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67
제67화
“아이고, 기사님! 투구 끈이 떨어지셨군요!!”
“기사님, 혹시 장비 수선이 필요하진 않으십니까?”
“혹시 식사는 하고 오셨는지요?”
심사장 곳곳에서 어떤 이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라울과 함께 온 용병들과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이었다.
그들이 말을 거는 대상은 주로 혼자 있는 기사들, 혹은 종자 하나만 달랑 데리고 있는 이들이었다.
서임식에 참석한 이들 중 자유 기사들은 수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경우가 대다수였다.
시일에 쫓겨 급하게 도착한 이도 있었고, 미리 도착했다고 해도 제대로 정비를 하지 못하고 참석한 이들이 많았다.
자유 기사란 단어가 굉장히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은 제대로 된 수입이 없는 백수 방랑자나 마찬가지.
기사 생활을 유지하려면 기본적으로 말을 먹이고 관리하는 비용부터 갑옷과 무기의 관리까지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많았다.
자유 기사로서 이런 비용을 충당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래서인지 참석한 기사들의 상태도 별반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런 이들에게 라울의 고용인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무료로 장비를 점검해 드립니다!”
“식사가 필요하시다면 잠시 와서 드시고 가시지요.”
“갑옷에 때가 많이 묻으셨군요! 이쪽으로 오시면 깨끗하게 손질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방랑하던 자유 기사들인 만큼 의심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는 법! 어느 상단에서 나온 호객꾼이냐?!”
“호객꾼이라니요! 저는 애쉬튼 백작가의 라울 공자님의 식솔입니다. 기사님께 제공해 드리는 서비스는 모두 저희 공자님께서 먼 길 오신 기사분들을 위해 준비해 두신 겁니다. 절대로 돈 같은 걸 받을 일은 없으니, 속는 셈 치고 잠시 들렀다 가시지요!”
“애쉬튼 백작가? 라울 공자님이라면 혹시…?”
“맞습니다. 투리엄의 수호자이자 퍼스트 기사단의 주인이신 바로 그 라울 공자님이시지요.”
“크흠…. 그렇다면야. 라울 님의 성의를 봐서라도 호의를 받아들이겠다.”
이런 식의 대화가 시험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심사장 외부의 널찍한 공터에는 애쉬튼 백작가의 문장과 퍼스트 기사단의 문장이 찍힌 간이 막사와 천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곳에는 특별히 초빙한 대장장이들이 간이 작업실에서 간단한 무구의 수리와 정비를 도와주는가 하면, 요리사들이 직접 음식을 조리하여 제공하는 간이식당도 마련되어 있었다.
저택에서 지원 나온 고용인들은 갑옷의 먼지를 털고 무구를 반짝반짝하게 닦아주고 있었고, 임시 마구간에선 충분한 건초와 함께 말들을 돌봐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물론 협회에서 참가자들을 위해 제공하는 기본 서비스도 있었지만 결코 애쉬튼 백작가의 수준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상단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는 당연히 돈을 지불해야 했다.
“맙소사. 정말로 이게 다 무료란 말인가?”
한 기사가 거의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오늘 새벽녘에야 겨우 투리엄에 도착한 관계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서임식에 참석해야만 했다.
당연히 관도를 달려오느라 갑옷은 먼지투성이였고 말은 지쳤으며 식사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속는 셈 치고 안내인을 따라왔더니 잠깐 사이에 갑옷은 광택이 흐르고 있었고, 한동안 손질하지 못했던 보조 무기의 날까지 공짜로 갈아주는 게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제공되는 식사는 근래에 맛보지 못한 귀족가의 고급 음식으로 제공되었으니 그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기사님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출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용인들이 응원과 함께 몇 가지 물건을 챙겨주었다.
“땀을 닦으실 수건, 중간중간 마실 홍차, 그리고 출출하실 때 드실 간식거리를 준비했습니다.”
“오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얼핏 물건을 살펴보니 수건에는 애쉬튼 백작가의 문양이 금실로 수놓아져 있었고 물병과 도시락 통에는 퍼스트 기사단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품질 자체도 훌륭해서 두고두고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을….”
