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61
061화
“아무리 고위귀족이라고는 하지만 말이 험하군. 그대는 교수에 대한 예의도 없는가.”
위엄이 서린 음성이었지만 아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행동이 사람의 품성을 말해주는 법이다. 도리안이 불리할 때는 지켜만 보다가 상황이 변하니 나타난 것을 보면 평소의 행실이야 뻔하지.”
아렌의 말에 두 교수의 안색이 변했다.
숲 전체를 아우르는 아렌의 기감은 두 교수가 진작부터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지적당하니 잠시 당황한 것이다.
“너희는 내 존중을 받을 자격이 없다.”
단언하듯 말하는 아렌의 모습에 두 교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치에 맞는 힘이 실린 목소리였지만, 그 말을 한 아렌의 외모는 소년 그 자체이니, 어린아이가 어른을 훈계한 모습이 된 것이다.
“······ 독설가군.”
하지만 그렇다고 아렌을 힘으로 제압하자니 자신이 없었다.
아렌의 강함에 대해서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교수들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아렌의 손에 교수 하나가 초주검이 되지 않았던가.
그러니만큼 속박마법으로 아렌을 잠시 구속시킨 다음에 상황을 정리하려는 속셈이었는데, 구속은커녕 한 호흡도 버티지 못해버렸으니 교수들로서는 난감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현장은 언제나 변수가 넘치는 곳이고, 맡은 바 일이 있다면 어떻게든 수행해야 하는 것이 사회인의 법도다.
마음을 굳힌 에반스 교수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전투를 멈추게나. 아카데미 교수의 권한으로 권유하겠네.”
아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힉!”
어느새 아렌의 뒤로 물러나 숨은 콜레트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아렌을 지켜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쿠키를 바치며 아렌을 관찰한 콜레트는 아렌의 심기가 불편함을 알아차린 것이다.
“못하겠다면?”
아렌의 말에 에반스의 뒤에 서있던 유진 교수가 고함을 질렀다.
“보자보자 하니 건방지기가 이를 데 없구나! 너 같은 놈은 버르 ······.”
쩌저정!
유진의 말과 함께 아렌의 손이 움직였고, 그 순간 공성추 같은 일격이 유진의 전면에 작렬했다.
“유진!”
에반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고, 뒤로 밀려난 유진이 양팔로 상체를 가린 채 으르렁거렸다.
“네 놈 ······ !”
“한 수는 있구나.”
완전히 아래로 내려다보는 아렌의 태도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유진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아렌의 가벼운 손놀림에 유진이 항시 전개해 놓고 있는 다섯 겹의 방호마법 중 네 개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만약 아렌이 제대로 된 일격을 날렸다면 절대로 무사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모멸감마저 잠재워 버렸다.
유진이 무사함을 안 에반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표정을 굳혔다.
일반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제어가 안 되는 괴물의 행사를 방해하고,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상황을 상기하니 골치가 아팠다.
“이건 이상하군요.”
엘레나를 흙더미에서 꺼내 필요한 조치를 취한 도리안이 입을 열었다.
“뭐가 이상한건가? 도리안 공자.”
에반스의 대답에 도리안이 반문했다.
“별사냥 기간 동안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분쟁에 끼어드는 경우는 없다고 들었는데요.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 으음.”
도리안의 말에 에반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미래를 결정할지도 모르는 별 쟁탈전에 교수라는 외부의 힘이 끼어든다면 그 순간 공정성은 사라지고, 명분이 주어진다.
아카데미에 모인 학생들은 제 각각의 배경을 가진 자들이 태반이다.
그런 그들에게 본신의 능력 외적인 힘을 쓸 수 있는 명분이 주어지는 것이니 교수들은 별사냥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총장인 부르바스에 의해서 별사냥이 공표된 지금, 이 자리에 끼어드는 것은 제 아무리 교수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뒷일을 생각한다면 여기서는 조금 얼굴이 팔리더라도 물러나는 것이 맞겠지만, 에반스와 유진은 물러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렇기야 하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라네.”
