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07
제207화
다그닥, 다그닥.
말에 오른 20여 명의 기사들이 황무지를 가로지르며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라울과 그의 호위를 맡은 퍼스트 기사단원들이었다.
“이야~!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거대하다 못해 어마어마하네요.”
말을 달리던 조쉬가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까마득히 먼 지평선 가까이에 정말 엄청나게 기다란 인공 구조물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인류 최대의 건축물이라고 불리우는 ‘장벽’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눈을 어지럽히는 것은 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치솟아오른 거대한 산맥.
마치 행성을 절반으로 갈라버린 것 같은 거대한 산맥은 말 그대로 인간의 진입을 거부하는 천혜의 장막이었다.
조쉬의 감탄이 ‘장벽’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절망의 대협곡’을 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완전히 압도되었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눈보다 빠른 입이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고 있었을 테니까.
“이렇게 보면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로 저기까지 도착하려면 내일 오후는 되어야 할 거다.”
“맙소사. 하루를 달려왔는데, 그만큼 더 가야 한다고요?”
제이크가 한 말을 들은 조쉬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과한 리액션을 보였다.
아마도 잔뜩 굳어 있는 라울의 기분을 조금은 풀어주고자 했던 모양이지만, 별로 효과는 없어 보였다.
라울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말고삐만을 쥔 채 뚫어져라 장벽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급하면 바로 포털을 타면 안 됩니까? 왜 굳이 이틀 넘게 말을 달려서 장벽까지 가는 겁니까?”
조쉬가 궁금하다는 듯 묻자, 이번에는 케인이 대답했다.
“장벽 근처에는 어마어마하게 복잡하고 많은 마법진과 각종 기관, 절진이 설치되어 있거든. 그리고 각종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일정 범위 내로 순간 이동을 금지하고 있지. 아마 진짜 전쟁이 터진다고 하더라도, 정말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포털을 개방하지 않을 거다.”
그랬다.
케인의 말처럼 장벽에 가려면 무조건 지상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국 측에서 순간이동이나 비행 마법, 땅굴 마법 등 각종 수단을 통해 장벽을 노려온 지 수십 년.
그런 꼼수를 막는 것은 물론이고, 혹시나 각 왕국에서 허튼 생각을 가지지 못하도록 정해놓은 일종의 규칙이었다.
“좀 더 서두르지.”
말을 꺼낸 라울의 몸에서 퍼져 나온 따뜻한 마나의 바람이 일행을 감싸 안았다.
라울이 광휘의 아우라를 펼친 것이다.
덕분에 지쳐가던 말들이 호흡에 안정을 찾았고, 기사들도 잠시 지쳤던 몸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이랴!”
일행은 말에 박차를 가하며 장벽을 향해 질주해 나갔다.
* * *
따각, 따각.
속도를 높인 일행은 원래 예상 시간 보다 훨씬 이르게 장벽, 아니 장벽에 접해 있는 도시 ‘포르타’에 도착했다.
“와… 이건 예상 밖인데요?”
조쉬는 아마도 거대한 병영, 혹은 요새 도시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선 포르타는 군사도시보다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오가는 교역도시 혹은 관광도시의 느낌이 강했다.
“의외지?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다들 그런 표정을 짓는다고.”
도시의 구조 자체는 심플했다.
아주 커다란 하나의 도시를 하나의 성벽이 쭉 둘러싸고 있는 구조.
특이한 점이라면 한쪽 면이 장벽에 맞닿아 있다는 것과, 그 앞에 상대적으로 작은 요새 구조물이 들어서 있다는 것.
그 요새를 제외한다면 그냥 엄청나게 번화한 무역도시나 다름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 중 90% 이상은 군과 관계없는 민간인이지. 그리고 유동 인구의 대부분은 상단과 용병이 차지하고 있고. 어때? 감이 좀 오냐?”
“그러고 보니 꼭 백작가의 요새랑 느낌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이유는 간단했다.
장벽 너머에서만 얻을 수 있는 희귀한 부산물과, 제국과의 전투에서 얻는 전리품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치적인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지만, 제이크는 굳이 그것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다.
“바로 사령부로 향한다.”
“네, 마스터.”
줄곧 굳어진 표정의 라울이 말하자 제이크가 앞장서서 일행을 이끌었다.
‘그러고 보니….’
