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6
제16화
스르륵.
해가 저물며 드리워지는 나무들의 그림자 사이로 망토를 걸친 세 사내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어깨너머로 비스듬히 걸친 활. 허리춤에 메인 단검집과 가죽조끼에 빽빽이 꽂혀 있는 비수들이 눈에 띄었다.
나무 둥치에 몸을 숨긴 이들 중 가장 선두에 위치한 남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숲 사이를 노려보았다.
‘저곳이군.’
바닥에 새겨진 흔적을 손으로 살짝 짚어본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를 박찼다.
타닷.
놀랍게도 단숨에 3m 높이의 나뭇가지 위로 뛰어오른 그의 모습이 이내 그림자처럼 흐릿해졌다.
그의 이름은 피어스. 애쉬튼 백작가의 골든 베어 기사단 소속 기사이자 라울을 호위하고 있는 세 명의 정규기사 중 한 명이었다.
피어스는 나뭇가지 위에서 은신한 채로 얼마 전 새로 배운 기술 [간파]를 사용했다. 눈으로 마나가 몰려드는 기묘한 느낌과 함께 새로운 것들이 시야에 잡혔다.
50m 정도 떨어진 작은 바위 암벽. 덩굴이 무성하게 뒤덮은 암벽이 검붉은 색을 띠며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조금 더 눈에 마나를 집중하자 숨겨져 있던 것들이 확연하게 나타났다.
암벽이라 생각했던 곳에 누군가가 만든 커다란 나무문이 양쪽으로 달려 있었고 그 앞의 수풀에는 활을 든 두 명의 남자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환상 마법진? 결계? 어쨌든 정말 공자님이 말씀하신 대로구나.’
피어스는 내심 감탄하며 길드 통신으로 라울에게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5분 정도면 도착하니 대기하라는 말에 피어스는 겨누고 있던 활을 내려놓으며 경직된 몸을 풀었다.
나무에 기대 암벽을 감시하다 보니 문득 한 달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기사단은 군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상관의 명령에는 절대복종해야 하고 명령이 내려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따라야 했다.
그래서 백작가의 막내 공자가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기사들이 몸을 사렸다.
막내 공자 라울.
명문 무가의 자식임에도 검술에 소질이 없고 정신적으로 나약해 훈련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반푼이.
무를 숭상하고 출세를 원하는 기사들 입장에서 라울은 개털이나 다름없었다.
백작가의 후계자는 이미 1공자 딜런으로 내정되어 있었고 2공자 로렌스는 이미 엑스퍼트 상급에 도달한 검술의 천재였다.
그런 두 공자를 놔두고 누가 3공자 라울과 엮이고 싶겠는가?
그래서였을까. 3공자의 호위 임무는 이례적으로 지원자를 받았다.
3공자가 직접 지원자를 받겠다고 백작에게 부탁했다는데, 소식을 들은 기사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편 라울을 비웃는 이도 있었다.
아무리 검술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고 하지만 이전의 이미지를 씻어내기엔 그들이 봐온 것이 너무 많았다.
결국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고 그건 피어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직접 찾아오실 줄이야.’
라울은 한동안 기사단의 훈련장을 드나들더니 몇몇 기사들과 개별 면담을 가졌다.
다들 쓸데없는 짓이라 했지만 피어스의 생각이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피어스 경. 벽을 뛰어넘고 싶지 않아? 내가 도와주지.”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소리로밖에 들릴 수 없는 말.
하지만 라울은 직접 피어스의 검술을 펼쳐 보이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물론 피어스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제 겨우 소드 유저 경지에 오른 꼬맹이가 엑스퍼트 중급 검사에게 조언이라니?
하지만 라울이 돌아가고 다시 훈련을 시작한 피어스는 찝찝한 마음에 라울의 말을 되새기며 검술을 펼쳐보곤 화들짝 놀랐다.
평소에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던 고급 검식이 훨씬 부드럽게 펼쳐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운으로 넘겨짚었다고 생각하기엔 라울이 지적한 세 동작이 모두 그러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라울이 했던 다른 이야기들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피어스 경은 베어 크러쉬(애쉬튼 백작가의 검술)를 그대로 익혀선 대성하기 힘들 거야. 경은 힘보다는 민첩한 움직임에 장점이 있으니까. 그리고 경의 다른 특기들, 그대로 묻어 두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
사실 피어스는 검술도 훌륭했지만 활 쏘는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왜냐면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사냥꾼이었고 기사 수련생이 되기 전까지 그 밑에서 사냥을 배워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사가 된 이후로 활을 쓸 일은 많지 않았다. 골든베어 기사단의 주 무장은 양손 대검이었고 활은 보조 무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애초에 활로는 두꺼운 기사의 갑주나 중대형 몬스터들의 가죽을 뚫어내기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기사단 내에서도 그의 활솜씨를 아는 이들이 몇몇 없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라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라울 공자님은 오래전부터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는지도…. 하기는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내 검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궁술에 대해 알 수 있었겠어?’
피어스는 왠지 모르게 라울이 자신을 인정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정말로 라울이 그의 정체되어 있던 실력을 끌어올려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다음날. 피어스는 라울의 호위대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라울은 약속을 지켰다.
소드 엑스퍼트 중급에 머물던 피어스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상급의 단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라울이 제공해준 스킬북을 통해 자신의 특기를 더욱 갈고 닦을 수 있었다.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어. 공자님의 제안을 거절한 녀석들은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거야.’
그가 본 라울 공자는 둘째 형인 로렌스보다 뛰어난 검술의 천재였고 부하의 장점을 살려줄 수 있는 훌륭한 리더였으며, 신의 권능을 내려받은 신의 사자이기도 했다.
