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5
제25화
라울의 말에 나키아의 눈에서 작은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목멘 소리로 말했다.
“이 한목숨 바쳐서라도… 반드시 해내겠어요.”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결심했다. 남은 인생, 진심으로 이 어린 주군을 위해서 살겠다고.
* * *
“후아~!”
나키아를 내보낸 라울은 기지개를 쭉 켜며 긴장을 풀어냈다. 이런 식으로 대화하고 연기하는 건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
라울의 기억이 있다지만 실제 알맹이는 21세기를 살다 온 대한민국의 서민이었다.
오글거리는 말투와 이런저런 격식들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 연습해야겠지. 내가 살아갈 곳은 이곳이고 상대해야 할 사람들은 커넥트의 주민들이니까.’
어쨌든 덕분에 오늘 하나의 결실을 맺지 않았겠는가?
처음부터 주어진 부하가 아니라, 순수하게 그가 노력해서 마음을 얻은 첫 번째 인물. 그것도 역사 속의 주인공이 될 법한 연금술사였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나저나 치료제는 무사히 완성해 내겠지?”
나키아에게 말했던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느 위대한 연금술사’는 바로 전생의 나키아.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니키가 제국 첩자들의 손에 죽은 이후 폭주한 그녀는 제국에의 복수 이외에도, 그녀의 인생을 망친 불치병 ‘마나 필라리아’와도 싸웠다. 그리고 오랜 연구 끝에 실제로 치료제를 개발해내고야 말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었고 금기와 외도를 넘나들며 욕먹을 짓도 많이 저질렀지만 이제 그게 무슨 상관인가?
다행히 그녀가 개발했던 치료제에 대한 내용은 관련 퀘스트를 받았던 플레이어가 찍은 스크린샷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라울의 ‘연결고리 카페’에 보관되어 있었다.
일부러 불완전한 자료를 넘긴 건, 연구 과정을 통해 나키아가 성장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니키의 병을 치료하는데 공헌했다는 사실을 통해 니키에의 죄책감을 덜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어쨌든 기한 내에 치료제가 개발되기만 하면 되는 일. 만약 실패한다면 그때 전해줘도 상관없었다.
이로써 미라에서 계획했던 것들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라울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슬슬 출발해볼까?”
목적지는 루벤 왕국의 수도. 검의 무덤이라는 아명을 가지고 있는 거대도시 ‘투리엄’이었다.
* * *
“이야. 진짜 사람이 사람이~! 수도는 확실히 다르군요!”
제이크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저 멀리 수도 투리엄의 성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에서부터 개미처럼 길게 늘어선 대기 행렬은 라울 일행 주변까지 이어져 있었다.
라울 일행 수는 확 줄어 있었다.
필립, 제이크, 피어스와 새로 엑스퍼트가 된 호머, 데이비슨까지 기사 다섯명. 거기에 버나드와 하인 둘, 라울까지 총 아홉이었다.
나머지 인원은 미라에 남아 훈련과 퀘스트 수행을 계속하도록 했다. 당분간은 미라에 세운 길드 하우스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대기 행렬을 벗어나 시원하게 말을 달린 일행은 바로 성문으로 직행했다. 일반인들과 달리 그들은 애쉬튼 백작가 소속이었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손쉽게 검문을 통과한 라울 일행은 성문 앞 광장에서 일단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도착한다고 전갈을 보내지 않았어?”
“네, 분명 보냈습니다만….”
아무리 살펴봐도 애쉬튼 백작가의 문장을 달고 있는 마차나 안내인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분명 공자님이 도착하신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제이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고 얼굴을 붉힌 버나드가 고개를 푹 숙여 라울에게 사죄했다.
“공자님, 제 불찰입니다. 일단 제가 먼저 저택에 가서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하지만 라울이 고개를 저었다.
“저택이 어딘지는 알고? 지금부터 찾을 거면 그냥 함께 움직이자고.”
안타깝게도 일행 중엔 수도에 있는 백작가 저택을 방문해본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미리 전갈을 보냈는데 어쩐 일인지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투리엄은 굉장히 커다란 도시였다. 성벽만 해도 증축을 거듭해 5겹이었고 넓이로 따져도 서울 크기 정도는 되었다.
물론 귀족들만 거주하는 전용 지구가 있기는 해도 주소 없이 저택을 찾기엔 무리였다.
이미 해가 살짝 저물고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라울 일행은 귀족 지구를 향해 움직이며 사람들에게 저택의 위치를 물어봤다. 하지만.
“혹시 애쉬튼 백작가 저택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애쉬튼 백작가? 아, 그 변방의 무가를 말하는 거요? 근데 수도에도 저택이 있었나?”
저택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이가 많았고
“애쉬튼 백작가?? 그런 가문도 있어요?”
아예 애쉬튼 백작가를 모르는 이도 있었다.
일반인들이야 그렇다 해도 귀족 지구에 도착해 물어본 순찰대장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죄송하지만 귀족 지구 내에 ‘애쉬튼 백작저택’이란 곳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이런 소리를 해대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딱히 우리 가문이 엄청 유명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명색이 왕국 5대 명문 무가인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사들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그리고 결국 불만이 터진 제이크가 입을 털었다.
“이런 썩을 놈들을 봤나! 지금도 우리 애쉬튼 영지에선 금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막아내느라 병사들이 죽어나가는데, 뭣이라? 애쉬튼이 어디냐고? 누구 덕에 이런 평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는 줄 아는 거야!!”
