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02
제102화
“그러니까 라울 네가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지구’라는 곳 출신이고, 목숨을 잃은 뒤 이곳에서 환생했단 말이냐?”
“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로 회귀했고요.”
라울은 라벨과 카르데나스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가감 없이 설명했다.
어차피 자신과 운명을 함께하게 된 이들에게 더 이상 진실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플레이어들과 접촉하게 되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이들에게 변명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고.
그럼 처음부터 밝히면 될 일을 왜 굳이 이제 와서 풀어놨는가 하면, 워낙 믿기 힘든 이야기였고 라울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가 기억하고 있던 대로 플레이어들이 등장하고, 커넥트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진실을 털어놓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얘길 듣고 보니 이제 이해가 돼. 연결고리 카페에 담겨진 정보들,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라울이 겪었던 일들을 정리해 둔 거였구나.”
라벨은 커넥트 시스템을 단순히 신의 힘이 구체화된 무언가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구라는 곳의 인간들이 이곳 커넥트 세상에 접속하기 위한 도구였다니.
라울을 신의 사자라고 생각해 왔던 라벨의 입장에선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생각해 보면 틀린 얘기도 아닌데? 평범한 인간이 회귀와 환생을 경험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신의 축복을 받은 게 분명해!’
라벨은 확신했다. 라울이 이곳에 환생해 그녀와 만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카르데나스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쉽게 믿기는 어려운 이야기이긴 하구나.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라울 네가 그렇게 환생을 하게 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란 사실이지.”
카르데나스는 회한이 담긴 표정과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라울 너에게도 나처럼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될지 모르겠구나. 남다른 힘을 가진 자에겐 그만한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니까. 중요한 건 그 선택의 순간을 마주했을 때,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의 의지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강해져야 한다. 강하지 못한 자는 주변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카르데나스는 봉인지에 묶여 보낸 긴 세월을 돌이켜 보며, 그것이 진정 자신의 의지였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위기에 처한 인류. 그걸 막을 수 있는 것은 몇 안 되는 선택된 인간.
당시에는 그게 자신의 의지라고 믿고 있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 쫓겨 떠밀리듯 결정한 것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정의감을 가장한 자기 합리화였는지도.
만약 그때 그에게 힘이 있었더라면. 그 불합리한 선택을 뒤집을 힘이 있었더라면 결과는 조금 달라졌을까.
‘어차피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지.’
회한에 젖은 그의 눈이 라울에게 향했다.
젊고 의지에 가득 차 있으며 가능성이 넘치는 젊은이.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이 젊은이가 자신과 같은 길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을 뒤덮는 악의와 부조리에 휩쓸리지 않고 당당하게 부숴 버리기를 바랐다.
카르데나스의 눈빛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었다.
* * *
라울이 과거를 밝히고 난 뒤, 라벨과 카르데나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벨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지구와 인터넷의 정보를 얻는 데 사용했다.
“정말 놀라워.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정보의 바다라니! 이걸 활용하면 뭘 할 수 있을지 정말 상상이 안 가.”
“지구라는 곳의 과학 기술은 정말 흥미롭네. 이곳에서도 활용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라벨은 호기심 많은 요정답게 인터넷을 통해 이것저것 정보를 모으고 공부했다.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라울에게 물어보기도 하며 학구열에 불타올랐다.
‘지구의 다양한 문화와 화려한 볼거리들에 관심을 가질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네.’
라울은 라벨의 겉모습만 보고 그녀를 과소평가했단 사실에 반성했다.
겉보기엔 귀엽고 예쁜 요정이지만, 그녀는 수천 년의 세월을 도서관에서 버텨 온 현자였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그녀가 읽어 온 책과 얻은 지식들이 얼마나 방대할지 라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오랜 세월 고생해 온 만큼, 이제는 여유를 가지길 바랐다. 그래서 넌지시 쉬엄쉬엄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조금만 연구하면 라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이 인터넷이라는 걸 이용해서 라울이 지구로 가지 않더라도 놈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 같으니까. 기대되지 않아?”
의욕에 넘치는 라벨을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카르데나스와의 훈련 시간은 훨씬 엄격해졌다.
여태까지는 그저 가볍게 훈련을 봐준다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검술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그 증거로 카르데나스는 라울을 정식으로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는 애쉬튼 가문을 비롯해 루벤 왕국 명문 가문의 검술이 만들어 지는 데 일조한 인물. 당연히 검술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애쉬튼 가문의 검술은 확실히 훌륭한 검술이다. 양손 대검을 활용한 파괴력은 분명 왕국 검술 중 최고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검술은 경지가 오를수록 그 단점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지.”
놀랍게도 카르데나스는 애쉬튼 백작가의 검술 ‘베어 크러쉬’를 직접 펼쳐 보이며 설명했다.
“베어 크러쉬가 훌륭한 검술로 남게 된 것은 바로 너희 가문의 남다른 육체적 능력 때문이다. 일반인을 뛰어넘는 강인한 육체가 원래라면 구현할 수 없는 동작까지 소화할 수 있게 해 주니까. 하지만….”
그가 양손검을 바닥에 꽂으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검술이다.”
“…….”
라울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인 멜빈 백작과 큰형인 딜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육체는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라울의 육체는 아무리 단련한다 한들 그들의 수준에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도.
