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00
제200화
이변은 즉시 감지되었다.
“폭인(爆人)이다!”
“머리나 심장을 부숴!”
피셔와 기사 10명의 상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던 퍼스트 기사단이 즉각 반응했다.
쐐액! 휘리릭!
마나 블레이드가 맺힌 각종 무기들이 변하기 시작한 폭인들의 머리와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챙! 터덩!
“가, 같은 편이야! 공격하지 말라고!”
몸이 부풀어 가는 와중에서도 생존을 탐하는 폭인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공격을 막아냈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들은 엑스퍼트 중급 이상의 실력자들.
손쉽게 급소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마나가 폭주하며 부풀어 오른 신체 부위는 마치 파워아머에 비할 정도로 단단해져서 마나 블레이드도 버텨냈다.
“다 같이 죽자는 거냐! 이 배신자 놈들!”
“그러니까 차라리 결계를 열어달라고! 아니면 정말 다 같이 죽든가!”
사람의 심리라는 게 참 이상했다.
저들은 문신을 새긴 이들이 폭발하는 모습을 보고서도 결계 안으로 피신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으리라.
이미 한배를 탔으니 아무것도 모르고 폭탄이 되어버린 이들과는 다르다고.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들이 희생양이 되고 나니 무고함을 주장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사고방식인 것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이들을 결계 안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주변의 이들은 물론이고 결계까지 폭발에 휘말리게 될 게 분명했으니.
퍼스트 기사단 지휘관들이 결심을 굳히고는 외쳤다.
“평기사들은 결계 근처를 벗어나라! 아머 유저들은 결계 앞에 이중으로 육탄 방어진을 펼친다! 내가 앞장서겠다.”
지휘관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결계를 지키는 방진을 새로 구축하는 사이, 폭인들은 폭발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안 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비켜! 비키라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몸으로 악다구니를 쓰며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계 앞에 자리 잡은 아머 유저들은 요지부동.
그건 켄도 마찬가지였다.
“케일리! 지옥에서도 너를 저주하겠다!”
폭주했음에도 그녀의 창에 뒤로 밀려난 피셔가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괴성을 질렀다.
켄은 닥쳐올 폭발의 여파를 막아내기 위해 있는 힘껏 창에 마나를 불어넣고 있었다.
‘막아낸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결계를 지킨다는 마스터와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폭발이 눈앞에 다가왔다.
특별한 장치를 해놓았던 것인지, 폭발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파앗!
폭인들의 몸에서 하얗고 붉은빛이 퍼져 나왔고.
퍼벙! 쿠과과과과광!
엄청난 폭발음이 터지며 거대한 진동과 마나의 폭풍이 경기장 내부를 휩쓸었다.
* * *
화아악.
강렬한 열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었다.
강렬한 빛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던 켄은 전심전력으로 만들어 냈던 창막을 멈춰 세웠다.
휘우웅.
미친 듯이 회전하던 창대가 멈추자, 역풍에 돌가루들이 날아올랐다.
‘막아낸 건가?’
마나의 열풍에 감각이 잠시 마비된 듯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분명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는데, 눈앞에는 폭발의 흔적이 없었다.
피셔가 서 있던 자리에는 웬 비리비리한 마법사 하나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뿐.
“허억, 뭐가 어떻게…. 헛!”
켄과 눈이 마주친 제국 마법사가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내밀며 스펠을 외웠지만, 켄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푸슉.
그녀의 창은 망설임 없이 마법사의 심장을 꿰뚫었다.
털썩.
마법사는 눈을 부릅뜨고는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켄이 어리둥절하고 있던 그때.
“지금이다! 전원 공격! 제국의 개들을 쓸어버려라!”
라울의 커다란 외침이 전장을 휩쓸었다.
“골든 베어 기사단, 돌격!”
“퍼스트 기사단 타격조는 뒤를 따라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기사단장들과 수석기사들이 기사들을 이끌고 적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가라앉은 먼지구름 사이로 경기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폭인들은 켄이 있는 결계 근처가 아니라 제국군이 몰려 있던 스탠드 뒤쪽에서 폭발했던 것이다.
* * *
‘효과 만점이군.’
