이 열렸다.
“그럼 말은 필요 없겠지.”
밀드레드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앞으로 나섰고, 뭐라고 말하려던 랜디가 입을 다물었다.
“내 인형 어디 있어?”
응급처치는 했지만 붓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의 주앙이 으르렁거리며 품에서 새로운 인형을 꺼냈고, 주변이 일그러지는 느낌에 시선을 돌리니 여학생이 손을 내밀며 웃고 있었다.
“······ 그래. 일단 제압하고 이야기를 해야겠군.”
“공격해!”
랜디의 무거운 목소리와 함께 밀드레드가 손을 뻗었고, 아렌의 일행들이 달려들었다.
거칠게 달려드는 트리안의 몸에 성광이 어리며 강화마법이 걸렸고, 네이던과 레티시아의 손에서 주문이 짜였으며,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아렌의 뒤쪽에서 코린이 솟아올랐다.
아렌의 주변 시간은 느려졌고, 주앙의 인형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신체를 구속했으며, 한 점에 집중된 가공할 압력이 아렌을 찍어 눌렀다.
인형들의 공격과는 궤를 달리하는 가공할 힘의 집중에 도리안의 안색이 굳어졌고,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잡으려는 순간.
웅!
아렌의 몸을 중심으로 뭐라 말하기 힘든 거대한 힘이 번져 나갔다.
* * *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시공간을 건드린다는 술법에 당황한 것도 잠시, 아렌은 이내 그 허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건드릴 수 있는 시간은 술자 본인의 시간과 한정된 영역에 부하를 주는 정도.
충분히 대단하고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믿기 힘든 능력이었지만, 실체를 안 이상 대응할 방법도 있었다.
잠시나마 아렌의 신체를 구속했던 인형술도, 힘을 집중시켜 압력을 주는 기술도, 결국 형태가 다를 뿐, 그 바탕에 기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같았다.
그리고, 그런 힘 싸움이라면 아렌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 * *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아렌은 단순하게 행동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공격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발을 들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섰을 뿐이니까.
쿵!
“커헉!”
“이게 뭐야!”
“랜디!”
하지만 그 한발자국이 일으킨 현상은 모두를 기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 도리안을 제외한 장내의 모두가 땅바닥에 처박혀버린 것이다.
오직 자신의 시간을 가속한 셀리만이 그 여파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그것도 한 순간뿐이었다.
콰직!
“아악!”
사고를 가속시킨 아렌에게 그녀의 움직임이 들어섰고, 그 순간 셀리의 몸이 꽈배기처럼 꼬여버린 것이다.
“셀리!”
사지가 이리저리 돌아가고 눈이 뒤집힌 처참한 모습에 랜디가 비명을 질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쿵!
“크아악!”
“어억!”
아렌이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었고, 공간을 짓누르는 압력은 배가 되었으니까.
“······ 이것도 마법이 아니군. 도대체 뭐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도리안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고, 아렌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럭저럭 잘 되는군.”
랜디가 힘을 쓰는 모습에 옛 기억 속에 숨겨있던 무공을 꺼낸 것이고, 세상의 모든 마를 굴복시킨다는 지고하기 짝이 없는 무공은 아렌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오연한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진 학생들을 바라보던 아렌의 눈이 빛나더니 이내 손을 휘둘렀다.
“크헉!”
밀드레드의 입에서 비명과 함께 선혈이 튀어나왔고, 그 순간 아렌의 일행이 비명을 질렀다.
“커헉!”
“······ 이제야 벗어났군. 크윽!”
“아파요오!”
의지를 담은 아렌의 일격이 밀드레드의 실을 강제로 끊어버렸고, 그 반동으로 인해서 내상을 입은 것이다.
“좋게좋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나직히 중얼거린 아렌이 엘레나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이번에는 조금 섬세하게 손을 움직였다.
“쿨럭!”
밀드레드의 입에서 또다시 선혈이 흘러넘쳤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엘레나!”
그 와중에도 꿈틀거리던 엘레나의 움직임이 멈췄고, 도리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동안 몸을 다스리면서 잔재를 쓸어내야 할 거다. 차분히 원리를 파악하려고 했지만, 귀찮구나.”
아렌의 시선이 바닥에 대자로 박혀버린 랜디에게로 향했다.
“이 나를 수하로 들이려고 했느냐.”
랜디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가중되는 압력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주제를 알아라.”
콰직!
“아아악!”
랜디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전신의 뼈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고통은 제 아무리 인내심이 좋아도 무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랜디는 지금껏 그가 상대해왔던 적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되었다.
‘주. 죽는 건가.’
생에 처음으로 느낀 죽음의 공포에 랜디의 표정에 암담함이 찾아든 그 때.
우우우웅!
거대한 힘이 아렌을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이내 실체를 가진 주문이 거대한 링의 형상으로 아렌을 향해 좁혀져 들었다.
“속박 마법!”
생전 처음 보는 규모의 대인 속박 마법에 도리안이 비명을 질렀지만, 아렌은 태연하게 말했다.
“쥐새끼가 나왔구나.”
콰창!
공간을 누르던 힘이 아렌을 중심으로 빠르게 모여드는가 싶더니 이내 두텁기 짝이 없는 마법의 링을 박살내 버렸다.
“쥐새끼라니 너무 하는군.”
분노가 서린 목소리가 들렸지만, 아렌은 코웃음 쳤다.
“숨어 있다가 기회를 보고 나타나는 것을 쥐새끼라고 하지 그럼 무어라고 할까?”
비웃음까지 섞인 아렌의 말에 장내에 난입한 두 교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