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52
제52화
라울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주목적은 영지를 벗어나기 위한 핑계였지만 부수적으로 챙기고자 했던 것들도 있었다.
하나는 도서관에 숨겨진 스킬북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카데미에 숨어 있는 유망주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카페에 기록된 정보에 따라 영입할 만한 후보들을 몇 추려놓았는데, 그레이의 등장으로 신입생 명부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바람에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
물론 안 좋은 쪽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는 달튼이었다.
실제로 그의 계획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간판만으로도 충분히 친해질 가치가 있었다.
‘검공 마르퀴스 드 템플턴의 손자.’
본인은 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이 나라에서 가장 강한 인물의 손자라는 건 그리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 커넥트 세상에서 NPC와 플레이어의 관계는 매우 미묘했다.
일반 주민들이나 퀘스트 NPC들은 플레이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지만, 귀족(특히나 고위귀족)들은 플레이어를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플레이어의 정점에 서 있었던 라울도 공작은커녕 백작이상의 고위 귀족들을 직접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백작가의 막내로 환생했지만, 그가 가진 신분으로도 검공을 만나기란 요원했다.
‘하지만 달튼과 친해진다면?’
비공식적인 정보이긴 해도 달튼은 검공이 직접 챙기는 몇 안 되는 손주 중 하나라고 했다.
혹시라도 달튼을 통해 검공과 만날 수 있다면, 그리고 그의 호의를 얻을 수 있다면 절대 손해볼 일은 없었다.
‘어떻게 꼬드길지 고민이었는데, 이번 기회를 잘 살려봐야겠군.’
딱 봐도 달튼은 게이트에 가보고 싶어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나 게이트에 진입할 수 없었다.
라울의 퍼스트 기사단처럼 공식적인 허가를 받은 이들이 아니라면, 적어도 50인 이상의 병력과 3인 이상의 정식 기사가 포함되어 있어야만 출입 허가가 내려졌다.
아무리 검공의 손자라지만 달튼이 마음대로 게이트에 출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좋아. F등급 게이트라면 딱히 위험할 일도 없을 테니까.”
“아자!”
라울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달튼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작게 함성을 내질렀다.
실제 실력은 엑스퍼트에 도달했지만, 그에겐 실전 경험이 없었다.
19살이 되도록 가문 내에서 훈련과 대련만을 통해 검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력이 아무리 늘었어도 확인할 방법이 딱히 없었고, 반복된 훈련에 질려가고 있었다.
‘역시 라울과 친해지길 잘했어. 이 녀석 옆에 있으면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상상이상인데?’
솔직히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고 난 뒤 달튼도 게이트 토벌에 참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문 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할아버지의 총애를 받는다 해도 겨우 19살.
게다가 실력이 뛰어나다 한들 또래 내에서의 얘기지, 가문 전체로 보면 그보다 뛰어난 실력자는 넘쳐났다.
결국, 손가락만 빨면서 라울의 활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로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고마워, 라울!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언제 갈 거야? 오늘? 내일? 말만 해!”
흥분된 기색으로 달튼이 물어보자 라울이 차분하게 말했다.
“조건이 있어. 일단 게이트에 데려가는 건 너 하나야. 시종이든 호위든 아무도 데려갈 수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야 상관없지. 내가 원래 그런 귀찮은 사람들은 안 끌고 다니는 거 너도 알잖아?”
“그리고 네가 나와 함께 게이트에 간다는 사실은 가급적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어. 뒷말이 나올 수 있는 일은 사양하고 싶거든.”
“그것도 오케이. 나도 가문의 일에 이래저래 얽히는 건 싫으니까.”
너무 시원하게 답을 하니 라울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이 녀석은 걱정도 되지 않나? 내가 혹시라도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어쩌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현재 루벤왕국에서 템플턴 공작가를 적으로 돌릴 만큼 간이 큰 가문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애초에 달튼은 아직까지 공작가에서 그리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를 납치하거나 해코지한다고 해서 무언가 이익을 얻기란 어렵단 뜻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작님의 허락을 받아올 것.”
“뭐라고!?”
달튼이 당황한 표정으로 라울을 바라봤지만, 라울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냐?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라고. 적어도 일의 전후를 판단해 줄 사람 하나는 있어야지.”
“끄응. 꼭 허락을 받아야 해?”
“물론이야. 너를 데려가는 일이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공식적인 참관이란 사실을 명확히 해야지. 아무리 내 기사단이지만, 사적인 일로 그들에게 폐를 끼칠 순 없어.”
라울의 단호한 말에 달튼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공작님의 허가서를 받아오면 다시 얘기하자.”
“후우, 알았어. 제길, 영감님을 어떻게 설득하지? 보나마나 잔소리를 해댈 텐데….”
투덜거리는 달튼을 뒤로하고 라울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사실 공작의 허락은 핑계에 불과했다. 그저 이번 기회를 통해 검공이 라울이라는 이름을 한 번이라도 떠올려보기를 바랄 뿐.
달튼에게도 딱히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보통 어른들은 아이가 좀 더 활동적이길 바라니까.
검공도 게이트 토벌에 참가하고 싶다는 손주의 열렬한 의지에 감탄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말고. 어쨌든 무료봉사는 사절이다, 친구.’
결과가 어떻게 되는 라울이 손해 볼 일은 없으리라.
라울은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잘 다녀오셨습니까?”
“글쎄, 좀 불편하긴 하더군.”
저택의 회의실.
