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2
제22화
물론 그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위험천만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선 더 냉철하고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과연 시스템이 안배해놓은 퀘스트를 따라가는 것만이 정답일까?’
지금까지는 플레이어 배도현의 입장에서 계획을 세워왔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그의 시야와 선택지를 줄여버린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플레이어가 아닌 커넥트의 귀족인 라울만이 할 수 있는 것들.
그것들을 놓친다면 결국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게 될지도 몰랐다.
생각을 정리한 라울이 조용히 필립을 불렀다.
“필립 경. 저기 의기소침하게 서 있는 사람들 있지?”
“네. 아마도 가족을 찾지 못한 이들이겠지요.”
“미안하지만 부하들을 시켜서 저들의 신상명세와 사정을 좀 파악해 줄 수 있겠어?”
“저들 전부 말입니까?”
필립이 둘러보니 적어도 백 명은 넘어 보였다. 제대로 조사하려면 굉장히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 전부. 그리고 가족을 잃은 이들과 납치되어 고생한 이들에겐 백작가 이름으로 위로금을 전달하도록 하고. 공사 현장에 일자리를 알아봐 주는 것도 좋겠지.”
말을 꺼내면서도 괜히 미안했다. 오랜 시간 전투를 치르고 와서 상사의 변덕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또 일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필립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부드러운 눈빛으로 라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외군요. 라울 도련님은 이득이 되는 일에만 나서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맡겨주십시오. 부하 놈들도 싫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 한 놈 싫다고 할 녀석이 있긴 합니다만.”
“왜 저를 쳐다봅니까? 저도 좋은 일 하는 거 싫어하지 않습니다!!”
제이크가 괜시리 성을 내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슬쩍 라울에게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그래도 휴가는 주실 거죠?”
필립의 말처럼 부하들은 아무 불평 없이 라울의 지시에 따랐다. 몇몇은 존경의 눈빛을 보내오기도 했다.
돈을 나눠준다는 얘기 때문인지 시민들의 반응도 한결 열광적으로 바뀌었다.
“애쉬튼 백작가 만세! 라울 공자님 만세!!”
환호와 함께 무릎을 꿇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속출했다.
그들의 반응을 보니 한결 명확해졌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여기서도 먹히는군.’
높은 신분·많은 재산 등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이념은 커넥트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제 이를 실천하는 이들은 극소수. 지구나 커넥트나 다를 게 없었다.
몇 푼 안 되는 돈과 약간의 수고로 명예와 명성을 얻을 수 있다면 절대 손해보는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미라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나중에 다른 플레이어 길드들을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체류 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질지 모르겠군. 여유를 두고 출발하길 잘했어.’
저들의 사연을 파악하고 주변의 숲을 훑으려면 며칠이 더 필요할지 몰랐다.
하지만 어차피 부하들의 레벨업도 해야 하고 실전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수도에 도착하면 당분간 실전은커녕 사냥조차 나가기 힘들 테니까.
라울이 훌쩍 말에서 내려 행렬의 뒤쪽에 있는 이름 모를 시민에게 다가갔다.
이 행동이 조금은 계산적인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흥미롭게 그 모습을 지켜보다 군중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든 라울은 점심 무렵 시청을 방문해 시장 레이날도와 식사를 함께했다. 그리고 집무실에 마주 앉아 가벼운 티타임을 가졌다.
“참 자네에겐 신세를 많이 지는군. 덕분에 한숨 돌리게 되었어.”
레이날도는 싱글벙글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뭐, 제가 아니었어도 시장님이 해결하셨을 문젠데요.”
괜히 라울이 겸연쩍게 말했지만 오히려 레이날도가 흥분하며 말했다.
“아니지, 아니야. 내가 비록 시장이란 직책 때문에 좀생이란 소리를 듣긴 하지만 남의 공을 폄하할 사람은 아닐세. 제국일세, 제국! 악마의 종자들이 우글거린다는 그 미친 국가 말이야! 그런 곳에서 우리 미라를 노렸다니… 내가 심장이 벌렁거려서 밤에 잠도 못 잤다네.”
비록 파워아머 잔해를 비롯해 마법물품들을 남겨두긴 했지만 제국의 아지트였다는 증거물을 어느 정도 챙겨왔다.
그리고 랜달 백작가 일행이 도착하기 한참 전에 시장에게 먼저 보고서와 증거물을 제출했기에 시장은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도 놀랐습니다. 제국과 접경지도 아니고 엄연히 루벤왕국의 영역 내부에 있는 미라까지 제국의 마수가 뻗어 있을 줄이야. 아지트를 살펴보니 상당히 오랜 기간 암약하며 마병을 양성해 온 모양이더군요.”
라울이 살짝 굳은 목소리로 말하자 레이날도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시민들이 실종되고 납치된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닐세. 주변의 숲에 도적무리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알면서도 토벌하지 않은 이유는… 협약 때문이지.”
기본적으로 각 국가마다 네 개씩 존재하는 자유 도시는 신의 축복을 이유로 독립을 보장받고 있었지만 몇 가지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중 가장 핵심은 군대를 보유하지 못하다는 것.
그 때문에 자유 도시는 치안 유지를 위한 경비대만 운용할 뿐 따로 병력을 양성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협약도 협약이지만 경비대는 오로지 도시 내부에서만 힘을 쓸 수 있다네. 도시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본래 가진바 실력의 절반도 내지 못하고 생명의 보호도 받을 수 없으니….”
