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01
제201화
와르르르.
바닥 위에 새카만 금속 덩어리들이 작은 동산을 이루듯 쌓였다.
인벤토리를 털어 마지막 하나까지 다 꺼내 놓은 라울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다 부서진 것들인데도 기분이 나쁘군.’
라울이 서 있는 곳은 바로 그의 본성인 칼립스 성 지하에 마련된 비밀 연무장이었다.
후작가에서 돌아온 라울은 예상보다 길어진 방문 덕분에 밀린 업무를 며칠간 처리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며칠간 미뤄뒀던 ‘정산’을 하기 위해 연무장을 찾은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아무리 부서진 것들이라도, 양이 이렇게 많으면 충분할 거야.”
라울이 묻자 라벨이 팔짱을 끼고는 대답했다.
그들의 눈앞에 쌓여 있는 검은 덩어리들.
그것은 바로 임페리얼 하운드와의 전투에서 얻은 부서진 파워아머들이었다.
검은 희생에 휘말린 파워아머는 주인의 몸에 결합되어 성질 자체가 바뀌어버린다.
쉽게 말하면 재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럼에도 이렇게 폐물이나 다름없는 것들을 라울이 챙겨온 이유는 바로 ‘레그나토르’ 때문이었다.
촤라락.
라울이 오른손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자, 황금빛 파워아머가 그의 상반신 절반을 뒤덮었다.
“기분 나쁜 기운이구나. 마치 놈들의 기운과 닮았어.”
모습을 드러낸 카르데나스가 부서진 파워아머에서 새어 나오는 흑마기들을 느끼며 읊조렸다.
“놈들이라 하심은?”
“마계의 마족 놈들 말이다. 놈들의 기운인 ‘마기’와 굉장히 흡사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기운이구나.”
“하기는. 제국 놈들이 마족과 관련 있을 거란 얘기는 예전부터 많이 있었죠.”
“****,****. 이런….”
카르데나스는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금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굳이 카르데나스의 추가 설명이 없더라도 제국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는 이미 손에 들어와 있었다.
전생에 모아둔 제국에 대한 정보들이 아직 연결고리 카페에 잘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요?”
“신기(神機)가 각성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기대되는구나.”
감정표현이 거의 없는 카르데나스의 얼굴에 호기심이 살짝 어렸다.
긴 세월을 살아왔지만, 신기라 불릴 만한 물건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물며 그 기물의 봉인이 풀리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칼, 너무 기대하지는 마. 의외로 별 변화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이번에 각성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라벨이 말하는 사이, 라울이 손을 뻗어 흑마기에 오염된 파워아머들을 향해 내밀었다.
파앗!
황금빛 광채가 뿜어지는가 싶더니 검은 갑옷이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왔다.
콰지직, 우걱.
마치 이빨로 씹어 먹히듯 어른 상체만 한 쇳덩어리가 손바닥에서 분쇄되어 흡수되어 갔다.
“역시 생각대로네. 평범한 것들은 경험치를 많이 주지 않는 것 같아. 소화하는 데 시간도 별로 필요 없을 것 같고.”
라벨의 말이 아니더라도, 레그나토르는 쉴 새 없이 쌓여 있는 파워아머를 먹어 치웠다.
그리고 잠시 후.
팔이 저릿해진 라울이 왠지 모를 포만감을 느끼게 되었을 때는 단 두 개의 파워아머만 남아 있었다.
“이걸로도 부족하면 다음을 기약해야 하나?”
남은 두 개는 바로 5호와 9호로부터 뜯어낸 것들.
전투 도중 3호의 핵을 흡수하며 절반가량의 경험치가 올랐던 것을 생각하면,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 개의 파워아머를 마저 흡수한 순간.
촤라락.
라울의 의지와 상관없이 레그나토르가 해제되었다.
“어?”
라울이 어리둥절한 사이, 잠시 홀로 진동하던 팔찌에서 광택이 흐르기 시작했다.
‘호오.’
레그나토르의 원형이던 팔찌는 차원을 넘어오며 등급이 떨어진 탓인지, 약간 녹이 슨 것 같은 잿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완연한 검은 빛에 광택까지 흘러서 새로 만들어진 물건 같았다.
그리고 진동을 멈춘 레그나토르가 다시 차르륵 펼쳐지며 라울의 전신을 뒤덮었다.
“호오.”
“우와!”
카르데나스와 라벨이 탄성을 내뱉었다.
변화된 레그나토르는 여태까지와는 달리 라울의 전신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황금빛 갑주를 장착한 라울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위엄이 넘쳐 보였다.
