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65
제265화
쿠웅.
사람 하나의 크기에 맞먹는 커다란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충혈되어 있는 두 눈.
코끼리 상아를 닮은 두 개의 뾰족한 아랫니.
머리털 하나 없이 꺼끌꺼끌한 암갈색의 가죽.
바로 에이션트 오우거(A+)의 머리였다.
“생각보다 까다로웠네.”
라울이 롱소드에 묻은 검붉은 핏물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절벽으로 둘러싸인 분지 한가운데는 작은 동산 같은 에이션트 오우거의 몸통이 쓰러져 있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A등급 던전의 가장 깊숙한 곳.
던전 가디언의 보금자리였다.
그리고 라울은 막 A등급 던전 가디언 에이션트 오우거를 쓰러트린 참이었고.
이미 지난 6개월간 왕국 곳곳에 있는 A등급 게이트와 던전을 수도 없이 공략해왔지만, 이곳만큼 어려운 곳은 없었다.
에이션트 오우거의 가죽은 오러조차 쉽사리 뚫어내지 못할 만큼 질겼다.
웬만한 기사도 꼼짝하지 못하게 묶어두는 라울의 염동력을 억지로 풀어내는 무식한 힘도 까다로웠고.
‘트롤 저리 가라 하는 회복력도 짜증 났지.’
어렵사리 만들어 놓은 상처는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자연치유가 되어버렸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라울의 상대는 아니었다.
질기긴 해도 같은 곳을 반복적으로 노리면 잘라낼 수 있었다.
염동력을 풀어내면 다시 묶으면 그만이었고, 회복이 빠르다면 그보다 더 빨리 상처를 입히면 그만이었으니까.
아무리 초인에 버금간다는 A급 던전 가디언이지만, 마스터 상급에 오른 라울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아직 플레이어들이 감당하긴 어렵겠군.’
이제 슬슬 초인의 경지인 100LV 달성을 눈앞에 둔 플레이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다.
퍼플 길드의 랭커들은 이미 대부분 99레벨에 도달해 초인의 경지에 도전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그렇다 한들 에이션트 오우거를 처리하긴 역부족일 듯했다.
‘확실히 금역 내의 던전과 게이트는 한 단계 위 수준이라고 판단해야겠어.’
라울이 우려했던 대로 시나리오 진행 속도가 전생보다 빨랐기에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기대보다는 부족했다.
넓디넓은 금역 전체를 라울 혼자 개척할 수는 없었으니, 플레이어들의 성장이 더더욱 필요하긴 했다.
‘뭐, 정 안되면 내가 고생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푸슉.
라울이 오러를 일으켜 에이션트 오우거의 배를 갈랐다.
그리고 잠시 후.
파앗!
라울의 손에는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여신의 동상이 들려 있었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A등급 관문 도시 엑스퍼디션의 수호상을 찾아내셨습니다.
-수호상을 내성의 본래 자리로 돌려놓으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고.’
그렇지 않았다면 아까운 시간을 투자하며 이렇게 까다로운 던전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다시 엑스퍼디션으로 돌아온 라울이 시스템의 요구대로 조각상 진열대의 빈자리에 수호상을 내려놓았다.
구구궁.
파앗!
잠시 도시 전체가 진동한 뒤, 조각상을 중심으로 오색찬란한 마법진이 떠오르며 도시 상공을 감쌌다.
그리고 어지러이 회전하며 주변의 마나를 흡수한 거대 마법진은 엑스퍼디션의 땅속으로 떨어져 모습을 감추었다.
“와우. 정말 라울 말대로 됐어. 도시 주변의 마나가 깔끔하게 정화됐고, 도시 주변을 감싸는 보호막도 생겨났다고!”
라벨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주변의 마나 흐름을 살폈다.
그리고 라울은 그 순간 새로운 퀘스트 메시지를 접하고 있었다.
등급 : A
목표 : 관문 도시 엑스퍼디션을 재건하시오.
-무너진 성벽을 보수
-손상된 마법진을 보수
-몬스터 침공으로부터 도시를 지켜낼 것(제한시간 : 보름)
보상 : 도시 엑스퍼디션과 주변 영역에 대한 관리 권한.
해설 : 엑스퍼디션은 과거 인류가 금역을 개척하기 위해 건설했던 최초의 관문 도시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허물어진 성벽과 마법진을 보수하여 금역 개척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세요.
인간들의 출입을 원치 않는 주변 몬스터들이 도시를 노려올 것입니다.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도시를 재건하십시오!
퀘스트 확인과 동시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보름간 웨이브에 준하는 몬스터들의 공격이 이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라울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라벨, 준비됐지?”
“물론이지. 내성 앞쪽에 만들게.”
라벨이 지팡이를 꺼내 들고 내성 앞 광장에 박아넣었다.
그러자 이제는 익숙해진 마법진이 생성되며 허공에 일렁이는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건 바로 포털이었다.
