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89
제89화
긴장하며 신전 내부로 들어섰지만 당장 전투가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신전 입구부터 근위 기사와 근위병들의 사체가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적어도 사망한 지 한 시간은 지난듯합니다. 대부분 무기에 당한 걸 보니 몬스터가 아닌 제국 놈들의 짓으로 보입니다.”
피어스가 사체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그리고 일부 기사들의 상처가 몸의 뒤쪽에 나 있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배신자들에게 뒤통수를 맞았겠지.”
제국 놈들의 사체는 거의 보이지 않았으니, 일방적으로 당한 듯했다.
“일단 안쪽으로 들어가 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조각상들 사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낮은 단상 위에 특이한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게이트…일까요?”
육각형 단상의 꼭짓점 부근에는 사람 가슴만 한 높이의 기둥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마법진으로 보이는 기이한 문양들이 기둥 전체를 감싸고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단상의 한가운데에는 가운데가 뻥 뚫린 높이 3미터 정도의 직사각형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돌기둥의 중간에는 반투명한 푸른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었는데, 그 형상이 마치 게이트와 비슷해 보였다.
“저건 게이트가 아니라 결계야. 형태로 봐선 아주 오래전에 설치된 것 같아.”
라벨이 라울의 어깨 위에 걸터앉아 그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결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손상이 심각해. 특정 인물이 아니면 출입할 수 없어야 정상인데, 지금 상태로 봐선 아무나 진입할 수 있을 거야. 상대 쪽에 굉장한 수준의 마법사 혹은 결계술사가 있는 모양인데?”
‘놈들의 진짜 목적은 이것과 관련된 듯한데….’
그때 결계 맞은편을 살펴보던 필립이 라울을 불렀다.
“마스터, 잠시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곳에는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신분으로 보이는 인물의 사체가 기둥에 묶여 있었다.
격렬한 전투를 치렀는지, 온몸에 크고 작은 자상이 가득했다.
그리고 반 이상 잘려 나간 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단상 전체를 적시고 있었다.
“왕세자님입니다.”
“……!”
필립이 과거 공인 기사가 되었을 때 서임을 내려 준 것이 왕세자였기에 착각할 리는 없었다.
“잔인한 놈들이네. 결계를 약화시키는 데 왕세자의 피를 사용한 것 같아.”
라벨의 설명이 없더라도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편히 모시도록 해.”
“네, 마스터.”
필립이 비통한 표정으로 줄을 끊고 왕세자의 사체를 수습했다.
라울과 달리 정통파 기사였던 필립에게는 꽤 충격적인 사건인 모양이었다.
이를 꽉 깨물고 왕세자를 내려다보고 있는 필립의 모습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말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준 라울이 몸을 돌려 결계석으로 향했다.
도대체 이 안에 무엇이 있길래 이런 사달을 벌였단 말인가.
라울이 굳은 표정으로 손을 뻗어 결계석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눈동자를 황금색으로 물들이며 분석안을 발동한 순간, 그의 의식이 살짝 멀어지며 이상한 영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 *
라울은 마치 빙의라도 한 것처럼 누군가의 시점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 누군가는 검 하나만으로 A등급 정예 가디언 [베놈 레서 드래곤]을 몇 등분으로 조각내 버렸다.
수십 미터 크기의 괴물이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썰려 나가는 장면은 전혀 현실적이지 못했다.
‘전생에 저놈 잡으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못해도 보름 이상을 준비했고, 사냥하는 데도 거의 하루 가까이 걸렸다.
혼자서 저놈을 잡고 올린 [A등급 정예 가디언 솔로 레이드] 영상은 억 단위를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배도현이 죽기 전까지 베스트 영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괴물을 별것 아니라는 듯이 처리해 버린 모습에 전율이 흘렀다.
장면이 급격히 전환되었다.
‘이곳은…?’
신전에 도착한 누군가의 눈에 라울이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근위병과 기사들의 사체가 가득했다.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는 왕세자의 모습을 일별한 누군가가 결계석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미 늦었다. 수호자 카르데나스. 아니 과거의 망령이여.”
커다란 광장 너머 피라미드처럼 생긴 수십 미터 높이의 계단형 건축물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최상층에 놓인 제단 뒤쪽에 보기만 해도 불길한 ‘암흑의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게이트 앞의 허공에는 검은 정장에 중절모를 쓴 어떤 남자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담배를 피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남자의 이마에 손가락만 한 뿔이 세 개 돋아 있다는 것과 핏물처럼 새빨간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만하게 앉아 있는 그 남자 아래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은색 가면을 착용한 이가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는 바로 임페리얼 하운드 루벤 왕국 지부장 실버 제로였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에 걸맞은 제물이구나. 카르데나스, 그 역겨운 위선의 가면과 함께 이곳에서 잠들어라!”
장황하게 소리친 실버 제로가 허공의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푸무스 님.”
“계약은 꼭 이행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흠. 첫 개시가 반쪽짜리라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나.”
남자가 양손을 뻗자 새까만 연기 두 줄기가 꽈르릉 소리를 내며 피라미드 중턱으로 향했다.
꽈드득.
“끄아악.”
“살려 줘!”
밧줄에 묶여 있던 30여 명의 병사가 연기에 휩싸이더니 믹서기에 갈린 것처럼 붉은 피 안개로 변해 바닥의 마법진에 빨려 들어갔다.
구우웅.
핏물에 물든 마법진이 3미터가량 떠오르며 회오리치듯 회전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악마종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컹컹!”
“끼르륵.”