무슨 이유로 여태까지 실력을 숨겨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라울 공자의 진면목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첫 발자국을 떼는 것은 바로 오늘 이 순간부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휘리릭.
나무 위에서 몸을 날린 피어스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라울 공자님!”
* * *
라울은 옅은 황금빛이 일렁이는 눈동자로 멀리 떨어진 암벽을 바라보았다.
등급 : ???
규모 : ???
상태 : 사람의 시야를 조작하는 3서클 환상 마법진. 접근을 방해하는 3서클 기피 마법진이 펼쳐져 있음. 추가 정보를 얻으려면 마법진을 파훼하거나 내부로 진입하시오.
라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찾고 있는 장소가 확실했다.
‘여전하군. 도시는 달라도 아지트는 비슷한 구조라더니.’
정체를 알 수 없다고 되어 있지만 라울은 알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크라넨제국의 첩자들이 암약하는 아지트라는 사실을.
지금은 루벤왕국의 시작도시 미라로 와있지만 환생하기 전 배도현이 처음 시작한 곳은 용병국가인 마커스 왕국의 시작도시 중 하나인 이그넷이었다.
그곳도 미라와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도시에서 퀘스트를 받고 주변 평원과 숲에서 사냥하며 레벨업 하는 게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의 성장 방식이었다.
숲에는 몬스터 외에도 도시와 플레이어들을 노리는 도적단, 강도들이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 도적단 중에 일부는 단순한 도적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주변 귀족가의 사주를 받고 도시민들을 납치하는 노예상.
본업을 등한시하고 한탕을 노리는 용병단.
플레이어를 포섭하거나 납치, 협박하려는 각 세력의 첩자들이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질이 나쁘고 위협적인 곳이 바로 크라넨 제국 첩보부 [임페리얼 하운드]였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플레이어들의 성장을 방해했다.
직접 플레이어들을 사냥하기도 했지만 납치, 협박, 이간질, 선동, 회유 등을 통해 그들이 뭉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공작을 펼쳤다.
결국 게임 후반 거대 길드들이 왕국들을 배신하고 제국 측과 결탁하게 된 것도 임페리얼 하운드의 영향이 컸으니 라울의 입장에선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피어스 경.”
라울이 지시하자 피어스가 나뭇가지 위에서 활대에 화살 두 개를 동시에 걸고는 암벽을 향해 겨눴다.
쉬이익~ 푸슛!
경비 둘의 이마가 동시에 화살에 꿰뚫리며 절명했다.
입구 주변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라울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품속에서 작은 두루마리 두 개를 꺼냈다.
마법 길드에서 미리 구해온 3서클 마법 디스펠 스크롤이었다.
스크롤을 찢어 마법진을 해체하려던 라울이 잠시 멈칫하고는 마법진을 노려보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환생하며 얻은 두 눈은 눈앞의 마법진을 구성하는 마나의 흐름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문 뒤쪽에서 뻗어 나온 반투명한 마나줄기들이 암벽 앞 허공에서 기하학적 문양을 그리며 순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울은 스크롤을 집어넣고 허리춤에 메인 망고슈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마나를 집어넣은 채 가볍게 허공을 향해 두어 번 찔러 넣자.
쩌저정.
허공을 맴돌던 문양에 금이 가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감을 잡은 라울이 하나 남은 마법진의 가장 맥점, 여러 마나 줄기들이 교차하는 부분에 다시 한번 망고슈를 찔러 넣자 여지없이 마법진이 깨져버렸다.
‘좋은 걸 배웠군. 스크롤 사는데 돈이 덜 들겠어.’
마법 스크롤은 그 효용에 비해 지나치게 비쌌다. 안 그래도 돈 쓸 곳이 많은데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되어서 라울은 내심 기뻤다.
“잭슨과 닐은 작전대로 불나방들을 유인하도록 해. 진입 시기는 길드 통신으로 알려줄게.”
“네, 공자님.”
피어스 곁에 있던 두 병사가 고개를 숙이고는 수풀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은 라울 일행이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흔적을 지우는 한편 가짜 흔적을 통해 추적자들의 발걸음을 붙들 예정이었다.
두 병사가 사라지자 라울의 곁에는 필립, 제이크, 피어스, 세 기사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셋이야말로 라울이 선택한 기사단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제국의 아지트를 눈앞에 두고도 라울은 전혀 긴장하거나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맛있는 사냥감을 눈앞에 둔 맹수처럼 눈을 빛내고 있었다.
“포로는 필요 없어. 모조리 사냥한다. 그리고 마무리는 무조건 ‘이것’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은 잊지 말고.”
라울은 어느새 꺼내든 뾰족한 레이피어를 허공에 흔들며 말했다.
“왜 굳이 이런 쇠꼬챙이를 써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명령대로 합죠. 어차피 도적놈들 잡는데 무기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으니….”
제이크가 맘에 안 든다는 듯 레이피어로 바닥을 푹푹 쑤시며 대답했다. 라울은 그런 제이크를 무시한 채 피어스에게 말했다.
“피어스 경은 납치된 사람들의 위치부터 파악하도록. 특히나 나키아 양의 동생 ‘니키’는 무조건 구해야 하니 최우선적으로 그녀를 찾아.”
“맡겨주십시오.”
마지막으로 라울은 필립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그는 딱히 지시할 필요가 없는 믿음직한 사내였으니까.
“그럼 진입한다.”
염동력으로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연 라울이 암벽 속 동굴로 발을 들였다.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흐릿한 비명과 피비린내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