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97
097화
귀족가의 원행은 준비할 것이 많은 법이다.
드웨인으로부터 아렌의 지시를 건네받은 베로아는 그 시간부터 가문으로의 복귀를 준비했다.
로랜스가 마차와 말들의 상태를 살피면서 늘어난 일행을 위한 말과 마차를 부랴부랴 준비했다.
유나와 센드가 짐을 싸기 시작했지만, 몇 개월동안 머무른 저택에는 알게 모르게 살림이 늘어나 있었고, 7기사단의 기사들까지 동원되어서야 일이 진행되는 모습이 보였다.
시내로 외출한 벡스터가 원행에 필요한 물자를 챙겼고,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 유일하게 한가한 것은 아렌과 근접 경호를 맞고 있는 드웨인 뿐이었다.
“정말로 복귀하는가 보군.”
“그렇지.”
부르바스의 말에 아렌이 답했다.
백작가의 하인들과 기사들답게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평소와 다른 부산스러움은 숨기지 못했고, 부르바스의 감각에 걸린 것이다.
“이거 못난 모습을 보였군요.”
드웨인이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하인들의 움직임인 귀족가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법이다.
때문에 지체 높은 귀족가일수록 하인들의 교육에 신경을 쓰기 마련인데, 그런 점에서 이 저택에 있는 하인들은 모자람이 있었다.
거기에 그런 하인들의 예절을 전혀 모르는 기사들까지 급히 움직이고 있으니 소란스러움은 당연한 것이다.
“아닙니다. 하인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게 훨씬 낫지요.”
손사래를 치며 웃는 부르바스의 모습에 드웨인이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부르바스의 배려에 감사하며 기사단의 예절 교육에도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드웨인이 찻잔을 들었다.
부르바스와 드웨인은 같은 세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다.
비록 친분은 없었지만 안면 정도는 있었고, 황혼을 바라보는 두 노인은 공통된 기억이 꽤나 많았으니 이야깃거리가 제법 있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펼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지금 이곳의 주인은 엄연히 아렌.
서로 눈짓으로 다음을 기약하는 두 노인을 보면서 아렌이 입을 열었다.
“말년에 고생이 많군.”
“······그나마 지금 모습으로 말하니 예전보다는 조금 낫기는 한데. 여전히 어색하군.”
청년이 노인의 말년을 걱정하는 모양이니 양식 있는 어른이 봤다면 당장에 몽둥이가 날아올 판이었지만, 소년의 모습으로 그러는 것 보다는 확실히 나았으니 부르바스는 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드웨인도 고소를 짓는 모습을 보며 아렌이 말을 이었다.
“신체의 나이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정신과 경지다. 태어나자마자 깨달음을 얻은 성인도 있을 수 있고, 제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도 있는데 일반인도 아니고 지혜의 현현이라고 불리는 대마법사가 받을 느낌은 아니지.”
시큰둥하게 자신을 타박하는 아렌의 대답에 부르바스가 안색을 굳혔다.
단순한 내용은 자신을 타박하는 것 같지만 부르바스의 상황과 어울리니 꽤나 깊이 있는 이야기로 들린 것이다.
“······그렇군. 오늘 또 하나 배워 가네. 허허. 자네 말대로 말년에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어.”
인상을 굳힌 것도 잠시, 이내 얼굴을 활짝 편 부르바스가 아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쾌한 감정이 느껴지는 말에 아렌이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총장님이 아카데미를 위해 헌신한 일은 제국의 귀족들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습니다. 마음을 올곧게 갖고 당당하게 행동하십시오.”
묵직한 기운이 가득 담긴 드웨인의 말에 부르바스가 미소를 지었다.
가문에 메인 몸이라 그 명성이 밖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은 모두가 엄지를 치켜드는 기사가 드웨인이다.
그런 강단 있는 기사가 자신을 위로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 것이다.
“고맙소. 드웨인 경. 덕분에 힘이 나는군요.”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뿐입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노인의 모습을 보던 아렌이 입을 열었다.
“배웅하러 온 건 아닌 거 같고. 무슨 일이지?”
여전히 무심한 태도에 부르바스가 실소를 흘렸다.
“이거 섭섭하군. 물론 다른 목적이 있기는 하지만 자네를 배웅하러 온 것도 맞아.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우리는 꽤 많은 일을 겪지 않았나.”
섭섭하다는 부르바스의 태도에 아렌도 자세를 고쳐 앉았다.
“실례했군.”
아렌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부르바스가 손을 흔들었다.
“괜찮네. 자네의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실례라고 할 정도도 아니지.”
차를 목을 축인 부르바스가 말을 이었다.
“황제가 움직이고 있네.”
거물의 이름에 드웨인의 몸이 굳어졌지만, 아렌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흔히들 황제의 힘은 공안에서 나온다고들 하지. 맞는 말이기도 하고. 임무에 따라서 나눠진 각 공안들은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지.”
공안이 몇 과까지 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황제의 비밀병기라 할 수 있는 공안의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다는 것은 귀족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이슈였고, 귀족회의는 황제에게 공안의 규모를 정식으로 발표해달라는 요청을 몇 번이고 보내고 있었지만, 황제는 들어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공안이 황제의 전부는 아니야.”
일반적으로 황족들은 정치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부르바스는 대마법사의 경지에 도달한 자다.
거기에 최전선에서 적극적으로 전쟁을 수행했었고, 마룡봉인체들을 잡아넣을 때도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일반적인 황족의 경우와는 그 결이 달랐다.