말을 달리다 보니 이 도시의 특이한 점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
바로 엄청난 크기의 대로.
도시의 크기가 크기도 하지만, 조쉬가 여태까지 다녀본 그 어떤 곳보다–심지어 왕국 수도까지도– 도로가 넓었다.
그리고 그 도로의 가측은 상단의 것으로 보이는 마차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가운데 쪽은 말을 탄 기병들과 병사들의 행군로로 사용되고 있었다.
“원래 평소에도 이렇게 기병들이 많습니까?”
“글쎄. 내가 있을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제이크가 의아하단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령부로 향하는 행군로에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수백에 가까운 기마들이 있었다.
그중 1/5만 기사라고 해도 상당한 수가 아닐 수 없었으니.
아무래도 도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번 장벽 행에 라울이 대동한 기사는 총 스물.
그 가운데 간부급 인물이라면 케인, 제이크, 조쉬 정도였다.
케인은 당연히 정보 수집 및 실종된 둘째 형 로렌스를 추적하기 위해 대동했고, 제이크는 장벽에서 근무했던 경험 때문에 합류했다.
조쉬는 수석 기사로서 엑스퍼트 중급 이상으로 이뤄진 나머지 17명 아머 유저의 소대장이었지만, 실상은 라울의 수발을 들기 위해 참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멈추시오. 여기부턴 말을 탈 수 없습니다.”
어느새 도착한 요새 정문에는 무장한 기사와 병사들이 절도 있게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도시가 커서 그렇지, 실제 눈앞의 요새는 결코 작은 편은 아니었다.
일행이 말에서 내리자 수문장이 다가와 물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기수가 퍼스트 자작령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있었지만, 수문장은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퍼스트 자작령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아직까지 소속 기사를 장벽에 파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루벤 왕국의 퍼스트 자작령에서 온 라울 드 애쉬튼 자작님과 그 일행입니다.”
“퍼스트 자작령…? 그보다 애쉬튼이라면 그 애쉬튼을 말하는 겁니까?”
“네, 라울 자작님은 애쉬튼 백작가의 3번째 공자님이기도 하십니다.”
“아…!”
수문장을 맡았던 기사가 라울을 향해 살짝 몸을 틀더니 주먹을 들어 가슴에 대고는 라울에게 예를 취했다.
“로렌스 경의 동생분이시군요. 안타까운 소식, 정말 유감입니다. 정말 훌륭한 기사분이셨는데.”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라울이 마주 예를 취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길을 열어라.”
드르르륵.
요새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철제 장애물이 옆으로 밀려났다.
“안으로 들어가서 제4별관 1층으로 가시면 애쉬튼 백작가의 일행분들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부디 좋은 성과가 있으시기를….”
기사의 태도를 보아하니 둘째 형인 로렌스의 평판이 상당히 좋았던 모양이었다.
* * *
“어서 오십시오, 자작님.”
“오랜만이네요, 카를로 남작.”
별관에 도착한 라울 일행을 맞이한 것은 바로 실버베어 기사단장인 카를로 드 애쉬튼이었다.
지난 백작가의 내전 이후로 절치부심해 실력을 갈고닦았는지, 그의 경지는 어느새 최상급에 도달한 듯했다.
‘다행히 본가의 전력도 순조롭게 올라가고 있구나.’
지난 내전 이후, 라울은 아버지 멜빈 백작, 큰형 딜런을 설득한 끝에 퍼스트 길드의 티오 50자리를 백작가에 넘겨주었다.
퍼스트 길드가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를 받쳐줄 백작가의 성장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봤을 때, 전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실력이 정체되어 있는 백작가의 고위 기사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도 했고.
카를로 남작도 그 사실을 아는지 한결 라울에게 깍듯해진 모습이었다.
소문처럼 전해지던 ‘신의 축복’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절로 라울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버지께선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네. 최대한 라울 자작님께 협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딜런 님께서 꼭 전해달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큰형님이요?”
“네, 크흠. ‘그 멍청한 자식을 꼭 데리고 돌아와!’라고…. 직접 장벽으로 오시겠다는 것을 가주님과 단장님들이 간신히 뜯어말렸습니다.”
하긴, 큰형 딜런이라면 그럴 만했다.
