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8
제18화
*레벨 : 41
*종류 : 제1식 크라넨 제국 마병
*계급 : 실험체/훈련병
*소속 : 임페리얼 하운드 미라 지부
*상태 : 광폭화
*특성 : ???
‘후우. 다행이군. 역시 예상했던 대로야.’
마병은 아직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아직 1년은 있어야 플레이어들이 이곳에 발을 디딜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생에 배도현이 시작도시의 제국 아지트를 처음으로 공략한 것은 게임이 시작되고 나서 6개월이 지난 후였다.
초반부터 치고 나간 선두권 플레이어들이 51레벨을 달성해 2차 전직을 마치고 시작도시를 졸업할 무렵 시장의 대규모 토벌 의뢰가 등장했다.
전직을 마친 플레이어 수십 명과 길드 연합 수백 명으로 이루어진 토벌대는 자신만만하게 제국의 아지트를 들이쳤고 무난하게 요새를 차지했다.
하지만 숨어 있던 진짜 제국 병사들이 쏟아져 나온 순간. 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배도현을 비롯한 몇몇 랭커들만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도망쳤고 이후 6개월간 그 누구도 제국 아지트 근처에 접근하지 못했다.
당시 등장했던 제국의 병사들은 미완성이 아닌 완성된 마병이었고 평균 레벨도 50에 가까웠다. 겨우 50레벨 초반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마병은 아직 미완성 상태에 레벨도 낮았다. 게다가 라울의 세 호위는 레벨 80이 넘는 엑스퍼트 상급의 기사들이었다.
아무리 제국의 마병이 동일 레벨대의 몬스터와 인간들에 비해 훨씬 강력하다 해도 라울 일행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 증거로 기세 좋게 뛰쳐나온 마병들이 차례차례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으니.
라울도 어느새 기사들 틈에 합세하여 마병을 공략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마병의 목을 베어내는데 집중했다면 라울은 한결 편안하게 마병을 상대했다.
‘오른쪽 상단!’
왜냐하면 라울에게는 불규칙하게 배치된 마병의 급소가 한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라울은 그저 오러 소드로 마병의 갑주와 질긴 피부를 슬쩍 찔러주면 그만이었다.
철푸덕.
마지막 마병이 피웅덩이 속에 고개를 처박았다. 어느새 오두막은 박살이 나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오두막 주변으로 수십 구의 마병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런 괴물 같은 새끼들!”
제이크가 마병의 머리를 발로 차며 씩씩거렸다.
기형적으로 생긴 마병들은 팔다리가 잘려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고통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그들은 같이 죽자는 듯 육탄 공격을 감행했고 육체 능력도 상급의 소드 유저에 못지않았다.
“제국 마병이 어떻게 이곳까지 와서 숨어 있었을까요? 아무리 자유 도시라지만 왕국 바로 앞마당이나 다름없는데….”
피어스의 물음에 필립이 잠시 마병을 내려다보고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것보다도 어떻게 할까요, 공자님. 아무래도 더 진입하기엔 상당히 위험해 보입니다만.”
호위 입장에선 당연한 말이었지만 라울은 즉시 반박했다.
“진입한다. 여기서 물러날 순 없어.”
“그러면 지원군이라도 불러서….”
피어스의 조언에도 라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질들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그리고 놈들이 외부로 연락을 취하기 전에 처리해야 해!”
라울이 강경하게 말하자 필립과 기사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채비를 갖췄다.
“공자님, 대신 이제부터는 뒤로 물러나 계셔야 합니다. 적들은 저와 제이크가 맡을 테니 피어스와 함께 실종자들의 수색에 집중해 주십시오.”
라울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뒤로 물러섰다.
애초에 제국의 아지트를 노린 건 필립을 비롯한 기사들을 믿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라울이 엑스퍼트에 진입했다고 해도 아직 기사들을 따라가기엔 많이 부족했다.
‘아쉽지만 이번엔 욕심부리지 말자. 어차피 내가 직접 처리하지 않아도 되잖아.’
길드와 파티 시스템으로 인해 기사들이 획득하는 경험치의 일부가 라울에게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었다. 괜히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나도 남들처럼 쩔 한번 받아보지 뭐. 그간 고생했잖아.’
전생에는 남들보다 항상 앞서 나가는 랭커였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일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용돈 벌이로 쩔을 해주거나 버스 기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든든한 부하들이 있었다. 따로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들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인벤토리에서 방패를 꺼내든 필립과 제이크가 나란히 지하로 향했다. 라울은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 * *
“이런 똥물에 튀겨 죽일 놈들!”
평소에도 이런저런 감정표현이 많은 제이크였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화가 많이 난 듯했다.
비단 제이크뿐만이 아니었다. 필립, 피어스, 심지어 라울조차도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온 일행을 맞이한 것은 창살로 이뤄진 수많은 감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즐비한 실험실이었다.
문제는 무엇을 실험하는 실험실인가 하는 점이었다.
실험실 곳곳에 굴러다니는 인간과 몬스터의 것으로 보이는 신체의 일부분들.
배양기로 보이는 커다란 유리 시험관 안에 담긴 정체불명의 생명체들.
폐기된 것처럼 보이는 시체 더미들과 욕조에 가득한 핏물.
플라스크에 담긴 장기들과 불길한 색상의 시약들.
이 모든 것이 말해주는 것은 단 하나.
“하, 정말 대담하군요. 타국의 영역에서 [키메라]를 연구하다니. 그렇다면 아까 상대한 마병들은…?”
피어스의 탄식에 라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라에서 납치한 시민들로 만든 거겠지. 제국 놈들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미친놈들이었을 줄이야.”
과거에도 제국 아지트에서 종종 마주했던 장면이지만 여전히 소름이 끼쳤다.
