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03
제203화
게임을 하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이들이 있다.
가장 기본적으론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플레이어들을 안내하는 튜토리얼 NPC.
처음 들른 마을에서 퀘스트를 제공하는 마을 이장.
플레이어들에게 스킬이나 기술을 알려주는 사부나 교관.
필요한 장비나 아이템을 거래하는 무기상, 잡화상 등의 상인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그들과 달리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자주 만나게 되는 이들이 있었으니.
메인 시나리오 NPC.
혹은 길잡이라 부르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시나리오를 플레이어들에게 제공하는 한편, 플레이어들과는 다른 루트를 통해 게임 속 역사를 변화시켜가는 이들.
일종의 숨겨진 주인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용사 파티’.
일명 퀘스트 제조기라 불리는 NPC였다.
‘용사 파티’의 역할은 게임마다 다양하게 등장한다.
어떤 게임에선 플레이어의 파트너로 함께 움직이며 시나리오를 이끄는가 하면, 본인들이 직접 행동하기보다는 플레이어들에게 각종 의뢰나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플레이어들과 별도로 자신들이 먼저 움직이며 각종 숨겨진 비밀이나 사건들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커넥트의 경우엔 세 번째 케이스가 많았다.
플레이어들과 상관없이 대륙을 헤집고 다니며 적들의 음모를 찾아내거나 각종 이벤트를 이끌어내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만약 내가 단순히 플레이어였다면, 그들과의 만남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겠지.’
플레이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게임의 엔딩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엔딩을 보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바로 메인 시나리오 NPC가 제공하는 퀘스트를 따르는 것이고.
전생의 배도현은 그렇게 움직였다.
길잡이들을 통해 획득한 퀘스트를 따라 스토리를 진행하다가 막히면 사냥과 수련으로 레벨을 올리고.
실력을 쌓으면 다시 메인 시나리오의 흐름을 따라가고.
물론 나중에 거대 길드의 훼방으로 메인 시나리오 자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게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의 플레이 방식이었다.
배도현이 전생에 만났던 용사 파티는 지금 라울을 찾아온 이들과는 다른 파티였다.
커넥트는 대륙 그 자체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
당연히 용사 파티 하나만으로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가 모은 정보에 확인된 용사 파티만 해도 열 개가 넘어갔으니.
‘하지만 공통점이 있지.’
용사 파티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교단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신의 힘을 부여받은 ‘용사’가 한 명씩은 끼어 있게 마련.
그 용사는 어느 세력에 속하지 않았고, 무조건 평민 이하의 계급에서 탄생한 이라는 것도 같았다.
‘문제는….’
바로 그들의 숭고한 목적이었다.
[커넥트 세상의 구원].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사태.
천 년 이상 이어오던 봉인의 해제.
각국에서 벌어지는 내전과 제국의 침략 등등.
커넥트 대륙을 위협하는 그 모든 것들을 막아내고 대륙의 평화를 찾겠다는 그 의지는 존중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그런 순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정의감. 그를 위해선 세파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이들이 필요한 건 당연하지.’
신성 제국에선 그런 기준으로 용사 파티의 파티원을 구성하고 대륙 곳곳으로 파견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재앙이자 문제의 시작이었다.
세상사는 ‘부조리의 연속’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만큼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
가장 발전된 정치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현대 지구조차도 그러할진대, 중세 기반의 커넥트는 어떠하겠는가?
세상으로 퍼져나간 용사 파티는 각종 문제를 일으켰다.
파티의 중심이 되는 ‘용사’와 평생을 교단에서 수련하던 ‘신녀’ 혹은 ‘성기사’.
그들이 보기에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투성이였을 테니까.
그들은 신과 교단의 이름으로 지나는 곳마다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상점가에서 보호세를 받는 어둠의 조직을 소탕하는가 하면, 혼란을 틈타 마을을 장악한 용병단에게서 마을을 해방했다.
뇌물을 주고받는 상단을 고발하기도 하고, 심지어 양민을 약탈하는 영주를 이단 심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피해를 받던 이들은 그들을 칭송했고, 플레이어들은 각종 퀘스트를 던져주는 그들을 환영했다.
