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66
066화
태고의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추위를 막아줄 털도, 강인한 이빨도, 적을 분쇄할 수 있는 발톱도 없었다.
때문에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무기를 보충하기 위해서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짐승의 움직임을 흉내 내며 힘을 가지기 시작했다.
짐승의 움직임을 흉내 내며 시작된 무술은 점차 체계를 갖추고 발전해나가 지금의 형태가 되었으나, 아직도 야성의 그것에 비해서는 자연스러움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움직임에서 어색함을 없애나가고 궁극적으로 모든 움직임이 자연스러워 질 때, 비로소 경지에 올라 자연과 대등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위대한 스승이라 칭송받는 소드마스터의 입에서 나온 가르침은 기사를 꿈꾸는 자라면 한 번씩은 되새기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트리언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 어느 지역보다 야생과 싸워야하는 북부의 특성상, 더욱 와 닿는 가르침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트리언은 그 가르침의 실체를 눈으로 보는 기분이 들었다.
* * *
콰직!
“크헉!”
어린 아이가 장난처럼 휘두른 손짓처럼 보였지만, 베럭은 피하지 못했다.
써억!
“큭!”
느릿하기 그지없어서 하품이 나올 정도의 손짓이었지만, 역시 베럭은 피하지 못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아렌이 휘두르는 손에 베럭이 몸을 가져다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광전사라 불리며 마룡 토벌에 뽑힐 정도의 초인이었던 베럭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기이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이 세계는 조금 다를 줄 알았다만.”
쩍!
아렌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베럭의 몸에서 살점이 뭉텅이로 깎여나갔다.
“인간은 오만하기 그지없지.”
피투성이가 되어서 뒷걸음치는 베럭의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귓가로 아렌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콰직!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능력을 손에 넣었다고 상대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우를 범한단 말이야.”
“크흐흑!”
베럭의 입에서 웃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범상치 않은 힘을 손에 넣으니 세상사람 모두가 벌레처럼 보였겠지. 뭐 그런 걸 탓하려는 건 아니다.”
싸악!
베럭의 가슴팍에 금이 가며 또 하나의 상처가 벌어졌다.
“하지만 위에는 위가 있는 법이고, 알량한 힘에 취해 세상을 제 잣대로 보는 건 굉장히 경솔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아렌의 중얼거림을 들은 베럭의 얼굴이 시뻘게졌고, 베네프트는 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잣거리에 지나가는 꼬마 아이에게도 배울 게 있는 법이니, 힘을 가진 자는 더욱 더 제 분수를 알아야 한다.”
현기가 서려있는 말이었지만, 아렌의 외모와 어린 목소리가 주는 불협화음이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쩍!
“커헉!”
팔꿈치가 뭉텅이로 잘려나간 베럭이 비명을 지르며 팔을 감싸 쥐었다.
“말이 많았군.”
움직임을 멈춘 아렌의 시선을 따라 모두의 눈이 베럭에게로 향했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온 몸을 난도질한 상처에서는 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며 상처를 더욱 벌리고 있었고, 팔꿈치를 뭉텅이로 도려내어서 겨우 살만 붙어있는 팔은 언제 떨어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게 보였다.
바닥에 흥건하게 흘린 피의 양은 도저히 한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피의 양만을 생각한다면 과다출혈로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재생을 방해하는 아렌의 기운 때문에 엉망이 된 베럭이었지만,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치명적인 상처에 집중한 검붉은 기운덕분이었다.
고체처럼 뭉친 기운이 집중된 곳에서는 아렌의 기운을 몰아내고 재생을 하고 있었기에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그 외의 상처는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으니 베럭은 실로 오랜만에 죽음이라는 것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철벅.
작은 체구가 아렌이 한 발을 내딛으니 피가 엉겨버린 흙에 닿아 질척한 소리가 울렸고, 베럭은 자신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섰다.
“뭐. 더 이상은 말을 듣게 되지 못 할 테니 선심을 베푼 것으로 하자꾸나.”
