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08
제208화
다다다닷.
“서둘러!”
“대기조들은 위치로!”
사령관실 밖으로 나서자 장교들과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복도를 지나 건물 밖으로 나서자, 요새 전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병력들로 정신없어 보였다.
하지만 핸슬리 공은 그다지 서두르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이 상황이 너무 익숙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장벽까지 적이 쳐들어왔다는 얘긴가?’
라울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장벽이 콥스로드를 통해 쳐들어오는 적과 몬스터를 막기 위해 건설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관문의 역할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존재한다는 게 학계의 통설.
쉽게 말해서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뜻이었다.
진짜 방어선은 이곳 장벽이 아니라 장벽 너머에 있었다.
폭 1km, 길이 수백km의 콥스로드.
그곳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불모지일 뿐만 아니라, 각종 몬스터와 언데드가 끊임없이 출몰하는 위험지대였다.
중요한 건 그 콥스로드의 출구는 딱 두 곳, 제국 쪽과 왕국 연합의 장벽뿐이라는 것.
그래서 일정 수량 이상의 몬스터가 뭉치게 되면 어김없이 장벽을 향해 몰려오곤 했다.
그게 먹잇감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생기를 찾아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문제는 한번 뭉치면 그 숫자는 물론이고 수준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이지.’
언데드 군단의 경우 뭉치면 뭉칠수록 사기가 짙어지고, 그에 따라 자연적으로 등급이 높은 언데드가 출몰하게 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즉, 군단급 언데드 무리가 생성되면 이미 수습하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몬스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소에는 서로의 영역을 두고 경쟁하다가도 숫자가 불어나 뭉치게 되면, 저절로 서열 정리가 되면서 군단을 형성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장벽 건설 초창기에 몇 번의 거대한 언데드와 몬스터 웨이브를 경험한 인류는 방어 전략을 바꾸게 되었다.
장벽에서 막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군단’ 자체가 생겨나는 걸 막자.
그편이 오히려 피를 덜 흘린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장벽 너머에는 세 개의 거대한 전진 기지와 수십 개의 소규모 임시 기지가 건설되어 있었다.
실질적으로 몬스터들을 요격하고 방어하는 곳은 바로 전진 기지들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이곳까지 몬스터들이 출몰했다는 것은….
“실례가 아니라면 몇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라울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핸슬리 공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그의 주변에는 장벽의 지휘부와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뭐가 궁금한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군. 일단 직접 겪고 나서 물어봐도 늦지 않을 걸세.”
그들은 어느새 장벽을 바로 눈앞에 둔 모종의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이거 직접 보니까 장난이 아닌데?’
이미 현대 지구에서 고층 아파트나 빌딩들을 질리도록 경험한 라울이었지만, 눈앞의 장벽은 뭔가 스케일이 달랐다.
높이만 해도 200m인데다(콥스로드 입구는 다른 장벽보다 높았다), 돌인지 금속인지 알 수 없는 특수한 재질이었다.
장벽 중간중간에는 마치 절벽에 집을 지어놓은 것처럼, 감시탑과 출입구들이 뚫려 있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각종 장비와 기이한 빛을 띠는 마법진들이 새겨져 단순한 성벽이 아님을 짐작케 했다.
“올라가지.”
그리고 일행이 도착한 곳.
장벽 아래에는 사람이 올라탈 수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탈것 수십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가로세로 5m 크기의 탈것은 금속받침에 얄팍한 난간이 달려 있는 반쪽짜리 상자 느낌이었다.
척척척.
핸슬리 공을 따라 탈것에 올라타고, 총 20여 명의 인원이 채워지자 발밑이 살짝 빛났다.
우웅.
그리고는 탈것이 쏜살같이 위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호오.’
속도는 지구의 고속 엘리베이터보다 훨씬 빠른 것 같았다.
거의 20초 만에 장벽 꼭대기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공기의 저항이나 압력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마도 ‘마법’의 작용이 아닐까 싶었다.
마법을 사용할 거면 그냥 마탑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단거리 공간 이동 마법진을 사용하는 게 낫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그런 공간 계열 마법을 썼다간 차원 미아가 되어버리겠는걸?’
장벽 자체에서 느껴지는 복잡하고 다양한 마나의 흐름은 아마도 공간 이동 좌표를 뒤흔들어 놓을 게 분명해 보였다.
어쨌든 탈것을 통해 장벽 위에 오르자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경치가 라울을 반기고 있었다.
장벽 너머의 콥스로드.
