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93
제193화
“푸흡. 명문가라길래 얼마나 대단한 걸 선물하나 했더니 고작 창 한 자루가 끝이야? 하긴 소문이 다 그렇지.”
선물을 전달하고 자리로 돌아가려는 라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 곳에는.
‘뭐지, 이 덩어리는?’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웬 애송이 하나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었다.
“하여튼 내지 놈들 헛소리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저런 비실비실한 몸으로 뭐? 한주먹거리도 안 되겠구만.”
라울이 뻔히 바라보고 있음에도 무슨 시정잡배 마냥 입을 터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라울이 물었다.
“누구신지?”
“하! 이 그리어 후작가에 발을 들여놓고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예의는 발로 처 말아 먹었나, X쌔끼가.”
순간 라울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프로필이 스쳐 지나갔다.
‘아하, 이놈이 그놈이구나?’
라울이 마치 긴장한 것처럼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혹시 피델 후작님의 큰아들인 트라비스 공자?”
“그래. 내가 바로 트라비스 드 그리어다, 새끼야. 이제 제대로 인사할 생각이 드냐?”
정체를 확인한 라울이 그에게 다가가 아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작게 말했다.
“근데 왜 초면에 반말에 욕지거리냐, 이 XX야.”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트라비스가 잠시 버벅거렸다.
“그 나이 처먹도록 대륙 귀족법도 제대로 못 배웠냐? 네놈은 훌륭한 아버지를 둔 덕에 성인이 되면서 ‘남작’의 직위를 얻었겠지. 그런데 고작 ‘남작’ 따위가 감히 왕국의 정당한 자작인 나에게 반말을 지껄이고 욕설을 내뱉는다고? 후작님의 면을 봐서 한 번은 참아준다만, 대가리가 조금이라도 굴러간다면 다시는 그 아가리 함부로 놀리지 마라.”
라울은 경고도 할 겸 약간의 살기까지 뿌리며 독설을 내뱉었다.
그런데.
“뭐, 뭐라고! 이 X새끼가 무슨 X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별것도 아닌 백작가의 막내 새끼가 운 좋게 작위 하나 받았다고 감히 후작가의 후계자인 나를 모욕해? 호위! 당장 저 새끼를 내 앞에 무릎 꿇려!”
무식해서 용감한 건지 아니면 워낙 좋은 혈통을 물려받아 겁이 없는 건지, 트라비스는 홀이 쩌렁쩌렁하도록 고함을 쳤다.
라울은 이 황당한 상황에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애초에 저 트라비스라는 놈은 아직 후작가의 후계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애쉬튼 백작가를 까는 건 저 피델 후작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트라비스의 뒤에 서 있던 호위기사들이 이도저도 못하고 쩔쩔매는 사이.
다다다닥.
황급히 후작가의 다른 기사들이 달려왔다.
“그래, 얼른 저놈을 무릎 꿇려라….”
기사들이 트라비스를 둘러쌌고,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허리를 90도로 꺾어 라울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공자님이 술에 취하면 말실수를 자주 하십니다.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뭐 하는 거야? 내 말 안 들려?”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트라비스가 다시 입을 벌린 그때.
“닥쳐라, 이 멍청한 놈!”
인상을 찌푸린 피델 후작이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아, 아버지. 저놈이 감히 우리 후작가를….”
“뭐 하나? 이 모자란 것을 당장 끌고 가지 않고?”
“넷, 각하.”
“아니. 내가 뭐 어쨌다고! 이거 안 놔?”
2m가 넘는 육중한 덩어리를 기사들이 질질 끌고 가는 동안, 후작이 먼저 라울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네. 철없는 녀석이 함부로 입을 놀렸군. 내가 대신해서 사과하지.”
“아닙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소란을 피워 제가 더 죄송하지요.”
후작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연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렇게 직접 만나고 보니 후작의 고민을 이해할 만했다.
저런 망나니 축에도 속하지 못할 철부지가 후계자가 된다면, 그리어 후작가는 조만간 명문이라는 간판을 내려놓아야 할 게 분명해 보였으니.
‘이래서였군. 전생에 그리어 후작이 자식이 아닌 조카에게 작위를 물려준 이유가.’
그리고 그리어 후작가는 역사에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가문으로 기록되었다.
