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53
제53화
“잡아라! 한 놈도 놓치면 안 된다!”
쨍그랑.
쿠당탕탕!
“제길, 여기도 틀렸나? 다들 튀어! 플랜B다. 반드시 살아서 다시 만나자!”
턱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팔뚝길이만한 헌팅 나이프 두 자루를 꺼내들며 외쳤다.
“대장은 어쩌려구요?”
“지금 니들이 내 걱정 할 때냐? 알아서 잘 숨어 있어.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부르마.”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를 보던 청년 몇몇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닥에 설치된 비밀문을 통해 방을 빠져나갔다.
“지독한 놈들….”
사내가 중얼거리는 사이, 밖에서는 연신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집기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악.”
“제기랄!”
임시로 고용했던 용병들은 별 도움이 못 되는 게 분명했다.
어느새 소리가 잦아들고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커져가고 있었다.
사내는 나이프를 역수로 꽉 움켜쥐며 이를 꽉 깨물었다.
‘도대체 이놈들 정체가 뭐야?’
* * *
정보길드 [자유의 날개].
루벤 왕국의 수도 투리엄에서 제법 알아주는 정보 길드였다.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규모는 작지만, 정보의 질이 뛰어나고 신뢰할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사내 ‘케인’은 바로 그 자유의 날개를 이끌고 있는 길드장이었다.
맨손으로 시작해서 불과 3년 만에 왕국 10대 정보길드를 꾸린 업계에선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정체를 아는 자는 드물었다.
그는 정보길드의 장이기도 했지만, 말만 대표가 아니라 길드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였다.
애초에 길드원을 육성한 것도 그였고, 가장 중요한 정보 수집원도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신비감까지 더해져 붙은 코드명이 ‘페이스리스’.
즉 ‘얼굴 없는 자’라는 별명이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케인이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것은 불과 6개월 전.
나름 질서가 잡혀 있는 투리엄의 암흑가에 이상한 무리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딱히 이상함을 느끼진 못했다.
하루에도 몇 군데씩 건달 조직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뒷골목 건달 조직의 절반을 장악해 버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 조직의 간부나 구성원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워낙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어 버리니 당한 쪽에서도 상대방이 누군지 파악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암흑가의 건달 조직은 귀족가의 가호를 받는 몇몇 굵직한 곳을 제외하곤 통합되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케인을 비롯한 몇몇 정보조직 말고는 아무도 캐치하지 못할 정도로 통합 과정도, 그리고 이후의 행보도 은밀했다.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건 그다음부터였다.
투리엄의 각종 길드들이 습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암흑가에는 가장 하위 조직인 건달 조직이 있고, 그 위에 도적길드, 정보길드, 어쌔신길드 등이 존재했다.
당연히 길드의 무력이나 조직력은 건달 조직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위계를 무시한 먹이 사슬의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별다른 사상자가 없었던 건달 조직 통합과는 달리, 길드의 습격에선 수많은 사람이 소리 소문 없이 죽고 사라져 갔다.
하룻밤 사이에 작은 규모의 길드 하나가 통째로 증발해 버리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길드만 노리던 이들이 점점 큰 길드를 노려왔고, 결국엔 귀족을 배후에 두고 있거나 전국구인 길드 지부까지 습격했다.
그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길드들이 대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
일반적으로 암흑가의 전쟁이 벌어지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길드의 사활을 걸고 싸움이 벌어진다 해도 끝나고 난 뒤에는 패잔병을 거두고 그 영역을 수습한다.
그런데 지금 길드를 습격하는 이들은 그런 목적성이 없었다.
아니 목적은 단순했다. 길드 자체의 소멸.
협상도 없었고, 포섭도 없었다.
길드들은 뒤를 봐주던 귀족가나 심지어 경비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애초에 상대의 정체를 모르는데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지난 6개월간 수십 개의 길드가 사라져갔다.
살아남은 것은 왕국에서도 손을 대지 못하는 거대 길드 지부 몇과 신경 쓸 필요조차 없어 보이는 소규모 길드 몇몇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어차피 암흑가란 존재는 그런 곳이니까.
누군가가 사라지면 언젠가는 누가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곳.
문제는 그 공백의 기간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암흑가의 혼란과 정보의 혼재였다.
‘아마도 놈들의 노림수는 처음부터 그것이었겠지.’
케인은 수도의 밤하늘에 게이트가 나타난 순간, 정체 모를 놈들의 목적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모르는 새에 어떤 거대한 음모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그게 무엇이든 당장 중요한 것은 눈앞에 닥친 적들을 맞이하는 일이었다.
지난 6개월간 미리 준비해 두었던 십여 개의 안가(비밀가옥)를 이용해 최대한 저들의 습격을 피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길드원의 1/5은 이미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대원들은 수도 밖으로 도피한 상태였다.
여기 남아 있던 이들은 그간의 자료를 정리하고 어떻게든 적들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했던 최후의 대원들.
‘설마 게이트가 등장한 뒤에도 사냥을 계속할 줄이야.’
사실 마음 같아선 정예 대원들과 함께 적들과 한판 붙어보고 싶었지만, 적들의 잔혹한 행적을 보곤 정면대결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제 이곳마저 잃으면 수도 내에서 그가 몸을 피할 곳은 없었다.
저들에게 개처럼 쫓기다 죽을지, 그도 아니면 어떻게든 수도 밖으로 도망쳐서 뒷일을 기약할지 선택해야 할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도망치는 건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원들이 빠져나갈 시간도 벌 겸, 어디 한 번 실력이나 확인해 보자.’
엑스퍼트 상급의 실력자 ‘페이스리스’가 쥐고 있는 두 자루의 헌팅 나이프에서 짙은 녹색의 검기가 삐죽 솟아 나왔다.