보는 것만으로도 몸을 으스스하게 만드는 한기가 느껴지는 짙고 어두운 안개가 길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바닥 자체가 마치 피로 물든 것처럼 붉어 보였고, 전방 일정 범위까지 생명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그리고 좌우로 약간 고개를 돌리면, 땅이 끝나는 지점에는 그저 어둠 그 자체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깊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낭떠러지, 대협곡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협곡 너머로는 하늘 높이 솟구친 가파른 산맥이었으니….
“어떤가? 콥스로드를 직접 본 느낌은?”
“뭐랄까. 정말 피 냄새가 짙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외나무다리 같은 지형이군요.”
“그래, 그 말이 딱 맞군. 수십 년간 수많은 피를 빨아먹은 저주받은 땅이면서,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는 아주 X같은 곳이지.”
그러면서 혀를 차는 헨슬리 공의 두 눈엔 알 수 없는 증오가 맺혀 있었다.
“그런데 종은 왜 울린 겁니까? 아직 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건 이제 알게 될 걸세.”
방어하는 입장에선 조금 안타까운 일일 수도 있지만, 콥스로드는 완전한 일직선이 아니었다.
완만하게 왼쪽으로 휘어진 길은 저 멀리 거대한 산맥에 가로막혀 그 뒤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장벽에 가장 가깝다는 제1 전진 요새 ‘알파’가 이곳에서도 보였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라울의 시야에 산맥 사이까지 이어진 콥스로드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기감에 무언가 불쾌한 것이 느껴졌다.
‘사기(死氣)?’
츠파팟!
전방 500m 정도 되는 부근에 반투명한 푸른 막이 생성되며 불꽃이 튀어 올랐다.
그리고.
구오오오오오!
마치 영혼이 울부짖는 장승곡 같은 기이한 소리가 협곡을 타고 울려 퍼지더니.
드드드드득.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들썩이며 지하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그와 동시에 콥스로드의 양옆에 있는 낭떠러지를 타고 오른 그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끼드득, 까드득.
우오오오.
아무것도 없던 콥스로드의 한복판에 어느새 만 단위를 넘는 시체 무리, 언데드(Undead)군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뿌우우우!
땡땡땡땡!
장벽 위에서 나팔수가 길게 커다란 뿔피리를 불어 적들의 출현을 알렸고, 어디선가 긴급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긴장감을 북돋웠다.
“아주 좋은 타이밍에 장벽에 도착했군, 라울 자작. 이 정도 규모면 근래 들어선 가장 큰 것 같은데?”
언데드 군단을 바라보는 핸슬리 공의 목소리에선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은가? 웃어넘기기엔 너무 규모가 큰 것 같은데…’
최근 내전과 영지전을 통해 대규모 교전을 몇 차례 경험한 라울이었지만, 솔직히 눈앞의 광경을 보고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해골 병사, 스켈레톤.
썩어 문드러진 시체 몬스터, 좀비.
살아 있는 사람 같지만, 온몸에 사기를 가득 채운 중급 언데드 몬스터, 구울.
자신의 머리를 팔에 끼고 있는 저주받은 기사, 듀라한.
그리고 언데드 군단의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의 기사, 데스 나이트까지.
이미 수만이 넘어가는 각종 언데드 몬스터 위로는 고스트, 밴시 등의 비행형 언데드들도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서 장벽 위에 자리 잡은 병력은 기사 200여 명에 궁수와 공병 2천 명 정도가 전부였다.
어찌 보면 적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폭이 50m가 넘는 장벽의 넓은 공간을 생각하면 휑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끼기긱. 철컹!
물론 넓은 장벽인 만큼 넉넉한 숫자의 전투 병기들이 배치되어 있었기에 방어가 허술해 보이진 않았지만.
이미 공병들은 투석기와 발리스타에 장전을 마치고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궁금하지 않은가?”
라울이 침묵하고 있자 오히려 핸슬리 공이 물어봤다.
“뭘 말입니까?”
“왜 이렇게 병력이 적은지, 그 많은 기사들과 병력은 어디로 갔는지 하는 것들 말이야. 다들 처음 장벽에 올라 적들을 맞이하면 그걸 물어보곤 하거든.”
핸슬리 공은 라울이 무슨 대답을 할지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지만, 라울은 딱히 고민하지 않고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여기 온 건 처음이지만, 이미 장벽에 관해선 어느 정도 조사하고 왔습니다. 아마도 여기 없는 병사들은 ‘안’에 있는 거겠지요?”
“흠. 재미없는 대답이긴 하지만, 미리 준비해온 태도엔 점수를 주도록 하지.”