“그것은…?”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편지봉투에 퍼스트 기사단의 문장이 멋들어지게 박혀 있었다.
“라울 공자님께서 기사님께 드리는 초청장입니다. 다음 주에 퍼스트 길드와 퍼스트 기사단의 단원을 새로 모집할 예정인데, 그 초청장입니다. 혹시 머무실 곳이 없으시다면 저택에서 숙식도 제공해 드리니 부담 없이 참석해 주십시오.”
기사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초청장을 받아 품속에 고이 간직했다.
그동안 기사단 공개모집이 있다면 수소문 끝에 찾아가는 경우는 있었어도, 초청장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숙식 제공이라니? 입단 시험에 응시하는데도 돈을 받아먹는 세상에서 이런 대접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퍼스트 기사단이라. 신생 기사단치곤 유명하단 얘길 듣긴 했는데. 한번 지원해볼까?’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그는 서임식이 끝나고 나면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심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기본기 심사는 정오가 조금 지나서야 끝이 났다.
1500명 가까운 참가자 가운데 심사를 통과한 이는 300명 정도에 불과했다.
참가자 수가 많아서였는지 예년에 비해 심사 기준이 까다롭다는 원성도 있었지만 본인의 실력을 탓할 일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라울과 퍼스트 기사단원들은 모두 심사를 통과했다.
2차 심사인 지도대련을 앞두고 참관인석에서는 여러 가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서임식에 기사들을 참가시키는 것과는 별개로, 수도에 상주하는 5대 무가 관련 귀족들 상당수가 서임식을 참관했다.
“확실히 예년에 비하면 수준이 많이 떨어졌군요.”
“당연한 거 아니겠소? 우리 명문가의 기사들이 거의 참가하지 않았으니 말이지. 근본도 없는 놈들 실력이야 뻔하지 않소?”
랜달가 귀족들이 모여 있는 참관석에선 참가자들에 대한 품평이 한창이었다.
“그나저나 로이 님도 무사히 심사를 통과하셨군요. 역시나 어린 나이에 대단하십니다!”
“하하하, 당연한 결과 아니겠소? 10공자님이 오늘 서임을 받으시면 우리 랜달가에서 또 하나의 별이 탄생하게 되는 거지요. 23살에 공인 기사라! 생각만 해도 기대되지 않소?”
“그렇습니다. 다음 신문 기사는 로이 님과 우리 랜달가의 이야기로 도배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오늘 언론사에서 취재를 많이 나온 모양이던데, 이번에야말로 스포트라이트를 뺏어올 수 있겠군요.”
한동안 이번 서임식에 참가한 랜달가의 10공자 로이에 대한 덕담이 오갔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어진 대화는….
“헌데 정말 이번 대회는 심사 기준이 엉망인가 봅니다. 어떻게 저런 풋내기들을 통과시킬 수 있는 겁니까?”
“내 말이 그 말이오. 아무리 요즘 약간 인기를 얻었다고 하지만, 신생 기사단 아니오? 어떻게 전원을 통과시키냔 말이지.”
“애쉬튼 놈들이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무슨 종자 놈들까지 저런 겉멋만 든 갑옷을 입혀 참가시키다니… 쯧쯧.”
“최후의 발악 같은 거 아니겠소? 있는 돈 없는 돈 다 짜내서 연극이라도 한판 벌이겠다는 거겠지. 아주 돈 지랄을 해서 아들놈을 띄워주더니, 이젠 협회에도 돈을 먹인 모양이오.”
“퉷, 더러운 놈들 같으니!”
“하지만 그 장난질도 오늘로 끝이오. 오늘이야말로 놈의 바닥이 낱낱이 드러날 테니 말이지.”
“무슨 말입니까?”
“하하, 기다려 보시오. 이미 본가에서 손을 써놨으니 말이지. 아마 라울이라는 애송이는 오늘 몸 성히 돌아갈 수 없을 거요.”
