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75
제175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딸칵.
마지막 면담 대상이 문을 닫고 나갔다.
라울은 살짝 아려오는 머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눈앞의 서류들을 내려다봤다.
F, F, E, C, D, F…….
직접 탑주들을 면담하고 재무상태나 인수 타당성을 검토한 최종 등급.
라울은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설마 했지만, 역시나였군.’
건실하고 괜찮은 매물이 그리 쉽게 손에 들어올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애초에 기존 세력들이 그런 알짜배기들을 가만뒀을 리가 없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실망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마탑은 마법사들의 전유물이고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곳이 많았다.
원래라면 이렇게 매물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맨손으로 시작하지 않는 게 어디야.’
그래도 완전히 엉망인 곳들만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두 곳 정도는 적정한 투자와 인원 보충이 이뤄지면 정상적인 기능을 되찾을 수 있어 보였다.
그라넥 마탑과 제이도 마탑.
등급 평가 C를 받았고, 아직까지 핵심 인력들이 남아 있는 마탑들이었다.
자체 기술력은 부족하지만, 라이센스를 구매하거나 하청을 받아 각종 마법 물품과 ‘파워아머’까지 생산한 경력이 있었다.
적어도 파워아머를 생산하고 조립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라울에겐 충분했다.
‘처음부터 자체 제작한 파워아머를 생산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어차피 재능 있는 인재들을 확보하고 충분한 자금과 시간을 연구팀에 제공한다면 성과는 나오게 마련이었다.
그 시기가 빨라지냐 늦어지냐의 차이일 뿐.
“버나드. 이 두 마탑주와 다시 미팅을 잡고 인수 작업에 들어가도록 해. 협회 쪽은 내가 다녀오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이건….”
돈 낭비일 것 같다는 말일 것이다.
평소에 별말 없이 라울의 지시에 따르던 버나드가 걱정할 정도라면 이번 건이 얼마나 문제점이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두 마탑의 인수 비용과 앞으로 정상화를 위해 투입될 비용이면, 기사단 하나를 통째로 파워아머로 무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울이 생각하기에 파워아머를 자체 생산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조만간 전쟁이 터지게 되면 파워아머를 확보하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농담이 아니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파워아머를 구할 수 없는 시기가 머지않았다.
본격적으로 대륙이 전쟁에 휘말리면, 수요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파워아머 생산량이 급감하게 된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키워드가 파워아머인 이상, 그것을 생산하는 시설을 노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시설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 숙련된 마법사들이 전사하는 것도 생산량 감소에 일조했고.
‘하여간 지휘부가 멍청하면 이길 전쟁도 질 수밖에.’
전생에 레슬리 왕국의 수뇌부는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각 마탑에서 마법사들을 강제 동원했다.
그리고 평생 전장에 서보지도 않았던 책상물림 마법사들은 제대로 마법조차 사용해보지 못하고 몰살당해 버렸고.
‘사람에겐 각자의 쓰임이 있는 법인데, 그걸 무시했으니 당연한 결과지.’
비록 라울이 레슬리 왕국 소속은 아니지만, 이번 생에는 최대한 그런 비극을 막아볼 생각이었다.
만약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고 한다면, 적어도 재능 넘치는 연구 마법사들과 생산직 마법사들을 최대한 왕국에서 빼돌릴 계획이다.
자체 마탑을 세우는 것도 그 계획을 위한 기초 작업의 일부이기도 했고.
물론 가장 큰 목적은 최대한 많은 파워아머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서이긴 했지만.
약간은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마법사 협회를 방문한 라울.
그의 표정을 확인한 다리오 실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맘에 드는 곳이 없었던 모양이시군요.”
그도 이렇게 될 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 쓸 만한 마탑들은 파산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 스스로 세력들과 교섭하여 그 휘하에 들어가거나 일찌감치 마탑을 정리해 버렸다.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곳들은 탑주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거나, 정말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곳들이 대다수였으니.
“그래도 두 곳 정도는 괜찮은 것 같더군요. 그라넥 마탑과 제이도 마탑을 인수할 의사가 있으니 협회에서 중재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정말 다행입니다. 그 두 곳 이라면 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지요. 잘 결정하셨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리오 실장은 머쓱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왔을 젊은 귀족에게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원래라면 말할 생각이 없었던 정보를 입에 올리고 말았다.
