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94
제194화
“와아아!”
“피셔 공자님! 그리어 후작가의 저력을 보여주세요!”
“피셔! 피셔!”
관중석에서 응원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켄의 상대로 등장한 이는 피셔 드 그리어.
그리어 후작가의 참가자 중 유일하게 8강까지 올라온 이였다.
“피셔 공자의 인기가 상당하군요.”
“그렇지? 아무래도 가문의 신진 세대 중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녀석이니까. 개인적으론 내 조카이자 제자이기도 하다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인사를 나눴습니다. 괜찮은 분이더군요.”
첫날 연회가 끝나고 피셔가 직접 라울의 숙소를 찾아왔었다.
사촌 동생인 트라비스의 무례를 사과할 겸, 소문의 주인공인 라울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굉장히 예의 바르고 똑똑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도 나이에 비하면 굉장했다.
엑스퍼트 중급의 초입.
이십 대에 엑스퍼트에만 올라도 수재 소리를 듣는 마당에, 스물셋에 중급이면 굉장한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전생에 차기 후작이 되었겠지. 하지만….’
후작은 굉장히 뿌듯한 표정으로 피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상대가 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살짝 곤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누굴 응원하실 생각입니까?”
라울이 짓궂게 물어보자 후작이 헛기침을 뱉었다.
“크흠, 아마 이번 대결은 켄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걸세. 피셔는 이미 가문의 창술을 대부분 전수받았으니 말이야.”
아무래도 후작은 피셔가 승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켄은 아직 엑스퍼트 초급 정도의 실력밖에 보여주지 않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솔직히 켄도 이런 토너먼트에 참가하기엔 수준 차가 너무 심하긴 하지.’
누가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제 겨우 18살, 하물며 여자의 몸으로 이미 엑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을.
제이낙의 던전에서 가문의 시조인 제레미아의 정수를 물려받은 덕분이긴 하지만, 운도 실력이 아니겠는가.
그녀의 진짜 실력을 알게 된 후작가의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심 기대하는 라울이었다.
* * *
텅, 터덩! 챙!
연무장 위에서 창이 맞부딪치며 불꽃을 튀겼다.
양측 모두 길이 3m에 가까운 장창을 사용했기에, 가로세로 30m 크기의 연무장이 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어느새 두 참가자의 창에선 마나 스피어가 솟아올라 있었다.
‘역시 기본 창술로 상대하는 건 무리인가?’
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아서 가문의 창술이 아닌 퍼스트 기사단의 기본 창술만 사용해왔다.
앞선 경기들은 그걸로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피셔 오빠도 실력이 많이 느셨구나.’
사촌 오빠인 피셔와의 관계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어렸을 적엔 친오빠인 션과 사촌 오빠들과 어울려 지내곤 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져줄 수는 없었다.
다음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기본기에 충실한 창술이긴 한데, 그게 전부라면 이 대결, 더 이어갈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만.”
피셔가 잠시 거리를 벌리고 정중하게 말했다.
물론 항복하라는 의미라기보단, 숨기고 있는 것을 꺼내라는 뜻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켄이 결국 마음을 정했다.
“그럼 저도 제대로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켄이 창대의 2/3 부근에서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은 내리누르는 독특한 파지법을 선보였다.
어깨 높이에서 땅을 향해 창날을 향하게 하는 특이한 기수식.
그건 바로 그리어 후작가의 창술 [퓨리 웨이브]의 그것이었다.
“역시 본가 출신이었나!”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서로를 향해 똑같은 기수식을 취하고 있는 두 사람.
그 모습을 확인한 관객석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웅성웅성.
“누구지?”
“저 나이에 엑스퍼트에 오른 이가 본가에 또 있었던가?”
“어째서 퍼스트 기사단에?”
궁금해하는 사람들 사이로, 눈썰미가 좋은 몇몇은 그녀의 정체를 알아챈 듯했다.
‘설마…?’
‘케일리 후작 영애라고…?’
관객석의 술렁임을 뒤로한 채, 피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가겠소. 본가 출신이라면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는 없겠지요?”
후우우웅.
피셔의 창이 거칠게 진동하며 마치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그의 창 주변으로 마나를 품은 바람이 몰려들었다.
휘우웅.
그리고 그건 켄의 창도 마찬가지였다.
눈썹을 꿈틀한 피셔가 켄을 향해 회전하는 창을 연속으로 찔러 넣었다.
“타핫!”
꾸드드득!
콰과과!
