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02
제202화
“교단에서 나오셨다고요?”
“대지와 바위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자이로스 교단의 키에라라고 합니다.”
하얀 베일로 얼굴을 살짝 가린 여신관이 성호를 그리며 인사했다.
“검과 방패의 수호가 함께할지니. 바타르 교단의 성기사 코렐리우스요.”
“길잡이이자 레인저 시마르입니다.”
“5서클 마법사 레건입니다. 결계 해제가 전문이지요.”
“신의 부름을 받은 자, 애셔라고 합니다.”
라울의 집무실에 찾아온 5인의 방문자들.
여신관, 성기사, 레인저, 마법사, 전사로 이뤄진 파티였다.
그들의 이름을 확인한 라울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키에라, 애셔. 틀림없어. 이들은….’
라울이 설마설마했던 바로 그 인물들이었다.
“자이로스 교단과 바타르 교단. 거기에 마법사까지. 굉장히 보기 드문 조합이군요. 어쨌든 퍼스트 자작령에 방문하신 걸 환영합니다.”
라울이 업무적인 태도로 그들을 맞이했다.
준비되어 있는 소파에 착석하고 차가 준비되자 그가 다시 물었다.
“그래, 교단분들이 왕국의 구석진 영지까지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퍼스트 자작령은 왕국에서 따지면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변방 영지였다.
게다가 신성제국은 루벤 왕국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대륙 동북쪽에 있었다.
포털을 탄다고 해도 세 번은 갈아타야 하는 먼 곳까지 이들이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저희는 신탁에 따라 교단을 대표하여 대륙의 위협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자작님을 찾아뵙게 된 것은….”
“라울 자작! 당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이방인들을 동원하는 짓거리를 당장 그만두시오!”
“코넬리우스 경!”
여신관 키에라가 차분하게 말을 꺼내는 도중, 갑자기 끼어든 코넬리우스가 라울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키에라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말렸지만, 코넬리우스는 당장 칼이라도 빼 들 것처럼 기세등등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큰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살벌한 기세를 풍기는 호위 기사 십여 명이 칼집에 손을 얹고 라울의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라울은 살짝 손을 들어 올려 기사들을 멈추고는 전혀 동요한 기색 없이 담담하게 코넬리우스를 바라봤다.
“흥. 시치미를 떼도 소용없소. 당신이 이방인들을 제멋대로 영지전에 끌어들이고, 커넥트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있다는 건 이미 조사가 끝났으니까!”
팔짱을 끼고 마치 라울을 죄인처럼 취급하는 코넬리우스.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듯 도발적인 눈빛을 쏘아 보내는 그를 보며 라울이 입을 열었다.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듣고, 뭘 조사했는지는 모르겠군.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대놓고 시비를 거는 상대에게까지 예의를 차릴 생각은 없었다.
“흥.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가? 이방인들은 이 커넥트 대륙 전체를 위해서 신께서 불러들인 전사들이다. 고작 당신의 욕심을 챙기기 위해 멋대로 부려도 되는 장기짝이 아니란 말이다! 당장 이방인들을 영지에서 해방하고, 퍼스트 길드라는 부적절한 단체도 해산하는 게 좋을 것이다.”
“…….”
코넬리우스의 장황한 말이 끝나자, 라울의 집무실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라울은 코넬리우스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른 일행들의 눈을 하나씩 차분하게 바라봤다.
키에라 여신관은 껄끄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여 라울의 눈을 피했고, 마법사 레건은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레인저인 시마르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멍하니 있을 뿐이었고, 애셔라는 전사는 코넬리우스의 말에 동조한다는 듯 불타는 눈빛으로 라울을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후르륵.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천천히 차를 들이켠 라울이 찻잔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말했다.
“일단 묻지요. 성기사 코렐리우스가 당신들 일행을 대표하는 자가 맞습니까?”
“아니, 그건 아닙….”
“그렇다. 내가 이들의 대표나 다름없지.”
