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79
079화
“꺄악!”
“저런. 뭐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과격하군.”
“그래도 마법사다운 냉정한 모습은 돋보이는군요.”
제 아무리 가상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시체를 갈라 내장을 꺼내는 모습을 본 관객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이내 귀족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제국은 전쟁으로 일궈진 나라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의 전쟁경험이 있었고, 그러한 귀족들이니만큼, 적어도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없었던 것이다.
외려 예전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며 담소를 나누는 귀족들의 모습에 부르바스가 혀를 찼다.
“쯧. 어째 저런 학생들은 매년 나오는군.”
힘을 숭상하는 기질이 강하고 여차하면 피를 볼 준비가 되어있는 귀족 출신들이 많은 아카데미이다보니 저런 잔혹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현상을 확인하는 자세는 제법 괜찮습니다.”
마법사인 학생을 두둔하는 마일리의 말에 부르바스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총장님.”
주변을 가만히 살피다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마일리의 모습에 부르바스가 고개를 돌렸다.
“······ 총장님은 아시는 겁니까? 블랙박스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개발자가 누구인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표정으로 묻는 마일리의 모습에 부르바스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시는거군요.”
그런 부르바스의 표정을 살피던 마일리가 단정하듯이 말했고, 잠시 말이 없던 부르바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짐작은 하고 있네.”
“······ 누굽니까?”
억눌린 것 같은 마일리의 목소리에 부르바스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식의 전당으로서의 아카데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마일리다.
그만큼 지식에 대한 욕구가 강했고, 그런 마일리에게 안타이오스의 블랙박스는 굴욕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안타이오스 내부에서 테스트를 하고 있지만 혁신적인 원리를 가지고 있는 큐빅까지.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있는 마일리는 그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 정확한 개발자는 정말 모르네. 하지만 저게 어디서 온 건지는 알고 있지.”
광기마저 서려있는 표정을 보면서 부르바스가 말을 이었다.
“······ 제도 마탑에서 보내왔었네. 겉에는 황제의 직인이 찍혀있었지.”
“······ 설마!”
경악하는 마일리를 보면서 부르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마도 황제가 만든 것이겠지.”
마일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황제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그 카리스마와 지도력은 둘째치고라도, 황제는 마스터에 이른 뛰어난 기사고, 대마법사에 다다른 위대한 마법사였으며, 정령에게 사랑받는 정령사이기도 했다.
마치 신이 정성스레 빚어 만든 것 같은 인간.
그것이 황제였고, 조용히 칩거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귀족들이 끊임없이 황제를 견제하는 이유였다.
마법사들이 황제를 보는 시선은 냉정했다.
– 이 세상을 자신의 놀이터로 여기는 인물.
그것이 황제를 바라보는 마법사들의 시선이었고,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황제를 좋게 보지 않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부터 바뀌어버렸다.
전쟁터를 전전했던 황제이기에 연구와는 담을 쌓은 공격마법만을 사용한다고 비아냥대던 시절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파격적인 이론을 발표하면서 제국의 마법계를 이끌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굴욕을 느끼는 마법사도 있었고, 자괴감을 느끼는 마법사도 있었으며, 황제를 추종하는 마법사도 생겨났다.
그런 황제를 추종하는 마법사들이 모여서 만든 마탑이 바로 제도 마탑이고, 자신을 정통파 마법사라고 생각하는 마일리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 철저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얼굴을 일그러트린 마일리의 입에서 냉기서린 말이 흘러나왔다.
“무슨 짓을 해놨을지 모릅니다. 당장에라도 철저하게 분해를 ······ . 아!”
마일리의 시선이 안타이오스를 비추고 있는 화면으로 향했다.
“······ 그래. 지금 와서 멈출 수는 없지.”