수호상을 배치함으로 인해 텔레포트를 금지하는 금역의 페널티가 사라진 것이다.
“마스터, 고생하셨습니다!”
피어스가 가장 먼저 포털을 통과하여 라울에게 예를 표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퍼스트 기사단원들과 각종 건설 자재를 실은 수레들이 포털을 통과했다.
“오오, 이곳입니까?”
개중에는 자유 도시를 개발하며 경험치를 한껏 쌓아 올린 건설 장인들을 비롯해 생산계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또한 흩어져 있던 퍼플 길드의 랭커들과 길드원들이 김일우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천 명이 넘는 인원이 도착하고 나서야 포털 입구가 닫혔다.
“그럼 바로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이미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관문 도시 엑스퍼디션에 대한 개발 계획이 완성되어 있었다.
재건 계획을 맡은 건설 마스터가 장인과 직공, 심지어 기사들까지 지휘하며 공사를 시작했다.
“자, 일단 성벽 재건부터 시작합니다! 기초 자재는 계획대로 각 구획에 옮겨주시고, 플레이어분들은 인벤토리에 보관한 석재를 꺼내주세요! 기사분들은 작업 순서에 따라 석재를 쌓아주시면 됩니다.”
이미 간이요새 구축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던 퍼스트 기사단원들은 훌륭한 인부이기도 했다.
간이요새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도시의 성벽을 쌓는 일이었지만, 인간 기중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한편, 퍼스트 마탑의 마법사들은 페리도 부탑주를 중심으로 마법진 복원작업을 위해 움직였다.
“부탑주님! 이곳에 성벽 강화 마법진의 마력선이 끊겨 있습니다.”
“성벽 보호 장막 마법진은 거의 지워진 듯합니다!”
“성내 방송을 위한 음성 증폭 마법진이….”
“침입자를 감지하는 알람 마법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수십 명의 마법사들.
라벨이 스킬도감 위에 걸터앉아 새침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흐음. 이제야 좀 마법사 구실을 하는 것 같기도 하네.”
커넥트의 마법사들은 조금 기형적으로 성장해 있었다.
파워아머 생산이 가장 돈이 되고 주류 마법인 덕에, 기본적인 마법진이나 기초마법이 경시된 것이다.
페리도 마탑은 조금 나은 편이긴 했지만, 라벨이 봤을 때는 반쪽짜리 마법사들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마탑이 생긴 이후, 라벨은 틈틈이 나키아, 페리도 부탑주와 함께 마법사들을 지도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그녀가 없이도 각종 마법진 보수나 성벽 보수 공사까지 알아서 척척 해내고 있었다.
“이제 정말 핵심 마법진 말고는 라벨의 도움도 필요 없겠는데?”
“아직 멀었어. 내 지도를 받은 이상 왕국이 아니라 대륙 최고 마탑을 노려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뿌듯함을 감추지 못한 라벨의 턱이 어느새 굉장한 각도로 치솟아 있었다.
‘하긴, 라벨 정도면 대현자들과도 견줄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마법 쪽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수천 년간 도서관에서 마법과 갖가지 지식을 연구해온 라벨이 그들에게 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스킬도감의 역량이 받쳐준다면 말이지.’
아직 반영체 상태인 라벨의 능력은 스킬도감에 얽매여 있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도감의 남은 봉인을 풀고 등급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어느 정도는 추측하고 있었으니.
‘멀지 않았어. 그리고 어쩌면….’
그녀의 소원을 이뤄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저희는 정찰 활동을 시작하겠습니다, 마스터.”
일우를 비롯한 퍼플 길드의 간부들이 라울에게 보고했다.
“공유된 퀘스트에 나와 있듯, 몬스터들이 도시를 노리고 공격해 올 겁니다. 방어는 퍼스트 길드원들이 알아서 할 터이니, 여러분들은 웨이브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맡겨주십시오!”
일우의 든든한 대답 뒤로 그들이 도시 엑스퍼디션을 떠났다.
그들은 라울이 미리 전해준 정보를 바탕으로 주변의 개척지들을 탐색할 예정이었다.
어차피 엑스퍼디션을 제외하면 초입부에는 B등급 이하의 개척지들이 대부분.
라울은 퍼플 길드원들을 통해 C등급(대형 마을) 이상의 개척지만큼은 선점할 생각이었다.
‘죽 쒀서 개 줄 필요는 없지.’
이곳을 기점으로 금역으로 뻗어 나가는 줄기 거점들을 선점한다면.
‘나중에 금역에 진입할 길드나 플레이어들이 딴 맘을 먹긴 힘들겠지.’
앞으로 금역에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주요 거점의 선점은 필수였다.
그리고 라울은 이들이 초입의 통로를 개척하는 동안, 더 깊숙이 진입하여 A등급 이상의 개척지를 공략할 생각이었다.
