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7
제27화
“이런 미친….”
젠더 남작의 만행은 그저 파티에 그치지 않았다.
남작은 라울의 숙소랍시고 본관이 아닌 저택 별관의 부속 건물을 비워두었다.
본관은 외부 손님이 많아 번잡할 수 있으니 면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적한 곳을 준비해 두었단 하인의 말을 들으니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자기 집에 와서 별관에 머물 생각은 없었던 라울은 기사들을 앞세워 본관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본관의 3층에 들어선 라울은 젠더 남작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백작과 가족만 머물 수 있게 되어 있는 그 장소에 젠더 남작의 가족들이 떡하니 살고 있던 것이다.
라울이 밀고 들어올지 몰랐던 남작이 백작의 집무실에 떡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목격한 라울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뭐라고 변명할 셈이지, 젠더 남작? 총관 따위가 감히 백작의 집무실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백작가의 전통이라고 둘러댈 작정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젠더 남작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이, 이건 그저 잠시 빌려 쓴 것뿐입니다. 어차피 백작님은 일 년에 한 번도 오시지 않는데, 굳이 비워두면 낭비 아니오?”
“당장 꺼져! 오늘 내로 저택을 비우지 않는다면 친족이고 뭐고 모두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라울이 서슬 퍼런 목소리로 외치자 남작이 분한 듯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 뒤에 대고 라울이 말했다.
“그리고 이 시간부터 당신의 총관직을 박탈하겠다! 불만 있으면 내일 당신이 총관으로서 정당한 직무 수행을 했다는 합당한 자료를 들고 찾아오도록.”
하지만 남작은 어이가 없다는 듯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자리를 떠났다.
* * *
파티가 정리되고 남작의 가족들이 본관 저택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라울은 집무실에서 자리를 지켰다.
집무실에는 저택의 관리와 자금 운용에 관한 갖가지 서류들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라울은 혹시나 남작이 서류를 폐기할 걸 우려했지만 그는 집무실의 자료를 찾아갈 생각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냐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정말로 라울과 일행을 무시한 처사였다.
비록 명문대는 아니지만 배도현은 과거 4년제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작은 무역회사에서 몇 년간 근무한 경험도 있었다.
그리고 버나드는 저택과 관련된 업무처리에 관해선 최고의 전문가였다.
내일이 되면 남작은 아마도 자신의 실수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었다.
“공자님, 남작이 식솔들을 데리고 저택을 떠났습니다.”
필립이 집무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그래? 얌전하게 떠나던가?”
“그게 좀 의욉니다. 정말 필요한 옷가지만 챙겨서 조용하게 가더군요.”
필립의 말에 라울이 피식 웃었다.
“의외는 무슨. 딱 봐도 꿍꿍이가 보이잖아? 어차피 다시 돌아올 곳이니 부랴부랴 짐을 챙겨갈 필요도 없단 생각이겠지.”
“괜찮겠습니까? 차라리 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정리하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필립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라울은 단호하게 얘기했다.
“썩은 부위는 빨리 도려내야 하는 법이지. 이쪽이 시간을 끄는 만큼 남작이 뒷공작을 벌일 시간도 늘어나지 않겠어? 그놈이 우리를 얕보고 있을 때 한 번에 때려잡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잖아.”
라울도 웬만하면 적당히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남작은 도가 지나쳤다.
그가 하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앞으로 라울이 할 일에 두고두고 문제를 불러일으킬 게 뻔해 보였다.
‘수도에 적당한 장소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이곳을 퍼스트 길드의 지부로 사용해야 해. 내 집인데 엉뚱한 놈들이 설쳐대며 나대게 할 순 없지.’
게다가 수도 투리엄에서도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남작 나부랭이와 기싸움하며 시간을 낭비할 여유는 없었다.
“남작에게 다른 뒷배가 생긴 듯한데, 무슨 엉뚱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피어스도 살짝 걱정스러운 듯 말을 꺼냈다. 하지만 라울은 여유있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 남작이 무슨 수작을 부리든 아무 상관 없으니. 경들도 좀 더 우리 백작가를 믿어보라구.”
라울의 말에 제이크가 불쑥 필립과 피어스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뭔 걱정들이 그리 많소? 머리 아픈 얘기는 그만하고 저택 구경이나 갑시다. 우리는 그저 공자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거 아니오? 안 그렇습니까, 공자님?”
라울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힘 좀 써야 할지 모르니 경들은 이만 가서 좀 쉬도록 해. 버나드는 좀 남고. 이만 해산!”
“자, 자. 얼른 나갑시다~!”
제이크가 눈치 빠르게 기사들을 데리고 사라지자, 라울이 버나드와 눈을 맞췄다.
“뭘 찾아야 하는지는 알지?”
“공자님. 이쪽은 제가 전문입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빨리 시작하자.”
그리고 두 사람은 집무실에 쌓인 문서 더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 * *
챙! 챙!
허공에서 단도 두 자루가 춤을 추듯 움직이며 날을 맞댔다.
마치 서로의 빈틈을 노리는 듯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이 사뭇 날카로웠다.
“하나 더!”
라울의 기합 소리에 단도 둘이 더 합류했다.
총 네 개의 단도가 둘씩 나뉘어 허공을 누볐다.
그런데 그런 대결도 잠시.
한쪽의 단도 두 자루가 비틀대는가 싶더니 이내 균형을 잃고 제멋대로 허공을 핑그르르 돌다 바닥에 떨어졌다.
“헉, 헉….”