영향력 있는 관객들이 모였고, 학생들은 각자가 흥미진진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안타이오스를 강제로 정지시킨다면 어떠한 말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 잘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생각에 빠진 마일리는 듣지 못했지만, 부르바스는 화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그마한 소년의 뒷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 * *
“워어어어억!”
단순한 외침이었지만, 소리에 의지와 마나가 실리는 순간, 외침은 실제적인 힘이 되었다.
“큭!”
트리언의 방패에 가득 실린 오러가 넘실거리며 오우거의 외침에 대항했다.
전의를 깎아내리고, 공포를 심어주며, 전신을 망치로 두들기는 것 같았지만, 트리언은 배에 힘을 가득 주고 버텨내는데 성공했다.
“어림없다!”
고함소리와 함께 형형색색의 빛이 트리언의 몸에 내려앉았고, 그 순간 폭발적으로 증가한 기세가 오우거의 시선을 묶는데 성공했다.
“워어억!”
감히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가소로운 인간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커다란 통나무를 치켜세운 그 모습은 왜 오우거가 육상 몬스터의 왕자라고 일컬어지는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콰쾅!
“우와악!”
방패와 통나무가 부딪쳤는데, 대포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더 놀라운 것은 트리언이 그 자리에서 오우거의 공격을 버텨냈다는 것이다.
각종 강화를 받고 정교하기 그지없는 방패술로 힘의 대부분을 흘려내었다지만 놀랍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렌이라는 괴물의 존재는 트리언을 자극해 폭발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잘했다.”
우지지지직!
“크워억!”
네이던의 손에서 슬며시 뻗어나간 구체가 정교하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오우거의 아킬레스건을 갈랐다.
그 정체가 평범한 바람 계열의 마법이라면 더더욱 믿기 힘든 광경이었지만, 엄연히 벌어진 사실.
수많은 바람 주문을 압축하고 정교한 마력 조작으로 원형의 형체를 유지, 그 안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회전을 시킴으로서 상리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파괴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대단하군.”
네이던만의 독자적인 마법에 도리안이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오우거의 옆쪽으로 파고들었다.
써걱!
한계까지 집중 된 오러 위에 정교하게 인첸트된 샤프니스까지 더해진 일격이 오우거의 오금을 베었다.
본래 오러와 마법은 반목하기 마련이어서 오러위에 마법을 인첸트하는 것은 실로 정교한 작업이었지만, 역대급 마검사의 재능이라는 도리안은 실전에서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해낸 것이다.
엘레나의 주먹이 오우거의 슬개골에 작렬했다.
뿌지직!
정확하게 타점을 맞추고 한 점에 집중시킨 힘이 오우거의 슬개골을 부셔버렸고, 너덜너덜해진 오우거의 한쪽 다리가 저절로 굽혀졌다.
“쿠억!”
오우거의 입에서 피어가 아닌 비명이 터져 나왔고, 본능적으로 팔을 커다랗게 휘두르려는 순간 보이지 않는 힘이 팔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오래 못 버팁니다!”
어느새 오우거의 뒤쪽에서 강사를 감아버린 코린이 땀을 뻘뻘 흘리며 뒤쪽으로 달려 나갔고, 절묘한 힘의 방향전환에 일순간이지만 오우거의 팔이 멈춘 것이다.
“에잇!”
콜레트가 야무지게 외치며 두 손을 내밀자, 평소의 성광이 아닌 음산한 빛이 오우거의 상처에 도달했고, 그 순간 상처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상처 악화의 저주.
신관이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해 주문이니만큼 그 효과는 확실했다.
“지금!”
주문을 완성시킨 레티시아가 외치자 오우거에 달라붙어있던 인원들이 급히 뒤로 물러섰고, 그 순간 오우거가 서있던 지면이 질척거리며 늪으로 변했다.
“크웍?!”
오우거의 몸이 늪에 허리까지 묻혔고, 고통과 당황스러움에 넋이 나간 오우거가 잠시 주춤거린 그때, 레티시아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연계 주문이 완성되었다.