‘…하아. 다르다!’
착용하는 순간 느낌이 왔다.
처음 레그나토르가 각성하며 전신을 뒤덮었던 그 고양감이 다시금 라울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라울은 본능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발견해 냈다.
라울이 또 다른 파워아머가 장착된 왼손 팔목을 내미는 순간.
촤라락!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파워아머가 펼쳐지며 기사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스승님.”
라울의 부름에 카르데나스가 자신도 모르게 기사 형상을 향해 다가갔다.
파앗.
순간적으로 카르데나스의 모습이 사라지고, 기사의 형상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왔다.
끼이익.
그리고 파워아머로 만들어진 기사 형상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허, 이런 게 가능할 줄이야.”
기사의 입에서 카르데나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라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스트 아머].각성한 레그나토르의 새로운 능력이었다.
에고를 통해 자신보다 하위 등급의 파워아머를 조종할 수 있는 특별한 기능이었는데, 현재 레그나토르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바로 라울의 스승인 카르데나스.
즉, 카르데나스가 파워아머를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어떠십니까?”
라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레그나토르에 머물게 된 것도 본의가 아니었지만, 이렇게 새로운 파워아머를 움직이는 것도 카르데나스가 원하던 바일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라울의 기우에 불과했다.
카르데나스는 거의 1년 반 만에 느끼는 몸의 감촉에 감회가 새로웠다.
‘한때는 소멸하길 원했는데, 이제 와 다시 육체를 얻었음을 기뻐하다니….’
하지만 평생을 검과 함께 살아온 이가 원하지 않게 검을 놓고 있었으니, 오죽 답답했겠는가.
“검을 다오.”
카르데나스의 말에 라울이 재빨리 검을 건넸다.
스르륵.
검날을 한번 손으로 주욱 훑어 내린 카르데나스가 이윽고 검을 추켜세웠다.
샤라락!
시작은 가벼웠다.
기본적인 동작으로 새로 얻은 육체의 움직임을 살핀 그가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검술을 펼쳐냈다.
“우와.”
라벨이 단번에 감탄을 터뜨렸다.
카르데나스의 움직임은 검술이라기 보단 검으로 펼치는 춤사위 그 자체였으니까.
‘정말 차원이 다르네.’
라울도 그에게 기본적인 동작이나 검술을 배웠지만, 카르데나스의 [인피니티 소드]는 말 그대로 완벽했다.
마나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펼치는 검술임에도, 라울은 도무지 어디를 공략해야 그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카르데나스가 힘을 발휘하는 순간.
‘…맙소사. 이거 완전 사기 아니야?’
별 힘을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카르데나스의 검에선 3m짜리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쳐 올라 공간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검술이 아름답고 날렵한 춤사위였다면, 지금 카르데나스의 검은 무엇이든 집어 삼켜버리는 포악한 블랙홀의 느낌이었다.
‘본체보다 훨씬 강력한 분신체라니….’
7서클 마법사인 라벨에 이어, 소드 마스터 카르데나스가 동료가 되어버렸다.
이러다가 본업이 검사나 초능력자가 아니라 소환사가 될 판이었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지만, 기분이 묘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느새 검을 거둔 카르데나스가 라울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무래도 이 이상은 파워아머가 버티지 못할 것 같구나. 유지 시간은 아마도 30분이 한계일 것 같고.”
“지금 보여주신 경지는 어느 정도라고 봐야 합니까?”
“마스터 중급에서 상급 초입 정도는 될 것이다. 흠, 멜빈 백작과 좋은 승부가 될 것 같구나.”
‘후우….’
라울은 속으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열심히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넘어야 할 산이 바로 나타나 버리니 또다시 조바심이 생겨나는 듯했다.
“뭐 하고 있느냐?”
“…네?”
“어서 검을 꺼내거라. 그간 입으로 지도하려니 얼마나 답답했던지. 앞으로는 내가 제대로 가르쳐주마.”
라울은 카르데나스의 배려에 감동했다.
몸을 얻자마자 제자의 검을 봐주겠다는 스승의 마음이 크게 와닿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 스승님?”
라울의 안색이 약간 창백해졌다.
“응? 왜 그러느냐?”
“어째서 오러 블레이드를…?”
카르데나스의 검에선 스치기만 해도 뭐든 잘려 나갈 것 같은 날카로운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쳐 있었다.
“훈련은 실전처럼! 내가 다른 마스터들을 가르쳤던 것처럼, 제대로 지도해 주마.”
“아, 아니 잠시만…!”