앞서 말했다시피 장벽의 높이는 200m나 되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긴 하지만, 실질적인 교전이 벌어지는 장소라고 하기엔 너무 높은 것도 사실.
게다가 언데드의 경우 투사체, 특히 활촉 같은 작고 날카로운 물체에 대한 내성이 강했다.
원거리 공격만으로 언데드를 쓸어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었으니.
그래서 장벽에는 그를 대비한 특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온다!”
쿵, 쿵, 쿵, 쿵.
시체들이 움직이는데 무슨 발구름 소리가 나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시체가 사람의 것만 포함된 게 아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구성 한번 요란하네.’
언데드 군단 진형에는 덩치가 5m에 가까운 좀비 오우거나, 스켈레톤 미노타우르스, 시체들이 짜깁기된 괴물 어보미네이션 같은 중형 이상 몬스터들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피로 이뤄진 블러드 골렘이나, 혐오스런 살덩어리로 이뤄진 플래쉬 골렘들도 걸어오는 걸로 봐선 적진에 언데드 마법사들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보였다.
“사격 준비.”
“사격 준비!”
핸슬리 공의 무심한 명령에 부관들이 크게 복창하자, 궁병들이 활시위를 당기고, 공병들은 병기를 조준했다.
“발사.”
“발사!”
퉁, 쿠웅! 촤라라락!
명령과 함께 수천의 궁병이 동시에 활시위를 놓았고, 발리스타는 거대한 나무 기둥을, 투석기는 돌덩어리를 하늘로 쏘아 올렸다.
퍼버벅!
높이 200m의 장벽에서 발사된 화살들은 원래의 사거리를 아득히 넘어 걸어오는 언데드 군단의 머리 위에 떨어져 내렸다.
최전선 장벽에 근무하는 최정예 병력답게, 궁병들이 쏘아낸 화살 비는 정확한 탄착군을 형성했다.
아무리 언데드가 화살에 강하다 한들, 중력의 힘을 보탠 강력한 화살 비에 머리가 꿰뚫리자 하나둘 바닥에 쓰러져갔다.
꽈과과광!
그리고 떨어져 내린 돌덩이와 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나무 기둥에 휩쓸린 언데드들은 더 처참한 꼴을 맛봐야 했다.
이미 죽어버린 몸이라지만, 아예 형체를 알 수 없게 뭉개지거나 사지가 찢겨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으니까.
그오오오.
하지만 그런 쏟아지는 원거리 공격 속에서도 언데드 군단은 빠른 걸음으로 장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공포를 잃은 언데드 병력은 바로 옆의 동료가 쓰러진다 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고, 화살이 대여섯 발 박힌다 해도 머리에 당하지 않는 한 끊임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꾸역꾸역 장벽을 향해 다가오는 언데드 군단이 마침내 장벽 앞 200m까지 거리를 좁힌 순간.
“장벽 1단계 개방.”
“1단계 개방!”
구구궁!
마치 장벽 자체가 울부짖는 것처럼 잘게 진동했다.
그리고 진동이 멎은 순간.
“발사!”
“한 놈도 접근시키지 마라!”
촤라락! 퉁!
장벽 꼭대기가 아니라 장벽 중간에서 화살비가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나 수준 50%까지 사격 개시! 마법은 대인 마법으로!”
“파이어 볼!”
“홀리 스피어!”
“매직 미사일!”
그리고 화살비의 뒤를 따라 이글거리는 화염구와 반투명한 마나 화살 등 각종 마법들이 언데드 군단을 향해 발사되었다.
‘와! 장난 아닌데?’
마치 창문이 열리는 것처럼 장벽 중간중간에 구멍이 열리고, 그 뒤에 대기하고 있던 병력들이 순차적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덕분에 장벽에서 투사되는 원거리 공격의 수준은 일반적인 성벽과는 차원이 달랐고, 언데드들은 더 이상 장벽에 가까워지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장벽의 본모습.
그것은 바로 장벽 자체가 하나의 요새로, 기동하는 최종 방어선이 되는 것이었다.
대충 봐도 장벽 내부에서 활을 쏘고 마법을 발사하는 병력의 수는 이미 만 단위가 넘어 보였다.
‘이대로라면 너무 싱겁게 끝나겠는데?’
라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언데드 군단의 움직임이 변했다.
원거리 공격으로 갈려 나가는 초급 언데드 사이로 중대형 언데드들이 방패를 들고 달려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쿠와아앙!”
“구오오!”
거대한 뼈 방패를 앞세운 덩치들이 화살과 마법까지 막아내며 달리자, 언데드 병력 전체가 괴성을 지르며 장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