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54
제154화
“허, 참. 우리가 한 방 먹은 듯하군요.”
“어디에 병력을 숨겨두었던 걸까요?”
남작 연합의 본진.
접경지대의 세 영주 브록스 남작, 요세프 남작, 알렌 남작이 나란히 말에 올라 적진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미 보름 넘게 척후병을 통해 칼립스 성에 드나드는 병력을 확인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예측보다 훨씬 많은 병력이 나타나는 바람에 기껏 준비했던 작전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들의 잘못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라울이 플레이어들을 비롯해 길드 등에서 병력을 소환하는 데 사용된 건 대규모 ‘텔레포트 게이트’ 마법진.
최소 6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필요하고, 한 번 발동하는 데 수십 개의 마나석이 소모된다.
쉽게 말해서 엄청나게 비싸단 뜻이었다.
국가 간의 전투에서도 잘 사용되지 않는 그런 비효율적인 마법진을 겨우 영지전에 사용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리고 그게 바로 남작들과 라울의 사고의 차이였다.
남작들은 영지전을 통해 눈에 보이는 이득을 챙기고자 했고, 라울은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미래를 위해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으니까.
“허허, 저쪽도 급하긴 했나 봅니다. 여기저기서 병력을 끌어모은 듯하니 말이지요.”
“돈이 많다는 얘기가 헛소문은 아닌 모양입니다. 아주 용병들을 긁어모은 걸 보면.”
그들이 봤을 때 라울 측 병력도 정예라고 생각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절반이 넘는 3,500의 병력이 용병과 플레이어, 즉 복장도 무기도 제멋대로 들고 있는 난잡한 부대였으니까.
그들은 아직 플레이어가 어떤 이들인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마대가 좀 걸리긴 하지만, 그거야 기사분들이 잘 처리해 주시겠지요?”
“물론이오. 숫자가 좀 되긴 하지만, 우리 기사단에 비할 바는 아니지.”
“하하, 걱정 놓으시길. 어차피 파워아머 앞에서 병사들의 수나 질 따윈 아무 의미 없으니 말이오.”
남작들 옆에 아무런 문양도 새겨져 있지 않은 평범한 기사갑옷을 입은 두 기사가 당당하게 말했다.
검은 갑옷을 입은 이는 제이든 자작이 황급히 지원 보낸 블랙베어 기사단의 상급기사 라트렐.
회색 갑옷을 입은 이는 또 다른 후원 가문에서 파견한 기사들의 대장 재커리였다.
“보아하니 애쉬튼 백작가에서 아이언 베어 기사단을 지원 보낸 모양인데 괜찮겠소?”
“훗. 겨우 말석을 차지한 기사단 따위에 신경 쓸 필요 없소. 어차피 파워아머도 얼마 없는 잔챙이들이니.”
이쪽은 150의 기사들 중에서 아머 유저가 60명이나 되는 상황.
이 정도 전력이면 지고 싶어도 지기 어렵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라울 측 진영에서 기사 한 명이 천천히 전장 중앙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자인가?”
“사전 교섭이라도 하려는 모양입니다만.”
남작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제이든 자작이 파견한 라트렐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저건 라울 자작이오! 무슨 생각이지? 총사령관이 호위도 없이 홀로 나서다니.”
“정말이오?”
모두의 시선이 라울을 향했다.
만약 라울만 사로잡을 수 있다면 전투를 벌일 필요도 손쉽게 영지전을 끝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라울의 속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양측 군대의 중간쯤에 도착한 라울이 남작 연합의 진영을 한번 쭈욱 훑어보고는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나는 라울 드 애쉬튼. 칼립스, 프랑노아, 루이신, 테른의 영주이며 퍼스트 길드의 주인이자, 퍼스트 기사단의 마스터다! 왕국의 혼란을 틈타 제 잇속을 챙기려 야합한 비열한 자들이여! 너희 도적 무리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감히 나의 검을 받아낼 자가 있는가!!”
라벨의 음성 증폭 마법을 통해 울려 퍼진 라울의 포효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라울이 치켜든 검에서 황금빛 마나 블레이드가 2m가량 솟구치자 라울 측 진영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결과는 둘째 치고, 그 누구도 아닌 그들의 주군이 직접 나서서 검을 뽑아 들자, 병사들과 기사들의 사기가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와, 간지 대박!”
