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7
제17화
어두컴컴한 동굴 통로를 소리 없이 내려가길 십여 분.
화르륵.
통로 끝자락에서 횃불이 불타오르는 소리와 은은한 빛이 아른거렸다.
라울과 눈을 마주친 피어스가 슬쩍 고개를 숙이곤 은신술을 펼치며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잠시 후. 피어스가 적진에 잠입했다는 통신이 들어오자 라울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통로 너머는 커다란 공동(空洞)이었다.
천장은 10m가 넘어 보였고 전방에는 3m 높이의 목책이 공동을 가로지르며 좌에서 우로 펼쳐져 있었다.
목책까지의 거리는 대략 30m. 맘먹고 달리면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도착할 거리였다.
‘레벨이 30, 31…. 일반적인 도적놈들과 다를 건 없군.’
아직 그들이 침투한 사실을 모르는지 목책 위에는 네댓 명의 경계병만이 빈둥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라울은 손짓으로 각자의 목표를 지시했다. 제이크가 왼쪽, 필립이 가운데, 그리고 라울이 오른쪽이었다.
이윽고 호흡을 가다듬은 라울이 수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휘리릭!
검은 야조가 어둠을 가르고 날아가듯 한걸음에 3~4m씩 쭉쭉 달려나간 라울은 순식간에 목책 앞에 도달했다. 그리고 염동력을 발판삼아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누ㄱ…!”
갑작스레 솟구친 라울과 눈을 마주쳤던 경계병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을 열었지만 어느새 날아든 비수 하나가 그의 이마를 파고들었다.
털썩. 털썩.
두 명의 경계병이 쓰러짐과 동시에 목책에 발을 디딘 라울은 등 뒤에 걸쳐 맨 활을 꺼내 들어 시위를 매겼다.
피잉~퍽!
활시위가 한 번 튕길 때마다 목책 내부에 있던 적 하나의 목숨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건 필립과 제이크가 향한 곳도 다를 바 없었다.
채 30초도 되지 않아 20여 명의 적이 쓰러졌다. 하지만 아직 목책 내부에는 백 명이 넘는 적들이 남아 있었다.
“적이다!!”
“목책을 빼앗겼다!!”
“죽여!!!”
목책 내부에 있던 천막과 오두막에서 무장한 도적들이 개미 떼처럼 튀어나왔다.
복장도 제각각이었고 무질서하게 달려드는 것이 확실히 정규군 병사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일반적인 도적으로 보기엔 무장이 너무 충실했다.
슈욱~ 텅!
어느새 대부분의 도적들이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철갑옷을 입은 이들은 날아오는 화살을 무기로 쳐내는 묘기까지 보이고 있었다.
거기에 일부 도적들은 활과 석궁을 들어 라울 일행에게 반격을 해왔다.
쉐에액! 푸슝!
10여 발의 화살과 볼트가 라울을 노리고 날아왔다. 하지만 라울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기계적으로 적들을 향해 화살을 쏘길 반복할 뿐이었다.
이대로 날아온 화살에 벌집이 되는가 싶은 그 순간 화살과 볼트의 헤드가 살짝 흔들리며 라울의 곁을 스쳐 지나갔고 몇 개는 라울의 몸 바로 앞에서 힘없이 튕겨 나갔다.
염동력으로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날아드는 화살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필립과 제이크가 목책 아래로 뛰어내려 적들과 근접전을 시작한 탓에 궁수들의 타겟이 라울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챙~ 채쟁!!
“죽어라!!”
“끄악!!”
양떼 무리에 뛰어든 사자처럼 필립과 제이크가 적들을 휩쓸었고 그들 주변에는 피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적들은 그들이 내지르는 레이피어를 단 한 번도 막아내지 못하고 짚단처럼 픽픽 쓰러져 내렸다.
후두두둑. 쉬릭!
라울의 주변에 떨어져 내린 화살이 수십이 넘어갈 즈음, 어느새 다가온 적들이 목책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 수가 대략 30은 넘어 보였다.
