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55
제155화
두근. 두근.
만이천이 넘는 적들을 향해 서서히 달려가는 라울.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심장 고동 소리만 느껴지고 있었다.
‘아, 이런 기분은 오랜만인데.’
전생에 길드연합에 포위되어 적진을 향해 돌진하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혼자서 수천이 넘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달려드는 건 아무리 랭킹 1위의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는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결국 목숨을 잃기는 했지만, 적 수뇌부를 길동무 삼았었지.’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적과 강한 기사들을 상대하고 있지만,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그의 뒤를 받쳐줄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점도 든든했고, 무엇보다도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아머 유저만 60명. 솔직히 이건 전생의 나라도 상대하기 버거운 숫자이긴 하지만.’
라울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전생의 배도현을 뛰어넘었음을 깨닫고 있었다.
「레그나토르 발동!」
손목의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자, 황금빛 금속이 새하얀 라울의 파워아머를 잠식해 들어갔다.
어깨를 넘어 상반신을 절반가량 뒤덮은 황금빛의 갑주가 라울의 힘을 폭발적으로 증폭시켰다.
「광휘의 아우라!」
어느새 중급 8LV에 도달한 광휘의 아우라를 발동한 순간.
라울의 몸에서 황금빛 성스러운 기운이 솟구쳐 오르며 전장 전체에 퍼져나갔다.
챠라랑.
동시에 라울의 등 뒤에서 반투명한 금빛 날개가 쫙 펼쳐지며 그의 몸이 살짝 허공에 떠올랐다.
라울의 신성력에 반응한 환상 날개가 언제든 그를 쏘아 보낼 수 있도록 깃을 세우고 있었다.
「라벨, 전력으로 보조해줘!」
「맡겨줘!」
어느새 라울의 가슴 앞쪽엔 푸른 색의 마법서 ‘스킬도감’이 나타나 책장이 펼쳐져 있었고, 라벨은 라울의 왼쪽 어깨 위에 걸터앉아 자그마한 마법봉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작은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오자 형형색색의 마법진이 스킬도감 주변에서 번쩍이며 라울의 몸에 각종 버프 스킬들을 중첩시켰다.
그리고 대결전 미리 마셔두었던 나키아의 ‘증폭 물약’들의 효과까지 더해지자, 라울의 몸에선 미증유의 힘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이번 생에 얻은 모든 것들을 총동원한 ‘풀 도핑’ 상태.
거기서 라울은 마침내 전생에 그를 랭킹 1위로 만들어 주었던 비기를 발동했다.
“열려라. 무기의 장(Field of Weapon)!”
촤라라락!
라울의 등 뒤에서 수십, 수백 개의 무기가 튀어나오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단검, 숏소드, 롱소드, 바스타드 소드, 투핸드 소드, 쯔바이핸더 등 수십 자루의 검.
숏 스피어, 배틀 스피어, 롱 스피어, 핼버드, 파이크 등 수십 개의 창.
클럽, 메이스, 워해머, 배틀 액스, 토마호크, 프레일 등 수십 개의 둔기와 도끼.
그리고 손바닥만 한 크기의 투척용 비도 수백 자루.
그 모든 무기들이 라울의 머리 위에서 진형을 이루며 황금빛 예기를 발했다.
그야말로 무기로 이뤄진 군단(legion).
그 무시무시하고도 장엄한 광경에 적군이고 아군이고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 * *
한편, 라울의 엄포에 심장이 쪼그라들었던 남작 연합 수뇌부.
하지만 정말로 라울이 혼자 돌진을 시작하자 빠르게 반응했다.
“기, 기사단 출진! 놈을 반드시 사로잡아야 한다!”
“궁수들은 놈이 사거리에 들어오는 대로 사격 개시해!”
“라트렐 경, 부탁합니다.”
일대일 대결이라면 몰라도 군단 전체를 상대로 달려들다니.
마스터가 아닌 다음에야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임에 틀림없었다.
“맡겨주시오. 놈의 오만함에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소.”
라트렐이 전의를 불태우며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놈을 잡으러 간다! 모두 따라와!”
그가 이끌고 온 제이든 자작 측 기사 60명을 비롯하여 나머지 기사들도 속속 그의 뒤를 따라 진영을 가로질렀다.
투웅, 촤라락!
어느새 사정거리 내로 들어선 라울을 향해 궁병과 석궁수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날아가는 화살 아래로 진영에서 튀어나온 150명의 기사가 라울을 향해 돌진했다.