라울은 자신이 만들어낸 파괴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살짝 웃음 지었다.
궁지에 몰린 제국 놈들이 쓸 수 있는 수는 많지 않았다.
당연히 이쪽의 약점이나 다름없는 결계를 노릴 걸 예상하고 있었고, 미리 준비했던 수를 썼을 뿐이다.
라울이 슬쩍 자신이 차고 있는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세 영혼의 노래].유니크 S등급의 이 목걸이는 3가지의 초능력을 미리 저장해 두었다가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
목걸이에 달린 세 개의 구슬 중 하나가 빛을 잃은 상태였다.
‘[바꿔치기(B)]도 꽤 쓸 만한데?’
피셔를 비롯한 폭인들이 폭발하기 직전, 라울은 목걸이에 저장해 놓은 초능력인 [바꿔치기(B)] 술법을 사용했다.
원래는 직접 손을 댄 물건이나 자신을 멀리 있는 다른 물건과 바꾸는 술법이다.
하지만 염동력과 연계하면 원거리에 있는 두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굉장한 유용한 기술로 사용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폭인들은 적의 본진 근처에 있던 제국 마법사들과 바꿔치기가 되었고, 폭발은 결계 근처가 아닌 적의 본진 근처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흠.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네.’
라울이 폐허가 되어버린 스탠드를 한번 쳐다보고는 검을 들고 전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푸욱.
“…쿨럭.”
3호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살짝 숙이자, 누군가의 팔이 자신의 가슴을 파고 들어간 게 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이미 3호의 몸은 파워아머와 일체화된 상태였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었고 본진의 폭발은 그나마 남아 있던 마법사와 정예 기사들을 쓸어버렸다.
탈출이 불가능해진 이상, 남은 것은 하나라도 더 많은 적을 길동무 삼는 것뿐.
결국, 특별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각인인 ‘황제의 문장’을 발동하고, [검은 희생]까지 동원했다.
이 상태가 되면 적어도 마스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다고 자신했다.
엑스퍼트 최상급 기사가 적어도 2단계의 버프를 받고, 파워아머와 결합했으며 생명의 불꽃까지 태우는데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놈은 뭐란 말인가…?’
폭주한 자신과 5호, 9호는 저들의 엑스퍼트 최상급 기사 10여 명의 합공을 버티는 것은 물론이고, 역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의 육체는 오러 이상의 공격이 아닌 이상, 생채기조차 나지 않는 극강의 방패였고, 그의 무기에선 생명과 맞바꾼 오러 블레이드가 타올고 있었다.
비록 십 분이면 꺼져버리는 마지막 불꽃이라 한들,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하려 했건만.
“너는 너무 위험해서 살려둘 수가 없겠어. 정보는 저 둘만으로도 충분하겠지.”
투구가 사라지고 얼굴을 드러낸 금발의 애송이가 입을 열었다.
방금까지의 기세는 환상이었는지, 지금 느껴지는 건 그저 평범한 엑스퍼트 최상급에 불과했다.
“…그르르륵?(도대체 어떻게?)”
괴수화 되어버린 그의 성대에선 인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알아들었는지, 라울이 되물었다.
“궁금한가? 내가 어떻게 30초 만에 너희 셋을 쓰러뜨렸는지?”
3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걸쭉해진 핏물이 턱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그건… 지옥에 가서 알아보라고.”
퍼억!
3호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머리가 사라진 인간이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휘릭.
라울이 주먹을 휘둘러 손에 묻은 핏물을 털어냈다.
‘후우, 아슬아슬했네.’
폭주한 3호는 기존의 황동 가면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자였다.
5호와 9호는 감당하기 힘들지언정, 엑스퍼트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3호 이자는 무려 ‘마스터’급의 실력을 보였다.
그것이 비록 최후의 자폭기라 한들 그 무게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이런 놈들이 도대체 몇이나 더 남아 있단 얘기야?’
솔직히 3호의 폭주는 라울의 예상 범위를 뛰어넘었다.
전생에 임페리얼 하운드를 상대했을 때는 간부(넘버즈-가면 착용자)를 궁지로 몰아넣은 적이 거의 없었다.