‘하지만 그게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
용사 파티가 떠난 상점가는 다른 조직이 자리 잡아 상인들을 더 지독하게 수탈했다.
그나마 마을을 지켜주던 용병단이 전멸하자, 용사 파티가 떠난 마을은 보름을 버티지 못하고 몬스터의 습격에 소멸했다.
도시에 물품을 공급하던 대형 상단이 퇴출당하자 물품 공급에 차질이 생겨 물가가 미친 듯이 상승해 시민들 모두가 피해를 받았다.
이단 심판으로 영주가 쫓겨나자 후계자리를 놓고 내전과 영지전이 일어나 영지민들 절반 이상이 징집되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 가뜩이나 혼란스런 커넥트 대륙을 더 어지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라울이 봤을 때는 당연한 결과였다.
용사 파티는 ‘정의’를 실현했지만, ‘책임’은 지지 않았다.
거하게 일을 벌여 칭송을 받았지만, 뒷수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할 생각이 없거나 할 능력이 없었겠지.’
위험을 느낀 주민이 용사 파티에게 마을에 좀 더 남아 있기를 부탁한다 하더라도.
“미안합니다. 저희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서 떠나야만 합니다.”
대의. 정의.
이 거대한 방패가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고,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물론 부조리와 악을 처단한 그들의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끝까지 책임지지는 못하더라도 수습 정도는 하는 게 도리 아닌가?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과연 그들의 행동은 누구를 위한 정의란 말인가.
‘그리고 그 대상이 플레이어라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게 문제지.’
그들은 함께 전투를 치른다 해도 ‘정말 중요한 순간’, 혹은 ‘위기의 순간’에는 자리에 없거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로는 알면서 플레이어들을 사지로 몰아넣기도 한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들은 죽어도 되살아날 수 있으니까.
대륙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그들은 절대 죽어선 안 되고, 목숨이 여러 개인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목적을 위해선 쉽게 소비해도 되는 일종의 대체인력 아니겠는가.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그들을 환영할 수 있을까.’
라울도 처음 커넥트에 환생했을 때는 ‘용사 파티’를 어떻게 이용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한결같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은 함부로 곁에 두는 것이 아니다.
용사 파티를 곁에 두는 순간, NPC든 플레이어든 ‘조연’으로 전락하게 된다.
‘김전일이나 코난도 아니고, 근처에 있는 애먼 이들만 피해를 받는단 말이지.’
그래서 최대한 관계를 맺지 않으려 피해 왔건만, 저쪽에서 먼저 찾아온 것이다.
일단 첫 번째 재앙은 피한 듯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케인. 정보원을 붙여 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도록. 그리고 저들 한명 한명의 정보도 조사해오고.”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런데 그냥 놔둬도 되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제가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그들이 라울에게 한 짓을 알게 된 케인 또한 분노한 상태였다.
하지만 라울이 황급히 그를 말렸다.
“아니야. 절대로 그들을 건드리지 마! 정보원들도 멀리서만 감시하고 절대로 그들의 반경 10m 이내로는 접근조차 하지 말도록 해. 이건 당부가 아니라 명령이야! 절대, 절대로 그들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접촉하면 안 된다고.”
유난히 열을 내는 라울의 모습을 보며 케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알았다고 했다.
그의 감정도 중요하지만, 마스터의 명령은 그 무엇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다.
라울은 그것도 모자랐는지 즉시 길드 통신을 열었다.
「전 길드원 및 자작가에 소속된 이들에게 알린다. 따로 내 명령이 내려가기 전까지는 절대로 교단의 ‘특별 조사대’에 접촉하거나 관여하지 말도록. 이건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는 사항이니, 즉시 통신에 연결되지 않은 이들에게도 전달하도록.」
솔직히 그들의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성기사 코넬리우스의 경우 엑스퍼트 상급에서 최상급.
용사가 확실한 애셔의 경우 최소 엑스퍼트 상급 –용사들의 경우 신에게 어떤 능력을 부여받았는지 라울의 관찰안으로도 파악할 수 없었다- 이상으로 보였다.