“다른 건 모르겠고, 존나 멋있다!”
“꺄악! 라울 님!”
분위기에 휩쓸린 플레이어들도 병사들과 함께 함성을 질렀다.
개중에 이미 라울의 팬이었던 일부 여성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영상을 저장하고 있었다.
“멋지긴 한데, 저러다 지면 우리도 X되는 거 아냐?”
“쫌 오반데. 그냥 지휘관도 아니고 총대장이 저러는 건 아니지 않나?”
“나이도 어린 게 겉멋만 들었네. 누가 튀어나올 줄 알고 저런 도박수를 던지는 거지?”
물론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굳이 최고 책임자가 전투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최전선에서 혼자 광역 도발을 시전 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남작 연합 측은 뜻하지 않은 횡재에 웃음 짓고 있었다.
“허허허, 어린 나이에 명성을 좀 얻다 보니 아주 정신이 나갔구나.”
“이건 기횝니다! 이참에 놈을 잡고 영지전을 바로 끝내버리지요.”
“아주 우리를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어떻게 하겠소? 누굴 내보내실 생각이오?”
남작들은 공을 지원 나온 두 기사 대장에게 넘겼다.
솔직히 남작가의 기사들 중엔 수준 높은 이들이 없었다.
애초에 일반 남작가의 기사 수는 스물을 넘지 못했으며, 개중 절반 이상은 엑스퍼트의 벽조차 넘지 못한 이들이었다.
라울을 비웃듯 말을 꺼내긴 했지만, 솔직히 그들 휘하에서 라울을 감당할 기사는 없었으니까.
당장 라트렐과 재커리 사이에서 눈싸움이 벌어졌다.
이미 다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했는지, 서로 공적을 차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나가는 게 낫지 않겠소? 이미 얼마 전에 그쪽 기사단 수석기사가 작살이 났으니 말이지.”
재커리의 말에 블랙베어 기사단 상급기사 라트렐이 발끈했다.
“젠장. 수석기사 지위야 자작님 아들분이기에 대우해 드렸을 뿐이오. 어차피 우리 쪽 기사가 제일 많은데 이쪽이 나서는 게 도리 아니겠소?”
이미 라울의 무위가 엑스퍼트 상급에 도달했다는 걸 알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그들 또한 엑스퍼트 상급 이상의 기사들.
겨우 열여섯에 불과한 라울에게 질 거라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결론은 금방 내려졌으니, 모시는 주인과 신분 차는 넘어설 수 없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내 가서 저 애송이에게 쓴맛을 보여주고 오겠소. 크크큭.”
“재커리 단장, 절대 죽이면 안 되오! 꼭 생포해와야 한다는 걸 잊지 마시오.”
브록스 남작이 황급히 말하자, 재커리가 음침하게 웃으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목숨만 붙여놓으면 팔다리쯤은 잘라도 상관없겠지.’
애초에 자신이 파견된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니겠는가.
애쉬튼 백작가의 전력을 깎아 먹고, 기회가 되면 큰 피해를 주는 것.
이렇게 빨리 주군의 명을 수행할 기회가 올 줄은 그도 생각지 못했다.
커다란 배틀 액스(양손 도끼)를 어깨에 걸쳐 맨 재커리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을 몰아 라울에게 향했다.
* * *
평원에 마주 선 두 기사.
이미 말은 각자의 진영으로 돌려보낸 상태.
마나가 난무하는 기사 간의 전투에서 말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라울.”
“재커리다.”
격식을 갖춘 인사 따위는 없었다.
라울은 눈동자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재커리를 관찰했고, 재커리 역시 라울을 견제하며 그를 살폈다.
“대검은 쓰지 않는 건가?”
“글쎄. 굳이 도적놈들 상대로 가문의 검술까지 꺼내 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건방진 새끼.”
재커리의 말처럼 라울은 애쉬튼 가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양손 대검이 아닌, 적당한 길이의 롱소드 하나만 들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재커리의 무기는 얼핏 봐도 파괴력이 굉장할 것 같은 커다란 날을 지닌 배틀액스.
‘역시 맥닐 후작가가 개입했군.’
일부러 아무 표식도 없는 갑옷을 입었고, 출신과 소속을 밝히지 않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루벤 왕국에서 저런 무기를 주무장으로 삼는 가문은 맥닐 후작가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탐색이 끝났으니 이제 무기로 대화를 나눠야 할 시간이었다.
