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51
제51화
꾸드득.
한 사내가 보고 있던 신문을 사정없이 구겨버렸다.
뭐가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일까?
사내는 [루벤의 목소리]라고 적힌 구겨진 신문을 누군가에게 집어 던졌다.
“읽어 봤냐?”
“…네.”
“어이가 없군. 근 몇 년간 진행했던 일들이 일주일 만에 다 날아가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
사내가 뒷짐을 진 채 눈앞의 남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의 눈이 살짝 빛난다고 생각한 그 순간.
구르릉.
“크허헉!”
대기가 진동하며 남자가 무언가에 눌린 듯 바닥에 엎어져 꿈틀거렸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아버지!”
겉으로 봐선 둘 다 40대의 동년배로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뒷짐 지고 서 있는 이가 왕국에 몇 안 되는 소드 마스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허드슨 드 랜달 백작.
실제론 60이 넘었음에도 마스터가 되면서 노화가 멈추는 것은 물론 젊음까지 되찾은 인물.
“끄, 흐억.”
랜달 백작은 아들의 애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검술이 부족함에도 기회를 준 건 녀석이 장남이기도 하고 그나마 머리가 좀 돌아가기 때문이었는데….
‘어떻게 하나같이 쓸 만한 녀석이 없어.’
랜달 백작에게는 30명이 넘는 아들이 있었다.
첫째와 둘째는 젊은 시절에 낳았고, 나머지는 마스터에 오른 이후에 얻은 자식들이었다.
많이 낳다 보면 뛰어난 녀석이 한둘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 눈에 들어오는 놈이 없었다.
반면에 애쉬튼의 멜빈 놈은.
‘어떻게 자식놈들이 다 뛰어날 수 있는 거지?’
막내놈이 비실댄다는 소리에 그나마 속이 덜 쓰렸는데, 신문을 보아하니 그것도 다 헛소문이 분명했다.
“후우.”
씁쓸한 한숨을 내쉰 허드슨 백작이 살기를 풀었다.
“헉, 헉.”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큰아들 브라이언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쯧.”
살기와 압박감조차 이겨내지 못하다니. 어딜 봐서 저게 엑스퍼트급 기사란 말인가?
못마땅한 마음을 애써 억누른 백작이 물었다.
“그간 있었던 일들,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해!”
수련을 위해 한 달 정도 수련관에 틀어박혀 있었더니 그새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넵. 그러니까 보름 정도 전쯤에 신전에서 공문이 날아왔는데….”
보고를 듣는 허드슨 백작의 얼굴에 점점 혈관이 솟아올랐다.
마침내 긴 보고가 끝나고 보고서를 확인하는 백작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가라. 앞으로 이 저택에서 네 자리는 없다. 내가 다시 부를 때까지 영지에 발도 들일 생각하지 말고. 나가면서 셋째 놈 들어오라고 해.”
“아, 아버지! 한 번만 더 기회를….”
“나가!! 다시 내 눈에 띄면 아들이고 뭐고 죽여버릴 테니까!”
퍼억! 쿠당탕탕.
백작의 가차 없는 발길질에 브라이언의 몸뚱어리가 문짝까지 부수며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진짜 죽여버릴까?’
보고서를 힐끔 내려다본 백작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확인된 게이트 수 : 73개
-일주일간 40여 개를 처리했지만, 수가 점점 증가하여 현재는 고착 상태.
*피해자 집계
-영지민 : 총 3,200여 명 사망 및 실종
-병력 : 기사 15인, 병력 1,300명 사망 및 실종
*기사들이 게이트 진입을 꺼려 병력의 피해가 증가했음.
*현재는 게이트 주변을 봉쇄하고 감시만 하는 중.
신문에 실린 애송이는 겨우 용병 천으로 투리엄을 안정시켰는데 아무리 영지가 넓기로서니 수만의 병력과 수백의 기사로 이런 피해라니….
아무리 수련관에 있을 땐 찾지 말라고 했다지만 이런 일이 있으면 당연히 자신을 불렀어야 할 것 아닌가?
멍청한 아들놈이 지휘권을 손에 넣더니 신났던 모양이다.
‘하여튼 믿을 놈이 없어.’
상황을 수습하고 피해를 복구할 생각에 머리가 아파진 백작은 한숨만 푹 내쉴 뿐이었다.
* * *
갑작스런 게이트의 등장에 아카데미는 잠시 휴강에 들어갔지만, 상황이 수습되는 듯하자 다시 수업을 재개했다.
라울도 바쁜 일주일을 보낸 후 아카데미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어! 저기 걸어가는 분은 라울 공자님 아닌가?”
“어디? 정말이다!”
“저 눈부신 외모에 수석 입학할 실력. 거기다 이제는 기사단까지 운용한다니!”
“15살에 가능한 스펙이냐? 게다가 이번 사태를 막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잖아! 애쉬튼 백작가에서 큰 인물이 나왔어.”
“안 그래도 이번에 졸업하면 애쉬튼 백작가 쪽에 자리를 알아보려고. 명문이라 기사단 실력도 뛰어나고 보수도 다른 곳보다 좋다고 하더라고.”
“그것도 그런데, 소문 들었어? 라울 공자님이 조만간 기사단 인원을 충원할 예정이라던데?”
“진짜? 일단 거기부터 원서 넣어볼까?”
“어쨌든 명문이 다르긴 다르네. 막내아들에게도 저렇게 투자를 팍팍 해주다니.”