선두의 아머 유저 60여 명은 이미 파워아머를 발동했고, 그들의 검에선 마나 블레이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서둘러! 적들이 움직인다!”
천천히 가까워지는 라울의 등 뒤로 기마대와 기사단이 출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들이 도착하기 전에 라울을 포획해야만 했기에 라트렐은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그들은 뒷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어? 저게 뭐야!”
“X발.”
“어어어…!”
라울의 몸에서 빛의 기둥이 솟구치고 날개가 돋아났다.
이윽고 휘황찬란한 마법진에 휩싸이더니 어느새 수백 개의 무기가 하늘 위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거의 한순간에 일어났고, 그들이 뭔가 대처를 하기도 전에 라울과의 거리는 좁혀지고 있었다.
“일단 돌격! 놈을 뭉개버려!”
저것들이 뭔지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라트렐은 일단 닥치고 돌격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요정?’
라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녹색 머리의 요정이었다.
그녀가 뭔가 중얼거리며 살포시 웃음을 짓는 걸 본 라트렐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구르릉, 푸슛!
퍽! 퍼벅!
히히힝!
커다란 진동과 함께 기사단 앞쪽의 땅거죽이 뒤집어지며 크고 작은 돌 가시들이 솟아났다.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말들은 멈출 새도 없이 돌 가시를 정면으로 들이받았고,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피분수를 내뿜었다.
“흐앗!”
“차하!”
아머 유저들은 재빨리 반응하여 말 등을 박차고 뛰어올랐기에 돌 가시에 직접 부딪히진 않았지만, 기사들의 돌격진영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 반갑지 않은 손님이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쒜에엑!
“모두 조심… 컥!”
기다렸다는 듯 날아든 무기의 군단이 허공에 뛰어오른 아머 유저들을 덮친 것이다.
퍽! 챙! 쿠당탕!
“크윽!”
“제길!”
무기의 폭풍에 휘말린 아머유저들은 정신없이 허공에서 두들겨 맞다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파워아머의 방어 역장 덕분에 목숨을 잃진 않았지만, 충격은 고스란히 그들의 몸에 전달되었고, 일부 최하급 파워아머의 역장은 이미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문제는 뒤따르던 일반 기사들이었다.
허공에 뛰어오른 아머 유저들을 튕겨낸 무기 군단의 다음 타겟이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오, 오지 마!”
“으힉! 살려줘!”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무기의 비에 기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팅, 텅, 푸슉!
엑스퍼트에 오르지 못한 일반 기사들은 검 몇 번 휘두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쓰러졌다.
엑스퍼트에 올라 마나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기사들도 큰 차이는 없었다.
챙! 텅! 서컹!
“…커헉. 이, 이럴 수가.”
무기는 단순히 날아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직접 잡고 휘두르는 것처럼 검술을 펼쳐 공격해왔다.
어떻게든 두어 개의 무기를 막아내고 있는데, 손바닥만 한 비수 십여 개가 동시에 그의 급소를 파고들었다.
“쿠, 쿨럭….”
기사 하나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무기들은 바로 옆의 또 다른 기사를 향해 날아간다.
기사의 수가 줄어들수록 한 사람에게 달라붙는 무기의 수는 증가했고, 아무리 엑스퍼트급 기사라 하더라도 수십 개의 무기를 혼자 감당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X발! 이게 뭐야!!”
챙! 탱!
밀려났던 아머유저들이 강력한 마나블레이드를 앞세워 무기들을 쳐내고 다시 합류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불과 3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아머유저가 아닌 일반 기사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뭉쳐! 뭉쳐서 막아라!”
무기 하나하나를 놓고 봤을 땐 그렇게까지 큰 위협이 아니었다.
여러 기사들이 뭉쳐서 공격 범위를 줄인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라트렐의 외침에 아머 유저들이 삼삼오오 뭉쳐서 무기들에 대항하자 더 이상의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잊고 있었다.
진짜 그들의 상대는 무기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파바밧, 서컹, 푸슈슉!
“…커헉.”
“끄르르….”
갑작스레 피어오른 안개가 그들의 시야를 가린 사이, 황금빛 무언가가 번쩍이며 그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뭉쳐 있던 한 무리의 기사들은 몸이 위아래로 쪼개지며 허물어졌고, 안개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라울의 ‘환상 날개 돌진’이 펼쳐지며 기사들의 몸을 갈라버린 것이다.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라트렐의 눈이 터질 것처럼 커졌다.
