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41
제141화
어느 저택의 별실.
이십여 명의 귀족들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넓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인사는 바로 이자크 남작. 조금 전 중앙 홀에서 여론을 주도했던 이였다.
“그래서 병력 배치 상황은?”
“중앙군 천은 모두 내성에 배치되었습니다. 외성 두 개 성벽은 경비군 오천이 전담하게 되었고, 외성문에 실버 베어 기사들을 배치했습니다.”
이자크 남작의 질문에 답하는 이는 디반테라는 젊은 기사였다. 체인 기사단 소속의 기사이자 경비군단의 지휘관이기도 했다.
“흠. 직속 병력을 모두 내성에 집중했다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겠다는 뜻인가? 뭐, 우리 입장에선 잘된 일이지만. 그런데 실버 베어 기사단을 외성에 배치한 건 누구의 지시인가? 기사단장? 아니면 임시 사령관인가?”
“임시 사령관 웨이론 경이 실버베어 기사단장에게 부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그 문제로 살짝 다툼이 있었다고 하는데, 카를로 기사단장이 양보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는데 문제는 없겠소?”
이자크 남작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냉혹한 인상의 기사가 앉아 있었다.
“실버베어 기사단을 얘기하는 거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오. 기껏해야 셋씩 나눠 배치되어 있다면 제압하는 건 그리 힘들지 않을 테니까.”
자신감 있게 말하는 그의 정체는 바로 체인 기사단의 부단장인 라마르 남작이었다.
체인 기사단은 소드 유저 최상급에서 엑스퍼트 초급으로 이뤄진 일종의 예비 기사단이었다.
정식 편제가 되어 있는 골든, 실버, 아이언 베어 기사단에 공석이 생기기 전까지 대기하는 일종의 수습 기사단이라 할 수 있겠다.
기사들은 개인의 무력도 중요하지만 군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데,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각 부대의 지휘관 직도 겸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체인 기사단의 경우는 백작령의 수도인 콘포드 성의 경비군단과 각 중요 지점 요새의 경비군단의 지휘관을 맡고 있었다.
라마르 남작은 바로 콘포드 성 경비군단의 부대장직도 겸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겠소. 실버베어 기사들은 라마르 남작과 체인 기사단에 맡기도록 하지요. 그럼 가병과 개인 기사단의 배치 문제인데…”
그렇게 이들은 차근차근 성문을 장악할 음모를 꾸며 나갔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갈 무렵, 원로원에 속한 나이 지긋한 혈족 하나가 물었다.
“그런데 정말 내성은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거요? 저택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는 짓 아니오?”
“우리는 내전을 일으키려는 게 아닙니다. 피 흘리지 않고 제이든 자작님이 성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명분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이든 자작님이 기사를 200명이나 이끌고 오십니다. 내성에 남아 있는 기사라고 해봐야 겨우 오십여 명. 그냥 밀고 들어가도 저택을 장악하는 건 어렵지 않죠.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피를 보려고 하진 않을 겁니다.”
“명분. 명분이라….”
“현 백작이 죽고 나면 결국 후계싸움으로 몰고 갈 수 있단 얘기죠. 그때 본성을 차지하고 있다면 얼마나 유리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요.”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애쉬튼 백작령 주요 인물들의 가족을 볼모로 삼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중앙군이든 골든베어 기사단이든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으니, 주도권을 이쪽이 가지게 되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수도에 있는 협력자들이 왕실에 힘을 쓰면 제이든 자작님이 차기 백작으로 인정받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도 그렇군. 대세가 정해지면 주변 봉신들이 굳이 딜런의 손을 들어줄 이유가 없지.”
어차피 대단한 충성심으로 백작가를 따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 같은 혼란스런 상황이라면 어느 쪽이 이득인지 계산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 이제 준비들 하시지요. 중요한 건 가급적 피를 보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압도적인 전력 차로 단번에 제압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그렇게 회의는 마무리되었고, 참가했던 인원들이 속속 자리를 떠나갔다.
