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8
제28화
웅성웅성.
굳이 들어가 보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라울은 전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당당하게 홀 안으로 들어갔다.
“…….”
일순 짧은 침묵이 찾아왔다.
그들 대부분은 애쉬튼 백작가의 귀족이었지만 라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이는 없었다.
‘진짜 저 얼굴로 우리 혈족이라고?’
‘저 얼굴이면 굳이 검을 들지 않아도 사교계를 뒤집어 놓을 수 있겠군.’
‘그래도 피는 못 속이는군. 15살이라더니 키가 180은 되겠어.’
‘저 어린 녀석이 젠더 남작을 물 먹였단 얘기야?’
‘근데 검술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게 정말일까?’
잠깐의 침묵 끝에 더 큰 웅성거림이 찾아왔다.
그들이 라울을 품평하는 사이, 라울은 홀을 가로질러 단상 위에 당당하게 섰다.
“이거 예기치 않게 많은 분들 앞에 서게 되었군요. 설마 여러분 모두가 젠더 남작님의 일 때문에 방문하신 겁니까?”
그들이 상상했던 라울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당황했던 것일까.
약간의 더듬거림도 없이 호쾌하게 말하는 라울의 모습에 군중들은 침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렇다. 너의 당치도 않은 짓거리에 분노한 혈족분들이 이렇게 어려운 자리에 함께해주셨지. 어떠냐? 지금이라도 어른들께 사과하고 일을 수습하는 것은?”
젠더 남작이 대놓고 말을 놓으며 라울에게 물었다.
하지만 라울은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앞에 서 계신 젠더 남작님이 여러분을 대표한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잠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공언했던 대로 잘잘못을 가려보도록 하죠.”
“웃기는군. 잘잘못을 따질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애초에 이 저택은 수십 년 전부터 우리 수도에 거주하는 혈족들이 번갈아 가며 관리하던 곳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본가의 어린 녀석이 함부로 손댈 수 있는 장난감 같은 게 아니란 말이다!”
“그래! 본가는 우릴 무시하는 건가?”
“백작님도 너무하는군. 어린애에게 권한 대행이라니!”
젠더 남작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몇몇 귀족들이 호응했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많은 귀족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지원금이 적네 마네부터 저택을 더 개방해야 한다든지, 관리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말까지 시끌벅적한 얘기들이 줄을 이었다.
이래서야 젠더 남작이 어떤 일을 벌였고, 뭐 때문에 해임했는지에 대해 말할 겨를도 없어 보였다.
라울은 첫 마디를 뗀 이후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고 젠더 남작은 당연하다는 듯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애초에 라울은 이들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격앙된 분위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라울의 눈은 어느 순간부터 묘한 금색 빛을 띠며 장내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겠는걸….’
분석안을 통해 살펴본 결과 이 자리에는 무려 다섯 세력의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애쉬튼 백작가의 혈족들.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단순하게 참가한 부류였다.
두 번째는 크라넨 제국 첩보부, 임페리얼 하운드 소속의 공작원들.
단 둘뿐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뭔가 연관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대륙 곳곳에 벌어질 크고 작은 분쟁의 배후에 제국이 있을 거란 사실은 몸소 겪어보지 않았던가?
오히려 세 번째 부류가 의외라면 의외였다.
연회장 가장 뒤쪽.
호위들이 모여 있는 곳 한편에 일단의 기사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겉으로 봤을 땐 복장도 다르고 소속도 다른 평범한 기사들 같았다.
그중에서도 얼굴 곳곳에 칼자국이 가득하고, 머리를 짧게 밀어 한 인상 하는 40대 기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이름 : 그레이엄(45세)
*레벨 : 88
*직업 : 기사(소드 엑스퍼트 상급)
*소속 : 루벤 왕국, 하운 남작가 // 브레넌 공화국, 델라미안 가문
*칭호 : 붉은 집행자
*스탯 : 잠재능력(A등급)
[근력 82] [민첩 72] [체력 84] [지력 62] [정신력 68] [마력 71] [감각 76]*고유 특성
지치지 않는 육체(A), 난전 특화(B)
그는 무려 필립급의 강자였다.
게다가 진짜 소속은 바로 브레넌 공화국의 다섯 대가문 중 하나인 델라미안 가문.
애쉬튼 백작가문보다 훨씬 세가 강력한 가문에서 무슨 이유로 이곳에 집적거리는지는 몰라도 솔직히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그레이엄 옆에 서 있는 기사 십여 명 또한 델라미안 가문의 기사들이었고 개중에 두 명 정도는 엑스퍼트 중급을 넘어선 듯 보였다.
‘옆 동네에서 여기까지 출타하다니… 우리 가문도 어지간히 얕보였나 보군.’
그리고 눈을 돌린 곳에는 바로 놈들이 있었다.
애쉬튼 백작가를 눈엣가시로 보는 앙숙. 바로 랜달 백작가의 기사들이었다.
비록 다섯에 불과했지만 한 명은 엑스퍼트 상급의 기사였고 나머지 넷도 중급 수준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대표였다.
*이름 : 하파엘(26세)
*레벨 : 61
*직업 : 기사(소드 엑스퍼트 초급)
*소속 : 랜달 백작가
*칭호 : 랜달 백작가의 4공자
*스탯 : 잠재능력(B등급)
[근력 61] [민첩 65] [체력 58] [지력 61] [정신력 53] [마력 60] [감각 55]*고유 특성
검가의 혈통(B), 날렵함(C-)
실력이야 딱히 눈에 띌 것은 없었지만 간판 자체가 무기였다.