마음 같아선 퍼플 길드가 아닌 퍼스트 길드의 기사들을 동원하여 금역을 재빨리 개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금역 개척 시나리오에선 강력한 제한이 걸려 있었다.
바로 ‘플레이어 전용’ 시나리오라는 사실.
처음 탐사를 보낸 조쉬의 정찰팀이 ‘플레이어 라인’을 넘지 못하고 미로를 헤맨 것은 바로 시나리오 제약 때문이었다.
라울이나 지구 출신의 순수 플레이어가 아닌 주민(준 플레이어 포함)은 금역 내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
그들이 금역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는데, 우선 플레이어에 의해 개척된 지역일 것.
그리고 그 지역의 관리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결론적으로 라울처럼 수호상을 찾아 개척지의 임시 관리권을 획득하고 나서야 NPC 주민들을 재건에 동원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
‘시나리오의 의도는 명백해.’
금역은 플레이어들을 위해 준비된 땅이었다.
이런 제약이 없었다면, 마스터를 보유한 왕국들이 금역의 땅을 욕심내지 않을 리가 없을 테니까.
문제는 플레이어들이 주민들의 도움 없이 개척과 재건을 마무리하긴 어렵다는 것.
결국 왕국이나 귀족들의 힘을 빌리려 할 것인데.
‘과연 욕심쟁이들이 얼마나 잘 협조할 수 있을 것인지. 쯧.’
커넥트의 귀족들.
지구의 기득권자들.
욕심 가득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순순히 개척이 진행되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뭐, 크게 상관없긴 하지만.’
그들이 어찌 되든 라울의 목표는 명확했다.
최대한 금역의 요지를 선점하고, 다가올 연계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
욕심쟁이들이 대타협을 이루고 금역 쟁탈전에 참전할 즈음이면, 이미 상황은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몬스터 숲의 개척은 라울의 계획하에 빠르게 진척되기 시작했다.
* * *
“…해서 그 방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 결과입니다.”
회의실 단상.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백인 하나가 벽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스크린을 배경으로 브리핑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가! 정부와 기업들이 협력하여 만든 연합이 일개 게임 속 세력을 컨트롤하지 못한다고? 이미 커넥트에 접속한 플레이어 수가 100만을 넘어 200만을 향해가고 있네. 그 숫자로 고작 백작가 하나에 휩쓸린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발표자 데이븐이 구겨지려는 인상을 간신히 유지하며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중국의 공산당 고위간부로군.’
하여튼 머릿수만 많으면 뭐든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의 생각다웠다.
아마 저자는 커넥트의 퍼스트 백작가와 퍼플 협회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고작 백작가라…. 퍼스트 백작가에 대해 중국의 분석가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저로서는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왕국에 버금가는 초인을 보유하고 있고, 최강의 기사단을 가지고 있으며, 플레이어 협회를 통해 거의 대부분의 플레이어를 장악하고 있는 그 ‘퍼스트 백작가’를 말입니다. 중국 측의 견해가 그러하다면, 저희와는 협력하기 어렵겠군요. 중국 분들은 알아서 방법을 찾으시길.”
“뭐라고? 고작 일개 연구원 따위가 우리 중국을 무시….”
삐삑.
회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홀로그램 하나가 사라지고 다른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신 사과드립니다, 데이븐 박사. 방금 전 견해는 그자의 사견일 뿐, 중국의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홀로그램의 인사가 허리를 숙여 사과하자 데이븐도 흔쾌히 사과를 받아들이고 브리핑을 이어갔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최선의 방안은 커넥트의 시나리오 자체가 진행되는 걸 멈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플레이어들을 장악한다 해도 퍼스트 백작가를 멈출 수는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차선책을 찾아야겠지요.”
스크린에 커넥트 대륙전도가 표시되었다.
“금역 서쪽인 몬스터 숲은 퍼스트 백작가의 세력과 바로 붙어 있습니다. 이곳을 우리 연합이 차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곳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의 레이저 포인터가 몇 곳을 마킹했다.
“우선순위는 동쪽 금역인 원소 정글입니다. 북쪽의 얼음 산맥이나 남쪽 악마의 해역은 인류가 거주하기엔 척박한 곳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러니 일단 가까이에 자리 잡은 마커스 왕국의 길드를 중심으로 개척을 진행하는 것이….”
“잠시만. 그렇다면 역시 우리 미국의 길드가 가장 많으니 선두는 우리가….”
“무슨 소리요? 마커스 왕국의 최고길드는 누가 뭐래도 우리 러시아의…!”
“가장 많은 플레이어가 활동 중인 우리 중국이 먼저!”
그렇게 각국 고위직들과 기업들이 모여 개최된 연합회의는 이권 다툼의 장으로 변질되었고, 기본적인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각국을 대표하는 길드들의 금역 개척에 뛰어들었다.
본격적인 금역 쟁탈전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