코넬리우스가 다시 키에라의 말을 끊어먹었다.
“그런가? 그럼 조금 전 네가 한 말은 네 개인적인 의견인가, 아니면 교단 전체의 의견인가?”
“……. 흥! 조사단인 내 의견이 교단의 의견이나 다름없지. 이미 보고서가 올라갔으니, 이제 와서 발뺌해 봤자 소용없다. 지금이라도 참회하고 신의 뜻에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울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개인의 생각이 일행을 대표하고 교단까지 대표하더니 어느새 신의 뜻이 되어버리는 재밌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뭐, 이 이상 참신한 X소리를 들어줄 필요는 없겠군.’
라울이 슬쩍 손짓을 하고는 말했다.
“그렇다는군요. 정말 저 말이 교단 전체의 뜻을 대표하는 게 맞습니까, 주교님들?”
덜컹.
문이 열리고 십여 명의 인물들이 황급히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저 멋모르는 기사 하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저희 제논 교단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오해십니다. 교단에선 결코 퍼스트 길드를 그런 식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로 퍼스트 자작령에 자리 잡은 각 교단의 책임자인 주교들이었다.
라울은 방문객들의 대략적인 정체를 짐작하고는 그들과 만나기 전에 주교들을 소환해 두었던 것이다.
일부러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바로 옆방에 그들을 대기시켜 두었으니, 지금 주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대지의 신 자이로스 교단과 전쟁의 신 바타르 교단의 주교는 얼굴이 꺼멓게 죽어가고 있었다.
“글쎄요. 앞에 계신 코넬리우스 경은 생각이 다르신 모양입니다. 솔직히… 조금 충격적이긴 합니다. 제 딴에는 충분히 교단과 협의하에 움직였고,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라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교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현재 커넥트 대륙의 귀족 중 가장 교단에 많은 헌금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라울 자작가였다.
게다가 칼립스 성에는 루벤 왕국의 수도에 있는 것보다 훨씬 커다란 신전들이 건축 중이었다.
완공된다면 신성제국의 대신전을 제외하고 대륙에서 가장 큰 규모의 종교지구가 탄생할 예정이었다.
게다가 각 자유 도시에서 신성을 깨달은 플레이어들을 교단에 소개시켜 주고 있는 것이 바로 퍼스트 길드.
플레이어들뿐만 아니라, 믿음 충만한 아이들을 주기적으로 신전 교습소에 유학 보내는 것도 퍼스트 길드였으니….
“면목 없습니다. 라울 자작님께서 본인의 선행을 비밀로 해주시길 바라니,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오해를 한 모양입니다.”
“대륙에서 가장 신실하신 라울 형제님을 음해하다니! 바타르 교단은 도대체 신도 교육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만약 라울이 교단들에 실망하여 헌금을 줄이거나 협력을 그만두게 된다면, 그들로서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주교들이 어떻게든 라울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연신 사과를 해대고 있으니, 문제를 일으켰던 코넬리우스 일행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물론 제대로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인물도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주교씩이나 되는 분들이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일개 영주에게 빌빌거리다니요! 언제부터 교단이 이렇게 세속에 물들었단 말입니까!”
코넬리우스가 기가 찬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교들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불편한 기색으로 바타르 교단 주교를 째려볼 뿐이었다.
“그만하시지요, 코넬리우스 형제. 형제님은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라울 자작님은 형제님이 그런 식으로 음해할 분이 아닙니다!”
“뭐요! 당신들 모두 눈이 삔 것인가? 저 라울이란 자가 이방인들을 사병화하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음해라니! 이방인들을 돌보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거늘, 귀족의 착취와 탄압에 놀아나는 그들을 모른 척하겠다는 것이오? 내 당장 이 일을 상부에 보고하겠소!”
“상부? 어느 상부를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이 통신을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소.”