에반스의 침중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크흠!”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이 존경과는 거리가 멀어서 에반스의 심경이 불편해졌지만, 이왕 내친걸음이니 에반스는 뻔뻔해지기로 결정했다.
“이 숲은 아카데미의 모임과 교수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연구 프로젝트 장소네. 따라서 조금 예외적인 규정을 적용할 수 도 있겠지.”
에반스의 말에 레티시아가 눈을 빛냈다.
“역시 이 숲의 결계는 교수님들의 솜씨군요.”
에반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레티시아의 말을 받았다.
“그렇지. 뛰어난 학생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결계를 형성하는 것은 무리야. 즉 이 결계 자체가 우리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증거지.”
사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지만, 에반스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알아들었으면 이제 숲 밖으로 나가라.”
구겨진 얼굴로 아렌을 쏘아보던 유진이 신경질적으로 말했지만, 그 순간 도리안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프로젝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피렌사의 혈족이 잡혀있었다.”
정신을 잃은 채로 누워있는 엘레나를 일변한 도리안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아카데미가 불간섭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피렌사의 혈족을 마음대로 연구 소재로 쓸 정도인가!”
“······ 이런.”
“······ 피렌사의 공작가라고? 그런 말은 듣지 못했어!”
에반스와 유진이 당황한 얼굴을 했지만, 도리안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 밀드레드 이 미친 놈.”
유진이 피범벅이 된 채 기절해 있는 밀드레드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밀드레드가 속해있는 모임을 중심으로 몇몇의 교수와 후원자들이 함께 한 프로젝트는 초인 전력의 증강과 양산에 관한 연구다.
밀드레드의 마리오네트를 이론화 시켜서 적용할 수 있다면 막대한 군사적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는 판단 하에 과도한 지원과 묵인이 이루어졌고, 그것은 밀드레드가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신감이 되었던 것이다.
에반스와 유진도 그들 중의 하나다.
후원도 빵빵하고 성공만한다면 학계에 이름이 기록될 것이 분명한 연구였기에 에반스와 유진은 다소의 월권을 부리고 있었고, 그것은 아카데미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고 있는 것이었다.
당황스런 표정이 떠오른 에반스와는 다르게 뭔가를 생각한 유진이 이내 표독한 눈빛을 떠올렸다.
그와 함께 그의 양손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주문을 짜 맞추려는 그 때.
콰직!
“크악!”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양손을 내려트린 유진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수작 부리지 마라.”
아렌의 냉엄한 눈초리와 인정사정없는 손속에 에반스가 당황했고, 도리안의 기세는 멈출 줄을 몰랐으며, 레티시아가 냉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에 정식으로 제소하겠어요. 제 아무리 같은 모임에 있다고 하더라도 저 능력은 문제가 많아 보이는군요. 당해 본 제가 하는 말이니 틀림은 없겠지요.”
정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레티시아도 마리오네트에 몸이 제어당하는 경험을 한 상황.
자신의 몸이 제어에서 벗어난 그 끔찍한 체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릴 정도였으니, 그녀도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일행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 에반스의 얼굴에 이제는 체념이 떠오르던 그때였다.
쿠쿠쿠쿵.
땅이 흔들리는가 싶더니만 숲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진!”
에반스의 비명이 터졌고, 모두의 시선이 유진 교수에게로 몰렸다.
“······ 저건 뭐지?”
양 팔을 늘어트린 유진 교수의 이마에 마법의 문양이 떠올라 있었고,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쉴 새 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유진의 모습에 에반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만 두게 유진! 가디언의 권한을 발동시키다니 제정신인가!”
“충분히 제정신이네. 잊었나? 어떻게든 이 자리는 수습해야 해! 계획이 어긋나서는 안 돼! 그분들께서도 이해해 주실걸세!”