오로지 가문의 굴레를 벗어던진 켄만이 최초의 여성 마스터로서 이름을 날렸을 뿐.
‘자, 그럼 어떻게 한다.’
후작가의 협력을 얻어내야 하는 라울의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 * *
그 작은 소동을 제외하고 후작의 축하연 첫날은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오후에 진행된 토너먼트 본선 64강 경기에선 켄과 조쉬 모두 손쉽게 상대를 쓰러뜨리고 승리를 차지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창을 휘두르는 켄을 바라보는 후작의 표정은 굉장히 복잡 미묘해 보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켄의 등장에 두 눈을 부릅뜨고 안절부절못한 이가 있었으니.
‘어째서 저 아이가 여기에?’
바로 켄의 작은 어머니이자 현 후작 부인이었다.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불만스러웠다.
전형적인 귀족가의 영애로 자라온 그녀로선 케일리가 창을 휘두른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족가의 여식이라면 가문을 위해 부모가 정해주는 짝과 결혼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그게 싫다고 가출할 때는 언제고 남장까지 하고 돌아온 이유는 뭐란 말인가?
‘다른 가문 부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 가문을 흉볼 게 분명해.’
게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후작이 덜컥 케일리에게 작위를 물려주겠다고 선언이라도 한다면.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그녀로선 상상하기도 싫은 전개였다.
하지만 요즘 후작의 행동을 보면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오늘만 해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큰아이를 욕보이지 않았던가.
아버지로서 아들을 편들어 주기는커녕 겨우 아들 또래의 아이에게 머리를 숙이다니.
그녀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아야 했다.
그녀의 두 아들의 부족함과 그것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를.
* * *
후작가의 연회는 사흘간 이어졌고, 토너먼트도 이제 마지막 날을 앞두고 있었다.
라울의 불안감은 우려에 그쳐, 마지막 날까지 별다른 사고 없이 연회가 진행되었다.
토너먼트는 최후의 8인만이 남았는데, 당연하게도 켄과 조쉬도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대진대로 진행된다면 조쉬는 4강에서 랜달 백작가의 하파엘, 켄은 4강에서 맥닐 후작가의 파비앙을 상대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날 토너먼트가 시작되려던 그때.
의외의 인물이 대련장 위로 걸어 올라와 소리쳤다.
“그리어 후작가의 장남 트라비스 드 그리어입니다. 첫날 있었던 실례를 사과할 겸 토너먼트의 흥을 돋우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후작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떤가, 라울 자작! 사내답게 여기서 나와 한판 붙어보자!”
관중들은 흥미가 동한 표정들이었다.
소문이 무성한 라울이 후작가에 왔음에도 토너먼트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라울의 실력을 볼 수 있다면, 그 계기가 뭐든 관객들 입장에서 나쁠 게 없었다.
하지만 라울은 그저 황당함에 쓴웃음을 지으며 후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후작 또한 엑스퍼트 최상급에 도달해 마스터의 경지를 노리는 자.
라울과 트라비스의 수준 차를 모를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후작님.”
굳이 그에게 물어본 이유는 후작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였다.
만약 후작이 원한다면 조금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대결 신청을 거절할 생각이었다.
후작이 인상을 찌푸리고 잠시 고민하는 사이 기름을 끼얹는 이가 있었으니.
“뭘 고민하십니까. 저 아이가 저렇게 원하는데 허락해 주시지요.”
바로 후작 부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지, 이 대결의 끝이 어떻게 될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듯했다.
물론 라울을 꺾는다면 굉장한 명성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폐쇄된 가문 내에서 이런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았을 테니.
하지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후우, 살살 다뤄주게.”
후작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한 듯했다.
그리고 아마 이 일을 계기로 트라비스는 그의 후계자 후보에서 완전히 제외되지 않았나 싶었다.
라울은 그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무장으로 내려갔다.
“크흐흐. 며칠 전에는 신세 많이 졌다, X새끼야. 아주 그 얄팍한 뼈다구를 작살 내주마.”
심판이 무대에 오르기 전 그 잠시를 못 참고 또다시 주둥이를 놀리는 트라비스.
라울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인벤토리에서 대검 한 자루를 꺼내고는 입을 꾹 닫았다.