도대체 랜달 백작가 4공자가 왜 이 자리에 있단 말인가?
보아하니 아직 애쉬튼 백작가의 귀족들은 그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좋은 의도로 온 건 아니겠지만 설마 미라에서의 일 때문에 찾아온 건 아니겠지?’
염려되는 바가 없진 않았지만 솔직히 저들도 대놓고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집안싸움 중이라고 하지만 외적을 앞에 두고 분열할 정도로 애쉬튼 백작가의 혈족들이 어리석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다섯 번째 부류.
이 모든 소동의 원흉이자, 진짜 일이 터진다면 가장 전면에 나설 게 분명한 가문의 배신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실질적인 대표는 앞에서 주둥이를 놀리고 있는 젠더 남작이 아니었다. 비록 호위 기사로 위장하고 있다지만 라울의 분석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름 : 타이터스(27세)
*레벨 : 65
*직업 : 기사(소드 엑스퍼트 중급)
*소속 : 루벤왕국, 제이든 자작가 // 브레넌 공화국, 제이든 가문
*스탯 : 잠재능력(A등급)
[근력 70] [민첩 64] [체력 68] [지력 62] [정신력 65] [마력 63] [감각 58]*고유 특성
명문 검가의 혈통(A), 직진본능(A-), 비뚤어진 투쟁심(B)
‘빙고!’
타이터스.
그는 바로 라울의 큰아버지인 제이든 자작의 큰아들이자 라울의 사촌형이었던 것이다!
* * *
라울의 아버지인 멜빈 드 애쉬튼 백작에겐 두 형제가 있었다.
큰형인 제이든, 그리고 동생 오스틴이었다.
세 형제는 모두 검술에 재능이 있었지만 가장 빛나는 것은 멜빈이었다.
하지만 백작가를 계승하는 건 단순히 검술 실력만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루벤 왕국에서도 ‘장자계승의 원칙’은 지켜지고 있었고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차기 백작은 제이든의 자리였다.
문제가 된 건 제이든의 성격이었다.
그는 굉장히 오만하고 자존심이 셌다.
자신이 백작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가진 그의 행동은 굉장히 난폭했고 거침이 없었다.
눈에 거슬리는 이가 있으면 폭력을 휘둘렀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멜빈이 엑스퍼트 중급의 경지에 도달하며 제이든을 뛰어넘었고, 그는 강력한 차기 백작 후보가 되었다.
제이든은 그의 동생을 질투하는 한편 굉장한 위기감을 느꼈고 결국 선을 넘고 말았다.
동생인 멜빈에게 자객을 보내 암살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암살은 미수에 그치고 말았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자 제이든은 후계자 자격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 멜빈은 백작 자리에 올랐고 큰형인 제이든에겐 자작의 작위와 자작령 급의 큰 영지가 주어졌다.
허나 동생에게 백작위를 빼앗긴 제이든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어이없게도 자신이 상속받은 영지를 애쉬튼 백작가와 경쟁 관계인 맥닐 후작가에 팔아버리고 추종자들과 함께 루벤 왕국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게 바로 15년 전. 바로 라울이 태어난 해에 있었던 일이었다.
* * *
이 자리에 큰아버지인 제이든 자작의 아들이 나타났단 얘기는 젠더 남작이 누구에게 줄을 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해 주었다.
어차피 수도에 머물던 이들은 15년 전의 사건에서도 크게 손해 본 것은 없었으니 제이든 자작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잘하면 본가를 밀어내고 자신들도 영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전생에서 애쉬튼 백작령은 수십 개로 쪼개졌고, 백작가는 멸문했으니 저들은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내가 없었을 때의 얘기고, 이번에는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지.’
이 자리에 참석한 다섯 개의 세력을 파악하고 나니, 대충 판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림이 그려졌다.
필요한 정보는 얻었으니 이제 슬슬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 라울이 필립에게 신호를 보냈다.
탕탕탕!
필립이 방패를 두드리며 떠들고 있는 귀족들의 시선을 모았다.
잠시 조용해진 사이 라울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충분히 들었으니 제가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버나드, 나눠드려.”
라울이 지시하자 버나드와 하인들이 30페이지 가까운 작은 책자를 귀족들에게 각각 전달했다.
책자를 받은 귀족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뭡니까?”
“제목에 적혀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책자 표지에는 커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 수도 소재 애쉬튼 백작가 저택의 관리 실태 및 자금 운용 상황에 대한 임시 감사 보고서 –
(총관 젠더 남작의 횡령 및 배임에 대한 증거 및 조사자료 첨부)
챠라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찰지게 들려왔다.
그리고 내용을 살펴보는 몇몇 이들의 얼굴색이 창백하게 변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특히 젠더 남작은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얼굴색이 카멜레온처럼 급변했다.
라울은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그들의 표정을 감상했다.
촥!촥!
“이건 날조야! 가짜라고!”
젠더 남작이 책자를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그리고 몇몇 귀족들도 책자를 슬그머니 덮으며 말했다.
“그럴듯하지만 믿기는 힘들군.”
“어제 도착해서 하루 만에 이걸 조사했다고? 말도 안 되지.”
하지만 말과는 달리 책자를 쥔 그들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라울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제대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할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