챙! 퍼석.
라울이 황급히 만들어 낸 임시 오러 블레이드가 한 합도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져 내렸다.
“어허!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까!”
하지만 쉴 틈도없이 카르데나스의 다음 공격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 아직 마스터가 아니라고요!’
라울이 마음속으로 절규했지만, 카르데나스는 전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결국, 그날 라울의 마나가 모두 고갈되어 기절하고 나서야 카르데나스의 훈련이 종료되었다.
* * *
[레그나토르 : 파워아머]희귀도 : 유니크 -> 에픽
등급 : A
상태 : 귀속(라울), 부분 개방, 봉인중.
출력 : 1.8->2.0 CP(Core Power)
가동 시간 : 120->240 min/max
가동 형태 : 자체 충전.
방어술식 : 6서클. 상급 마나블레이드 방어 역장. 속성 효과 75% 감소.
특수 기능 : 단죄(맹약의 대상을 상대로 200% 효과 증폭), 은밀한 포식(하위 파워아머를 흡수하여 그 기능을 흉내낼 수 있다), 환상 날개(주입한 에너지 속성의 날개가 생성됨), 에고(주인이 의식을 잃어도 파워아머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고스트 아머(에고를 통해 하위 파워아머를 조종할 수 있다)
각성시간 : 30초->1분
라울은 바뀐 레그나토르의 정보창을 살펴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데, 너무 좋은데 왜 웃을 수가 없을까….’
검을 쥔 카르데나스는 라울이 생각하던 따뜻한 스승이 아니었다.
그에게 주어진 30분이라는 제한 시간에 딱 알맞게 라울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철저하고 냉철한 지도자였다.
덕분에 레그나토르가 각성하고 보름간, 라울은 매일 기절한 채 침실로 옮겨져 아침 해를 봐야만 했다.
물론 그 때문인지 거의 멈춘 것만 같던 경험치와 숙련도 바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전혀 실력이 늘고 있단 생각이 안 들어.’
매일 같이 얻어터지기만 하고 있으니 자신감도 떨어지는 게 아닌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스승과의 무서운 대련 시간을 제외한다면, 최근의 영지 상황이나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퍼스트 자작령으로 이주한 플레이어들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열심히 활동 중이었다.
퍼스트 길드와 플레이어 협회의 의뢰를 통해 자작령뿐만 아니라 루벤 왕국 곳곳의 던전과 게이트를 돌아다니며 공적치를 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얼마 전 시작한 2차 이주민 모집도 성황리에 진행 중이었다.
또한, 퍼스트 자작령에서 출발했던 퍼스트 플레이어 협회는 점차 그 세력과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었다.
커뮤니티와 방송 등을 통해 협회의 존재가 플레이어들에게 알려진 이후, 자작령 소속이 아니더라도 협회에 가입할 수 없냐는 문의가 빗발치듯 쏟아져 들어왔다.
지금은 퍼스트 길드 지부를 중심으로 외부 플레이어들의 협회 가입이 이루어지면서, 명실상부 최초의 플레이어 협회이자 최대의 협회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영지 내적으로는 본격적으로 마탑이 활동을 시작했다.
기존에 나키아가 책임지고 있던 포션 생산을 포함한 연금술 라인.
라울이 꾸준히 영입해오던 장인과 직공들.
새롭게 인수한 페리도 마탑까지 세 가지 요소가 모여 [퍼스트 마탑]의 출범을 알렸다.
포션 생산과 이제는 마법까지 부여된 무구 생산을 기반으로 최종적으론 자체 파워아머 생산을 목표로 어마어마한 자금과 인력이 투입되고 있었다.
나키아와 라벨의 보고에 의하면 적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기초적인 파워아머 생산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퍼스트 기사단도 길드 정원인 1천명을 거의 채워가고 있고, 영지병의 전원 정예화도 잘 진행되고 있구나.’
라울의 최종 목표는 전 병력의 마나 유저 도달과 기병화였다.
어설프게 머릿수를 늘려봤자 다가올 대전쟁의 시기엔 희생양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저번 영지전을 통해 맹우가 된 셀피어드 남작가에서 충분한 숫자의 군마도 확보하고 있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영지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데, 버나드가 집무실을 찾아왔다.
“마스터, 교단에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교단? 제논 교단 말인가?”
“그것이 좀 묘합니다만. 아무래도 직접 만나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지? 지금 시기에 교단이 나설 만한 일이 있었던가…?’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던 그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설마, 그들이…?’
침을 꿀꺽 삼킨 라울의 표정이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