아렌의 눈빛이 깊어지며 붉은 광채가 떠올랐다.
마치 영혼의 밑바닥까지 꿰뚫어 보는 눈빛에 베럭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 봉인만 아니었어도!”
씹듯이 말하는 베럭이 양팔과 다리에서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는 봉인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리석은 자로다.”
아렌이 나직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결국 최선의 상태가 아님에도 전장에 나선 것은 너의 선택이 아니더냐. 원망의 대상이 틀렸다.”
냉정하기 짝이 없는 말소리에 베럭이 입을 닫았다.
결국 아렌이 중얼거린 것은 모두가 옳은 이야기인 것이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은 베럭 자신이니 죽어도 할 말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혼백에 이상한 게 섞여있구나.”
그렇게 침묵한 베럭을 바라보던 아렌의 입이 열리자, 부르바스와 베네프트, 주교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마룡봉인체.
최고의 석학들이 모여 있다던 아카데미에서 십 수 년을 연구해 파악한 조각의 실체를 아렌은 유심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알아낸 것이니, 그들이 경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 크흐흣.”
베럭의 웃음소리에 아렌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웃긴 것이지?”
베럭의 얼굴에 광기서린 표정이 떠올랐다.
“크흐흐흐. 내 처지를 떠올린 것뿐이다.”
온 몸에서 피를 흘리며 아렌을 노려보는 눈빛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크흐!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오늘은 졌지만, 결국 나는 살아남을 것이니 최후의 승리자는 내가 될 것이다! 크하하하하!”
대수림의 전사에게 가장 중요한 미덕은 생존이고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자만이 영광을 거머쥔다.
마룡의 조각을 봉인한 그 순간부터 베럭은 절대적인 승리자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빌어먹을 종자가 ······!”
부르바스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왔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타박하는 자가 없었다.
무수한 인명을 살상하고 아카데미의 파괴를 주도한 자를 죽이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서 정신승리를 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 든 것이다.
하지만 아렌은 그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크하하하하 ······ 하?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예지에 가까울 정도로 단련된 직감이 베럭에게 위험을 경고했다.
“왜 네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물었다.”
“······ 뭐?”
당연한 사실을 부정하는 아렌의 모습에 일순 베럭은 말을 잊었고,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아렌의 입으로 모여들었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너를 죽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아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의 뇌리에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삭초제근.
아렌은 손을 쓰면서 후환을 남겨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베럭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 * *
“그게 가능한 일인가?!”
부르바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마룡봉인체들을 가둔 지 수십 년이 지났고, 아직까지 부르바스를 위시한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그들을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봉인만 하고 있었던 실정이었으니 아렌의 한 마디는 서광과도 같았던 것이다.
“농을 즐기지는 않는다.”
심드렁한 태도로 대꾸하는 아렌의 모습에 베네프트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함부로 건드리는 건 안 돼! 자칫하면 봉인이 세상으로 풀려나게 된다!”
12개로 나눠진 마룡의 조각은 그 하나하나가 막대한 이계의 힘을 담고 있으니 봉인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면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 모른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군.”
무책임한 아렌의 대답에 베네프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재앙이 벌어질 수도 있다.”
기묘한 힘이 실린 루드비히의 목소리가 아렌을 자극했지만, 아렌은 여전히 태연한 기색으로 답했다.
“걱정을 하다보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다. 재앙의 근원을 해결하면 될 일이다.”
루드비히의 눈이 크게 떠졌다.
“······ 봉인을 처리할 수 있다는 건가?”
“글쎄.”
단호한 아렌의 표정과 말투에 베럭이 몸을 돌리며 달아나려 했지만, 아렌의 대응이 조금 더 빨랐다.
쿵!
“크헉!”
가볍게 내디딘 아렌의 한 발자국에 막대한 압력이 베럭에게 집중되었고, 조금씩 잦아들던 상처들이 터지며 폭포수처럼 출혈이 시작되었다.