황족과 귀족들에게서 두루두루 존경을 받고 있으니 일반적으로 알 수 없는 황제의 비밀에 접근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황제의 수족들이 있어. 규모가 얼마인지 그 능력이 어떤지 전혀 알 수가 없지. 나도 그런 조직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네.”
뜻밖의 이야기에 드웨인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제국에서 황제의 무서움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귀족들이고 고위 귀족으로 올라갈수록 아는 것이 많아지니 그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8대 귀족중의 일원인 그라인드에서도 꽤나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드웨인 역시 황제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데, 그보다 더한 것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놀라움에 표정이 변한 것이다.
“제국에는 고아들이 많지.”
“······전쟁고아들을 모아다가 만든 조직이군요. 어린아이들이라면 철저하게 황제에게 충성하도록 세뇌했을 거고, 황제의 능력이라면 병기로 만드는 것쯤은 어렵지 않겠죠.”
부르바스의 말에 드웨인이 심각한 어투로 답했다.
황제는 신이 실수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초인이다.
특히나 마법에 관해서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할 정도로 실력이 탁월하니 그런 마법사가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입맛대로 육성했다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묘한 놈들이 보이던데 그놈들인가 보군.”
아렌의 중얼거림에 두 노인의 시선이 모였다.
“일반적인 오러 능력자라고 보기에는 마나의 흐름이 꽤나 기묘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아렌이 말을 이었다.
“그래. 총학생회 자료에 있던 것과도 비슷한 거 같았어.”
“······결국 아카데미는 끝까지 황제에게 놀아난 꼴 이였군.”
억눌린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부르바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아렌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카데미의 모든 연구결과와 지식은 황제에게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총장인 부르바스 모르게 총확생회를 움직여서 일을 진행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전적으로 부르바스를 무시한 행동이었으니 부르바스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황제가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인 증거까지 나오니 부르바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주변의 마나가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핏발이 선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그때.
“진정해.”
나직한 아렌의 한 마디가 부르바스의 귓가로 천둥처럼 파고들었고, 그 순간 부르바스는 정신에 찬물을 끼얹은 느낌을 받았다.
제 아무리 경지가 높은 대마법사라 할지라도 일단은 사람이다.
감정에 휘둘러서 폭주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고, 부르바스 정도의 대마법사가 이성을 잃고 폭주한다면 그것은 재앙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고맙군.”
잠시 눈을 감고 신색을 회복한 부르바스가 아렌에게 사의를 표했고, 아렌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알고 있다니 이야기가 계속하지. 황제의 시선이 본격적으로 자네를 주시하기 시작했어. 이건 보통일이 아니네.”
자조적으로 웃은 부르바스가 말을 이었다.
“내 꼴만 봐도 보통일은 아니지.”
드웨인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부르바스는 개의치 않았다.
“별일 아니야.”
아렌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나설 일은 없겠지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아렌은 평화주의자다.
수련을 거듭하여 용이 되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아렌은 세속의 일에 관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쪽에서 시비를 걸어온다면 그때는 또 모르지.”
하지만 아렌은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이고, 은원이 분명했으니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
여전히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드웨인이었지만, 부르바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인간을 초월하고자 하는 초인을 걱정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지. 앞으로가 기대되는군.”
부르바스의 말에 아렌의 눈빛이 살짝 변했지만,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거다.”
싸늘한 냉기가 느껴지는 미소였지만, 부르바스는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 * *
베로아가 부랴부랴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출발준비에만 3일을 소모한 아렌의 일행은 드디어 저택을 나서게 되었다.
빠르게 유피테르를 벗어난 아렌의 일행은 가도를 따라 남동부로 말을 몰았다.
아렌이 탄 마차와 각종 짐을 실은 마차가 두 대, 기사단 개개인의 말 수십 마리가 포함된 대인원의 이동은 생각보다 더뎠지만 아렌은 재촉하지 않았다.
살아 숨 쉬는 매 시간이 수련의 연장인 아렌에게 있어서 조금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렌이 급하게 굴지 않으니 자연히 일행의 속도도 완만해졌고, 일반적인 원행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느긋한 속도로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워. 워. 조심해라 이놈들.”
가도 한쪽에 야영하기 위해서 능숙하게 마차를 멈춰 세운 로렌스가 말들을 달랬다.
전쟁에서 도로의 존재는 중요하기 짝이 없었고, 항상 전시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제국은 당연히 도로 정비에 큰 신경을 쓰고 있지만 제국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그 때문인지 상태가 안 좋은 도로가 종종 보이고는 하는데, 파손된 도로에 발을 헛디딜 뻔한 말들이 흥분한 것이다.
말들과 눈을 마주치며 진정시킨 로렌스가 주변을 둘러보았고, 이내 적당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 어떠십니까?”
“괜찮군. 여기로 하지.”
부단장의 자리에 있는 하일이 로렌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하더니 일행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기사들과 하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덧 아렌의 마차를 중심으로 진형을 구축하더니만 본격적으로 야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불을 피우고, 음식을 준비했다.
일반적인 여행자라면 간단한 보존식으로 때우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렌은 백작가의 도련님이다.
당연히 그 격에 맞는 식사를 할 자격이 있었고, 그런 면에서 베로아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하인들의 움직임은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지런히 움직이며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그때였다.
“도련님.”
“나오셨습니까.”
마차 안에서 미동도 않고 있던 아렌이 마차 밖으로 걸어 나와 가도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별이 뜨고 어둑해진 허공 너머를 바라보는 아렌의 시선에 흥미의 빛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