‘오, 오러…?’
그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라울의 검끝과 날개에 맺힌 기운은 마나 블레이드가 아니라 분명 ‘오러’였다.
만약 오러가 아니라면 아무리 하급 파워아머라 하더라도 저렇게 단번에 쪼개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론 어느덧 엑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오른 라울이 순간적으로 힘을 쥐어짜 만들어낸 ‘임시 오러 블레이드’였다.
하지만 라트렐에겐 라울의 경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임시든 뭐든 오러 블레이드는 오러 블레이드였으니까.
“…후, 후퇴를.”
라트렐이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려는 사이, 안개 사이로 황금빛 번개가 몇 번을 더 헤집고 지나갔다.
그리고 옅어진 안개 사이로 보이는 멀쩡한 실루엣은 채 스물이 되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라울은 어느새 그들을 지나쳐 남작들이 있는 본진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 살았다.’
여전히 일부 무기들이 그와 기사들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오러에 대한 공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퇴, 퇴각! 일단 전장을 이탈한다!”
정신을 차린 라트렐이 살아남은 기사들을 모아 탈주하려 했지만.
“어딜 가시려구?”
투캉! 푸확!
“크헉!”
어느새 다가온 퍼스트 기사단의 랜스 차징이 그들을 덮쳤다.
엑스퍼트 이상만 200명에 아머 유저가 40명이나 포함된 퍼스트 기사단 단체 돌격의 위력은 파괴적이었다.
라울의 무기들이 갉아먹은 파워아머 역장이 유리장처럼 깨져버렸던 것이다.
“제에엔장!”
차징에 튕겨나가 바닥을 나뒹군 라트렐이 벌떡 일어나 다시 달려오는 기마를 향해 커다란 마나 블레이드를 날렸다.
쿠과광!
드드드득.
기사단의 차징 역장이 일그러지며 살짝 구멍이 뚫린 틈으로 기사의 창과 라트렐의 대검이 맞닿아 있었다.
라트렐은 뒤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뚝심 있게 버텼고, 마침내 눈앞의 기사를 멈춰 세울 수 있었다.
라트렐뿐만 아니라 엑스퍼트 상급의 아머유저 몇몇이 그런 식으로 기사단 돌진을 막아낸 상황.
하지만 퍼스트 기사단을 이끌던 간부들은 흐트러진 대열을 멈춰 세우지 않았다.
“멈추지 마라! 우리는 마스터의 뒤를 따른다!”
그리고 퍼스트 기사단의 돌진이 지나가고 나자 제2파가 몰려왔다.
“감히 애쉬튼 백작가에 이빨을 들이민 잡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아이언 베어 기사단 50명의 기사들이 라트렐 등 아머유저에게 발목 잡힌 퍼스트 기사단원들에게 합류했다.
겨우 열 명도 남지 않은 남작 연합의 아머 유저들은 수십의 기사들에 포위된 채 힘겨운 저항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당장 그들과 칼을 맞대고 있는 이들 중에도 아머 유저가 포함되어 있었고, 사방 어디를 봐도 온통 적들뿐이었다.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보병들의 전열까지 확인한 그들은 깨달았다.
‘이제는 도망치기도 글렀구나.’
쩔그럭.
그들은 하나둘 무기를 바닥에 버리고는 투항하기 시작했다.
* * *
“비켜라!”
라울의 호통에도 기어이 앞을 막는 병사들이 있었다.
다른 병사들이 무기까지 버리며 도주할 때 끝까지 싸울 의지를 버리지 않은 걸 보면 상당한 정예병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무 부질없는 짓이었다.
슈아앙, 퍼버벅!
라울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무기들이 날아와 병사들을 말 그대로 날려버렸다.
굳이 병사들을 학살할 생각은 없었기에 날이 아닌 검면이나 무기 자루로 때렸지만, 붕붕 떠서 날아간 이들이 무사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라울의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무기의 군단에 쓸려나갔고, 라울은 순식간에 남작 연합의 지휘 막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뭐, 이럴 줄 알았지.”
물론 이미 지휘부는 도주한 뒤였고, 썰렁한 막사만 남아 있었지만 라울은 실망하지 않았다.
이미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케인을 우회시켜 퇴로를 차단해 놓았기 때문이다.
‘자, 그럼.’
라울이 적 본진에 꼽혀 있던 대장기를 힘차게 뽑아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