“저 새끼 조져!!”
“빨리 목책을 장악해! 적이 더 있을지 모른다!!”
지휘관급으로 보이는 철갑옷의 도적 몇이 라울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다가온 적들을 확인한 라울이 드디어 활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리고 품속으로 들어갔던 양손의 손가락 사이엔 검게 칠한 비수(匕首)들이 예기를 내뿜었다.
“죽었!!”
목책에 오른 도적이 도끼를 번쩍 들고는 라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휘리리릭. 파팡!
라울의 몸을 중심으로 돌풍이 터져 나와 도적을 뒤로 밀어냈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화살과 볼트 수십 개가 허공으로 떠올라 라울의 몸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뭐, 뭐야??”
“마법??”
뜻밖의 광경에 도적들이 움찔했고 그것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라울이 양손의 비수를 날리는 것과 동시에 소용돌이치던 화살과 볼트 수십 개가 도적들을 향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퍼버벅! 푸슝!! 촤라락!
“끄악!!”
“커헉!”
“끄르르….”
수십 명의 도적이 한순간에 쓸려나갔다.
그나마 버티고 서 있는 것은 철갑옷을 입은 도적 다섯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 역시도 노출된 부위에 화살과 비수 한두 개는 박힌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역시 아직은 화력이 부족하군. 철갑옷을 뚫으려면 념(念)을 좀 더 실어야겠어. 일단은….’
조금은 불만족스런 표정의 라울이 허리춤에 매인 레이피어와 망고슈를 꺼내 들고 남아 있는 도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넋이 나간 도적들을 상대론 굳이 ‘슈팅스타’를 펼칠 필요도 없었다.
가볍게 레이피어로 도적들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확인사살까지 마친 라울이 다시 목책 안쪽으로 눈을 돌렸다.
“도, 도망쳐!!”
“괴물들이다!!!”
“사, 살려…!”
필립과 제이크는 도적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고 있었다.
이미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도적들이 도망치고 있었지만 그들보다 족히 두 배는 빠른 속도로 따라붙으며 학살을 이어갔다.
푸확!
제이크의 레이피어가 도적 하나의 몸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하필 그 장면을 목격한 라울이 이마를 짚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제이크 저 자식. 레이피어 쓰기 싫다고 시위 하는 거구만.’
레이피어는 급소를 노려 적을 무력화하는 찌르기용 무기였다.
날 두께가 손가락 굵기밖에 안 되는 그런 무기로 몸을 쪼개버린다는 건 비효율적인 움직임일 뿐만 아니라 마나 소모도 극심한 행동이었다.
애초에 레이피어를 고집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시체에 가급적 애쉬튼 백작가 검술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혹시나 살아남는 놈이 있더라도 이쪽의 정체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제이크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대부분의 적은 찌르기로 해치웠지만 답답하다는 듯 한 번씩 적을 쪼개버리고 있었다.
라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활을 집어 들었다.
도망치는 잔당을 사냥하려면 칼을 들고 쫓는 것보다 활이 훨씬 효율적이었으니.
그에 호응하듯 반대쪽에서 피어스가 쏜 화살이 도적들을 꿰뚫고 있었다.
적을 정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 * *
“죄송합니다, 공자님. 감옥을 다 뒤져봤지만 니키 양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잔당 정리가 끝나고 한자리에 모인 피어스가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라울은 피어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어디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가니까. 잡혀 있던 주민들에겐 설명했지?”
“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으니 한곳에 모여 기다려 달라고 전했습니다.”
감옥에는 실종되었던 주민 30여 명이 갇혀 있었다.
그들을 풀어주고 옷과 먹을 것을 나눠줬지만 당장 도시로 데려갈 순 없었다.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아 있으니.
“그런데 공자님, 진짜로 아직 적들이 숨어 있겠습니까? 수준이 좀 높긴 했어도 그냥 도적놈들인 거 같은데?”
제이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라울은 팔짱을 낀 채 눈을 빛내며 되물었다.