오냐오냐해 왔던 라울과 달리 큰형과 둘째 형은 꽤 티격태격하며 자라온 사이.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라울이 자식이나 조카 같았다면, 로렌스는 그에겐 진짜 형제였을 테니까.
평소엔 간섭하는 것 같다며 거의 사용하지도 않던 길드 통신 채팅창으로 ‘믿는다’는 글을 새겨놓은 걸 보면,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하아, 실제로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나도 가슴이 찌릿한데, 형님이나 아버지는 어떨까.’
주입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형제였지만, 그래서 더 라울의 마음이 씁쓸했다.
이미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다른 바쁜 일들을 핑계로 둘째 형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단 자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라울의 짐작이 맞는다면, 로렌스의 실종은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원래라면 아직 6개월 정도는 시간이 남았어야 했는데, 그의 개입으로 역사가 뒤틀린 게 분명했다.
‘아직 늦지 않았어야 할 텐데….’
“그런데 도시 분위기가 왜 이렇습니까? 혹시 이번 일과 관계가 있는 겁니까?”
로렌스의 실종 소식이 전해지긴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일절 전달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벽 내의 일은 철저하게 기밀로 다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제국의 첩자들이 왕국들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정보를 일반 귀족가에 알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네, 이번 일은 로렌스 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단체로 실종된 ‘대규모 실종 사건’이니까요.”
“……!”
제이크가 묻자 카를로 남작이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오면서 보셨겠지만, 우리뿐만 아니라 각국의 많은 가문에서 조사대와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덕분에 지금 요새 내부의 별관이 꽉꽉 들어찬 상태지요.”
어쩐지 대로변에 기사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된 별관 20여 채도 이미 가득 차 있다고 하니, 먼저 도착한 카를로 남작이 아니었다면 숙소도 따로 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 혹시 무슨 일인지 들으셨습니까? 케인 경이 구해 온 소식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니까요.”
“그걸 설명해 줄 분은 따로 있을 것 같습니다. 라울 자작님, 괜찮으시다면 지금 사령관실로 같이 가실 수 있겠습니까? 자작님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사령관님께서 방문해 달라고 사람을 보내오셨습니다만.”
“부사령관님이라면 핸슬리 공을 말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장벽에는 세 명의 소드 마스터가 있었다.
총사령관 줄리어스 공과 두명의 부사령관인 핸슬리 공, 타비온 공이 그들이었다.
그들은 어느 왕국에 소속되지 않고 오로지 장벽을 지켜온 이들.
그렇기에 따로 영지가 있는 귀족이 아님에도 ‘공’을 붙여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었다.
보통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장벽에 남아 후방 업무나 행정 업무를 책임지는데, 주로 핸슬리 공이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자마자 그런 거물을 만나게 될 줄이야.’
확실히 이번 생은 전생과는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지난 생의 배도현은 아무리 큰 전장에 참가한다 해도 부사령관은커녕 실무진 장교를 만나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그리고 애쉬튼 백작가라는 이름이 가볍지는 않지만, 단순히 애쉬튼 백작가의 3남이라는 이유로 핸슬리 공이 그를 만나주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곳을 방문하는 고위 귀족의 자제들은 엄청나게 많지만, 부사령관을 만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까.
아마도 핸슬리 공은 후방 근무가 잦다 보니 왕국의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아마도.
‘로렌스 형님의 영향도 있겠지.’
그가 이곳에서 어떤 활약을 해오고 있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기사들이나 병사들의 태도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어쨌든 최고 책임자를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로렌스 형의 수색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잠시 후, 사령관실.
“어서 오게나. 장벽에 온 것을 환영하네.”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점잖은 신사가 라울을 환영했다.
정장을 입고 있어서인지 얼핏 봐선 검술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행정관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 꽁꽁 감춰진 알 수 없는 거대한 기운에 라울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호오! 과연. 소문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구만.”
잠시 드러났던 라울의 기세를 느겼는지, 핸슬리 공이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라울을 바라봤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 나가려던 그때.
땡땡땡땡땡!
“이런…. 대화는 잠시 미뤄야 할 것 같군.”
아무래도 밖에서 무슨 일이 생긴 듯했다.
“돌아가서 잠시 기다리겠나? 아니면….”
“따라가도 괜찮겠습니까?”
라울이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하자 핸슬리 공이 피식 웃으며 손짓했다.
“따라오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