“가문의 검술을 버리라는 소리는 아니다. 그건 너의 뿌리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대로 사용하는 건 너의 몸을 혹사시키고 갉아먹으며 종래에는 파멸시킬지도 모른다.”
라울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안 그래도 요즘 실제로 느끼고 있는 문제였다.
엑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올라서며 마나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졌지만, 육체적인 면에서의 발전은 거의 멈춰선 상태였다.
마나의 보조와 염동력 강화술로 어떻게든 부족함을 보충하고 있었지만, 한계가 느껴지고 있었다.
카르데나스가 라울의 어깨를 짚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 검술을 전수해 주마. 뿌리가 같은 만큼 성취도 빠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네가 경지에 오르게 된다면 네 손으로 직접 가문의 검술을 너에게 맞도록 손보는 것도 가능해지겠지. 어떻게 하겠느냐?”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그렇게 라울은 그간 익혀 왔던 베어 크러쉬를 잠시 놓아주고 새로운 검술에 입문하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한 기회였다.
본인이 말은 하지 않지만, 카르데나스는 분명 마스터를 뛰어넘은 절대자였다.
그런 그가 직접 자신의 검술을 전수해 주겠다는데, 어떻게 불만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검술 숙련도가 중급 8LV에서 1LV로 초기화되었지만, 경지 자체가 내려간 것은 아니었다.
카르데나스의 검술은 ‘인피니티 소드’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검식의 연계와 변화가 특징인 검술이었다.
평소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검술을 펼쳐 왔던 라울에게 잘 어울렸고, 그렇기에 카르데나스가 권유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라울의 실력이 그의 눈에 차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검식의 연계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다. 반복해서 펼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검이 나아갈 길을 알게 될 테니까. 지금은 그저 흐름을 느끼고 이해하는 데 집중하거라.”
카르데나스의 적절한 조언과 시연, 그리고 레그나토르를 통해 라울의 몸을 직접 움직여 주기까지 하니 성취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 * *
오전에는 영지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영지 외곽의 던전과 게이트를 공략한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되면 영주성 지하의 비밀 연무장에서 카르데나스와 훈련을 하고 밤에는 라벨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 잠에 든다.
이게 보름 가까이 반복되어 온 라울의 하루 일과였다.
영지가 늘어난 만큼 그가 신경 써야 할 업무도 늘어났다.
하지만 영주 대리와 관리들을 적절히 배치해 놓았기에 처음에 비하면 업무량은 대폭 줄어들었고, 조만간 라울이 없어도 적당히 잘 굴러갈 예정이었다.
게이트와 던전은 꾸준히 관리해 줘야 했다.
필요 없는 던전이 늘어나지 않도록 영지병들이 꾸준하게 순찰을 돌며 새로 생기는 게이트를 체크했다.
던전으로 바뀐 게이트는 폐쇄하려면 시간과 수고가 훨씬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게이트 수준에서 정리하는 게 필수였다.
그리고 돈이 되는 몬스터나 자원이 풍부한 던전은 길드원을 중심으로 공략팀을 운용했다.
던전의 경우 게이트와 달리 출입이 자유롭고 진입 인원에 제한도 없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몬스터들은 리젠(재생성)되고, 그건 가디언도 마찬가지였다.
던전에는 [토벌 게이지]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반복해서 몬스터와 가디언을 처리하다 보면 게이지가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하는 최종 보스 ‘던전 관리자’를 처리하면 던전이 소멸하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알짜 던전의 경우 일부러 가디언을 처리하지 않거나, 토벌 주기를 정해 토벌 게이지가 쌓이지 않도록 관리한다.
물론 오래 묵혀 둔 던전은 언제나 ‘아웃브레이크’의 위험이 존재하지만, 난이도 보정으로 당분간 그럴 일은 없게 되었다.
라울은 레벨과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시간이 될 때면 던전과 게이트를 공략했다.
어느새 레벨이 80을 넘어선 만큼, 게이트나 던전을 공략하는 것은 효율이 떨어졌다.
아쉽지만 더 높은 등급의 게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감수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똑똑.
집무실에 들어온 것은 케인이었다.
그는 들고 왔던 서류 뭉치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보고했다.
“마스터께서 요청하신 이방인들의 명부입니다. 첫 주와 둘째 주에 방문한 2,000명의 인원 중 17명을 제외하고 모두 조사를 마쳤습니다.”
신규 플레이어들은 일주일 간격으로 추가되고 있었다. 보름이 지난 지금은 세 번째 기수까지 진입한 상태였다.
“특히 마커스 왕국 자유 도시 ‘이그넷’의 접속자는 한 명도 빠짐없이 체크했습니다.”
“수고했어. 먼 곳까지 정보원들을 파견하고 관리하느라 고생이 많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예전에 비하면 예산도 넉넉하고 지원도 충분하니 일할 맛이 납니다. 하하하.”
잠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케인이 집무실을 빠져나갔고, 라울은 그가 가져온 보고서를 앞에 두고 심호흡했다.
그동안 어쩌면 가장 궁금해했던 일에 대한 정보가 바로 여기 적혀 있었다.
‘후우. 긴장되는데.’
여기에 적혀 있는 정보에 따라 그의 계획은 분기점을 맞이할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이 될지 떨리는 가슴으로 라울이 차분하게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