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72
072화
“수고했네.”
초췌한 안색의 부르바스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추레하고 피곤에 쩌든 모습의 교수들과 기간요원들이 쓰게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중간 점검을 하도록 하지.”
부르바스의 말에 한쪽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무너진 건물들은 대부분 복구했습니다. 다만 내부까지는 완전하게 손쓰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금 더 노력해주게. 다음.”
부르바스의 짧은 대답에 한숨을 쉰 교수의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외부의 비난이 도를 넘었습니다. 대응하고 싶지만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 으음.”
부르바스의 신음을 내며 얼굴을 굳혔고, 다른 이들의 안색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평소의 아카데미라면 어지간한 비난쯤은 무시하고 지나가겠지만, 그러기에는 이번 일의 여파가 너무 컸다.
“······ 일단 유감을 표하게. 나머지는 차후 지침을 내리지.”
고개를 끄덕이는 교수를 보면서 부르바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부르바스는 상당히 억울한 입장이기도 했다.
최근에 벌어진 사건들이야 그의 책임 하에 일어난 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시설’에 관해서는 온전히 그의 실수라고 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런데 시설에 관해서 따지자면 결국 황제까지 올라가야하니 결국 부르바스가 총대를 메고 만 것인데, 부르바스는 말년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막막했다.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는 교수들을 보면서 한숨을 쉰 부르바스가 시선을 돌렸다.
화려한 금실이 들어간 하얀 사제복을 입은 주교가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고, 부르바스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심문관들이 조사를 끝내고 추적을 준비하고 있소. 조만간 총장을 보러 올 거요.”
회의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만신전의 이단심문관.
성스러운 물고문과 축복받은 인두질로 대변되는 만신전 최악의 무력 집단의 이름이다.
신에 대한 광기로 무장되어 있는 그들은 일단 신적으로 규정이 된다면 풀뿌리 하나도 남겨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극렬주의자들.
만신전도 사람이 사는 곳인지라 황제의 권력을 인정하고 숙이는 모양새를 보이고는 있지만, 이단심문관들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평소에는 온화하기 그지없지만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그 누구보다도 과격해지는 집단의 이름에 모두가 얼굴을 굳혔다.
“공안도 충원되었고, 아카데미의 복구도 복구이지만 이쯤에서 손을 써야 합니다.”
침울한 분위기속 회의장에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고,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써늘한 눈빛으로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마일리 부총장.”
부르바스의 목소리에 가볍게 고개를 숙인 아카데미의 2인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현재 아카데미의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낭랑한 목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물론 아카데미의 과실도 크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지난 세월동안 아카데미가 제국에 기여한 바를 생각한다면 이런 취급을 받을 이유는 없지요.”
부르바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부르바스가 학생들의 안전과 학업을 중요시한다면 마일리 부총장은 아카데미 자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교육기관으로서의 아카데미보다는 지식의 전당으로서의 아카데미를 더 가치 있게 보는 입장이었고, 때문에 평소에는 지식의 수호에만 집중하여 아카데미의 일에 거의 참견하지 않는 사람이다.
‘총학생회처럼 말이지.’
총학생회를 생각하자 뒷목이 당기는 것 같은 부르바스의 귀에 마일리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저는 이쯤에서 적극적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카데미의 가치가 땅에 떨어져서는 안돼요.”
평소의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조용한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일리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그렇기 때문에 제안합니다.”
딱!
마일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서류들이 날아오르더니 회의실에 모인 각자의 앞에 내려앉았다.
감탄이 나올만할 정도의 염동마법이었지만, 그것보다는 눈앞의 서류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 제 정신인가?”
잠시 서류를 살피던 부르바스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싸늘한 기운이 부르바스를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했고, 모두의 안색이 변했지만, 마일리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연말에 있을 졸업시험을 당기자는 말인가! 거기에다가 자격도 되지 않는 신입생까지 포함시켜? 학생들을 희생양으로 삼자는 이야기 아닌가!”
점점 커지다 못해 이제는 고함을 지르는 부르바스의 모습에 모두의 안색이 해쓱하게 변했지만, 마일리는 서늘한 눈으로 답했다.
“학생들을 아끼시는 총장님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당연히 교육자로서 존경받아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일리의 낭랑한 목소리에 신념이 담기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의 위기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의미를 잃습니다! 제국에 아카데미가 기여한 바를 생각한다면 아카데미의 건제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서늘한 눈빛에 광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해야 하겠지요.”
사람의 감정은 임계점을 넘으면 다시 가라앉기 마련이다.
방금 전까지 얼굴을 붉히며 분노하던 부르바스의 표정이 차분히 내려앉은 모습에 모두가 몸을 흠칫 떨었다.
부르바스의 서늘한 시선이 회의실을 훑었지만 눈을 마주치는 사람은 극소수.
그렇게 돌아간 시선이 마일리에게 향했고, 부르바스는 그제야 일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 이미 이야기가 된 사안이군.”
“다행스럽게도 아카데미를 걱정하는 귀족들과 졸업생들이 전폭적인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이 일만 잘 치러내면 아카데미는 다시 반석위로 올라갈 겁니다.”
확신하는 어투의 마일리를 보면서 부르바스는 이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카데미 내부의 파벌은 학생들만 이루는 것이 아니다.
교수들과 감찰단, 기간요원, 심지어는 경비들까지도 각자의 생각에 따른 파벌에 속해있었고, 마일리는 그중에서도 아카데미의 본질적인 역할을 고민하는 파벌의 대표주자.
비교적 온건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파벌이기에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런 과격한 수단을 들고 나오니 부르바스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막을 수 없다.’