라울의 맞은편에 선 버나드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쉬리릭.
허공을 유영하던 단도를 염동력으로 회수한 라울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늘었는데? 두 달도 되기 전에 단도 두 자루를 그 정도로 다룰 줄이야.”
“후우. 아직 멀었습니다.”
버나드가 호흡을 가다듬고는 딱딱하게 말했다. 하지만 라울의 칭찬은 진심이었다.
버나드가 스킬북으로 바람 관련 초능력을 각성한 지 이제 한 달 반 정도.
그런데 단순히 바람을 다루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단도를 이용한 기술이 이 정도로 숙련된다는 건 보통의 재능이 아니란 뜻이었다.
‘나야 원래 염동력을 쓰니까 자연스럽지만 바람술사가 이런 식으로 무기를 정교하게 다루기는 정말 쉽지 않은데 말이지.’
라울은 애초에 염동술사였기 때문에 바람술사들의 수련법은 알지 못했다.
그저 과거에 유명했던 바람술사들이 어떤 식으로 초능력을 활용했는지를 떠올리며 길을 제시했을 뿐.
그중 가장 비슷한 것이 바람을 활용해 허공에서 무기를 다루는 기술이었을 뿐이다.
솔직히 아직 실전에서 통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지금의 발전 속도라면 6개월 정도면 중급에 도달하지 않을까 싶었다.
중급이 되면, 바람술사만큼 다재다능한 초능력자도 찾아보기 힘들 터였다.
“그럼 다음은 체술 훈련을 해볼까? 전에도 말했지만 초능력 하나만으로 위력을 발휘하긴 쉽지 않아. 초반엔 다양한 방법과 결합해 사용해야 숙련도도 올리기 쉽고, 효율적이지.”
라울은 자신의 염동력 강화술을 예로 들며 버나드를 지도했다.
염동력으로 움직임을 보조하듯, 바람의 흐름을 이용해 체술을 강화하는 방법을 전수한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체술 훈련을 시작하려던 순간, 버나드가 동작을 멈추며 말했다.
“손님이 온 모양입니다.”
그리고 직후 라울도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감지했다.
‘역시 바람술사. 원거리 감지력은 따라갈 수 없군.’
훈련 중에도 바람을 통해 먼 곳의 감각을 느끼라는 지시를 잘 따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라울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곤 훈련을 마무리했다.
“가자. 주인 된 입장에서 손님맞이는 제대로 해야지.”
“알겠습니다. 준비한 것들을 가져올까요?”
“어. 어젯밤에 고생한 대가는 톡톡히 받아내야지.”
라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공자님이 저런 표정을 짓고 난 뒤엔 항상 일이 터졌지. 부디 허튼 수작은 부리지 않길 바라겠소, 남작.’
버나드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 * *
“아니 무슨 보물단지라도 묻어놨나? 뭐 이렇게 많이들 몰려오셨나 모르겠네.”
제이크가 1층 연회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대충 봐도 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삼십 명은 넘어 보였고, 그 호위들까지 포함하면 백 명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들이 끝이 아니라는 것. 사병까지 끌고 왔는지 저택 밖에는 수백의 병사들까지 우글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호위기사들 중에는 만만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자들이 섞여 있었다.
아무리 봐도 라울 일행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벗어난 것 같았다.
‘이번엔 쉽지 않겠는데? 공자님은 정말 무슨 방도가 있으신 건가?’
매사 긍정적인 제이크가 걱정할 정도로 방문자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한편, 방문자들의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젠더 남작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일이 잘 풀렸군.’
잘못하면 진짜 총관직까지 잃을지도 몰랐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애송이 공자가 미끼를 덥석 물어버리는 바람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이 아니라면 그는 들러리만 서다 끝날 수도 있었으니까.
‘그분이 자리를 비우신 지금, 일을 모두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는 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수도에 상주하고 있는 애쉬튼 백작가의 혈족들.
대부분 영지를 가지지 못하고 작위뿐인 이들이긴 하지만 나름 수도에서 나랏밥을 먹으며 한소리 내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는 바로 어젯밤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수도로 갓 상경한 백작의 막내아들이 그들의 대표격인 젠더 남작의 파티를 망쳤을 뿐만 아니라 그를 총관에서 해임하고 저택에서 내쫓았다!
이는 단순히 젠더 남작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도에 있는 귀족들은 종종 젠더 남작처럼 저택의 홀과 백작가의 돈으로 연회를 개최했다.
또한 본가에서 지급되는 저택 관리비는 알게 모르게 젠더 남작의 주머니를 거쳐 그들에게도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뒷주머니를 빼앗기게 생긴 그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젠더 남작은 사건을 전하며 자신의 실책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파티를 본인 명의로 열었던 것이나 백작의 집무실을 함부로 유용한 사실, 라울을 홀대하고 별관에 머물게 했던 일은 동지들 외에는 몰랐다.
‘저들 중 절반 정도는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들이지. 자신들이 무슨 일에 엮였는지도 모르는 진짜 멍청이들.’
하지만 오늘 일이 터지고 나면 그들도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시골 영지에 처박혀 자신들만 고상한 척하는 본가 놈들.
매년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적선하듯 내놓으면서 자신들의 발을 핥으라던 멍청이들은 조만간 후회하게 될 것이었다.
‘형님. 무슨 생각으로 어린 아들에게 인장을 맡겼는진 모르겠지만 잘 쓰도록 하겠소.’
얼마 후면 소식을 듣고 뒷골을 잡을 백작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젠더 남작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