제이크의 심정도 이해가 가긴 했지만 사실 수도 시민들이 애쉬튼 백작가를 잘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거리가 멀기도 했고 아버지인 멜빈 백작이 수도를 방문하는 건 일년에 한두 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저택 자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분명 다른 귀족가와의 교류나 왕궁의 소식을 듣기 위해 커다란 저택을 마련해 두었고 총관을 임명하여 매년 엄청난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이대로는 방도가 없다고 생각한 라울 일행은 결국 관청에 들러 등기부를 확인한 뒤에야 저택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시 귀족 지구로 돌아와 아까의 순찰대장에게 서류를 들이밀자 오히려 그가 당황한 투로 물었다.
“이거 진짜 서류 맞습니까? 이 주소라면 분명 젠더 남작 저택으로 알고 있는데…?”
“젠더 남작??”
“네, 이미 10년 넘게 젠더 남작님이 거주하고 계십니다만.”
경비대장은 오히려 라울 일행이 수상하다는 듯 의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일단 알겠어요.”
굳이 경비대장과 시비를 가릴 생각은 없었기에 바로 경비소를 빠져나왔다.
“버나드?”
라울이 얼굴을 굳히고 부르자 버나드가 수첩을 꺼내 젠더 남작에 대한 정보를 읊어 주었다.
“네. 젠더 남작. 50세 남성으로 백작님의 육촌형제, 즉 공자님의 칠촌 되시는 분입니다. 현 백작님이 백작위에 취임한 이후부터 수도 저택의 외총관 직을 맡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뭔가 수상쩍은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하지만 일단은 의심을 마음속에 접어두고 저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누구시라고요?”
“애쉬튼 백작가의 3공자 라울 님이시다. 외총관은 어디 있는가?”
“애쉬튼 백작가? 혹시 초대장을 가져오셨습니까?”
“초대장? 무슨 초대장?”
필립의 물음에 경비병이 되려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초대장도 없이 파티에 오셨단 말씀입니까? 일단 저기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안에 여쭤보겠습니다만.”
경비병이 정문 옆의 허름한 간이 천막을 가리키며 말하자 보다 못한 제이크의 분노가 터졌다.
“이게 무슨 개 뼉다구같은 경우야? 개가 집주인보고 개집에서 기다리라니? 당장 젠더 남작인지 뭔지 튀어나오라고 해!!”
그가 경비병의 멱살을 한 손으로 틀어쥐고 소리치자, 옆에 있던 다른 경비병들이 사색이 되어 호각을 불며 소리쳤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침입자가 나타나면 무기부터 겨눠야 하는 거 아니었나? 놈들은 소리를 치고 나서 무기를 집어 던지고는 저택 안으로 도망쳐 버렸다.
“얼씨구?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황당함에 모두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검을 반쯤 뽑았던 호머와 데이비슨은 머쓱해져 도로 무기를 집어넣었다.
“켁, 켁. 이거 좀… 쿨럭.”
제이크에게 멱살을 잡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병사의 애처로운 목소리 외엔 정적이 흘렀다.
몇 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자 라울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후우. 들어가자.”
휘익, 털썩.
제이크가 집어 던져버린 병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다들 아무 말 없이 저택으로 향하는 정원을 가로질렀다.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반응이 나타났다.
다다다다.
기사 하나가 병사 열 명을 이끌고 달려와 길을 가로막았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냐! 정체를 밝혀라!”
“애쉬튼 백작가, 골든베어 기사단 수석 기사 필립이다. 젠더 남작은 어디 있나?”
“남작님은 왜 찾는 거냐? 아니, 잠깐만. 애쉬튼 백작가??”
그 기사는 잠시 눈을 굴리더니 깜짝 놀라며 허리를 팍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오늘 오실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은지라… 남작님께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뭐 하냐 이놈들아! 접객실로 모시거라!!”
“알겠습니다!”
어리둥절한 병사들이 무기를 거두고 라울 일행을 저택 쪽으로 안내했다. 라울은 차마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그들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백작가 저택은 굉장히 넓었다. 정문 입구부터 본관까지 마차를 타고도 5분을 들어가야 했고 본관을 제외한 건물도 열 채 가까이 되었다.
3층짜리 본관 건물은 백작과 그 직계 가족을 위한 공간이었고 별관과 부속 건물들은 애쉬튼 백작가 방계혈족 및 손님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었다.
그 말은 본관은 오로지 멜빈 백작과 라울의 형제들만 사용하는 건물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본관으로 다가갈수록 음악 소리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고 건물 전체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단 말인가?
게다가 본관 입구 주변으로 마차들이 쭉 늘어서 있었고 정원 곳곳에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것들이 짝을 지어 뒹굴고 있었다.
라울은 왠지 모르게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제이크가 옆에 걷던 병사에게 물었다.
“이봐, 오늘 무슨 행사라도 있나? 아까 얼핏 무슨 파티라고 하는 거 같던데?”
“예? 모르고 오셨습니까? 오늘은 저택 주인이신 젠더 남작님의 셋째아들 애런 공자님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 날입니다. 하긴 워낙에 파티가 자주 열리니 저희들도 헷갈릴 때가 있긴 합니다만.”
“뭐라고? 저택 주인이 누구라고?”
황당해진 제이크가 병사를 다그치려 하던 그때, 황급히 사라졌던 기사가 한 중늙은이와 함께 다가왔다.
“어디 보자, 네가 라울이냐? 못 본 새에 많이 컸구나.”
저택 주인이라는 젠더 남작이 라울의 눈앞에 나타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