아지트를 토벌하거나 적들을 물리쳤을 때도, 간부들은 귀신같이 전장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생에는 꽤 많은 간부들을 처리했지만, 폭주한 상위 간부를 직접 상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만약 레그나토르가 아니었다면 사상자가 나왔을 거야.’
라울의 파워아머 레그나토르의 특수 기능 [단죄].
흑마기를 사용하는 자들을 상대로 위력이 200% 상승하는 기능과, 단 30초만 발동 가능한 ‘각성’ 효과 덕분에 놈들을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주의해야 할지도 몰랐다.
적어도 오늘 처리한 이자가 임페리얼 하운드의 우두머리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로써 경기장 내부에서의 전투는 마무리되었다.
아직 경기장 밖에 적들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잔챙이들에 불과하니 정리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적들의 주력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했으니, 당분간은 임페리얼 하운드의 활동도 위축될 것이 분명했다.
* * *
사태를 대충이나마 수습하는 데는 일주일이 걸렸다.
라울의 결계 덕분에 초기 폭발의 희생자를 제외하고 민간인 피해는 많지 않았다.
축하 사절도 대부분 무사하여 후작가가 외교적으로 타격을 받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후작가는 큰 손실을 입었다.
폭발과 전투로 인해 적어도 100에 가까운 기사가 목숨을 잃었다.
또한 문신 시술(황제의 각인)을 받은 이들은 따로 격리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그 수가 기사만 해도 150명에 달했다.
문제는 아직까지 각인을 확실하게 제거할 방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저들은 조사가 끝나더라도 당분간 격리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후작가에서의 일은 즉시 왕국 전체로 퍼져나갔다.
덕분에 암암리에 성행하던 문신 시술은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이미 시술을 받은 각인자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문신을 발동하지 않는 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당장 제거할 방법조차도 없었으니 다들 쉬쉬하며 정체를 숨겼기 때문이다.
‘쉽게 얻은 힘은 독이 되어 돌아오게 마련이지.’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기겠냐는 안일한 생각이 언젠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장은 주춤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문신을 찾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힘에 대한 유혹은 마약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건 플레이어들 또한 마찬가지.’
아직은 라울의 감시망에 잡히지 않았지만, 제국의 마수는 언젠가 플레이어들에게도 향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똑똑똑.
“각하, 라울 자작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하게.”
호위 기사가 열어준 문을 지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뒤쪽으로 수척해진 후작이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딸칵.
펜을 내려놓은 후작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라울에게 다가왔다.
“왔는가? 정신이 없어서 가문의 은인에게 제대로 대접해주지 못했네. 내 사과하지.”
“아닙니다. 제국의 습격도 습격이지만 얼마나 상실감이 크시겠습니까? 다시 한번 애도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이번 습격 도중 변을 당한 것은 경기장에 있던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후작의 큰아들 트라비스가 마법진 관리실에서 폭사한 것도 모자라, 그의 부인과 둘째 아들마저 내성 모처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라울 개인적으론 피셔의 짓이 아닌가 생각되었지만, 조사와 뒤처리는 후작의 몫이었다.
“후우, 그래. 못난 자식도 자식이라고 마음이 쓰라리군. 위로해 줘서 고맙네.”
이후 라울은 후작과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어 후작가와 애쉬튼 백작가, 라울 자작가의 연대에 대한 것.
제국의 낙인을 해결하기 위해 ‘현자 그레이’에게 조언을 구해 보겠다는 것.
그리고 후작가의 유실된 창술에 관한 것이었다.
“…늦었지만 돌려드리겠습니다.”
라울이 제이낙의 던전에서 얻은 후작가의 창술을 기술한 교본을 후작에게 건넸다.
후작은 무슨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얼굴로 한동안 말없이 교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분간 켄 경이 후작가에 남아 직접 창술을 전수해드릴 겁니다. 부디 후작가의 재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스르륵.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후작이 주먹을 가슴에 대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어 후작가는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걸세. 앞으로 애쉬튼 백작가와 자네에게 무슨 일이 있든, 우리 그리어 후작가가 함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게나.”
라울이 황급히 일어나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라울은 또 하나의 든든한 동맹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