아카데미 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라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근래에 수도에서 이만한 사건이 벌어진 적도 없었고, 거기서 활약한 이가 자신들과 같은 학생이라는 사실이 흥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원래도 최연소 수석 입학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렸지만, 지금은 라울을 모르면 간첩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라울은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쯧. 어리석은 것들.”
물론 모두가 라울을 좋게 보는 건 아니었다.
어느 세상이건 누가 잘나가면 시기와 질투를 하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어차피 자기가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치켜세워주기는.”
“그러게 말이야. 가문에서 기사단이고 용병이고 다 지원해주면 못할 사람이 어딨겠어?”
“애초에 게이트인지 뭔지 이렇게 떠들 만한 일이야? 그깟 평민들 몇 구했다고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대는게 이상하다고.”
“그러니까. 이건 분명 애쉬튼 놈들이 중앙 정계에 발을 들이려고 장난질 치는 거라니까?”
“흥. 두고보라고. 조만간 가문에서 지원병력이 도착하면 라울 따위보다 이 몸이 뛰어나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겠어.”
라울의 동기이자 랜달 백작가의 13공자인 케일럽이 소태 씹은 표정으로 라울을 째려보며 장담했다.
아직 본가에서 확답이 오지 않았지만, 지원병이 오지 않는다 해도 호위들을 대동해 게이트라는 게 별것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건 케일럽 뿐만이 아니었다.
15살에 불과한 라울이 공적을 세우니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든 라울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정작 본인은 이 상황을 딱히 반기지 않고 있었지만.
웅성웅성.
‘아 피곤해. 내가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냐?’
아카데미에 들어서면서부터 집요하게 따라붙는 시선들 때문에 라울의 심기가 살짝 불편해졌다.
차라리 용건이라도 있다면 와서 말이라도 걸든가. 그런 게 아니니, 교문부터 교실까지 따라붙은 인파가 흩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래서야 당분간 아카데미에서 뭘 하기는 틀려먹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명상으로 가상훈련이라도 하려던 찰나에 누군가가 성큼성큼 다가와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붙였다.
“여어~ 인기쟁이! 일주일 사이에 완전 스타가 되어버렸는데?”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꺼낸 이는 바로 달튼. 주변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라울이 어깨를 슬쩍 으쓱하며 별말이 없자 달튼이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근데 혹시 네가 백작가의 진짜 후계자란 소문이 사실이야?”
“……?”
하도 뜬금없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라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달튼이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 그렇잖아? 어느 가문에서 후계자도 아닌 자식에게 기사단과 병력을 챙겨줘? 그것도 이제 막 성인이 된 녀석에게 말야. 뭐, 내 생각은 아니고 들리는 소문이 그렇단 말이지.”
라울은 잠시 숨을 들이켜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내 친구라서 이참에 확실히 말해둘게. 차기 백작은 이미 우리 큰형으로 정해져 있고, 나는 가문을 이어받을 생각 따윈 조금도 없어.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는 꺼내지 말아줬으면 해.”
솔직한 라울의 심정이었다. 만약 정말로 아버지가 백작위를 넘겨준다 하더라도 거절할 생각이었으니까.
‘백작가는 이미 체계가 잡혀 있어. 내가 백작이 된다 한들 가문의 힘을 함부로 사용할 순 없겠지. 가신들이나 친족들과의 이해관계, 권력구도, 예산 운용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야.’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픈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라울의 목적은 영주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죽인 자들에 대한 복수, 그리고 다가올 전란의 시대에서 생존하는 것이 그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그러려면 힘을 길러야 하고, 그 기회는 이미 고인물들로 가득한 백작령이 아닌 드넓은 세상에서 찾아야 했다.
‘어차피 영지나 작위를 얻을 기회는 앞으로도 널려 있어. 본가는 그저 보험 역할만 해줘도 충분해.’
처음 환생하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버지나 형은 굉장한 능력자였다.
쓸데없는 음모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전생에서도 이름을 날리고도 남았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러니 본가는 아버지와 형님에게 맡기고 나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다. 그래야만 시나리오에 휩쓸리지 않고 대응할 수 있어.’
이미 영지를 떠나오면서부터 그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라울의 진지한 반응에 달튼이 살짝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어. 혹시 기분 상했다면 미안하다. 사실 나도 후계니 뭐니 하는 문제는 정말 넌더리가 나거든. 우리 가문은… 어휴, 말을 말자.”
라울도 달튼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물은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하나 더. 기사단과 병력은 지원받은 게 아니라 내가 꾸린 거야. 백작가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내 명령을 듣는 내 사람들이란 얘기지.”
“뭐!?”
깜짝 놀란 달튼이 소리치자 주변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머쓱해진 그가 고개를 웅크리며 작은 소리로 다시 물었다.
“진짜야? 어떻게??”
라울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별것 아니야. 돈이 많으면 돼.”
달튼이 무슨 농담이냐는 듯 믿기지 않는 눈초리로 바라보자 라울이 태연하게 말했다.
“농담 아냐. 기사단과 병력을 고용하고 유지할 수 있는 돈. 그게 있으면 충분하지. 그리고 나는 돈이 많거든. 네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말이야.”
“아니, 뭐 알았어. 네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라울의 말에 달튼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쨌든 수긍했다.
라울이 그런 달튼을 바라보며 살짝 혀를 찼다. 그에게 500만 골드 가까운 자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달튼의 진짜 관심사는 그쪽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살짝 눈을 빛낸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울, 그 기사단과 병력이 진짜 네 부하라면 말이지….”
“진짜라니까.”
“알았어. 그러니까, 혹시 나도 그 게이트인지 하는 거에 데려가 줄 수는 없을까?”
순간 라울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힘껏 참았다.
‘월척이구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