“그렇긴 한데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첫째. 분명 이곳으로 납치되어 온 니키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것. 둘째, 도적놈들의 수가 150이 넘는데 특출난 실력자가 없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입구에 설치된 마법진의 존재. 혹시 여기서 마법사 본 사람?”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수뇌부와 중요 인질들은 다른 곳에 있지 않겠어?”
제이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 그런데 어딘지 찾지 못하면 말짱 헛수고 아닙니까? 안 그러냐, 피어스?”
“안 그래도 수상쩍은 곳을 몇 군데 봐두었습니다. 하지만 제 실력으론 확신하기가 어렵더군요. 아무래도 굉장히 수준 높은 마법진이나 장치가 깔려 있는 듯합니다.”
피어스의 말에 라울이 어깨를 툭 치며 미소 지었다.
“한 달도 안 됐는데 그 정도 수준이면 훌륭하지.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피어스 경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 다들 따라와. 짐작 가는 곳이 있으니까.”
전생에 제국 놈들의 아지트를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놈들의 습성에 대해서 라울만큼 잘 아는 이도 드물 것이다.
라울이 향한 곳은 아지트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오두막.
비슷하게 생긴 오두막 대여섯 개가 제멋대로 모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라울은 방에 놓인 침대 근처를 쓱 훑어보고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길 두어 차례, 네 번째 오두막에 들어선 라울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다들 준비해. 이제부터 진짜가 튀어나올지 몰라.”
스르릉. 척.
모두가 무기를 꺼내 들자 라울이 침대를 걷어차고는 바닥을 향해 레이피어를 내리찍었다.
쿠웅.
나무 바닥을 내리찍은 거라 생각하기 힘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쩌저적 소리가 나며 바닥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휘우웅.
냉기 섞인 바람이 흘러나오는 바닥에는 폭 2m 정도의 계단이 나타나 어두운 지하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숨죽이고 비밀통로를 내려다보고 있던 라울이 재빨리 몸을 뒤로 빼며 외쳤다.
“온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언가가 붉은 안광을 흘리며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크르르릉!
챙!!
“큭. 뭐야?”
갑작스런 공격을 레이피어로 쳐낸 제이크가 반 발짝 물러서며 성난 음성을 외쳤을 때, 통로 근처의 바닥이 박살나며 시뻘건 핏덩어리 같은 괴물체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왔다.
“물러서지 마! 퍼져나가면 더 상대하기 곤란하다!!”
어느새 적들의 정체를 눈치챈 필립이 고함을 치며 칼을 내질렀다.
라울에게도 한 놈이 달라붙었다.
라울은 족히 30cm는 되는 듯한 기형 손톱을 망고슈로 쳐내고 적의 허리춤을 향해 레이피어를 찔러 넣었다.
푸슉!
끼에엑!!!
일반 남성의 두 배가 넘는 커다란 상체를 지닌 괴생명체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곤 경련을 일으켰다.
불규칙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줄기와 시퍼런 핏줄, 핏덩어리처럼 시뻘건 피부에 군데군데 뱀 껍데기처럼 비늘이 붙은 곳도 있었다.
얼굴은 염산에 녹아내린 것처럼 피부가 흐물거렸고 눈코입의 위치가 제멋대로 뒤바뀌어 있었다.
거기에 오크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송곳니, 상어처럼 이중으로 된 이빨들이 쉴 새 없이 부딪치며 딱딱소리를 냈다.
“제국 마병이다!! 사람하곤 급소의 위치가 달라!! 무조건 목을 잘라내야 해!”
필립이 상대하던 적의 목을 뎅강 베어내며 외쳤다.
“이런 씨발! 제국 새끼들이 왜 여기서 설치고 지랄이야!”
제이크가 욕을 내뱉으며 레이피어에서 20cm 가량의 마나 블레이드를 뽑아내 휘둘렀다.
피어스도 양손에 쥔 망고슈 두 자루를 빛내며 마병의 목을 찔러 갔다.
라울은 기사들의 재빠른 대처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황금색 눈동자로 제국 마병을 노려보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