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1
제21화
뒤처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라울은 이곳에서 무엇을 가져가야 하고 무엇을 내버려 둬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동굴 뒤쪽에 있던 마법진 근처에서 어두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흑마석 조각을 회수하고 간이 텔레포트 장치도 챙긴 라울.
묘한 눈으로 흑마석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는 사이 피어스가 다가와 보고했다.
“나키아양의 동생 니키를 비롯해 납치되었던 다른 중요 인물들 대부분을 찾았습니다. 다만 몇몇은….”
“모두 다 구했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유품이 있다면 꼭 챙기도록 해. 그거라도 의뢰인들에게 돌려줘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니키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만.”
라울이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둘러야지. 정리되었으면 출발하자.”
그렇게 그들은 임페리얼 하운드의 아지트를 벗어났다.
동굴 입구를 뒤돌아본 제이크가 뭔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라울에게 투덜거렸다.
“근데 진짜 놔두고 갈 겁니까?”
“왜? 아까워??”
“그럼요! 쓸 만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특히나 ‘그것’은 단순히 돈으로 따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습니까?”
솔직히 라울도 조금 아깝긴 했다.
제이크가 말하는 ‘그것’은 맥도웰에게 들러붙은 파워아머.
재활용은 어려울지 몰라도 연구자료나 제국 첩자를 잡아냈다는 상징적인 가치를 생각하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지.’
제국의 첩보기관 임페리얼 하운드는 무서운 집단이었다.
그들에게 찍혀 게임을 포기하고 다시 시작한 플레이어가 한둘이 아니었고 중소규모 귀족들이 소리소문 없이 몰락한다면 그들의 작품인 경우가 허다했다.
괜히 초장부터 그들의 눈에 띄어 귀찮은 일이 생기면 곤란했다. 지금 라울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하고 세력을 키울 시간이었으니까.
라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제이크에게 말했다.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미련 버려. 그리고 ‘그걸’ 처리한 건 나 아니었나?? 호위기사들은 뭐 했나 몰라.”
“그건 공자님이 이것저것 못하게 하시니까… 에휴.”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결국 라울의 말이 맞았다. 괜히 머쓱해진 제이크가 민망한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눈을 피했다.
피식 웃은 라울이 제이크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고생했어. 보너스 넉넉하게 챙겨줄 테니 돌아가면 며칠 푹 쉬어.”
“오옷! 보너스에 휴가까지? 나중에 무르시면 안 됩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는지 표정이 확 펴진 제이크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단순한 건지 영악한 건지….’
판단하기 힘들다는 듯 혀를 슬쩍 찬 라울이 피어스에게 물었다.
“놈들은?”
“계획대로 유인 중입니다.”
“차질없이 진행하도록.”
“네!”
눈을 살짝 감고 길드 통신으로 상황을 살피는 피어스를 보며 라울은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군. 뭐, 안 봐도 뻔하긴 하지만.’
독이든 사과를 베어 물고 나중에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긴 했지만 더 이상은 관심을 끊어버렸다.
생각대로 풀리든 그렇지 않든 이제는 그의 손을 떠난 일이니까.
* * *
“도대체 어디까지 기어들어간 거야?? 어이! 길잡이!!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소리친 이는 바로 랜달 백작가의 라몬이었다.
괜히 시비를 걸었다 피떡이 되도록 당한 것이 벌써 일주일 전. 이후 며칠간 신전에서 요양하며 정신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 보니 수중에 남은 돈도 거의 없었고 할아버지께 직접 받은 검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미친 듯이 화가 났지만 그날 애송이에게 당한 공포가 너무나 극심해 감히 따지러 가지도 못하고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는데….
화가 좀 식고 생각해보니 그들이 라울에게 당한 건 이 저주받은 장소의 특성 때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도시 내부에선 마나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정식 기사가 열둘이나 되는데 밀린 것은 오직 그것 때문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제깟 놈이 날뛰어봤자 엑스퍼트의 마나 블레이드를 어떻게 막겠어?’
저쪽의 기사는 셋에 불과하고 이쪽은 열둘이나 되었다. 그리고 호위단장 제레미는 무려 파워아머 유저!! 도시 밖에서 싸웠다면 이쪽이 가뿐하게 이겼을 게 분명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라몬, 제리, 케일 세 사촌 형제들은 그날부터 라울의 뒤에 사람을 붙였다.
인적이 뜸한 시간에 라울이 도시를 나서면 뒤따라가 앙갚음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저곳입니다!!”
길잡이의 안내로 도착한 랜달 백작가 일행의 앞에 시커먼 동굴 하나가 주둥이를 벌리고 있었다.
주춤거린 것도 잠시. 동굴 안으로 진입한 그들은 한참 뒤에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는 값 좀 나갈 것 같은 각종 마법 아이템과 장신구, 현상수배범들의 머리가 줄줄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검은 형체를 띤 ‘그것’ 또한.
셋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탐욕스런 미소가 가득 차 있었다.
* * *
이미 해가 진지도 오래되어 자정을 한참 지난 시간. 숲을 벗어나 도시 근처에 다다르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모여 있었다.
라울의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는지 몇몇 인물들이 황급히 달려 나와 그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 고생하셨습니다. 분부하신대로 동쪽 숲에 있는 도적들의 아지트를 정리하고 시민 20여 명을 구출했습니다.”