“…실은 아직 라울 자작님이 살펴보지 않으신 매물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그렇습니까? 알려진 곳은 다 살펴봤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이 어디죠?”
“그리 유명한 곳은 아닙니다. 페리도 마탑이라고, 나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세간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요. 그래도 왕국 내에서는….”
다리오 실장이 뭔가 설명을 이어갔지만, 이미 라울의 귀엔 제대로 들리지 않고 있었다.
‘페리도 마탑이라고…?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페리도?’
현재 커넥트 대륙을 대표하는 파워아머 브랜드는 총 다섯 곳.
레오파드사, 코넬리우스사, 살바토레사, 듀렌사, 악셀사였다.
하지만 전생에 배도현이 목숨을 잃을 당시의 파워아머 브랜드 순위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그리고 신규 브랜드의 최선두에 서 있던 기업이자 마탑이 바로 [페리도]였다.
라울은 떨려오는 가슴을 잠시 진정시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진정해. 이름만 같은 마탑일 수도 있고, 지금의 페리도가 전생처럼 성과를 낼지도 알 수 없어.’
하지만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가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제 볼 수 있습니까? 아니 정말로 매물로 나온 건 맞습니까?”
적극적으로 변한 라울의 태도를 본 다리오 실장이 살짝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실은 문제가 있습니다. 탑주가 탑을 절대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도 하고,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왕국의 거대 세력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마탑입니다. 게다가….”
다리오 실장이 페리오 마탑의 문제점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얼핏 들어도 어째서 그곳이 매물로 알려지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라울은 단호하게 말했다.
“마탑주와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제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만약 그곳이 정말 라울이 기억하는 페리도 마탑이 맞다면.
그리고 ‘그 기술’의 단초가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면.
라울은 발만 살짝 담갔다가 빠지겠다는 레슬리 왕국에 대한 방침을 바꿔서라도 무조건 페리도 마탑을 인수하겠다고 결심했다.
‘이건 절대로 놓칠 수 없지. 레슬리 왕국의 명문가들과 정면 충돌하는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성사시켜야 해!’
라울의 눈에서 전투 의지가 가득 차올랐다.
* * *
화르륵.
거세게 불타오르는 벽난로 앞.
낡아 보이는 안락의자에 담요로 무릎을 살짝 덮은 노인 하나가 앉아서 멍하니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의 얼굴에서 특별한 표정을 찾아보긴 힘들었지만, 가끔 꿈틀대는 미간의 주름을 보면 그리 심기가 편한 상태는 아닌 듯했다.
“하아.”
노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도대체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크지는 않지만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온 마탑이 자기 대에 이르러 파산을 눈앞에 두게 될 줄이야.
노인의 정체는 바로 페리도 마탑의 탑주인 페리도였다.
역대로 탑을 물려받은 마탑주는 ‘페리도’라는 이름 또한 물려받았기에 그 또한 페리도라 불렸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제 페리도라는 이름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몰랐다.
그것도 바로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페리도 마탑주는 멍하니 불길을 바라보며 자신이 불길 속에서 불타오르는 듯한 환상에 빠져들었다.
화염계열 마법이 주특기인 페리도 마탑인 만큼, 이렇게 불길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그가 70이 넘는 세월 동안 지켜온 습관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오래된 루틴마저도 그의 답답한 생각을 정리해 주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를 방해하는 또 다른 일이 생겼으니.
“탑주님, 실례합니다. 드로이젠 님이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화르륵!
마치 탑주의 마음을 대변하듯 벽난로 속의 불길이 폭주하며 난로에서 빠져나와 천장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벌떡.
하지만 페리도가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불길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고, 그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보였다.
“놈에게 ‘님’자를 붙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제 그놈은 우리 마탑 소속이 아니다!”
“죄, 죄송합니다.”
소식을 전했던 마법사가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페리도 마탑주는 벽난로 앞의 힘없는 노인이 아닌, 당당한 6서클 마스터이자 탑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흥. 어디 오늘은 또 무슨 X소리를 지껄이러 왔는지 한번 들어나 보자.”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던 그의 발밑에 작은 마법진이 생기더니 어느 순간 그의 모습이 허공으로 스며 들어갔다.