주교가 휴대용 마법구를 그에게 내밀자, 코넬리우스가 코웃음을 치며 그걸 받아 들었다.
“흥, 당신이 누구든 내 생각이 바뀔 일은… 헉.”
– 코넬리우스 형제님.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겁니까?
마법구 안에는 단단한 인상의 백발노인이 미소를 띤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미소를 지은 눈꼬리와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교, 교주님! 어떻게 교주님께서…?”
–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라울 자작님께 사과드리고, 본인의 본래 임무에 충실하십시오.
그리고 통신구는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뚝 연결이 끊어졌다.
“어, 어째서…?”
코넬리우스가 끊어진 통신구를 든 채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한번 생각이 굳어지면, 남의 의견을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와 다른 의견은 모두 틀렸다는 절대적인 신념.
그런 신념을 가진 이는 모든 상황을 자신의 생각에 끼워 맞춰 왜곡되게 해석하곤 한다.
코넬리우스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온 것인지 몰라도, 주교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미 라울을 배덕자로 각인한 듯했다.
하지만 과연 교단의 최고 우두머리인 교주의 말마저 무시할 수 있겠는가?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자 조사단 일행도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키에라 여신관이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조물거렸다.
하지만 라울이 한 발짝 빨랐다.
“제가 여러분과 면담을 허락한 것은 교단을 존중하고, 작게나마 도움을 드렸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모욕을 당하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게 될 줄은 몰랐군요.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는 것 같으니 이만 물러들 가십시오. 그리고 오늘 일은 정말… 실망입니다.”
“이, 이런. 저희는 결코 자작님을 모욕하려던 것이….”
키에라가 뒤늦게 입을 열었지만, 라울은 그녀를 무시하고 먼저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처음부터 라울의 뒤에 시립해 있던 버나드가 얼음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스터께선 신실하신 분이라 그냥 참고 넘어가시는 듯하지만, 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저희 영지와 길드에서 제공하고 있던 각종 지원과 정책들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니 버나드 총관.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마스터와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수많은 일들이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한 것이고, 대륙의 질서를 흔드는 일이었다면, 당연히 그만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해입니다. 결코 그런 뜻으로 방문한 것이….”
“교단의 특별 조사팀이라고 들었습니다. 교단을 대표한다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원하시는 대로 우리 퍼스트 영지와 길드는 이방인에 대한 모든 지원과 정책들을 철회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해가 없도록 확실하게 공지하겠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버나드의 단호한 말에 주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큰일 났다!’
‘절대로 안 돼!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들은 알고 있었다.
퍼스트 영지와 길드가 이방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지원과 혜택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각 교단이나 협회들도 그들을 위한 각종 지원책을 펼치고 있었지만, 그들 전체의 지원액을 합쳐도 퍼스트 길드의 1/10도 되지 않았다.
그런 지원이 당장 없어진다?
그것도 교단의 항의 때문에?
이방인들의 원망이 과연 누구에게 향하겠는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형제들 때문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자칫하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어!’
이방인들을 지원하고 이끌어야 할 교단들이 이방인들에게 공격받고 외면당하다니.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무슨 낯으로 신께 기도를 올린단 말인가.
“…안 됩니다! 제발 진정하십시오!”
“버나드 총관님! 그것만큼은 재고해 주십시오. 이번 일은 저희들의 불찰입니다. 부디 대의를 생각해 주십시오!”
결국 주교들이 두 손 두 발이 닳도록 빌고 사과를 한 뒤에야 버나드의 결심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태를 만들어낸 원흉들은 살기가 흉흉한 자작가의 기사들과 사용인들의 눈총에 시달리다가 쫓겨나듯 관저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라울은 멀리서 그들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저 재앙 덩어리들이 알아서 떨어져 나가주다니. 정말 하늘이 도왔군.’
라울이 학을 떼게 만든 그들의 정체는 바로 ‘용사 파티’.
커넥트의 메인 시나리오를 장식할 최고의 골칫덩어리들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