시장이 이런 얘기까지 라울에게 털어놓는다는 건 그만큼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라울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시장의 넋두리를 받아 주었다.
“아, 참! 자네 말대로 오전에 랜달 백작가에서 사람이 왔더군. 아주 기세가 등등하게 나타나서 현상 수배범을 비롯해 첩자들의 아지트를 섬멸했으니 보상을 내놓으라고 떠들어대는데…. 솔직히 자네 부탁이 아니었으면 그냥 쫓아내고 싶었어.”
“역시 그랬군요.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일은….”
“그래. 정의감에 넘친 랜달 백작가 젊은이들의 활극으로 만들어버려야겠지. 그런데 정말 아쉽지 않은 건가? 이 건은 잘 포장하면 굉장한 명성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왕궁에서 포상이 나올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레이날도가 묘한 눈길로 라울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라울은 그저 묵묵히 차를 들이켤 뿐이었다.
“거참. 나이답지 않게 신중하니 파트너로서는 안심이긴 한데 너무 애늙은이 같아서 영 재미가 없구만. 그 일은 내 알아서 잘 처리하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이 그렇게 말했으니 아마 제국의 아지트를 정리한 건 랜달 놈들의 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국의 이목을 끄는 것도 그들의 몫이 되겠지.
“그런데….”
시장이 뭔가 고민된다는 듯 말을 끌며 라울을 슬쩍 쳐다봤다.
“자네에게 보상으로 뭘 줘야 할지 모르겠어. 돈도 나보다 많은데 그냥 돈으로 보상하기에도 그렇고. 혹시 원하는 게 있는가?”
드디어 시장의 입에서 라울이 바라는 말이 나왔다.
솔직히 예전에도 지나가는 말로 필요한 게 있냐고 묻긴 했지만 얼버무렸다.
보상은 작은 걸 쪼개 받기보단 큰 거 하나 받는 게 훨씬 이득이었으니.
그리고 지금 레이날도의 물음에선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주겠다는 진심이 느껴졌다.
라울은 잠시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끌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솔직히 보상을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라서요. 그래도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오오, 드디어 자네 입에서 원하는 걸 듣는군. 그래, 말해보게.”
레이날도가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이자 라울이 멋쩍은 듯 턱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얼핏 듣기로 시장님 저택에는 가문 대대로 귀한 서적을 모아놓은 서가가 있다고 하더군요. 괜찮으시다면 그 서가를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서가?? 아, 거기! 그래, 그런 고서 보관소가 있었지. 근데 그리 쓸 만한 책은 없을 텐데….”
그 서가는 레이날도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종종 발걸음을 하던 장소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도 서가의 책들을 꼼꼼히 살펴본 적이 있었지만 별 희한한 잡서들만 가득할 뿐 딱히 값어치 있는 책은 없었다.
“마음 놓고 구경하도록 하게. 원한다면 책 한 권 정도는 가져가도 좋아. 그런데 그걸론 보상이 너무 부족하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린 레이날도가 호쾌하게 말했다.
“좋아. 자네에겐 특별히 비밀창고도 구경시켜주겠네. 그중에서 맘에 드는 걸 하나 선물하도록 하지.”
졸지에 책과 더불어 장비까지 받게 생긴 라울은 속으로 콧노래를 불렀지만 끝까지 내색하지 않았다.
“주신다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역시 시장님께선 화끈하시군요!”
“그렇지?? 내가 필요할 땐 이렇게 탁탁~ 시원하게 베푼다니까? 그런데 나보고 좀생이라니! 그놈의 영감탱이들은 눈이 삐었어.”
어차피 줘야 할 보상이었는데 생색내는 걸 보면 좀생이가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저 마음속에 담아둔 채 라울은 레이날도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잠시 후.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저택 깊숙이 위치한 서고를 방문했다.
레이날도는 잡서를 모아놨다고 했지만 실제론 굉장한 보물창고였다. 이곳은 다름 아닌 ‘스킬북’을 모아놓은 서고였으니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가장 앞쪽의 책을 한 권 꺼내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B랭크 스킬북 [천둥 찌르기]를 습득하시겠습니까?
라울은 자신도 모르게 히죽 웃음 지으며 책을 돌려놓았다.
서가 한가득 꽂혀 있는 200여 권의 책들. 이것이 모두 스킬북이라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하지만 라울이 원하던 책은 단 한 권.
실수로라도 다른 스킬북을 골라버리면 큰일이었다.
아무리 시장과 친해졌다 한들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라울은 차분하게 서가를 둘러보다 마침내 원하던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신 수양을 위한 고대의 의식과 주술 및 훈련 방법에 대한 고찰]이라는 긴 제목을 지닌 책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퀘르쿠스 명상법]등급 : S
제한 : 초능력자 전용
효과 : 24시간 자동 명상효과 부여. 심상훈련 가능.
설명 : 고대의 초능력자들이 영력을 기르기 위해 사용했던 명상법. 일상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자연과 소통하며 영혼을 정화할 수 있으며, 심상공간을 활용한 훈련도 가능하다. 떡갈나무 근처에서 명상하면 효율이 높아진다는 속설도 있다.
눈앞에 떠오른 정보창을 보며 라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려 랭크 S의 초능력자 전용 명상법이 손에 들어온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