평상시라면 부르바스의 권한으로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부르바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 학생들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걸세.”
“걱정 마십시오.”
억눌린 목소리로 으르렁대는 것이 부르바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 *
마일리의 일처리는 빨랐다.
부르바스의 굴복을 받아낸 그 즉시, 별 쟁탈전, 통칭 별전쟁에 대한 일정을 발표하고 그 소식을 제국 전역에 널리 퍼트린 것이다.
작정하고 학생들의 실력을 겨루게 하겠다는 선언에 제국 전역이 달아올랐다.
제 아무리 문화가 발전하고 즐길 거리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제국은 전쟁으로 일어난 나라다.
아직까지도 제국 제일의 오락거리는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검투대회이고, 이름 있는 검투사는 영웅으로도 받들어진다.
그런데 비천한 검투사가 아니라 귀족가의 인재들이 모여서 서로에게 칼을 겨눈다고 하니 그 화재성은 순식간에 제국 전역을 강타했고, 아카데미의 불행한 사고에 대한 비판은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다.
당사자인 아카데미 학생들도 달아올랐고, 참가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더욱 더 과격하게 별사냥이 벌어졌으니, 아카데미 학생들은 참사를 잊고서 별을 획득하기 위해 눈에 불을 밝혔다.
* * *
콰지직!
“으아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울렸지만, 시선을 돌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거꾸로 허실을 탐색하겠다는 듯이 눈을 번뜩이는 모습은 닳고 닳은 용병이나 군인들을 보는 것 같았다.
“으으으으 ······.”
사지가 꺾여버린 채로 신음을 뱉으며 바닥에 구겨져 있는 학생을 향해 느릿한 발걸음이 다가섰다.
타박타박.
한없이 가벼운 발걸음에 왜소한 체구는 빈틈투성이로 보였지만,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학생들은 감히 허튼 행동을 하지 않았다.
“주제를 모르는구나.”
나른하기까지 한 음성이 어린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습이 너무도 부자연스럽지만,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으으으!”
땅바닥에 몸을 구기던 학생의 몸에서 빛무리가 번뜩이는가 싶었지만, 이내 무거운 압력이 학생을 내리눌렀다.
우지직.
“크어억!”
뼈가 짓눌리는 소리에 비명소리가 더욱 커졌고,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아렌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어리석기도 하고.”
나직한 말과 함께 아렌이 주변을 둘러보자 대다수의 학생들이 눈을 피했지만, 간간이 도전적인 눈빛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투지와 탐욕에 불타오르는 그 눈빛을 본 아렌이 혀를 찼다.
“이놈의 아카데미는 갈수록 정나미가 떨어지는군.”
아렌은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눈을 뜬 이후로 아렌은 최대한 이 세상의 법칙 안에서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인과는 오묘한 것이라 자신이 이 세상에서 눈을 뜬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손을 쓰지 않고 덤벼오는 적들만 상대한 것이다.
헌데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비슷했고,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날파리처럼 날아드는 모습에 아렌의 인내심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별전쟁이 선포된 이후, 아카데미 내부에는 은밀히 소문이 돌았다.
별을 소유한 학생들의 명단이 알음알음 학생들 사이로 퍼졌고, 동시에 명단에 올라간 학생들은 쉴 새 없는 습격의 표적이 되어버렸다.
아렌과 일행들은 각기 적지 않은 수의 별을 소지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습격의 대상이 되었고, 트리언이 중상에 준하는 상처를 입은 뒤에는 아예 아카데미의 빈 건물 하나를 차지하고 숙식을 같이 할 정도가 되었다.
레티시아와 네이던, 거기에 도리안까지 가세해서 건물 하나를 마법사의 요새로 탈바꿈시켰고, 농성에 들어갔지만, 습격하는 학생들도 만만치 않아서 아렌의 일행들은 매일매일 살 떨리는 실전을 경험하고 있었다.
악전고투를 반복하고 있으니 가파르게 상승하는 실력에 위안을 받고 있었지만, 점점 피로가 쌓이고 있으니 저러다 사단이 나겠다 싶을 정도.
아렌 역시 습격의 대상이 되었다.
아렌의 악명이 아카데미에 자자하다지만, 실력에 자신을 가지는 학생들은 얼마든지 있었고, 베럭을 물리친 것에 대해서는 필사적으로 소문을 틀어막고 있어서인지 아렌에 대한 습격 역시 끊이지 않았다.
쐐액!
땅바닥에서 꿈틀거리는 학생을 일변하고 돌아서는 아렌의 그림자에서 섬뜩하기 그지없는 칼날이 튀어나와 아렌의 뒷목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단숨에 경추를 끊어서 몸의 자유를 뺏어버리는 악독한 수법에 주변에 있던 학생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지만, 아렌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우지지직!
“크어억!”
전신을 검은 갑옷으로 감싼 습격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섬뜩한 예기를 날리던 검은 거짓말처럼 방향을 바꾸더니만 습격자의 팔을 감싸고 올라갔다.
마치 뱀이 나무를 감싸고 올라가는 형태로 검이 제멋대로 휘어지며 팔을 감싸버렸으니, 뒤틀리고 꼬여버린 팔이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으어어어 ······.”
상상도 못할 고통에 거품을 문 습격자의 모습을 보지도 않고 걸어가는 아렌의 모습에 대부분의 학생이 고개를 돌렸지만, 몇몇은 눈을 빛냈다.
“쯧.”
그런 기척을 느낀 아렌이 혀를 차며 계속 걸었고, 그런 아렌의 앞을 막아서는 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