그 모습을 체인 기사단 부단장인 라마르 남작이 끝까지 지켜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이만 일어나지.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경비대장님께는 뭐라고 전해드릴까요?”
“성문 확보는 걱정하지 말고 내성의 동향을 잘 파악해 주시길 바란다고 전해다오. 쓸 만한 녀석들을 몇 명 붙여 드릴 테니, 필요할 경우엔 수족처럼 부리셔도 좋다는 말도.”
라마르 남작이 손을 몇 번 까딱이자, 잘 단련된 것으로 보이는 기사 다섯이 디반테의 뒤에 다가섰다.
“보기만 해도 든든하군요. ‘그 작전’에 동원되었던 이들인가요?”
“쓸데없는 호기심은 버렸으면 좋겠군. 그만 가봐라.”
“아, 넵.”
디반테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다섯 기사를 이끌고 별실을 떠나갔다.
모두가 떠나가고 홀로 남은 라마르 남작이 품속에서 황동가면을 꺼내 들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 * *
다음 날 새벽.
콰앙!
“크, 큰일 났습니다!”
백작 저택의 임시 작전 본부에 얼굴이 사색이 된 기사 하나가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의자에서 선잠을 자고 있던 임시 사령관 웨이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묻자, 기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무래도 밤사이에 정변(政變)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작전 본부에 있던 이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전령을 바라봤고, 복도에선 ‘비상이다!’ 하는 고함과 함께 부산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조금 전 피투성이가 된 실버베어 기사 하나가 내성문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전하길 배신자들이 외성문을 모두 장악한 것 같다고…”
“……!”
잠시 후.
임시 사령관 웨이론, 실버베어 기사단장 카를로, 필립이 본부에 모여 있었다.
“드와인 경비대장은?”
“아무래도 저쪽에 붙은 듯하군요. 내성에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상황을 파악하러 간다고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쾅.
“제기랄.”
카를로 남작은 탁자를 내려치며 성을 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실버베어의 이름에 먹칠을 하다니!”
긴급히 각 성문에 정찰병을 보내 살펴보니 일부 실버베어 기사는 포박된 상태였지만, 나머지는 저쪽에 합류한 듯 당당히 성루에서 이쪽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나마 제1외성은 정찰이라도 했지, 가장 외곽 성벽인 제2외성은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어떻게 할까요? 정오 정도면 제이든 자작이 도착할 터인데.”
“어떻게 하고 자시고, 배신자 놈들은 모두 쳐 죽여야지!”
부하 기사들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눈이 돌아간 카를로 단장은 당장이라도 외성벽으로 돌진할 태세였다.
필립이 그를 제지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진정하시지요. 일단은 저들의 의도가 뭔지 파악부터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어디까지 엮여 있는지도 살펴야 할 테고요.”
외성을 장악한 것은 단지 경비군단과 체인 기사단뿐만이 아니었다.
성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문루 근처에는 정규군뿐만 아니라 귀족 가문의 사병과 기사들이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외성벽으로 향하려면 시가지를 지나야 하는데 만약 그곳에 배신한 가문의 병력이 숨어 있다면 포위당할 위험성도 컸다.
“아니지. 지금은 오히려 치고 나가야 할 때요! 놈들은 넓은 외성을 지키느라 병력이 분산되어 있고, 기사들의 수준도 낮으니 우리에게 승산이 충분하다니까? 괜히 다른 귀족들이 저쪽에 합류하기 전에 하나라도 성문을 뚫어서 놈들이 포위를 풀도록 만들어야지!”
“그렇게 성문 하나를 밀어낸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력도 우리가 한참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깟 머릿수로 우리 실버베어 기사단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머 유저 수는 이쪽이 훨씬 많으니 분명 이길 수 있단 말이오!”
“그만!”
필립과 카를로 단장의 논쟁을 듣던 웨이론 사령관이 말을 끊어냈다.
“미안하지만 카를로 단장님. 우리가 먼저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요!”