키에라 여신관은 평범한 신관이 아닌 무려 ‘성녀’였고, 시마르나 레건도 무시할 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 먹으면 처리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지.’
당장 케인에게 맡기면 정말로 쓸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라울은 절대 그런 명령을 내릴 생각도, 그럴 수도 없었다.
용사 파티에 내린 ‘신의 가호’는 절대적이었다.
메인 시나리오와 상관없는 이유로 그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럴 리가 없지.’
이건 게임상의 절대적인 법칙과 같은 것이었다.
라울이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 들고 코넬레우스의 목을 내리친다 해도, 갑자기 미끄러지거나 모종의 이유로 검이 빗나갈 것이다.
오늘 그들이 라울에게 엄청난 무례를 저질렀음에도 교단에서 라울에게 사과할지언정,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일종의 ‘조건부 무적 판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부하들이 무슨 수를 쓰든 그들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잘못 엮이면 이쪽이 손해를 보게 되겠지.
괜히 라울이 ‘재앙 덩어리’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자고로 재앙과는 맞서는 게 아니라 피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라울을 방해하는 걸 넘어서 적이 된다면.
‘왜 조건부라는 말이 붙었는지 직접 가르쳐 줄 수밖에.’
라울이 연결고리 카페에서 ‘용사를 처리하는 법’ 항목을 클릭하며 눈을 빛냈다.
* * *
“하아.”
성녀 키에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일러 두었건만, 결국은 또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그들 조사대에 포함된 코넬리우스에 대한 얘기였다.
‘이러려고 라울 자작을 만난 게 아니었는데….’
이방인들을 이주시켜 사조직화하고 사병처럼 부린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코넬리우스의 말은 도를 지나쳤다.
일부 귀족들이나 이방인들이 라울 자작에 대한 험담이나 불만을 교단에 투서하기는 했다.
허나 그 이상으로 그가 세운 공적이나 실적도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
문제는 오늘 방문 목적이 결코 라울 자작에게 그 문제를 따지거나 훈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원래 목적은 이방인들 가운데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들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었다.
이방인들이 모여 있다는 자유 도시에서 조사한 결과, 가장 뛰어난 실력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퍼스트 영지였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들이 소속된 곳이 ‘퍼플 길드’라고 하는 사조직.
실제로 퍼플 길드를 방문했지만, 이방인들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길드 업무를 처리하는 이들은 퍼스트 영지의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이 말하길 소위 ‘랭커’들에게 의뢰를 하려면 퍼스트 길드, 혹은 퍼스트 플레이어 협회를 통해야 한다고 했는데….
“퍼스트 길드나 협회나 다 라울 자작의 사조직 아닌가? 굳이 하수인들을 상대하지 말고 바로 영주를 만나는 게 낫겠어.”
코넬리우스의 말에 파티원들이 넘어갔고, 그 결과가 지금의 꼴이었다.
‘본론은 말도 꺼내 보지 못하고 쫓겨났으니 이걸 어쩌지?’
사실 그녀도 이렇게 일이 꼬일 줄은 몰랐다.
여태까지 그들이 방문했던 대부분의 영지에서 영주들은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이 봤을 때, 제대로 된 통치를 하고 있는 영주는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찔리는 바가 있던 그들은 교단에 보고한다거나 적당한 조사 사실만 말해도 대번에 기가 죽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코넬리우스의 말이 조금 심하더라도 내버려 둔 감이 없지 않았다.
그게 엄청난 계산 착오였을 줄이야.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다들 눈에 뭐가 씌인 것이 분명해. 오, 신이시여! 부디 저 더러운 자의 허물을 벗겨낼 용기와 힘을 내려 주소서.”
“저도 동의합니다. 뭔가 엄청나게 잘못 돌아가고 있어요. 다시 조사해야 합니다!”
코넬리우스와 애셔는 포기하지 않았다.
교단의 지시와 주교들의 말에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신이시여.’
키에라는 그저 어떻게든 이들이 다시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