우드드득!
“카아악!”
마법으로 만들어진 늪의 수분이 순식간에 빨려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단단해진 지면이 오우거를 꽉 붙잡아 버렸다.
오우거의 힘이면 이런 지면쯤은 손쉽게 파헤치고 나와야 하건만, 레티시아가 마력으로 붙잡고 있는 지면은 지금 이 순간 어떠한 성벽보다 단단했다.
“몰아쳐!”
방패를 앞세운 채 달려 나가는 트리언을 선두로 일행 전부가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후.”
관절을 이리저리 뒤틀며 트리언이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표정을 밝았다.
이리저리 금이 간 방패를 바라보면 울상을 짓다가도, 그의 앞에 반신이 파묻혀 난도질당한 오우거를 바라보면 또 다시 웃음을 짓는 모습이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아 보였지만, 트리언을 비웃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우거 슬레이어.
비록 가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오우거를 살해한 것이다.
어지간한 일에는 웃고 넘기는 도리안도 지금 만큼은 흥분을 감추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다른 일행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경험은 큰 자산이 될 것이고, 언젠가 그들은 실제로 오우거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라?”
“호오. 이런 식이군.”
그 순간 오우거의 사체가 점차 빛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서서히 사라져갔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콜레트와 코린이 입을 벌렸고, 마법사들은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관찰했다.
이윽고 오우거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그 자리에는 5라고 써져있는 큐빅만이 남아있었다.
레티시아가 조심스럽게 큐빅을 집어 들었고, 화들짝 놀란 표정을 한 콜레트가 걱정스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 어떡하죠? 오우거를 잡았다는 증거가 사라져 버렸어요!”
발을 동동 구르는 콜레트의 모습에 일행이 미소를 지었다.
“괜찮을거에요. 콜레트 양.”
레티시아의 위로에 조금은 안심이 된 표정을 짓는 콜레트였지만, 여전히 불안한지 안색이 어두워보였다.
“숫자가 바뀌었군.”
네이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과연 게시판에 걸려있는 레티시아의 옆에 있던 숫자가 바뀌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있는 거군요. 반응도 빨라요. 제가 큐빅을 집음과 동시에 바뀐 모양인데. 이 정도면 이 안에서는 신이 부럽지 않겠어요.”
냉소 섞인 말에 일행의 표정이 굳어졌다.
입학식에서의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가상의 세계에 들어온 이들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큐빅은 어떻던가요. 코린?”
가라앉은 분위기에 아차 싶은 레티시아가 화재를 돌리려 코린에게 물었고, 다행히 코린은 눈치가 없지 않았다.
“꽤 쓸 만합니다. 확실히 실전에서 도움이 되는 수준이에요.”
방금 전의 전투에서 일행의 큐빅은 코린에게 맡겨져 있었다.
트리언은 온전히 방어에 집중해야 했고, 격투가인 엘레나와 신관인 콜레트, 마법사인 나머지 일행이 큐빅을 쓰기는 애매한 상황이었으니, 상대적으로 한가한 코린이 큐빅을 쓰기로 했던 것이다.
원래 암살자는 각종 암기와 함정, 기물에 능숙하기 마련이고, 코린은 짧은 시간이지만 큐빅을 제법 쏠쏠하게 써먹은 것이다.
“저도 간단한 마법은 쓸 줄 알지만, 이 녀석은 차원이 다르네요. 마나에 조금만 의지를 실어도 즉각 반응합니다.”
잠시 큐빅을 바라본 코린이 이야기를 이었다.
“방금 전에는 오우거라서 그렇게 큰 재미를 못 봤지만, 제가 인간을 상대로 이 녀석을 본격적으로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 꽤나 쏠쏠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겠네요.”
단어를 잠시 고른 코린이 말을 조금 끌었지만, 콜레트를 제외하고는 코린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도 위험한 물건이네요.”
레티시아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