“우리의 최우선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야 당연히 백작가를 지키는 것 아니겠소?”
“맞습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백작님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끙. 그렇소.”
“저들을 공격하기 위해 병력을 내보냈다가 며칠 전처럼 불의의 습격이라도 당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괘씸하긴 해도 저들 또한 아직은 백작가의 일원입니다. 우리의 그릇된 판단으로 정말 백작가 내부에서 내전이라도 발생한다면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길.”
카를로 단장이 입을 다물었다.
“사령관님 말씀이 옳습니다. 만약 성내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면 병사들은 물론이고 민간인들까지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큽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요? 이대로 놈들을 방치하고 제이든 자작의 병력이 입성하는 걸 두고만 볼 생각이란 말이오?”
“물론 그렇게 놔둘 수는 없겠지요.”
필립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자 카를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불쾌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덜컥.
“다들 고생이 많으시네요.”
문을 열고 들어선 이를 본 카를로가 놀라서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어, 어떻게 당신이?”
라울이 작전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이상하군.”
“뭐가 말입니까?”
“지금쯤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할 텐데,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제1외성의 중앙 성루.
경비대장 드와인 남작과 이자크 남작이 나란히 서서 시가지 너머 멀리 굳게 닫혀 있는 내성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들도 이미 상황을 파악했을 텐데 난감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임시 사령관과 실버베어 기사단장의 사이가 좋지 않으니, 합의를 하기도 쉽지 않을 테고요.”
이자크 남작의 말에도 드와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구심을 접지 못했다.
“아니. 내가 알고 있는 카를로 남작은 자기주장이 강하긴 하지만, 결코 상사의 결정을 거부할 만한 인사가 아니네. 불만이 있어도 명령에는 충실히 복종하는 스타일이란 말이지. 분명 임시 사령관의 명령을 거절하지 않을 걸세.”
“그럼 임시 사령관인 웨이론이 머뭇거리고 있는 거겠지요. 갑자기 큰 감투를 맡게 되었으니 자신의 판단에 확신도 없을 테고요.”
“그랬으면 좋겠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금쯤이면 사신 정도는 파견해서 이쪽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정도도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자는 아닐 텐데.’
어쨌든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일단 제이든 자작과 합류하게 된다면 뒷일이야 어찌 되든 가장 큰 고비는 넘게 되는 셈이니까.
아무리 백작가의 전력이 뛰어나다 한들, 이쪽도 기사의 숫자만 삼백이 넘어간다.
충돌이 벌어진다면 어느 쪽이 승리하든 백작가의 몰락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러니 그런 멍청한 결정을 내릴 리가 없지. 그리고 정치싸움으로 넘어간다면 이쪽의 승산이 더 커진다.’
저들은 모르겠지만, 제이든 자작은 막강한 협력자들을 배경에 두고 있었다.
아무리 딜런이 정통 후계자라고 해도 이 좁아터진 백작가의 절반만 가지고 과연 노련한 제이든 자작을 상대할 수 있을까?
드와인 남작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노선을 갈아탔다.
어차피 그는 영지가 없는 단승 귀족. 나름 직책을 맡고 있지만, 영지를 주겠다는 제이든 자작의 손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아쉽게 됐군, 멜빈 백작. 당신이 버티고 있었다면 이런 결정은 내리지 않았을 텐데.’
아마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 중 절반은 그와 비슷한 이유로 제이든 자작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어차피 정권이 바뀐다면 빨리 배를 갈아타는 쪽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흠. 영지는 역시 내지 쪽을 요구하는 게 좋겠지? 아무래도 금역 근처는 영지 유지비도 건지기 힘들다고 하니….’
그렇게 드와인 남작이 입맛을 다시며 다가올 멋진 미래를 구상하고 있을 때, 소리 있는 반격이 시작되었다.
끼릭. 삐빅.
“아, 아. 성민 여러분 모두 들리십니까?”
라울의 목소리가 마법 확성기를 통해 콘포드 성 전체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