스르륵.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허공을 가르고 나타난 페리도 마탑주를 향해 한 중년인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누가 네 스승이냐, 이 배은망덕한 놈!”
페리도의 입에서 걸쭉한 욕설이 쏟아져 나왔지만, 중년인의 표정은 단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전혀 반응이 없는 재미없는 모습에 지쳤는지 페리도가 입을 다물자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고집 버리시고 대세에 따르십시오. 지금이라도 협상에 임하신다면 제가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모시겠습니다.”
“일 없다, 이 미친X아.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이 페리도 마탑이 네놈과 그들 손아귀에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년 사내, 드로이젠은 혀를 차며 그의 예전 스승에게 다시 말했다.
“그렇게 고집을 부리실수록 마탑의 식구들이 더 불행해질 뿐입니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그들의 미래까지 망쳐버릴 생각이십니까?”
“뭣이라! 감히! 감히, 네놈이 누구를 입에 올리는 것이냐! 이 쓰레기만도 못한 놈아!”
분노를 참지 못한 페리도 마탑주의 몸에서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마치 불의 화신이라도 된 듯한 그가 손을 뻗어 드로이젠의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그만두시죠, 탑주님.”
“조금이라도 손을 더 뻗으시면 우리 [스카일러 마탑]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겠습니다.”
어느새 드로이젠의 앞을 가로막은 기사 둘이 엄포를 놓았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것은 번개 문양의 각인이 새겨진 파워아머.
스카일러 마탑 소속 아머 유저에게만 주어지는 맞춤형 파워아머였다.
스카일러 마탑.
레슬리 왕국의 스카일러 백작가가 소유한 마탑이자, 왕국의 3대 세력 중 하나였다.
비록 레오파드사나 코넬리우스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스카일러 마탑이 주가 되어 설립된 스카일러사 또한 커넥트 대륙의 10대 파워아머 제조사 중 하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아머 유저 둘이 페리도 탑주를 정말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탑주는 이내 일으켰던 불길을 수습했다.
아무리 그가 뛰어난 마법사이고 페리도 마탑 또한 유서 깊은 곳이라 한들 스카일러 백작가에 대항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불타오르는 눈동자가 드로이젠을 정말 태워버릴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드로이젠, 이 가증스런 놈!’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바로 드로이젠, 그의 수제자 때문이었다.
* * *
50명의 마법사, 10명의 기사, 20명의 기술자로 이뤄진 중간 규모의 마탑.
페리도 마탑은 B등급의 파워아머까지 자체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견실한 곳이었다.
대대로 독신을 고집한 탑주들은 제자를 자식처럼 길렀고 그중 재능이 뛰어난 이에게 탑을 물려주었다.
그리고 형제처럼 자라온 다음 세대의 마법사들은 다시 제자들을 들여 자식처럼 기르는 식으로 반복되어 온 페리도 마탑은 말 그대로 하나의 가문이나 다름없었다.
탑의 경영은 노쇠한 탑주를 대신하여 수제자인 드로이젠이 도맡아 해왔고, 나름 재능이 있었는지 별문제 없이 탑을 잘 운영해 왔다.
하지만 대략 1년 정도 전.
페리도 마탑주가 파워아머와 관련된 새로운 기술 하나를 발견해 내면서 조금씩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게이트 사태와 왕궁의 침공은 여러 마탑들에게 위기와 동시에 기회로 다가왔다.
당연히 젊은 드로이젠은 탑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와 공격적인 시장 공략을 주장했고, 이미 탑의 운영을 맡겼던 페리도 탑주는 순순히 그의 의견에 따랐다.
하지만 그건 함정이었다.
드로이젠은 탑주의 신임을 이용해 그의 눈을 속여가며 엄청난 악질 고리대금 업체에게 돈을 대출하는가 하면, 완성품을 헐값에 넘기거나 일부러 문제를 일으켜 거래선을 끊는 등 탑을 배신했다.
페리도 탑주가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은 뒤였다.
마탑은 엄청난 빚더미에 깔려버렸고, 고리대금업체의 채권은 스카일러 마탑에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가 드로이젠을 찾았을 때, 이미 그는 스카일러 마탑의 소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