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76
제176화
드로이젠의 끈질긴 설득과 협박은 페리도 탑주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어차피 그도 성공하리라 생각하고 오지는 않은 듯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그럼 내일 또 뵙지요.’ 하며 웃음 짓고 떠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수십 년을 길러주고 가르쳐준 스승을 배신한단 말인가?
그게 무엇이든 페리도 탑주는 드로이젠을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놈을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하지 못한다는 게 한이로구나.’
조금만 더 일찍 알아챘다면, 놈이 탑을 떠나기 전에 정리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드로이젠이 떠난 후 페리도는 다시 무기력한 노인처럼 의자에 축 늘어졌다.
놈의 의도는 뻔했다.
이렇게 매일 찾아와서 그를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들어 결국엔 굴복시키는 것.
그래야 스카일러 마탑에서 놈의 실적을 인정해줄 테니.
‘어림없다 이놈!’
마음속으론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지만, 페리도는 점점 힘에 부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드로이젠 놈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그가 버티고 있는 와중에 마탑의 빚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고, 스카일러 마탑의 타깃이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거래처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무기력하게 파산하게 된다면 놈의 말처럼 마탑 식구들은 탑의 빚을 갚을 때까지 공방에 갇혀 노예처럼 살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탑주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페리도의 눈에 약간의 생기가 돌아왔다.
‘그래, 아직 끝이 아니지.’
며칠 전 마법사 협회에서 방문의사를 전해왔다.
알아본 바, 스카일러 협회의 입김이 들어간 인사는 아니었기에 고민 끝에 만나보기로 결정하긴 했다.
‘다리오 마법사라고 했던가?’
손님 한 명과 함께 찾아온다고 했기에 허락하긴 했지만,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거대 마탑 세력에 거스르면서 페리도 마탑을 도와줄 이가 왕국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으니.
“실례하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머리가 살짝 벗겨진 마법사와 어려 보이는 청년 하나가 안으로 들어섰다.
‘호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을 정도로 감정이 무뎌진 페리도 탑주였지만, 청년을 보는 순간만큼은 감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저게 정녕 사람의 얼굴과 몸이란 말인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그가 70년 넘게 살아오며 만나본 그 어떤 이보다 눈부신 외모였다.
게다가 잘 단련된 근육과 신체 비율은 마법사인 그가 보더라도 완벽해 보이는 육체였다.
정말 하늘이 내려준 외모와 육체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감탄은 딱 거기까지.
‘아쉽게도 마나의 축복은 받지 못한 모양이구나.’
그의 몸에서 별다른 마나의 향기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는 이내 관심을 끊고 협회의 마법사에게 말했다.
“방문해 주신 걸 환영합니다만, 아시다시피 탑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군요. 방문 목적을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직설적인 그의 화법에 다리오 마법사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귀 탑에 벌어진 일에 대해선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협회에서 크게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례적인 인사와 사과를 건넨 다리오 실장은 바로 라울을 소개했다.
“루벤 왕국에서 찾아오신 라울 드 애쉬튼 자작님이십니다. 실은 오늘 마탑을 방문한 것은 라울 자작님의 요청 때문이었습니다.”
“늦었지만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울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페리도 탑주가 적당히 받아넘기고는 물었다.
“타국의 자작님께서 우리 마탑은 무슨 일로 찾으신 겁니까? 탑의 사정 때문에 새로운 파워아머 주문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페리도 탑주는 살짝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았는데 자작이라. 애쉬튼이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가문이긴 한데….’
“우연찮게 페리도 마탑의 사정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와 관련해서 조금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해서 말이죠.”
‘흠.’
나이 어린 타국의 귀족.
딱히 신뢰가 가지 않는 대상이었고, 마탑의 사정을 외인에게 얘기한다는 것이 조금 꺼려졌다.
하지만 드로이젠의 방문으로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고, 이미 알 사람을 다 알고 있는 일이기에 숨길 것도 없단 생각이 들었다.
“뭐, 잠깐이라면.”
그렇게 한동안 페리도 마탑주와 라울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러니까 지금 우리 페리도 마탑을 인수하고 싶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크리스틸렌을 찾아온 것은 마탑을 인수하기 위해서니까요. 만약 허락하신다면 제가 책임지고 탑을 둘러싼 지저분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너무나도 자신 있는 라울의 말에 페리도 탑주는 오히려 불신감이 생겼다.
무려 왕국 3대 세력 중 한 곳과 얽혀 있는 사안이었다.
그리고 정확한 액수는 말하지 않았지만, 마탑이 지고 있는 빚은 일개 자작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젊은 패기는 인정하지만, 아닌 건 아닌 게지.’
그의 말을 믿는다 해도 문제는 산더미 같았다.
애초에 그는 아직 마탑을 매각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물며 외국이라니?
솔직히 이 나이가 되도록 레슬리 왕국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와서 타국으로 마탑을 옮겨 새로 시작한다는 건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죄송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마탑은 마법사들의 성지이자 요람입니다.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이 운영하는 마탑이라니. 그건 마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탑이 아무리 세속화되고 상업적으로 바뀌어 왔다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었다.
페리도 탑주는 자신의 마탑이 마법이 뭔지도 모르는 일반인의 손에 넘어간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페리도의 거절에도 라울은 별반 실망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딱히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아니, 그게 무슨.”
딱 봐도 기사 수련을 받아온 라울의 호기 넘치는 발언에 페리도가 발끈하려던 그 때.
화르륵.
라울의 양 손바닥 위로 사람 머리통만 한 화염구 두 개가 나타나 맹렬하게 불타올랐다.