“허허, 그것 참 안 된 일입니다. 사람이 분수를 지키지 못하면 불운한 일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자자, 이제 놈의 얘기는 그만하고 구경이나 합시다. 혹시 압니까? 쓸 만한 사냥개라도 하나 구할 수 있을지.”
그렇게 랜달가의 무리가 신나게 떠들고 있는 반면, 굉장히 무겁고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참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저 광대무리의 대장 놈이 내 막내 조카란 말이지?”
“그, 그렇습니다.”
꽤나 넉넉한 크기로 제작된 참관석 의자였음에도 남자에게는 너무 작아보였다.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댄 거대한 체구의 중년 남자는 바로 라울의 큰아버지인 제이든 자작이었다.
5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단련한 육체는 굉장히 탄탄해 보였고, 반쯤 벗겨진 머리와 왼쪽 눈을 가로질러 뺨까지 이어진 긴 자상이 그의 인상을 사나워 보이게 만들었다.
꽝!
“겨우 저런 핏덩이 하나 상대하지 못해서 수도 저택과 그 많은 재산을 날려 먹었단 말인가!!”
“며, 면목 없습니다.”
제이든 자작이 팔걸이를 내려치며 화를 내자 주변에 있던 인물들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사죄했다.
어쩐지 낯익은 인물들이 많아 보였는데, 그들은 바로 라울과 분쟁을 일으켰던 애쉬튼가의 친족들이었다.
일을 벌였던 젠더 남작과 주동자의 가족들은 재산을 몰수당한 채 본가에 잡혀가 감옥살이 중이었고, 겨우 숙청을 피한 이들은 여러 가지 이권과 내기에 걸었던 저택 값을 모두 지불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물론 여기 있는 제이든 자작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들은 모두 파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
하지만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이런 쓸모없는 놈들도 필요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타이터스. 너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서 일이 그 지경으로 꼬일 때까지 도대체 뭘 한 거야? 내가 없을 땐 네가 책임자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냐!”
“죄송합니다. 너무나 일이 빠르게 진행되는 바람에 도저히 끼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때 제가 나섰다면 아마도 일이 훨씬 복잡해졌을 겁니다.”
제이든 자작의 말에 또박또박 대답한 청년은 바로 그의 장남인 타이터스였다.
스물일곱의 어린 나이임에도 엑스퍼트 중급에 올라 자작의 신임을 듬뿍 받고 있는 이였는데, 아버지와는 달리 늘씬한 체형에 미남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후우. 이미 지나간 일이니 넘어가겠지만, 다시 한번 실수를 한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그 일은 실수가 아니라 사고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젊은 혈기 때문인지 타이터스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래서, 저 우스꽝스러운 갑옷을 입은 녀석들은 도대체 수도에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냐?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무래도 ‘그자’가 왕국 정계에 발을 들일 생각인 모양입니다. 아주 돈을 쏟아 부으면서 막내아들을 밀어주고 있습니다. 우매한 시민들이 그 장난질에 놀아나고 있구요.”
타이터스가 말한 ‘그자’는 바로 애쉬튼가의 가주인 멜빈 백작을 뜻했다.
제이든 자작은 멜빈을 거의 원수처럼 생각하기에 이름을 듣는 것조차 싫어했던 것이다.
“허, 웃기지도 않는군. 촌놈은 촌놈답게 시골에 처박혀 있으면 될 것을.”
혀를 찬 제이든 자작이 다시 팔짱을 끼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알고 있는 동생이라면 딱히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인물이었다. 게다가 자식놈을 방패삼아 음모를 꾸밀 만큼 독한 놈도 아니었는데….
‘세월이 지나 성격이 바뀌었나? 아니면 내가 있는 동안은 연기를 한 것일 수도 있겠군.’
정답이 뭐든 아무 상관없었다. 어차피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준비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고 놈이 무슨 짓을 하든 결코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마침 좋은 사냥감이 나타났군. 저 녀석 정도면 좋은 여흥 거리가 되겠어.’
제이든 자작이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라울을 탐욕스럽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진짜 사냥꾼이고 누가 먹잇감인지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