“북쪽 숲의 도적 소굴을 소탕하고 창고의 물품을 되찾아 왔습니다.”
“서쪽 숲의 도적을….”
차례차례 보고하는 인물들. 이들은 바로 라울 휘하의 수습 기사들이자 퍼스트 길드원이었다.
한 달간 끊임없이 퀘스트와 사냥, 훈련을 통해 성장한 수습 기사들은 여섯 명 모두 엑스퍼트의 벽을 넘어섰다.
또한 기사 수련생 십여 명은 소드유저 최상급의 경지에 도달해 언제든 엑스퍼트가 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일반 병사 출신의 수행원들도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소드 유저의 경지에 발을 들였으니 시간이 지나면 그들 또한 기사가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리고 지난 밤, 라울의 명을 받고 세 개 조로 나눠진 이들 퍼스트 길드원들은 미리 정해놓은 도적들의 아지트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전원이 마나를 사용할 수 있고 애쉬튼 백작가의 고급검술을 배운 데다가 라울이 전해준 스킬북까지 익혔으니 일반적인 도적들이 이들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큰 부상자 없이 무사히 임무를 마친 다른 부하들까지 합류하자 일행의 규모는 어느덧 백 단위를 넘어섰다.
꽤나 큰 규모의 일행이 성문 앞에 도착하자 경비병들은 긴장했지만 미리 소식을 전해 들은 경비대장이 손수 일행을 맞이했다.
그리고 밤늦은 시간임에도 가족들의 구출 소식을 들은 시민 일부가 일행을 반겼고 그 가운데는 미라의 불운한 연금술사 ‘나키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니키!! 니키야!!”
나키아는 라울의 품에 안겨 의식을 잃고 있는 여동생을 확인하고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니키를 품에 안고 감사하다며 울먹이는 그녀에게 라울이 말했다.
“구해오긴 했지만 여동생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 못해. 일단 저택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도록 하지. 버나드?”
“네, 이미 저택에 신관을 모셔두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버나드의 안내에 따라 니키와 함께 마차에 오른 나키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라울은 사색에 잠겼다.
오늘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한 아이의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동생의 죽음으로 제국에 원한을 가지게 될 연금술사 여인의 미래도 바꿔버렸다.
오늘의 이 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라울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나키아는 세상을 뒤흔든 연금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녀가 개발해낼 수많은 포션과 아이템, 병기들이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또한 제국은 그들을 위협할 잠재적인 적 하나를 손 하나 대지 않고 제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울은 개의치 않았다.
‘백작가의 미래를 위해선 그녀의 힘이 꼭 필요해. 이 일로 인해 역사가 뒤틀린다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과거로 돌아온 이상 모든 것은 새로 쓰이게 될 테니까. 그걸 위해서 누군가의 미래를 빼앗고 짓밟게 된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어.’
그는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니키가 납치될 것을 알면서도 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빨리 납치된 이들을 구하러 갔을 것이다.
어쩌면 좀 더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라울은 철저한 계산 하에 합리적으로 움직였다.
최대한 퀘스트를 몰아서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나키아의 호의를 얻어내기 위해 저들의 고통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결과.
단 하룻밤 만에 수많은 시민들을 구해냈고 수십 개의 퀘스트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당분간 미라 근처에선 첩자나 도적단의 활동이 줄어들어 치안도 한결 안정될 것이 분명했다.
구출 받은 이들과 가족들이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를 전했고 수비대장과 병사들은 대단한 성과라며 라울 일행을 치켜세워줬다. 해가 밝으면 시장도 푸짐한 보상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올 것이다.
그런데….
“영 찜찜하단 말이지.”
가슴 한편에선 무언가 개운하지 못한 기분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보니 환호하는 군중들 틈바구니에서 이질적인 느낌의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중 우연히 마주친 한 노파의 눈에는 슬픔과 절망의 감정이 가득한 눈물이 가득했다. 그녀는 아들의 것으로 짐작되는 장갑 한 짝을 품에 안은 채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이 자리에 나온 이들 중에는 가족을 찾고 환호하는 이도 있었지만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의 소식에 애태우는 이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가족의 유품을 전해 받고 절망했고 누군가는 차라리 소식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긴 기다림을 이어갈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소외된 이들이었다.
가진 게 없고 내세울 것 없는 하층민들. 보수로 지불할 것이 없어 ‘퀘스트’조차 외면한 사람들.
문득 라울은 미라에서의 한 달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가 받고 해결해 왔던 퀘스트들을 쭉 되짚어봤다.
‘참 바쁘게도 움직였네. 그런데….’
라울 자신의 모든 행동과 동선은 오로지 퀘스트와 레벨업에만 맞춰져 있었다.
퀘스트가 없거나 무의미한 장소에는 발 한번 들인 적이 없었다.
퀘스트와 연관되거나 중요한 인물이 아닌 일반 시민들과는 말 한마디 나눠본 적이 없었다.
게임 속 세상에서 되살아났지만 ‘현실’을 살아가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실제론 어떠한가?
‘나는 여전히 커넥트라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을 뿐이었구나!!’
뭔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싸한 느낌이 라울의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