작은 용오름을 연상케 하는 마나의 소용돌이가 부딪치며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켄은 정확하게 피셔의 창날을 마주 찔러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과연.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순간 피셔의 창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좌에서 우로 뻗어나갔다.
꿀렁.
그의 창대에서 푸른 안개 같은 기운이 흘러나와 그의 허리 아래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오오! 훌륭한 웨이브다!”
“마나 블레이드 변형이 저렇게 자연스럽다니! 역시 피셔군.”
후작가의 혈족과 기사들이 감탄사를 내뱉는 가운데 피셔의 창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위험한 기술이니 잘 피해 보시오!”
촤아악!
피셔의 창이 작은 원을 그리며 켄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창의 인도에 따르듯 일렁이던 푸른 마나의 파도가 키 높이까지 솟구치며 밀려왔다.
‘후읍.’
위압적인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은 켄이 일순 창을 꽉 움켜쥐었다.
부웅, 붕!
눈 깜짝할 사이에 십자로 허공을 벤 켄의 창 주변으로 피셔의 그것과 비슷한 푸른 마나의 물결이 일어났다. 그리고.
“핫!”
펑! 펑! 펑! 퍼버벙!
마치 왕관을 그리듯 좌에서 우로 내지른 켄의 창을 따라 마나의 파도가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차이라면, 피셔의 것은 커다란 하나의 파도.
켄의 것은 조금 작지만 연속해서 밀려가는 파도의 물결이란 점이었다.
벌떡!
그 장면을 목격한 후작가의 인물들이 모두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저건?”
“진짜 ‘그 기술’이란 말인가!”
그리고 맞부딪친 두 파도의 승자는 켄의 것이었다.
두 번째 물결까지는 어찌 버텨낸 피셔의 파도는 세 번째 물결에 허물어져 버렸다.
“으헛! 크으윽!”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피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집어삼킨 마나의 파도는 허우적대는 그를 붙잡아 연무장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스, 승자! 퍼스트 기사단의 켄!”
심판의 판정이 내려지자, 켄은 조용히 창을 거둬 연무장 아래로 내려갔다.
충격을 받은 것인지, 장외로 밀려나간 피셔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환호할 정신조차 없는 듯 관중석의 술렁임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 지금 내가 본 게 헛것이 아니란 말인가?”
당연히 피델 후작도 동요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켄이 마지막에 선보인 기술.
그것은 바로 수십 년 전 유실되었던 그리어 가문의 창술 비전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어째서 저 아이가 저 기술을!”
“일단 진정하시지요. 그리고 우선 관객들부터 어떻게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라울이 차분하게 말을 꺼내고 나서야 후작이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외부인이 본가의 비전을 알고 있는 거지?”
“당장 붙잡아서 실토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정말 그게 유실되었던 기술이 맞기는 해?”
관중석의 분위기가 흉흉했다.
유실되었던 창술의 복원은 후작가의 염원이기도 했기에, 벌써부터 불온한 기운을 풍기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 조용!”
후작이 나서서 관객들을 진정시켰다.
“…이와 관련된 사항은 본가에서 처리할 테니, 결코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이가 없도록! 단장, 토너먼트를 속행하도록!”
“네, 각하!”
후작의 말이 있고 나서야 좌중의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뇌리에 박힌 궁금증은 쉽게 풀리지 않을 듯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후작이 라울에게 물었지만, 라울은 그저 빙긋 웃음 지을 뿐이었다.
“일단 토너먼트가 끝나고 나서 말씀드리지요.”
“허허, 거참. 음? 설마 며칠 전에 말했던 ‘진짜 선물’이?”
“하하하, 즐거움은 잠시 미뤄두고 경기를 즐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후작님을 위해 결투를 펼치는 참가자들인데, 제대로 봐주시지 않으면 가엽지 않습니까.”
“끄으응. 나중에 제대로 말해줘야 하네.”
워낙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자신의 제자가 딸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은 잠시 잊은 듯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라울은 그저 흥겹게 토너먼트를 즐길 뿐이었다.
* * *
8강 경기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예상대로 4강의 네 자리는 퍼스트 기사단의 조쉬와 켄, 랜달 백작가의 하파엘, 맥닐 후작가의 파비앙이 차지했다.
그리고 4강의 첫 경기는 조쉬 vs 하파엘.
크게 보면 애쉬튼 백작가와 랜달 백작가의 자존심 싸움이라 할 수 있었다.