그 커다란 덩치를 바닥에 바싹 붙인 베럭을 바라보던 아렌이 손가락을 들어 베럭을 가리켰다.
아이가 신기한 것을 가리키는 것 같은 여상한 동작이었지만, 그 순간 이곳에 있는 모두는 공간이 정지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허업!”
“······ 이게 뭐지?”
정지한 공간속에서 오로지 아렌만이 살아있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섬뜩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커. 커헉!”
온 몸을 오들오들 떠는 베럭의 칠공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사타구니가 풀려버린 베럭의 하체가 오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무저갱 같은 눈빛의 아렌이 베럭을 향해 말했다.
“죽어라.”
담담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공간을 넘어 베럭에게 닿았고, 그 순간 베럭의 전신이 잘게 찢어지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 !”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담고 있을 것 같은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모두의 눈이 크게 떠지는가 싶더니 이내 일부는 시선을 돌려 외면해 버렸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힘이 다했는지, 재생을 막아주던 아렌의 붉은 기운은 사그라졌지만, 베럭의 몸은 끊임없이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고 있었다.
재생한 신체가 다시 찢어진다.
재생한 신체가 다시 뒤틀린다.
재생한 신체가 다시 무너진다.
재생한 신체가 다시 바스러졌다.
절대 멈출 것 같지 않을 파괴와 재생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은 베럭의 죽음을 직감했다.
베럭 자신이 자신의 죽음을 바라는 것 같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모두에게 박혔고, 그렇다면 제 아무리 불사신이라도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두려움 가득한 시선이 아렌에게 박혀들었지만, 그 격렬한 감정을 온 몸에 받으면서도 아렌은 표정조차 변하지 않았다.
그저 냉엄한 눈빛으로 베럭의 ‘죽음’을 직시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사람들을 더욱 질리게 만들었다.
“······ 아아아.”
베럭이 이제는 인간의 형태마저 잃어가며 무너지려는 그 때.
스르륵.
마치 공간을 덧씌우는 것 같은 아지랑이가 베럭을 감쌌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베럭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뭣!”
“공간 이동!”
“아무런 전조도 없었는데?”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모두가 당황하며 비명을 질렀고, 눈가를 꿈틀거린 아렌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힉!”
아렌의 전신에서 일어난 살기에 콜레트가 딸꾹질을 시작했고, 보기 드물게 감정을 표출하는 아렌의 모습에 일행이 놀랐다.
“감히!”
무시무시한 외침과 함께 아렌의 손이 허공을 갈랐고, 잠시 후 아렌의 표정이 평상시대로 돌아왔다.
“······ 놓쳤군.”
한 마디 중얼거림과 함께 느릿하게 걸음을 옮긴 아렌이 부르바스의 앞에 섰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부르바스가 흠칫 놀라며 뒤로 한발자국 물러섰다.
“묻겠다.”
그런 부르바스의 모습을 개의치 않는 다는 듯이 나직한 아렌의 목소리가 부르바스의 혼탁한 정신을 바로잡았고, 그제야 부르바스는 자세를 바로 할 수 있었다.
“말해 보게.”
긴장한 목소리로 답하는 부르바스에게 아렌이 입을 열었다.
“누구냐?”
아렌의 감각을 속이고 눈앞에서 사람을 빼내가는 능력이 있는 자.
마나의 움직임 없이 타인을 공간이동 시킬 수 있는 자.
아렌의 물음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부르바스의 두뇌가 회전을 시작했고, 답을 도출해냈다.
“마크. 마크 드 콩쿠르. 이곳에 갇혀있던 자 중에 저 정도의 마법 사용자는 그 밖에 없네.”
“마크 드 콩쿠르.”
이름을 되새김질한 아렌이 몸을 돌렸다.
이어서 느릿한 걸음으로 일행에게로 향하는 아렌의 등 뒤로 부르바스가 물었다.
“어떻게 하려는가.”
“내 일을 방해한 대가를 치러야겠지.”
아렌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