“……!”
“맙소사. 라울 자작님, 마법도 쓰실 줄 아셨습니까?”
페리도 탑주는 놀라서 굳어버렸고, 다리오 실장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파이어볼 더블 캐스팅! 적어도 4서클, 아니 5서클 수준은 된다는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도….’
페리도 탑주가 잠시 느꼈던 그 강렬한 마나의 향기와 알 수 없는 힘.
그걸 그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숨기고 있었다는 뜻은.
‘나보다 경지가 높은 실력자라고? 저 나이에?’
비로소 페리도 탑주는 라울이 보여주는 자신감과 패기의 근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눈앞의 젊은 자작은 괴물이었다.
그것도 도무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진짜 괴물.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라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탑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마탑을 운영할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태연하게 묻는 라울이었지만, 속으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더 집중해! 산통 깨지 말고. 어허, 마나 응집이 흔들린다.」
라벨이 머릿속에서 조언을 빙자한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스킬로 마법을 발동했다면 편하고 좋았겠지만, 진짜 마법 전문가인 탑주 앞에서 그런 잔재주를 부린다면 인정은커녕 의구심만 더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덕분에 라울은 아직 완벽하게 몸에 익진 않았지만, 직접 마법을 시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발현만 하면 돼서 다행이네.’
무시무시한 화력을 자랑하는 파이어볼이지만, 적에게 도달할 때 즈음이면 성냥불이나 다름없는 반쪽짜리였으니까.
어쨌든 라울의 쇼는 잘 먹혀든 모양이었다.
내내 무표정하던 페리도 탑주의 얼굴에 놀람과 감탄의 표정이 떠올랐으니.
라울의 실력을 조금이나마 파악한 페리도 탑주의 마음이 조금 흔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끝끝내 라울은 그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끌어내지 못했다.
라울의 실력과는 별개로 선뜻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에는 걸리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바로 결정을 내리기엔 사안이 너무 무겁군요. 시간을 좀 주신다면 고민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라울과 페리도 마탑주와의 첫 회담은 마무리되었다.
* * *
“어떻게 생각해? 탑주가 다시 연락해올까?”
라벨이 묻자 라울이 잠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그건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 하지만 결국엔 연락하지 않을까?”
“보아하니 고집이 세 보이던데. 만약 끝까지 연락이 오지 않으면?”
“오게 만들어야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기엔 너무 아쉽잖아?”
하지만 라울이 판단하기에 굳이 그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페리도 탑주는 결코 라울이 내민 손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탑주의 대답을 확인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을 테고.
‘페리도 마탑에 침을 발라둔 놈들이 내 존재를 이미 확인했을 테니 말이지.’
다 잡아놓은 먹잇감을 다른 포식자에게 빼앗기고 싶은 사냥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조급해진 사냥꾼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라울은 그 순간이 오기만을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 * *
“타, 탑주님. 큰일 났습니다! 케트나 상회에서 대출 만기 연장을 거절했습니다.”
“뭐? 분명 며칠 전만 해도 연장해 준다고 얘기했잖아?”
페리도 자신이 직접 지점장과 만나 양해를 구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때 또 다른 마법사가 허겁지겁 방으로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크, 큰일입니다! 주문이 들어왔던 파워아머 5기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금 생산 라인이 모두 멈춰 선 상태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뭐라고? 위약금이 얼만데 그걸 취소한단 말이냐? 거래처에 연락은 해봤는가?”
“네, 그것이….”
상황을 파악한 페리도가 이를 꽉 깨물었다.
‘이 미친놈들이. 진짜 끝장을 보잔 얘긴가!’
여태까지 드로이젠을 통해 경고만 해오던 스카일러 마탑이 직접 손을 쓰기 시작했다.
수십 년을 거래하던 상회는 스카일러 마탑의 협박에 굴복했다.
주문을 넣었던 거래처들은 스카일러 마탑이 위약금을 대신 물어주고 더 싼 가격에 파워아머를 판매한다는 얘기에 혹해 거래를 파기했다.
물론 위약금을 받게 된다면 완전히 손해 보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이자라도 상환하려면 파워아머 판매대금 잔금이 필요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억지로 파워아머를 완성시킨다 한들 제값 받고 판매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조금은 버티면서 활로를 찾을 시간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저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그런 여유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합니까, 탑주님.”
그를 바라보는 마법사들의 얼굴에 절망이라는 이름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그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에 페리도 탑주는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고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까지구나. 이렇게 내 손으로 탑을 넘기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그는 마침내 마탑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지금 즉시 레오파드 마탑과 코넬리우스 마탑에 사람을 보내거라. 탑주님을 만나 뵈었으면 한다고.”
“레오파드와 코렐리우스 말입니까?”
“그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만큼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서두르거라.”
“네, 탑주님!”
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건 결국 탑을 넘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세상사에 관심이 적은 페리도 마탑주라 하더라도, 최근 왕국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왕좌를 둘러싼 세력 다툼에 대비해 몸집을 불리고 있는 거대한 포식자들.
그 주둥아리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스카일러 마탑! 절대로 네놈들 손에 이곳을 넘기지 않겠다!’
어차피 넘어갈 탑이라면 스카일러 마탑의 경쟁 세력에 넘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해낸 ‘새로운 기술’이라면 그들도 자신들을 섭섭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페리도 마탑주에게 ‘라울 자작의 제안’은 아직까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탑의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잘 교섭해보자. 어쩌면 탑의 이름은 지켜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페리도 마탑주는 그렇게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새로운 미래를 구상해 보았다.
하지만 탑에 파묻혀 살아온 그는 몰랐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