헬하운드와 임프는 물론이고 둠나이트, 헬 솔져 등 B등급 이상 몬스터도 여럿 섞여 있었다.
라울이 빙의해 있던 ‘누군가’, 아니 수호자 카르데나스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가볍게 두어 번 휘두른 검에서 뻗어 나간 오러 블레이드가 반경 20미터 내의 모든 악마종들을 조각내 버렸다.
그리고 가볍게 수십 미터를 뛰어오른 그의 검이 횡으로 휘둘러지자, 산이라도 갈라버릴 것 같은 거대한 푸른 검강이 파도처럼 피라미드 정상을 향해 밀려갔다.
꽈르르릉!!
거대한 충격파가 공간 전체를 뒤덮었다.
검강이 터져 나간 자리에는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 푸무스가 한 손을 앞으로 내민 채 공중에 떠 있었다.
굉장히 거만한 그의 자세와 달리 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손바닥은 쫙 갈라져 검은 피가 아래로 뚝뚝 떨어지다 서서히 아물었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의 자존심은 이미 구겨진 듯했다.
“이 하찮은 필멸자 놈이 감히 이 몸에 상처를 내? 마계 서열 98위 [마계자작 푸무스]의 이름을 걸고 네놈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주마!”
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고, 그것들은 각종 몬스터의 형태로 변해 카르데나스를 덮쳐 왔다.
마법진에서 쏟아져 나오는 악마종 몬스터까지 합세하니 거의 일 대 수백의 대결이 벌어졌지만, 카르데나스의 검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펑, 쿠르릉!
그렇게 카르데나스와 푸무스의 대결이 시작되었고, 실버 제로는 제단 주변을 둘러싼 수십 명의 마법사들과 함께 모종의 의식을 시작했다.
반투명한 검은 구체가 그들의 주위를 뒤덮으며 일종의 결계를 형성했고, 결계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 아지랑이가 ‘암흑의 게이트’ 끝단에 연결되어 있었다.
또 한번 장면이 전환되었다.
‘시간이 흐른 건가?’
제단 위의 결계는 완연한 검은 구체로 변해 안쪽의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카르데나스와 푸무스의 전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푸무스가 입고 있던 정장이 걸레 쪼가리처럼 변해 있었고, 몇 곳의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지 검은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전투는 카르데나스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게 승부가 갈릴 것 같진 않았다.
여전히 마법진에선 몬스터들이 소환되고 있었고, 푸무스는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를 통해 에너지를 보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간히 카르데나스의 검이 푸무스를 노릴라 치면, 몬스터들이 몸을 던지며 그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리고 정말 위협적인 공격이 날아왔을 때는 푸무스가 몸을 검은 연기로 변환시켜 흘려 냈다. 물론 완벽히 흘려 내지는 못했기에 상처가 남기는 했지만.
라울은 카르데나스의 시점에서 전투를 바라보며 그의 검술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인간의 검술이 이렇게 완벽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그 압도적인 실력과 위력에 홀려 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의 경지는 어느 정도 되는 것일까?’
환생 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커넥트의 세상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강자들과 몬스터들을 만나 봤지만, 단연코 가장 강한 이는 이 카르데나스란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도 수백의 몬스터와 마계 자작을 상대로 오히려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의 실력은 이게 전부가 아닌 게 분명해.’
비록 시야만 공유하고 있지만, 전투 중 그의 움직임에서 뭔가 불편함이 느껴졌다.
마치 방법은 알고 있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이었다.
뭔지 몰라도 그가 전력을 다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듯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카르데나스의 전투를 훔쳐보던 라울의 시야에 무언가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아니, 저놈은?’
조금 전 도망쳐 버린 호세 상급 근위 기사, 임페리얼 하운드의 간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몬스터를 방패 삼아 카르데나스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검은 구체로 둘러싸인 결계 근처까지 도착한 그의 앞을 푸무스가 가로막았다.
“뭐 하는 놈이냐?”
“아, 저, 저는 그분을 모시는 종입니다. 당신을 깨운 저들의 동료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도,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결계 안으로….”
펑, 콰과광!
근처에서 오러 블레이드의 파편이 터져나가며 1호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빨간 핏방울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자, 푸무스의 눈이 반달처럼 변했다.
“놈의 동료라니 잘되었구나. 나를 좀 도와줘야겠다.”
“네? 그게 무슨 말, 흐억! 아아악!”
푸무스의 꼬리가 1호의 가슴을 꿰뚫었고, 검은 연기가 1호의 전신을 뒤덮었다.
스가가각. 꾸드득.
괴랄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약간 붉어진 듯한 검은 연기가 다시 푸무스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떨그럭.
그 자리에 남겨진 것은 볼품없는 쇳덩어리 한 조각뿐이었다.
임페리얼 하운드의 간부이자 최상급 엑스퍼트의 기사였던 1호의 어이없고 허망한 최후였다.
“끄어억. 고놈 참 실하구나.”
트림을 내뱉은 푸무스의 상처가 대부분 사라지고 그의 몸을 둘러싼 검은 연기도 농도가 짙어진 듯했다.
그리고 다시 검은 연기 몬스터들이 카르데나스를 덮쳐 갔다.
“…울, 라울! 괜찮아?”
정신을 차려보니 라벨이 옆에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울은 결계석 기둥에서 손을 떼며 물었다.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어?”
“한 1분 정도? 너무 멍하니 있길래 걱정돼서 불러봤지.”
‘꽤 긴 시간이 흘렀을 줄 알았는데 1분이라니.’
무슨 이유로 그런 장면을 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라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필립, 피어스. 잠시 이쪽으로 와봐.”
라울의 황금빛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