인간을 실험동물처럼 다루고 괴물로 만들어 전쟁 도구로 사용하다니. 아무리 게임 속이라 해도 현대 지구인이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환생하고 난 뒤 라울은 제국에 귀의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큰 변수가 없다면 10년 후 제국과 거대길드연합이 대륙의 패권을 잡게 된다. 그러니 일찌감치 승자의 편에 서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제국 황제는 미치광이지. 그의 수하가 된다는 건 폭탄을 들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어.’
황제의 정체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신과 같은 능력을 지녔고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라는 말부터 시작해 악마와 계약을 한 흑마법사라거나 대륙을 집어삼키기 위한 마족의 앞잡이라는 얘기까지.
플레이어 중에서도 제국 황제를 직접 만났다는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었으니 소문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황제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황실의 핏줄을 잇지 않은 모든 인간을 그저 자신의 도구나 노예라 생각했다.
그래서 제국은 모든 제국민들을 쓸모에 따라 철저하게 계급으로 구분해 놓았고 그들은 평생을 노동에 시달리다 쓸모가 다하면 폐기처리 되었다.
실험체가 되거나 제국 마병들의 먹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능력 있는 자들은 대우를 받았다. 부와 명예는 기본이고 각자가 원하는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실수를 저지르거나 황제의 심기를 거스른다? 그러면 아무리 대단한 자라 하더라도 살아남기 힘들었다.
과거 황제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왕국에 투항했던 장군이 있었다.
엑스퍼트 최상급의 기사였던 그 장군은 무사히 국경을 넘어 귀순했고 왕성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대전에서 왕을 알현하던 도중 온몸이 터져나가며 폭사하고 말았다.
배도현 역시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기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장군의 어깨에 새겨져 있던 작은 문신이 온몸으로 퍼져나간 후 붉게 변했다 폭발해버리는 장면을.
‘[황제의 낙인]을 찍고 평생 눈치 보며 살아갈 생각은 없다.’
애초에 커넥트 세상에 들어온 이유가 자유롭고 차별 없는 세상을 원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의 끝판왕이나 다름없는 제국에 빌붙어 남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생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물며 멀쩡한 사람의 몸을 잘라 몬스터와 접붙여 괴물을 만드는 일을 어떻게 용납하겠는가?
격한 감정을 애써 억누른 라울과 일행들은 마침내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대학교 대강당 정도 크기의 인공 동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사 넷, 마법사 셋, 제국마병 열입니다. 마법사들은 동굴 뒤쪽에 있는 커다란 마법진을 활성화하는 중으로 보입니다.」
피어스가 원거리 정찰을 마치자 필립이 입을 열었다.
“기사들은 내가 맡는다. 제이크 너는 공자님 곁에서 다가오는 마병들을 처리하고 피어스는 마법사들을 맡아. 공자님은 약속대로 후방에서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일행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크는 뭔가 불만스런 표정이었지만 필립의 매서운 눈초리에 입을 열지 못했다.
쉬이익~퍽!
“침입자다!!”
“마법사를 보호해!!”
시작은 피어스부터였다.
은신을 통해 적의 측면으로 이동한 그가 ‘파워샷’ 스킬로 마법사 하나의 머리를 꿰뚫고는 마법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뒤이어 필립이 기사들을 향해 뛰어들었고 제이크는 라울의 앞에서 방패를 들고 마병의 진입로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라울은.
파르르륵.
통짜 쇠로 만들어진 화살이 비명을 지르듯 진동하며 노란빛을 머금고 있었다. 마나를 화살에 축적시켜 파괴력을 극대화 시키는 C랭크 궁수 전용 스킬 [차징샷]을 발동한 것이다.
30초간의 충전 덕에 농밀한 마나로 가득 찬 화살을 마법사에게 겨눈 라울이 정신을 집중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두 마법사는 자신의 몸 주변에 반투명한 방어 마법인 실드를 펼친 상태였다.
3서클 마법인 실드는 일반 화살 정도는 가볍게 막아내고 마나가 담긴 화살도 일정 수준까진 막아낼 수 있었다.
‘마법사들의 실드를 꿰뚫으려면 좀 더 강하고 정밀한 샷이 필요해.’
목표는 5서클 마법사. 저들 중 가장 경지가 높은 마법사였다. 그만큼 실드의 강도도 강할 게 분명했다.
라울은 활대에 염동력을 덧씌웠다. 활의 복원력을 키워 화살의 위력을 높이려는 생각이었다.
또한 화살이 발사되는 궤적에 마치 총열처럼 기다란 염동력의 통로를 만들었다.
정확도를 높이고 화살의 사행현상(蛇行現象)을 돕기 위해서였는데, 총알이 회전하며 관통력을 높이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그리고 마침내!
퉁 소리와 함께 발사된 라울의 황금빛 화살이 한줄기 레이저처럼 전장을 관통하여 마법사의 실드에 도달했다.
퍽, 퍼벅!!
두 개의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하나는 마법사의 실드가 터져나가는 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마법사의 머리가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증표였다.
‘좋았어!’
약간 무리했는지 현기증이 났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마법사 셋 중 둘이 쓰러졌으니 강제로 텔레포트 게이트를 열어 도주하려던 저들의 시도는 무산되었다.
이제 이 자리의 적들을 모두 처리한다면 쓸데없는 소식이 제국 쪽에 전해지는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적 지휘관급 기사가 외쳤다.
“큿, 퇴로가 막혔다. 모두 봉인을 풀고 적을 멸살하라! 황제 폐하를 위해!!”
“황제 폐하를 위해!!!”
함성을 외친 적들의 기세가 한순간에 변했다. 그들의 몸에 새겨져 있던 문신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