단호한 기색이 실린 유진의 목소리에 에반스는 말을 잊었고, 그 순간 지면으로부터 무수한 손들이 솟구쳐 올랐다.
* * *
“우왁!”
“꺄아악!”
“누님!”
“엘레나!”
사람의 몸통만한 손이 죽순처럼 솟아올라 일행에게로 덮쳐드는 광경은 비현실적으로 보였지만, 일행의 대응은 빨랐다.
콰콰쾅!
아렌의 주변으로 덮쳐오던 손들이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났으며, 무기와 마법이 허공을 가르며 손들을 분쇄해나갔지만,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런 제길!”
엘레나의 곁에선 도리안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손들을 가로막았지만, 이내 일행의 얼굴에는 아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재생한다!”
트리안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분쇄되었던 손들이 허공에서 다시 뭉치기 시작하는 모습은 일행의 넋을 잃게 하기에 충분했고, 어느새 늘어난 손들은 햇볕을 가려버릴 정도가 되었다.
“학생들을 챙기게!”
“유진!”
유진과 에반스의 외침이 흙손으로 격리된 바깥에서 들려왔고, 드물게 침중한 표정을 지은 아렌이 주먹을 쥐더니 허공을 가격했다.
콰쾅!
“크아악!”
“유진!”
뭔가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 교수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절망적인 와중에서도 일행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지만, 상황은 호전된 것이 아니었다.
첩첩히 쌓이기 시작한 흙손들은 그들을 압사시키기겠다는 듯이 눌려오고 있었고, 늘어가는 손들과 부셔도 재생하는 모습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급기야는 손들끼리 엮여서 만들어진 벽이 사방에서 조여오니 기교도 마력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 일행은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라면 생매장 당해버릴 상황.
“모여라.”
부지런히 손들을 분쇄하던 일행에게 아렌의 목소리가 박혔고, 허겁지겁 아렌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방법이 있나?”
엘레나를 품에 안은 도리안이 아렌의 곁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 아렌에게로 시선이 모였고, 감정 없는 얼굴을 한 아렌의 눈에 붉은 빛이 떠올랐다.
부셔도부셔도 재생하고, 주변의 대지 자체가 그들을 삼켜버리겠다는 듯이 몰려드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아렌의 표정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뚫겠다.”
굳건한 아렌의 목소리와 함께 상상도 못할 힘이 유동하는 것을 느낀 일행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비늘을 닮은 붉은 패널이 아렌의 전신에 떠오르며 확장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이미 지척에 다다른 흙더미들을 막아 세웠다.
“후우.”
가벼운 숨소리와 함께 아렌의 손이 나선을 그리며 정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콰지지지지직!
그 순간 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짐승의 손이 흙벽을 향해 뻗어나갔고, 거짓말처럼 흙벽이 지워지며 거대한 통로가 생성되었다.
믿을 수 없는 힘에 모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진 순간, 아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둘러라.”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일행이 시선을 돌리니 쉴 새 없이 재생되던 흙벽이 통로내부에서 만큼은 재생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 짧은 사이에 얼마나 쌓였는지, 10미터는 넘어 보이는 통로 저편을 보면서 일행은 신속히 몸을 날렸다.
모두가 통로를 빠져나가고 마지막으로 남은 아렌이 그가 서있던 바닥을 잠깐 노려보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쿠르릉!
아렌이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그마한 언덕 크기로 불어난 흙더미가 출렁거리더니 이내 바닥으로 압축되어갔다.
이윽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거짓말처럼 평평해진 바닥을 보면서 일행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이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나직하게 중얼거린 레티시아의 말에 도리안이 쓰게 답했고, 일행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교수들을 비롯한 밀드레드 일행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마저도 철저하게 지워져 있었다.
“······ 여기 아카데미가 맞기는 한 거냐?”
트리언의 중얼거림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