라울은 파워아머를 발동하며 재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남의 싸움에 함부로 끼어든 걸 후회하게 해주마.’
쾅!
평원에서 빛무리와 함께 굉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불과 2분 만이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재커리는 역장이 파괴된 자신의 파워아머를 망연자실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럴 여유도 없었다.
서컹! 스각!
“흐익!”
라울의 황금빛 마나 블레이드가 그의 견갑을 반쯤 잘라버렸고, 반대쪽 뺨에선 화끈한 느낌과 함께 핏물이 흘렀다.
부르르.
힘겹게 움켜쥔 배틀액스 자루가 그의 손과 함께 떨려왔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 차였다.
지난 2분.
그의 배틀 액스와 마나 블레이드는 라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라울은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너무나도 쉽게 그의 공격을 흘려냈다.
반면 라울의 공격은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다.
가볍게 휘두른 것 같은 검은 너무나도 손쉽게 그의 방어를 뚫고 적중했다.
분명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공격도, 마지막 순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그의 몸을 가격했다.
‘이 정도 실력자는 주군을 빼곤 본 적이 없는데….’
엑스퍼트 상급에 오르고 수석 기사가 된 이후, 주군이자 마스터인 클리포드 드 맥닐 후작을 제외하곤 그를 압도하는 실력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가문의 여러 기사단장과 겨뤘을 때도 패배하긴 했어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였다.
그런데 겨우 16살짜리 꼬마에게 이런 압도적인 패배감을 느끼게 될 줄이야.
파워아머의 방어 역장이 없었다면 이미 자신은 한참 전에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역장이 사라진 지금, 그의 운이 다했다는 뜻이었다.
“제길… 괴물 같은 놈.”
그걸로 마지막이었다.
재커리는 라울의 황금빛 마나 블레이드에 이마가 꿰뚫린 채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털썩.
우와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라울 측 진영에서 터져 나왔다.
설마설마했는데 완벽하게 상대를 압살해버린 라울의 신위에 놀라고 감탄한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맙소사. 전해 듣긴 했지만, 설마 정말로 저 정도 실력이실 줄이야!”
아이언 베어 기사단 부단장인 라몬트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병사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번 대결에서 보여준 라울의 실력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분명 상대방은 엑스퍼트 상급 이상으로 보이는 실력자였다.
그리고 파워아머 또한 C급 이상의 양품이었고.
그 정도 스펙이라면 마스터가 아니고선 역장을 파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상대를 2분 만에 처리했다?
이건 눈에 보이는 이상의 무언가를 라울이 가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그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작전 계획과 자신감이 말이지. 어, 잠깐.’
그렇다면 라울 자작님이 진짜 그 작전을 실행하겠다는 뜻 아닌가?
라몬트가 황급히 부하 기사들에게 외쳤다.
“모두 전투 준비! 명령이 떨어지면, 무조건 적 본대를 향해 돌진한다!”
라몬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집어삼키며 라울의 뒷모습을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그 순간.
라울의 목소리가 다시 전장에 울려 퍼졌다.
“겨우 이 정도인가? 겨우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나 라울의 영지에 발을 들였단 말인가!”
쉬이잉! 콰아앙!
라울이 검을 좌에서 우로 휘두르자, 황금빛 마나 블레이드가 파도처럼 일렁이며 날아가 남작 연합 진영 앞쪽에서 폭발했다.
깜짝 놀란 병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 멀리서도 훤히 보였다.
“덤벼라! 몇 놈이 덤비든 다 받아주마! 당당하게 내 앞에 나설 기사는 또 없는가!”
사자후를 떨치듯 라울이 외치자 겁을 집어먹은 듯 남작 연합 진영이 움츠러들었다.
“어, 어쩌지요?”
“라트렐 경, 어떻게 좀 해보시오!”
남작들은 살짝 창백해진 얼굴로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누가 봐도 라울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기에 기사들조차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라트렐조차도 입술만 깨문 채 남작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지금 라울 앞에 홀로 나서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렇게 고요해진 남작 연합 진영을 바라보며 라울이 다시 외쳤다.
“이런 겁쟁이들 같으니. 나오지 않겠다면 내가 가겠다! 브록스 남작! 요세프 남작! 알렌 남작! 목 닦고 기다려라!”
그리고 라울은 주저하지 않고 적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