명문 무가 간의 대결이었기에 좌중의 관심도 뜨거웠다.
“조쉬 경이라고 했던가?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 나이가?”
“네, 올해로 스물둘일 겁니다. 재능 넘치는 친구죠.”
“호오, 자네 주변엔 정말 어리고 실력 있는 부하가 많군. 그래서 저 친구는 어느 가문 출신인가?”
“어, 가문이라기보다는 용병 출신입니다.”
“설마 평민이란 말인가?”
후작의 얼굴은 굉장히 놀라 보였다.
어린 나이에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르려면, 재능도 중요하지만 체계적인 교육도 필요했다.
평민 출신으로 이런 조건을 만족하기는 쉽지 않았으니 후작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커넥트 시스템의 보조가 없었다면 이런 빠른 성장은 어려웠겠지.’
하지만 그걸 입에 올릴 수는 없는 법.
“제가 인복은 좀 있는 편이라서요. 그리고 인재를 모집하다 보니 평민 출신 중에서도 재능 있는 이들이 많더군요.”
“허허, 그런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조쉬와 하파엘은 격렬하게 맞부딪치는 중이었다.
“흥. 고작 애쉬튼가의 대검술론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렇습니까? 제 생각은 좀 다른데 말입니다.”
챙! 채쟁!
하파엘의 손에서 랜달 백작가의 비기 ‘슈팅 스타’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레이피어와 망고슈의 조합은 쉴 틈 없는 연계 공격으로 이어졌고, 유성처럼 쏟아져 가는 붉은 검기의 다발은 당장이라도 조쉬의 몸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에 대항하는 조쉬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양손 대검의 둔탁한 움직임을 용병 출신답게 임기응변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양팔에 장착한 소드스토퍼(완갑의 일종. 팔뚝에 장착하는 돌기가 솟아난 작은 방패류)는 빈틈을 뚫고 들어오는 레이피어의 날을 튕겨내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불규칙하게 튀어나오는 팔꿈치 공격이나 발차기, 박치기 따위가 하파엘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런 치사한 새끼. 잡기술로 깔짝대지 말고, 기사라면 정정당당하게 검술로 대결에 임해라!”
“잡기술이라니요? 엄연히 전투 교본에 실린 초근접 전투법인데.”
그리고 승패가 달렸는데 치사하고 자시고가 어딨단 말인가?
‘진짜 치사한 기술은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상대방 눈에 침을 뱉거나, 발등으로 모래를 뿌리는 등 용병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술들은 라울의 체면을 위해서 참고 있었다.
“하긴, 실력이 부족하면 그런 꼼수라도 부려야겠지. 너 같은 걸 부하로 두다니, 라울 놈의 수준도 알 만하구나.”
“뭣이라? 감히 어느 주둥아리가 우리 마스터를 욕하는 것이냐!”
순간 조쉬의 기세가 완전히 변했다.
지금까지는 수비 일변도였다면, 이제는 공세로 돌아서려 한 것이다.
“크크크, 화내면 어쩔 건데? 그 곰탱이처럼 느린 양손 대검에 내가 맞아 주기라도 할 것 같냐?”
하지만 다음 순간.
하파엘은 입을 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검을 휘둘러야 했다.
왜냐하면, 둔중해 보이던 조쉬의 양손 대검이 두 개로 분리되며 쌍검의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챙, 채쟁! 차자장!
애초에 조쉬는 용병 출신.
애쉬튼가의 대검술에 목맬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애쉬튼 백작가의 대표라는 생각 때문에 백작가의 검술을 사용했지만, 그의 주특기는 대검술이 아니었다.
“으라차! 빠샤!”
달튼이 전수한 템플턴 공작가의 쌍검술과 라울이 가르쳐준 인피니티 소드의 일부분이 접목되어 그만의 변화무쌍한 검술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 검술은 너무나도 감각적이고 변칙적이어서 실전 경험이 많지 않은 하파엘로선 감당하기 어려웠다.
챙, 텅! 쨍그랑.
그리고 그 결과.
채 50합이 지나기 전에 조쉬의 두 검이 하파엘의 목 앞에 도달해 있었다.
“크윽.”
“승자, 퍼스트 기사단의 조쉬 경!”
“와아아!”
관객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조쉬는 검을 갈무리하며 하파엘에게 작게 속삭였다.
“다시는 내 앞에서 마스터를 욕하지 마라.”
그렇게 4강 첫 경기가 조쉬의 승리로 마무리 지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