라울은 버나드, 필립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살짝 피곤해 보이는 라울의 얼굴을 보며 버나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살짝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되길 바라셨잖습니까? 많이 불편하시면 지금이라도 그만둘까요?”
“됐어. 조금 피곤하고 말지 뭐. 어차피 약발이 오래 갈 것도 아닌데.”
솔직히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에 거부감 같은 건 없었다.
전생에서도 개인방송을 통해 많은 팬들을 보유했었으니.
다만 그건 온라인상의 얘기였고, 현실에서 이렇게 주목받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적대적인 시선은 많이 받아봤지만 말이지.’
어쨌든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지금도 저택 입구에는 라울과 기사단에 구원받은 이들이 놔두고 간 선물이 쌓여 있었고, 게이트에 진입할 때는 주민들의 응원과 격려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인기가 오래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기에 당장은 즐기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여론 관리는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겠습니다.”
버나드의 말에 라울이 물었다.
“잠시만. 지금까지 투입된 인원이 얼마나 되지?”
스르륵.
버나드가 기다렸다는 듯 서류 하나를 내밀며 설명했다.
“처음 이틀간 바람잡이로 투입한 용병이 100여 명이고, 고정적으로 썰을 풀고 다니는 음유시인을 열 명 고용했습니다. 우리 측 인원은 본가에서 기본 교육을 마친 공작원 20여 명이 바쁘게 움직이는 중입니다.”
물론 이들만으로 여론을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라울은 현자 그레이를 통해 언론사 [루벤의 목소리] 사장을 직접 만났다.
언론사라고 해봤자 중세시대인데 별것 있겠냐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었다.
커넥트의 언론사들은 무려 ‘마법사’를 주축으로 형성된 엘리트 집단이었다.
게다가 언론협회장은 대륙 3대 현자 중 한 명인 ‘제나스 화이트’가 맡고 있었다.
아니 실제론 제나스 화이트가 지금의 언론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귀족들이나 왕 조차도 언론사에 함부로 압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건 현자 화이트와 거대한 마법사 집단에 대한 도전이었으니까.
어쨌든 언론사는 마법사들이 구축한 네트워크망을 통하여 중요한 소식들을 빠르게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루벤의 목소리]는 루벤왕국의 언론사 중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대형 언론사였다.라울은 게이트 사건이 터진 바로 다음날 [루벤의 목소리] 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아무런 조건 없이 그가 알고 있는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일부 전달했다.
‘부디 피해자가 줄어들길 바랍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라울이 떠나자 사장이 오히려 당황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이후 언론을 통해 라울이 알려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때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교섭 수단이 되기도 하는 법이었다.
라울이 게이트의 정보를 뿌린 곳은 비단 언론사 뿐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수도 경비대를 통해 왕궁에도 전했고, 현재 신성제국의 교황청을 맡고 있는 제논 교단에도 전달했다.
‘활용할 수 있는 건 다 활용해야지.’
이제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상 빠르게 평판을 높이고 공적치를 쌓아야 했다.
조만간 유입될지도 모르는 플레이어 길드의 물량 공세에 밀리지 않으려면 뭐든 선점해 놓는 게 중요했다.
‘흠.’
관련 서류를 확인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라울이 입을 열었다.
“음유시인의 수를 두 배로 늘려. 입담 좋은 용병들은 언제든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조만간 여기저기서 견제가 들어올 거야.”
“네? 견제라니요? 누가….”
아무래도 이런 쪽엔 익숙하지 않은 필립이 궁금한 듯 입을 열자 버나드가 바로 대답했다.
“뻔하지요. 탐욕스런 귀족들 아니겠습니까? 이제 게이트 상황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니 슬슬 한 발씩 걸치려 들겠지요.”
“단순히 게이트 토벌에 참가하는 거라면 환영이지만, 아무래도 그럴 리는 없겠지?”
“모두 라울 님 같다면 모를까,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아마도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라울 님의 명성에 흠집을 내려 들겠죠. 그래야 혹시라도 나중에 떨어질 떡고물이 커질 테니.”
약간 흥분한 버나드를 진정시킨 라울이 말했다.
“어차피 놈들이 가져갈 건 아무것도 없어. 겉으로 보기엔 황금알을 품은 거위로 보이겠지만….”
“실제론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겠죠. 그곳에선 선택받은 자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나올 수 없으니까요. 하하하.”
버나드가 흔치 않은 웃음을 터뜨리며 자랑스럽다는 듯 라울을 바라봤다.
“그래서, 전리품은 잘 챙겨놓고 있지?”
“물론입니다. 길드원들이 인벤토리를 통해 몰래 챙겨온 전리품이 벌써 지하 창고를 반 이상 채우고 있습니다. 미리 저택 지하에 비밀 창고를 여럿 확장해 놓은 게 신의 한 수였지요.”
“당분간은 철저히 비밀을 유지해야 해. 전리품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게이트를 나 몰라라 할 무책임한 영주들이 넘쳐나니까.”
언젠가는 알려지겠지만, 소식이 늦으면 늦을수록 좋았다.
그래야 탐욕스런 영주들이 병력을 소집하고 용병들을 고용할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다가올 웨이브의 피해도 훨씬 줄어들 거고.’
정치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일단 왕국의 전력은 최대한 보전해 두는 게 일차적인 목표였다.
수도야 라울이 최대한 틀어막겠지만, 왕국의 모든 영지를 그가 막아줄 순 없는 일 아니겠는가?
‘힘든 시기에 같이 고생하자고.’
물론 달콤한 열매는 라울만 챙겨먹을 생각이었지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