쾅!
“쥐새끼 같은 놈들. 도망치는 것도 여기까지, 크헉!”
케인의 단검이 겁도 없이 들어오던 두 놈의 멱을 제대로 따버렸다.
“실력자다!”
“시간을 끌어! 어차피 한 놈이다!”
두 놈이 쓰러졌음에도 다른 놈들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뒤쪽에 있던 놈들이 통짜 쇠로 만든 카이트 실드로 몸을 가리며 케인을 압박해 들어왔다.
‘흥. 그깟 방패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케인이 족히 3m는 뛰어올라 천장을 박차고 방패벽을 넘어 놈들의 뒤를 노렸다.
뒤쪽 놈들은 방패가 없었기에 금방이라도 쓰러트릴 수 있어 보였다.
텅!
하지만 반투명한 막이 케인의 헌팅 나이프를 가로 막았다.
“쉴드?”
쉴드 마법이 갑자기 여기서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케인은 재빨리 자세를 낮추고 몸을 회전시켰다.
쉬리릭!
“으악!”
반응이 늦은 몇이 종아리를 베여 틈을 보였고, 케인은 날렵하게 적들의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휘리릭! 채쟁!!
뒤쪽에 있던 적들이 단검과 손도끼 등을 투척했고 케인이 그것들을 쳐내는 사이 무시무시한 기운이 날아들고 있었다.
화르륵!
맹렬한 기세의 불줄기가 마치 화염방사기처럼 케인을 덮쳤다.
퍼버버벙!
케인이 황급히 헌팅 나이프 두 자루를 맞대 급회전시키자 그의 몸 앞쪽에 옅은 녹색의 검막이 형성되어 불길을 막았다.
‘파이어 블래스트까지! 크윽.’
적에게 적어도 5서클의 마법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휘리릭.
불줄기가 끝나고 케인은 머리가 약간 그을린 것 말고는 멀쩡해 보이는 상태로 적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짝짝짝!
“과연, 암흑가의 실력자라 불릴 만하구나. 원래는 다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실력이 아까워. 어떠냐? 투항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박수를 치며 나타난 이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제안했다.
‘황동 가면?’
남자는 코 위를 가리는 황동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의 생김새는 마치 지옥의 파수견이라는 케르베로스를 연상케하는 사나운 형상이었다.
“헛소리 집어치워라! 네가 이들의 수장이냐?”
케인이 살짝 달아오른 단검을 앞으로 내밀며 묻자 남자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여기가 바로 네 묏자리다!!”
케인이 가면의 남자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의 단검에서는 뭐든지 찢어버릴 것 같은 톱날 모양의 녹색 검기가 흉포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앞을 가로막은 검은 그림자에 의해 저지되었다.
드르르르륵!
그의 톱날 검기가 불꽃을 튀기며 무언가를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케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파워아머!! 도대체 정체가 뭐냐!”
허리를 베어오는 롱소드를 피해 뒤로 훌쩍 물러서며 케인이 외쳤지만, 답은 없었다.
“이제 저항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겠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묻지. 투항하겠나?”
입술을 꾹 깨문 케인이 경계 자세를 풀지 않은 채 파워아머를 노려보았다.
‘검기를 막은 팔뚝에 스크래치가 생겼어. 보급형인건 분명한데 어디 물건이지?’
파워아머 외형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서 겉만 봐선 모델명을 알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명색이 정보길드 수장.
케인은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시중에 알려진 각 파워아머들의 특징을 떠올리며 눈앞의 파워아머와 비교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무언가를 떠올린 케인이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 제국 놈들이냐?”
“……!”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장내의 분위기가 일순 흐트러졌음을 느꼈다.
단검을 쥔 케인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호오, 제국이라니? 꽤나 참신한 추론이지 않은가? 뭘 보고 그런 웃기는 말을 내뱉은 거지?”
황동가면의 남자가 물었지만, 케인의 꾹 닫힌 입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틀림없어. 전란의 시대 때 일이지만, 분명 제국에서 운용하는 첩보 조직이 있다고 했었지. 그리고 얼마 전 자유 도시 쪽에서 제국의 잔재가 나타났단 사실을 들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니!’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는 케인을 바라본 황동 가면이 재미없다는 듯 혀를 차고는 명령했다.
“죽여.”
화르륵. 슈아악!!
케인을 향해 각종 마법과 검기가 쏟아졌다.
아무리 엑스퍼트 상급의 실력자라 한들 저 모든 공격을 막아내긴 힘들어 보였다.
콰광!!!
그리고 모든 공격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이런 쥐새끼 같은 놈!! 감히 내 눈앞에서 도망을 가? 쫓아!!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놈의 머리를 가져와!!”
방금까지 여유롭기 그지없었던 황동가면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가자!”
“멀리 가진 못했을 거다. 수도 내에선 아티팩트의 효과가 극감하니까.”
“제길. 겨우 정보 길드장 나부랭이가 어떻게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거지?”
후드를 뒤집어쓴 이들이 저택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했다.
빈민가 주변의 저택이었기에 그들의 행동은 거칠었다.
“얼굴 똑바로 안 쳐들어!?”
“저리 비켜, 이 거지 새끼야!”
“늙은 놈들은 저리 꺼져!”
얼굴 확인을 마친 이들이 거칠게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어이쿠, 나리 살려 주십쇼!”
사람들은 살벌한 기세에 놀라 바닥에 넙죽 엎드려 있었다.
그들은 후드의 사내들이 시야 밖으로 빠져나갔음에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넝마가 된 옷을 입고 허리가 완전히 굽은 곱추 노인 하나가 다리를 절며 자리를 떠나갔다.
그날, 제국 첩보부 임페리얼 하운드의 요원들은 케인을 잡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