“쫄았냐? 쫄았지, XX아. 그러니까 말로 할 때 알아서 기었어야지. 이제 늦었으니 사과해도 소용없어, 새꺄. 너는 뒈졌어, XX.”
라울은 다시 한번 느꼈다.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더 많구나.’
굳이 놈의 상태창을 살필 필요도 없었다.
라울은 그저 대검을 든 채 대결의 시작을 기다렸다.
그리고 대결이 시작되자 트라비스가 그 비대한 육체에 어울리는 커다란 창을 들고 라울에게 덤벼들었다.
“뒈져라!”
후웅.
기세만 놓고 보면 산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3분간.
온갖 폼을 잡아가며 휘둘러 대는 커다란 창을 라울은 그저 제자리에서 한 손으로 검만 휘둘러 모두 막아냈다.
누가 봐도 확연한 실력 차이.
그리고 라울이 진지하게 그를 상대할 생각이 없다는 걸 트라비스는 3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 새끼가 감히 나를 무시해! 이제 정말 안 봐준다!”
그리고 라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설마 이거 데자뷔냐?’
트라비스의 손등을 검은 문신이 뒤덮더니, 그의 창끝에서 마나 스피어가 불쑥 솟아올랐다.
작년에 저택 사건으로 ‘혈족의 증명’에서 상대했던 데이브.
제국의 낙인을 몸에 새기고 가짜 마나 블레이드를 펼쳤던 그놈처럼, 눈앞의 트라비스도 가짜 마나 스피어를 뽑아내고 있었다.
‘불쾌하군.’
제국의 흔적이 여기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데서 짜증을 느낀 라울은 더 이상 대결을 이어갈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서컹.
“……?”
라울이 가볍게 휘두른 대검에 트라비스의 창이 반쪽으로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퍽.
어느새 그의 뒤로 돌아간 라울이 가볍게 손날로 내려치자, 트라비스의 거체가 바닥에 허물어져 내렸다.
뒤에서 심판이 뭐라고 떠들어 댔지만, 라울은 신경 쓰지 않고 귀빈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작의 아들이 제국의 낙인을 새기고 있다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너무도 일방적인 대결에 관중들도 말을 잃었는지 작은 함성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기사들에게 실려 나간 트라비스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 * *
자리로 돌아온 라울과 후작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라울은 라울대로 제국의 흔적에 대한 생각에 잠겼고, 후작은 철없는 부인과 아들들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
후작 부인은 아들이 쓰러지는 순간 뛰쳐나갔기에 한동안 주변은 침묵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들의 침묵이 끝난 것은 다름 아닌 켄 때문이었다.
어느새 첫 경기가 끝나고 켄의 차례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간 잘 지낸 모양이더군. 얼굴에 그늘이 많이 걷혔어. 제 오빠가 실종된 이후론 거의 웃음을 잃었던 아이인데 말이지.”
“어떤 문제는 시간이 약이 되곤 하는 법이지요. 혼자서 잘 극복해 낸 것 같습니다.”
“글쎄. 내가 보기엔 약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난 게 아닌가 싶다만.”
“…….”
후작이 오늘 들어 처음으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훈련을 받았길래 저렇게 실력이 빨리 성장한 건가? 가문을 떠날 무렵엔 겨우 마나 블레이드를 뽑아낼까 말까 한 수준이었는데 말이지.”
“본인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후작님께 빼어난 재능을 물려받았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하아, 그게 문제야. 저 아이는 지나치게 재능이 뛰어나. 과연 세상이 저 아이를 받아들일지, 인정해 줄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네.”
커넥트 대륙에서 여기사라는 존재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잘 알고 있는 후작이었기에 더 걱정이 큰 듯했다.
하지만 과연 마스터를 우습게 여길 수 있는 자, 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자네가 좀 잘 보듬어 주게나. 어쩌면 저 아이는 가문으로 돌아오지 않는 편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니까.”
“그 말씀 잘 기억해 놓겠습니다.”
과연 잠시 후 켄이 본모습을 보인 뒤에도 같은 생각일지 궁금했다.
‘어차피 놔줄 생각도 없긴 하지만.’
알아서 마스터로 성장할 인재를 굳이 후작가에 돌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사이 연무장 위에는 켄의 8강전 상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